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의 눈] 부마민주항쟁 40주년…유신의 심장을 쏜 ‘5일’

입력 2019.10.16 (21:31) 수정 2019.10.16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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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40년 전 오늘(16일), "유신독재 반대" 함성이 부산에서 울려퍼졌습니다.

그 함성은 부산을 넘어 마산으로까지 확산됐죠.

유신 독재를 무너뜨린 신호탄이 된 '부마 민주항쟁'이 40주년을 맞았습니다.

올해부턴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처음으로 정부 주관으로 기념식이 열렸는데요.

문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새벽을 연 위대한 항쟁이었다면서 희생자들에게 머리를 숙였습니다.

부마 민주항쟁이 왜 일어났고, 우리 현대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신건 기자가 전합니다.

[리포트]

1979년 10월 16일 오전.

부산대학교에 유신 독재를 비판하는 유인물이 뿌려지고, 순식간에 5천여명의 학생들이 모여 시위를 벌였습니다.

학생 시위는 이내 부산 도심까지 확대됐고, 시민들도 합세했습니다.

[이현호/부마민주항쟁 시위 주도 : "백골단들도 잡으러 쫓아오면 국제시장으로 다 도망가면 도망가다가 가게 안으로 싹 들어가면 (주인들이) 셔터 내려주고 안에 들어가면 물 주고..."]

시위가 격렬해지자 박정희 유신 정권은 18일 0시를 기해 부산에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항쟁의 불꽃은 수그러들지 않고 마산으로 옮겨붙었습니다.

경남대에 휴교령이 내려졌지만 학생들은 거리로 나왔고, 노동자와 시민단체까지 합세했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장갑차와 탱크를 배치해 무력진압 작전을 펼쳤습니다.

마구잡이 연행에 자백 강요, 가혹한 고문까지… 시위 참가자들의 피해가 속출했습니다.

[김경훈/부마민주항쟁 참가자 : "졸도할 지경이었어요, 얼마나 아픈지. 띵해서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어요. 그러니까 머리를 확 잡는데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에 확 뿌리치니까 계속 한쪽 어깨를 두들겨 패는 겁니다."]

항쟁 발발 닷새째인 10 월 20 일.

박정희 정권은 마산에 '위수령'을 내리고 공수부대까지 투입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결정은 유신 정권 지도부의 분열을 촉발시켰고 서슬퍼런 유신의 심장을 쏘는 10.26 사태의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부산-마산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촉발된 학생-시민들의 뜨거운 저항은, 18 년 장기 유신독재를 무너뜨리고 이 땅에 민주주의를 싹틔우는 기폭제가 됐습니다.

KBS 뉴스 신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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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의 눈] 부마민주항쟁 40주년…유신의 심장을 쏜 ‘5일’
    • 입력 2019-10-16 21:34:20
    • 수정2019-10-16 22: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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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40년 전 오늘(16일), "유신독재 반대" 함성이 부산에서 울려퍼졌습니다.

그 함성은 부산을 넘어 마산으로까지 확산됐죠.

유신 독재를 무너뜨린 신호탄이 된 '부마 민주항쟁'이 40주년을 맞았습니다.

올해부턴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처음으로 정부 주관으로 기념식이 열렸는데요.

문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새벽을 연 위대한 항쟁이었다면서 희생자들에게 머리를 숙였습니다.

부마 민주항쟁이 왜 일어났고, 우리 현대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신건 기자가 전합니다.

[리포트]

1979년 10월 16일 오전.

부산대학교에 유신 독재를 비판하는 유인물이 뿌려지고, 순식간에 5천여명의 학생들이 모여 시위를 벌였습니다.

학생 시위는 이내 부산 도심까지 확대됐고, 시민들도 합세했습니다.

[이현호/부마민주항쟁 시위 주도 : "백골단들도 잡으러 쫓아오면 국제시장으로 다 도망가면 도망가다가 가게 안으로 싹 들어가면 (주인들이) 셔터 내려주고 안에 들어가면 물 주고..."]

시위가 격렬해지자 박정희 유신 정권은 18일 0시를 기해 부산에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항쟁의 불꽃은 수그러들지 않고 마산으로 옮겨붙었습니다.

경남대에 휴교령이 내려졌지만 학생들은 거리로 나왔고, 노동자와 시민단체까지 합세했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장갑차와 탱크를 배치해 무력진압 작전을 펼쳤습니다.

마구잡이 연행에 자백 강요, 가혹한 고문까지… 시위 참가자들의 피해가 속출했습니다.

[김경훈/부마민주항쟁 참가자 : "졸도할 지경이었어요, 얼마나 아픈지. 띵해서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어요. 그러니까 머리를 확 잡는데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에 확 뿌리치니까 계속 한쪽 어깨를 두들겨 패는 겁니다."]

항쟁 발발 닷새째인 10 월 20 일.

박정희 정권은 마산에 '위수령'을 내리고 공수부대까지 투입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결정은 유신 정권 지도부의 분열을 촉발시켰고 서슬퍼런 유신의 심장을 쏘는 10.26 사태의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부산-마산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촉발된 학생-시민들의 뜨거운 저항은, 18 년 장기 유신독재를 무너뜨리고 이 땅에 민주주의를 싹틔우는 기폭제가 됐습니다.

KBS 뉴스 신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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