[그곳을 보고 싶다] 북한산 유적 등산객들로 훼손돼

입력 1995.04.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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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진 앵커 :

오늘도 찾으신 분 많을 줄 압니다. 만은 북한산은 경치도 아름답고 다양한 역사유적을 간직하고 있는 천해의 등산로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규원 앵커 :

그러나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 경호상의 문제로 통제되던 북한산 등산로가 개방되면서 많은 역사유적들이 등산객들에 의해서 마구 짓밟히고 있습니다.


김종진 앵커 :

이세강 기자가 북한산의 등산로를 따라서 유적 훼손실태를 점검했습니다.


이세강 기자 :

북한산은 경관이 좋고 도심에 가까이 있어 하루 평균 만 명의 등산객들이 찾습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만큼 산성내의 방치된 문화유적은 점차 훼손돼 가고 있습니다.


정동일(향토사학자) :

지금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가들이 많이 있는데요. 본래 이곳이 조선시대때 굉장히 중요했던 하창, 창고 자리입이다. 지금 보게 되면 그 하창 자리 증거들로 이렇게 건물에 사용되는 대석돌이 남아있는 것이죠. 이 대석들 주위에 주추석을 세우고 주추석 위에 건물을 만들게 돼있는 거죠.


이세강 기자 :

주춧돌이 자연스럽게 점포 기초석이 됐습니다. 하창의 축대는 개천가 쓰레기받이의 허물어질 듯 겨우 지탱하고 있습니다. 무장공비의 침투로 이었다고 해서 출입이 통제됐던 등산로가 최근 개방되면서 유적들의 수난을 심해졌습니다. 80여개의 선정비와 공덕비가 있어 비석거리로 불리던 이곳에는 지금은 20이개가 남았고 그나마 등산객 발길에 채이고 밟히며 수난을 겪고 있습니다. 백여 년 전 승려들이 낙하산식 인사에 항의했던 암각문입니다. 돌보는 이 없이 역시 사찰에서 흘러나온 생활하수로 파손돼 가고 있습니다. 임금의 휴식 터였던 계곡의 선영루 역시 돌기둥만 앙상하게 남은 채 계곡물과 등산객들만 무심히 지나치고 있습니다.

"이게 일본인들이 잘돼있는 벽화에 다가..."

용학사의 암각불화도 고려시대 유적이지만 일본인들이 회칠한 상태로 방치되고 있습니다. 고려시대때 세워진 중홍사터 입니다. 북한산성내 사찰의 중심이었고, 전란이 있을 때면 승병의 총본부였지만 백칸이 넘던 절의 위용은 이제 혼적을 찾기 어렵습니다.


김경운(70, 북한산 토박이) :

기미년 독립만세를 부를 적에 거기에 전부 사람들이 집결지가 되고 은거처가 되니까 이지 일본 놈들이 사람들을 꼬이는 거를 방지하기 위해서 그걸 갖다가 불 질렀다는 걸 내가


이세강 기자 :

이 같은 증언과 사진과는 달리 안내판에는 일본인들이 왜곡한 역사를 별다른 고증 없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대웅전과 만세루를 이야기 하면서 1894년에 화재를 만났다고 돼있습니다. 저희가 지금 확보하고 있는 사진은 1904년도에 찍은 사진이죠? 이것도 이미 화재를 만났을지 모르겠지만 그 이전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던 것을 저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일제가 불태워버린 또 다른 유적 행궁터 입니다. 왕의 최후 방어 거점답게 북한산성에서 가장 깊숙한 곳 계곡아래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일렬로 늘어선 반듯한 주춧돌과 축대석 몇 개, 그리고 주위에 흩어진 기와조각만 옛 자취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120여칸에 달했다는 행궁은 이제 후손들의 무관심 속에 낙엽과 토사에 묻혀가고 있습니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목 북한산장 앞 5층 석탑은 아예 등산객 발아래 누워 신음하고 있습니다. 해발 8백m 우리나라 성문 가운데 기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이곳 위문에서도 역사유적의 훼손현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위문을 통과해 백운대 정상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는데도 지름길로 가려는 등산객들이 성벽을 타고 넘어가면서 성벽 일부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성체위에 설치된 벤치도 역사유적 보호와는 거리가 멀어보입니다.


임효재(서울대교수) :

서울과 관련된 역사가 완벽하게 나타나 있는 곳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곳이 군사보호지역으로 출입이 금지돼 있다가 최근에 와서 이게 해제되었기 때문에 그 무방비 상태로 지금 파손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역사적인..


이세강 기자 :

삼국시대 때부터 전략 요충지여서 많은 유적을 안고 있는 북한산, 오랑캐에게 항복했던 치욕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조선왕조 최후의 요새로 삼았던 북한산성, 그 역사의 현장은 지금 등산객들의 발길에 훼손돼 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세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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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곳을 보고 싶다] 북한산 유적 등산객들로 훼손돼
    • 입력 1995-04-02 21:00:00
    뉴스 9

김종진 앵커 :

오늘도 찾으신 분 많을 줄 압니다. 만은 북한산은 경치도 아름답고 다양한 역사유적을 간직하고 있는 천해의 등산로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규원 앵커 :

그러나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 경호상의 문제로 통제되던 북한산 등산로가 개방되면서 많은 역사유적들이 등산객들에 의해서 마구 짓밟히고 있습니다.


김종진 앵커 :

이세강 기자가 북한산의 등산로를 따라서 유적 훼손실태를 점검했습니다.


이세강 기자 :

북한산은 경관이 좋고 도심에 가까이 있어 하루 평균 만 명의 등산객들이 찾습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만큼 산성내의 방치된 문화유적은 점차 훼손돼 가고 있습니다.


정동일(향토사학자) :

지금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가들이 많이 있는데요. 본래 이곳이 조선시대때 굉장히 중요했던 하창, 창고 자리입이다. 지금 보게 되면 그 하창 자리 증거들로 이렇게 건물에 사용되는 대석돌이 남아있는 것이죠. 이 대석들 주위에 주추석을 세우고 주추석 위에 건물을 만들게 돼있는 거죠.


이세강 기자 :

주춧돌이 자연스럽게 점포 기초석이 됐습니다. 하창의 축대는 개천가 쓰레기받이의 허물어질 듯 겨우 지탱하고 있습니다. 무장공비의 침투로 이었다고 해서 출입이 통제됐던 등산로가 최근 개방되면서 유적들의 수난을 심해졌습니다. 80여개의 선정비와 공덕비가 있어 비석거리로 불리던 이곳에는 지금은 20이개가 남았고 그나마 등산객 발길에 채이고 밟히며 수난을 겪고 있습니다. 백여 년 전 승려들이 낙하산식 인사에 항의했던 암각문입니다. 돌보는 이 없이 역시 사찰에서 흘러나온 생활하수로 파손돼 가고 있습니다. 임금의 휴식 터였던 계곡의 선영루 역시 돌기둥만 앙상하게 남은 채 계곡물과 등산객들만 무심히 지나치고 있습니다.

"이게 일본인들이 잘돼있는 벽화에 다가..."

용학사의 암각불화도 고려시대 유적이지만 일본인들이 회칠한 상태로 방치되고 있습니다. 고려시대때 세워진 중홍사터 입니다. 북한산성내 사찰의 중심이었고, 전란이 있을 때면 승병의 총본부였지만 백칸이 넘던 절의 위용은 이제 혼적을 찾기 어렵습니다.


김경운(70, 북한산 토박이) :

기미년 독립만세를 부를 적에 거기에 전부 사람들이 집결지가 되고 은거처가 되니까 이지 일본 놈들이 사람들을 꼬이는 거를 방지하기 위해서 그걸 갖다가 불 질렀다는 걸 내가


이세강 기자 :

이 같은 증언과 사진과는 달리 안내판에는 일본인들이 왜곡한 역사를 별다른 고증 없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대웅전과 만세루를 이야기 하면서 1894년에 화재를 만났다고 돼있습니다. 저희가 지금 확보하고 있는 사진은 1904년도에 찍은 사진이죠? 이것도 이미 화재를 만났을지 모르겠지만 그 이전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던 것을 저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일제가 불태워버린 또 다른 유적 행궁터 입니다. 왕의 최후 방어 거점답게 북한산성에서 가장 깊숙한 곳 계곡아래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일렬로 늘어선 반듯한 주춧돌과 축대석 몇 개, 그리고 주위에 흩어진 기와조각만 옛 자취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120여칸에 달했다는 행궁은 이제 후손들의 무관심 속에 낙엽과 토사에 묻혀가고 있습니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목 북한산장 앞 5층 석탑은 아예 등산객 발아래 누워 신음하고 있습니다. 해발 8백m 우리나라 성문 가운데 기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이곳 위문에서도 역사유적의 훼손현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위문을 통과해 백운대 정상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는데도 지름길로 가려는 등산객들이 성벽을 타고 넘어가면서 성벽 일부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성체위에 설치된 벤치도 역사유적 보호와는 거리가 멀어보입니다.


임효재(서울대교수) :

서울과 관련된 역사가 완벽하게 나타나 있는 곳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곳이 군사보호지역으로 출입이 금지돼 있다가 최근에 와서 이게 해제되었기 때문에 그 무방비 상태로 지금 파손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역사적인..


이세강 기자 :

삼국시대 때부터 전략 요충지여서 많은 유적을 안고 있는 북한산, 오랑캐에게 항복했던 치욕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조선왕조 최후의 요새로 삼았던 북한산성, 그 역사의 현장은 지금 등산객들의 발길에 훼손돼 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세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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