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적시 명예훼손…성폭력 사실 알리면 되레 처벌?

입력 2018.09.29 (06:34) 수정 2018.09.29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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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성폭력 피해자가 그 사실을 SNS에 올리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면 어떻게 될까요?

상대방이 고소를 하면 처벌을 받을수도 있는데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때문입니다.

'미투' 운동 이후 입법 과제를 짚어보는 '법이 없다' 연속 기획, 강푸른 기자가 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용기를 내 성추행 사실을 SNS에 올렸을 때, 상대는 분명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보름도 안 돼 고소장이 날아들었고, 법원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벌금 3백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김○○/역고소 피해자 : "말이 안 된다고 생각을 했죠. 이걸 고소를 하다니...'성폭력이 아니라 사적인 얘기를 떠벌린 거다'라는 식으로...."]

김 씨가 '범죄자'가 된 이유는 형법 307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때문입니다.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밝힌 내용이 사실일지라도 공익적 목적이 없다면 상대의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간주해 처벌하는 건데요.

상황이 이러니 성범죄 가해자들이 피해자의 입을 막으려고 거꾸로 고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럴 경우 우리나라처럼 범죄로 처벌하는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영국과 미국 대부분 주에선 명예훼손 '죄'라는 게 없습니다.

분쟁이 생기면 민사로 따집니다.

또 밝힌 사실이 거짓이 아니라면 처벌하지 않는 나라도 많습니다.

유엔도 이미 두 차례나 이 조항을 폐지하라고 우리 정부에 권고했는데요.

국회에도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항을 아예 없애거나, 남을 비방할 목적으로 말한 경우에만 처벌하는 등의 형법 개정안이 여럿 제출돼 있습니다.

하지만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성범죄 피해 사실이 알려지면서 오히려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을수 있고, 성적 지향 등이 알려져 실제 명예를 훼손당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다혜/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 "우리는 사생활 침해에 대한 규정이 없어요. 이걸 범죄화하고 있지도 않고.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표현의 자유를 인정할 수 있는 방향으로 명예훼손이 검토될 필요가 있겠다..."]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까지 피해를 고백하고 나선 피해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세밀한 입법 설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KBS 뉴스 강푸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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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실적시 명예훼손…성폭력 사실 알리면 되레 처벌?
    • 입력 2018-09-29 06:36:57
    • 수정2018-09-29 06:43:18
    뉴스광장 1부
[앵커]

성폭력 피해자가 그 사실을 SNS에 올리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면 어떻게 될까요?

상대방이 고소를 하면 처벌을 받을수도 있는데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때문입니다.

'미투' 운동 이후 입법 과제를 짚어보는 '법이 없다' 연속 기획, 강푸른 기자가 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용기를 내 성추행 사실을 SNS에 올렸을 때, 상대는 분명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보름도 안 돼 고소장이 날아들었고, 법원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벌금 3백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김○○/역고소 피해자 : "말이 안 된다고 생각을 했죠. 이걸 고소를 하다니...'성폭력이 아니라 사적인 얘기를 떠벌린 거다'라는 식으로...."]

김 씨가 '범죄자'가 된 이유는 형법 307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때문입니다.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밝힌 내용이 사실일지라도 공익적 목적이 없다면 상대의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간주해 처벌하는 건데요.

상황이 이러니 성범죄 가해자들이 피해자의 입을 막으려고 거꾸로 고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럴 경우 우리나라처럼 범죄로 처벌하는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영국과 미국 대부분 주에선 명예훼손 '죄'라는 게 없습니다.

분쟁이 생기면 민사로 따집니다.

또 밝힌 사실이 거짓이 아니라면 처벌하지 않는 나라도 많습니다.

유엔도 이미 두 차례나 이 조항을 폐지하라고 우리 정부에 권고했는데요.

국회에도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항을 아예 없애거나, 남을 비방할 목적으로 말한 경우에만 처벌하는 등의 형법 개정안이 여럿 제출돼 있습니다.

하지만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성범죄 피해 사실이 알려지면서 오히려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을수 있고, 성적 지향 등이 알려져 실제 명예를 훼손당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다혜/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 "우리는 사생활 침해에 대한 규정이 없어요. 이걸 범죄화하고 있지도 않고.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표현의 자유를 인정할 수 있는 방향으로 명예훼손이 검토될 필요가 있겠다..."]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까지 피해를 고백하고 나선 피해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세밀한 입법 설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KBS 뉴스 강푸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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