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한반도] 3년 만의 상봉…일회성 만남 해법은?

입력 2018.06.30 (07:50) 수정 2018.06.30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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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광복절을 계기로 남북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열기로 합의했습니다.

지금까지 스무 차례의 이산가족 상봉이 진행돼 4천여 가족이 만남의 기쁨을 누렸는데요.

하지만 이 기쁨을 누리려면 5백대 1이 훌쩍 넘는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만 합니다.

또 이산가족의 대부분이 고령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규모를 확대하고 다양한 기회를 더 자주 마련하는 등 보다 근본적 해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번 주 이슈 앤 한반도에서는 이산가족 상봉의 현 실태와 문제점 짚어봅니다.

이다솔 리포터입니다.

[리포트]

서울시 종로구 이북5도청 6.25 전쟁 전후로 남쪽으로 내려온 실향민들이 모이는 공간입니다.

올해 86세인 김인모 할아버지도 전쟁을 피해 고향인 평안남도 진남포를 떠났습니다.

[김인모/86세/이산가족 : "친구들도 여럿이 (피난) 나가고 우리 집안 애들도 다 가니까... 나도 (피난) 갔다가 또 일이 잘 되면 다시 복구하면 금방 들어올 테니까... 그래서 그날 부모하고 형제들하고는 그렇게 헤어져서 만나질 못한 거죠."]

그러기를 벌써 68년.

하지만 고향과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또렷합니다.

[김인모/86세/이산가족 : "(아버지가) 공무원이니까 퇴근하면 이제 한 9시 이렇게 해서 들어오면 저녁을 안 먹고 냉면집 가서 냉면 한 그릇씩 먹고 오고... 부모 생각이 제일 날 때가 그때 생각 많이 나더라고요."]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야식으로 함께 먹던 냉면집을 찾는 김인모 할아버지.

눈 감기 전 다시 한 번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을까요?

김인모 할아버지처럼 생이별의 아픔 속에 살아온 이산가족들의 가슴에 또다시 한 줄기 희망의 빛이 생겼습니다.

남북이 오는 8월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재개하기로 합의했는데요.

이산가족 상봉이 진행되는 것은 2015년 이후 3년 만입니다.

["더 늦기 전에 이산가족들이 만남이 시작될 것이며 고향을 방문하고 서신을 교환할 것입니다."]

판문점 선언에서 광복절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하기로 합의한 두 정상.

남북은 이에 따라 지난 22일 적십자회담을 통해 8월20일부터 26일까지 금강산에서 남북 각각 백 명씩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열기로 합의했습니다.

[박경서/대한적십자사 회장 : "민족의 한을 적십자사가 한번 풀어야 한다. 판문점 선언에 정확하게 얘기가 돼 있듯이 평화 공존을 하면서..."]

남과 북은 다음달 3일 안에 서로 생사확인 의뢰서를 보낸 뒤, 25일까지 답을 받아, 8월 4일 최종 명단을 교환하기로 했습니다.

금강산 면회소 보수 작업을 위해 우리 측 선발대가 사흘 간 현장 점검을 마치고 돌아오는 등 이산가족 상봉 준비도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이산가족의 한을 풀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 졌다는 측면에서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고 있고요. 어쨌든 이걸 계기를 통해 가지고 이제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됨으로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줬다는 점도 우리가 좀 주목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정혜/이산가족 : "저 어렸을 때 있잖아요. 이발소에 맡겨놓고 갔었어요. (예, 맞아요.) 날씨가 흐리고요 (예, 맞아요.) 오빠, 오빠..."]

이산가족 상봉의 시작은 KBS가 1983년 6월부터 넉 달 넘게 방영한 이산가족 찾기 특별 생방송이었습니다.

그 뒤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1985년, 남북의 고향 방문단과 예술 공연단이 각각 서울과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2000년 대규모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됐고, 지금까지 모두 스무 차례, 4천 여 가족이 만남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배순옥/당시 55세/北 오빠 상봉 : "오빠 난 진짜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 빨리 통일되기를 기도해야지."]

하지만 이산가족 상봉은 남북관계 상황에 따라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한동안 상봉 행사가 중단됐고, 2013년에는 북한이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을 핑계 삼아 행사 나흘 전 상봉을 전격 취소하기도 했습니다.

[북한 조평통 대변인 성명/2013년 : "상봉행사를 대화와 협상이 진행될 수 있는 정상적인 분위기가 마련될 때까지 연기한다."]

하지만 이보다 이산가족들을 더 힘들게 하는 건 속절없이 가고 있는 시간과 높은 경쟁률입니다.

지난 25일,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앞두고 1차 후보자 5백 명을 추첨하는 자리.

북에 두고 온 여동생을 만나기 위해 상봉 신청을 한 아흔 다섯 살 박성은 할아버지는 또 한 번 쓰라린 가슴을 매만져야 했습니다.

[박성은/95세/이산가족 : "이름이 없어요? (다시 한 번 해 볼게요.) 저는 이산가족은 끝났어요. 이런 식은 틀렸단 얘기예요."]

이번에 지원한 남쪽 이산가족은 모두 5만7천 명 정도.

최종 선발 인원이 백 명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무려 569대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합니다.

[박성은/95세/이산가족 : "마음대로 갈 사람가고 올 사람 오고 한 달만 허락하면 되는데 이렇게 복잡하게 일을 한다고..."]

1.4 후퇴 당시 부모님과 동생들의 손을 놓은 게 평생 한이라는 김태수 할아버지.

가족을 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매번 상봉 신청을 했지만 기회는 단 한 차례도 오지 않았습니다.

[김태수/89세/이산가족 : "신청은 (적십자사에서) 서류 오는 대로 계속 (했어요.) 이게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했어요. 그런데 안 돼요, 한 번도..."]

내년이면 벌써 아흔. 눈도 어둡고 귀도 잘 들리지 않지만 틈날 때마다 흐려진 기억을 기록해 둡니다.

세월이 흘러 통일이 되면 자식들이라도 고모와 삼촌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김태수/89세/이산가족 : "자식들한테 다 내 동생, 내 누이동생 이런 이름 다 적어주고 주소 적어주고... 그러면서 나 죽으면 한번 만나 봐라, 이렇게 하고 있어요."]

현재 이산가족 생존자의 60% 이상은 80살 이상의 고령자.

매년 3천 8백여 명이 혈육 상봉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과 이별하고 있습니다.

상봉 규모를 확대하고 다양한 형식의 만남을 주선하는 등 근본적 해법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상철/일천만 이산가족위원회 위원장 : "지금 우리가 1988년도입니까? 그때부터 이제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 받았는데 현재 13만 2천명이 신청을 받았어요. 받았는데 그동안에 돌아가신분이 한 57% 정도 이렇게 됩니다. 지금 살아계신 분이 한 5만 2000명 정도 이렇게 계신데 이분들 연세가 거의 뭐 80대 이상 이렇게 되시기 때문에 정말 시간이 없다."]

이처럼 당사자 대부분이 나이가 많다 보니 이산가족 상봉은 시간과의 싸움이라 부를 정도로 시급한 상황에 높여 있습니다.

지금처럼 상봉이 이뤄질 경우 전체 이산가족이 상봉하기까지 무려 520년이 걸릴 것이라는 계산까지 나오는데요.

이러면서 이산가족 상봉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현숙 할머니는 요즘 전화벨만 울리면 가슴이 뜁니다.

혹시 북에 있는 딸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이유에섭니다.

1.4 후퇴 때 잠시 다녀오겠다고 한 뒤 딸과 헤어져 남쪽으로 온 김 할머니.

[김현숙/90세/이산가족 : "우리 신랑하고 시동생하고 나하고 셋이 (피난) 나왔거든. 젊은 사람들 잠깐 피한다고 한 달만 피하면 된다고 딱 나왔다가 70년이 된 거거든. 그 어렸을 때에 그 지난 세월이 애들이 어떻겠냐고.. 그게 자꾸 생각나는 거지 지금.. 내가.."]

3년 전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딸과 손녀를 만났습니다.

2박 3일 간 12시간의 만남.

[김현숙/당시 87세/北 딸 상봉 : "또 만나야지. 또 만날 때까지 나도 악착같이 살 테니깐 너도 건강하게 있다가 만나자."]

마지막 당부의 말이 또 다시 기약 없는 약속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더 이상 소식을 들을 수도, 소식을 전할 방법도 없다는 생각에 몸져누운 적도 많습니다.

[김현숙/90세/이산가족 : "차라리 못 봤으면 못 봤으면 그냥 죽었거니 하고 (여기 생각만) 가지고 살면 되는데, 서 (딸을) 보고 오니까 내 마음은 또 떡해. 생각해 봐요. 안 본 거하고 본 게 어떻게 차이가 나겠나 한번 생각해 보라고..."]

김 할머니처럼 북측의 가족을 만난 이산가족 상당 수 역시 일회적 상봉에 따른 후유증으로 또 다른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기존 상봉자들 역시 계속 생사를 확인하는 등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화상 상봉이라든지 그리고 진짜로 생사 확인 이라든지 서신교환 같은 경우는 조금 더 우리가 적극적으로 얘기하면서 우리가 이벤트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이산가족 고통을 감소시켜 준다는 측면에서 북한에 대해서 좀 더 강력하게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이산가족 시스템 정비 작업입니다.

현재 북한에 남아있는 이산가족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와 함께, 남북한의 자료를 연계하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통일부가 지난 11일부터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전원에 대해 조사를 시작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만큼, 추가 면회소를 마련해 상시적 만남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도 서둘러 마련해야 할 방안입니다.

[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고령인 분들의 체력적 조건이라든지 특히 북한 같은 경우 훨씬 교통인프라가 안 좋기 때문에 사실 금강산까지 오는 것도 쉽지가 않거든요. 개성이라든지 철원이라든지 일단 물리적으로 어쨌든 이산가족 상봉할 수 있는 물리적조건 혹은 인프라 같은 것들을 확충하려는 노력이 좀 필요할 것 같고요.."]

가족들의 생사만이라도 알고 싶은 5만 7천 명의 이산가족과, 꿈에 그리던 혈육을 만난 뒤에도 후유증에 또다시 고통 받는 이산가족들.

[김인모/86세/이산가족 : "제가 또 죽더라도 내 영혼은 죽지 않고 부모님 찾아갈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 드리고 용서해 달라고 빌어야죠."]

[김현숙/90세/이산가족 : "언젠가는 또 만나겠다는 그런 희망을 가지고 우리가 살자. 이제 또 다시 만나기를 기원한다. 너 못 봤어도 사랑한다."]

유일한 분단국가인 남북한이 인도적 차원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절박한 과제이자 시대적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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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30 08:21:47
    • 수정2018-06-30 08:32:46
    남북의 창
[앵커]

광복절을 계기로 남북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열기로 합의했습니다.

지금까지 스무 차례의 이산가족 상봉이 진행돼 4천여 가족이 만남의 기쁨을 누렸는데요.

하지만 이 기쁨을 누리려면 5백대 1이 훌쩍 넘는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만 합니다.

또 이산가족의 대부분이 고령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규모를 확대하고 다양한 기회를 더 자주 마련하는 등 보다 근본적 해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번 주 이슈 앤 한반도에서는 이산가족 상봉의 현 실태와 문제점 짚어봅니다.

이다솔 리포터입니다.

[리포트]

서울시 종로구 이북5도청 6.25 전쟁 전후로 남쪽으로 내려온 실향민들이 모이는 공간입니다.

올해 86세인 김인모 할아버지도 전쟁을 피해 고향인 평안남도 진남포를 떠났습니다.

[김인모/86세/이산가족 : "친구들도 여럿이 (피난) 나가고 우리 집안 애들도 다 가니까... 나도 (피난) 갔다가 또 일이 잘 되면 다시 복구하면 금방 들어올 테니까... 그래서 그날 부모하고 형제들하고는 그렇게 헤어져서 만나질 못한 거죠."]

그러기를 벌써 68년.

하지만 고향과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또렷합니다.

[김인모/86세/이산가족 : "(아버지가) 공무원이니까 퇴근하면 이제 한 9시 이렇게 해서 들어오면 저녁을 안 먹고 냉면집 가서 냉면 한 그릇씩 먹고 오고... 부모 생각이 제일 날 때가 그때 생각 많이 나더라고요."]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야식으로 함께 먹던 냉면집을 찾는 김인모 할아버지.

눈 감기 전 다시 한 번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을까요?

김인모 할아버지처럼 생이별의 아픔 속에 살아온 이산가족들의 가슴에 또다시 한 줄기 희망의 빛이 생겼습니다.

남북이 오는 8월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재개하기로 합의했는데요.

이산가족 상봉이 진행되는 것은 2015년 이후 3년 만입니다.

["더 늦기 전에 이산가족들이 만남이 시작될 것이며 고향을 방문하고 서신을 교환할 것입니다."]

판문점 선언에서 광복절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하기로 합의한 두 정상.

남북은 이에 따라 지난 22일 적십자회담을 통해 8월20일부터 26일까지 금강산에서 남북 각각 백 명씩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열기로 합의했습니다.

[박경서/대한적십자사 회장 : "민족의 한을 적십자사가 한번 풀어야 한다. 판문점 선언에 정확하게 얘기가 돼 있듯이 평화 공존을 하면서..."]

남과 북은 다음달 3일 안에 서로 생사확인 의뢰서를 보낸 뒤, 25일까지 답을 받아, 8월 4일 최종 명단을 교환하기로 했습니다.

금강산 면회소 보수 작업을 위해 우리 측 선발대가 사흘 간 현장 점검을 마치고 돌아오는 등 이산가족 상봉 준비도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이산가족의 한을 풀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 졌다는 측면에서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고 있고요. 어쨌든 이걸 계기를 통해 가지고 이제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됨으로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줬다는 점도 우리가 좀 주목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정혜/이산가족 : "저 어렸을 때 있잖아요. 이발소에 맡겨놓고 갔었어요. (예, 맞아요.) 날씨가 흐리고요 (예, 맞아요.) 오빠, 오빠..."]

이산가족 상봉의 시작은 KBS가 1983년 6월부터 넉 달 넘게 방영한 이산가족 찾기 특별 생방송이었습니다.

그 뒤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1985년, 남북의 고향 방문단과 예술 공연단이 각각 서울과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2000년 대규모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됐고, 지금까지 모두 스무 차례, 4천 여 가족이 만남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배순옥/당시 55세/北 오빠 상봉 : "오빠 난 진짜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 빨리 통일되기를 기도해야지."]

하지만 이산가족 상봉은 남북관계 상황에 따라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한동안 상봉 행사가 중단됐고, 2013년에는 북한이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을 핑계 삼아 행사 나흘 전 상봉을 전격 취소하기도 했습니다.

[북한 조평통 대변인 성명/2013년 : "상봉행사를 대화와 협상이 진행될 수 있는 정상적인 분위기가 마련될 때까지 연기한다."]

하지만 이보다 이산가족들을 더 힘들게 하는 건 속절없이 가고 있는 시간과 높은 경쟁률입니다.

지난 25일,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앞두고 1차 후보자 5백 명을 추첨하는 자리.

북에 두고 온 여동생을 만나기 위해 상봉 신청을 한 아흔 다섯 살 박성은 할아버지는 또 한 번 쓰라린 가슴을 매만져야 했습니다.

[박성은/95세/이산가족 : "이름이 없어요? (다시 한 번 해 볼게요.) 저는 이산가족은 끝났어요. 이런 식은 틀렸단 얘기예요."]

이번에 지원한 남쪽 이산가족은 모두 5만7천 명 정도.

최종 선발 인원이 백 명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무려 569대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합니다.

[박성은/95세/이산가족 : "마음대로 갈 사람가고 올 사람 오고 한 달만 허락하면 되는데 이렇게 복잡하게 일을 한다고..."]

1.4 후퇴 당시 부모님과 동생들의 손을 놓은 게 평생 한이라는 김태수 할아버지.

가족을 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매번 상봉 신청을 했지만 기회는 단 한 차례도 오지 않았습니다.

[김태수/89세/이산가족 : "신청은 (적십자사에서) 서류 오는 대로 계속 (했어요.) 이게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했어요. 그런데 안 돼요, 한 번도..."]

내년이면 벌써 아흔. 눈도 어둡고 귀도 잘 들리지 않지만 틈날 때마다 흐려진 기억을 기록해 둡니다.

세월이 흘러 통일이 되면 자식들이라도 고모와 삼촌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김태수/89세/이산가족 : "자식들한테 다 내 동생, 내 누이동생 이런 이름 다 적어주고 주소 적어주고... 그러면서 나 죽으면 한번 만나 봐라, 이렇게 하고 있어요."]

현재 이산가족 생존자의 60% 이상은 80살 이상의 고령자.

매년 3천 8백여 명이 혈육 상봉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과 이별하고 있습니다.

상봉 규모를 확대하고 다양한 형식의 만남을 주선하는 등 근본적 해법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상철/일천만 이산가족위원회 위원장 : "지금 우리가 1988년도입니까? 그때부터 이제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 받았는데 현재 13만 2천명이 신청을 받았어요. 받았는데 그동안에 돌아가신분이 한 57% 정도 이렇게 됩니다. 지금 살아계신 분이 한 5만 2000명 정도 이렇게 계신데 이분들 연세가 거의 뭐 80대 이상 이렇게 되시기 때문에 정말 시간이 없다."]

이처럼 당사자 대부분이 나이가 많다 보니 이산가족 상봉은 시간과의 싸움이라 부를 정도로 시급한 상황에 높여 있습니다.

지금처럼 상봉이 이뤄질 경우 전체 이산가족이 상봉하기까지 무려 520년이 걸릴 것이라는 계산까지 나오는데요.

이러면서 이산가족 상봉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현숙 할머니는 요즘 전화벨만 울리면 가슴이 뜁니다.

혹시 북에 있는 딸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이유에섭니다.

1.4 후퇴 때 잠시 다녀오겠다고 한 뒤 딸과 헤어져 남쪽으로 온 김 할머니.

[김현숙/90세/이산가족 : "우리 신랑하고 시동생하고 나하고 셋이 (피난) 나왔거든. 젊은 사람들 잠깐 피한다고 한 달만 피하면 된다고 딱 나왔다가 70년이 된 거거든. 그 어렸을 때에 그 지난 세월이 애들이 어떻겠냐고.. 그게 자꾸 생각나는 거지 지금.. 내가.."]

3년 전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딸과 손녀를 만났습니다.

2박 3일 간 12시간의 만남.

[김현숙/당시 87세/北 딸 상봉 : "또 만나야지. 또 만날 때까지 나도 악착같이 살 테니깐 너도 건강하게 있다가 만나자."]

마지막 당부의 말이 또 다시 기약 없는 약속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더 이상 소식을 들을 수도, 소식을 전할 방법도 없다는 생각에 몸져누운 적도 많습니다.

[김현숙/90세/이산가족 : "차라리 못 봤으면 못 봤으면 그냥 죽었거니 하고 (여기 생각만) 가지고 살면 되는데, 서 (딸을) 보고 오니까 내 마음은 또 떡해. 생각해 봐요. 안 본 거하고 본 게 어떻게 차이가 나겠나 한번 생각해 보라고..."]

김 할머니처럼 북측의 가족을 만난 이산가족 상당 수 역시 일회적 상봉에 따른 후유증으로 또 다른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기존 상봉자들 역시 계속 생사를 확인하는 등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화상 상봉이라든지 그리고 진짜로 생사 확인 이라든지 서신교환 같은 경우는 조금 더 우리가 적극적으로 얘기하면서 우리가 이벤트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이산가족 고통을 감소시켜 준다는 측면에서 북한에 대해서 좀 더 강력하게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이산가족 시스템 정비 작업입니다.

현재 북한에 남아있는 이산가족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와 함께, 남북한의 자료를 연계하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통일부가 지난 11일부터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전원에 대해 조사를 시작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만큼, 추가 면회소를 마련해 상시적 만남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도 서둘러 마련해야 할 방안입니다.

[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고령인 분들의 체력적 조건이라든지 특히 북한 같은 경우 훨씬 교통인프라가 안 좋기 때문에 사실 금강산까지 오는 것도 쉽지가 않거든요. 개성이라든지 철원이라든지 일단 물리적으로 어쨌든 이산가족 상봉할 수 있는 물리적조건 혹은 인프라 같은 것들을 확충하려는 노력이 좀 필요할 것 같고요.."]

가족들의 생사만이라도 알고 싶은 5만 7천 명의 이산가족과, 꿈에 그리던 혈육을 만난 뒤에도 후유증에 또다시 고통 받는 이산가족들.

[김인모/86세/이산가족 : "제가 또 죽더라도 내 영혼은 죽지 않고 부모님 찾아갈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 드리고 용서해 달라고 빌어야죠."]

[김현숙/90세/이산가족 : "언젠가는 또 만나겠다는 그런 희망을 가지고 우리가 살자. 이제 또 다시 만나기를 기원한다. 너 못 봤어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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