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뭐길래]② 부동산에 몰리는 돈…집값 올라도 소비 안 는다

입력 2020.02.21 (18:23) 수정 2020.02.21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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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 걸음하는 코스피…꾸준히 뜨거운 부동산

2007년 7월 25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증권거래소엔 꽃가루가 뿌려졌습니다.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2,000선을 넘었기 때문입니다. 2005년 2월 1,000선을 돌파한 지 불과 2년 5개월 만에 이룬 쾌거라 주식시장은 기대감에 부풀었습니다. 3,000선을 언제 돌파하는지가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연관기사] ‘주가 2000 돌파’ 경제 전망 청신호
하지만 이후 코스피는 좀처럼 힘을 내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2,200선 위, 아래를 오르내리며 3,000선과는 거리가 멉니다. 코로나 19 영향으로 오늘은 2,160대까지 밀렸군요.


집값과 비교해보면 어떨까요? 코스피가 2,000선을 넘은 시점부터 주택가격 최근 수치가 나온 지난해 말까지 코스피와 집값의 등락을 비교해 봤습니다. 코스피는 약 9.6% 오른데 그친 반면, 집값은 약 27%가 올라 수익률이 3배 정도나 높습니다. 코스피는 종목별로 편차도 크고 등락도 계속되지만, 집값은 견조한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 활력이 떨어지면서 금리도 낮아지고, 예금이라든가 채권 등을 통해서 높은 투자수익을 얻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주가상승에 대한 기대가 약화되면서 가계에선 마땅히 금융시장에서 투자할만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1988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선 은행 금리가 15%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저금리 시대입니다. 1년 만기, 한 달 30만 원 한도지만, 연 5% 금리를 주는 적금에 가입자가 밀려들고 있습니다. 원금 360만 원을 넣으면 최대 8만 원의 이자를 받게 됩니다. 비교적 안전 자산인 달러도 금도 채권도 등락이 있습니다.

하지만 부동산은 다릅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잠시 하락세를 보인 것을 제외하면 꾸준히 뜨거웠습니다. 조 위원은 "그동안 안정적인 수익률을 보장해줬다고 하는 것이 확인된 주택으로 돈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단순히 주거안정성, 육아, 교육 문제 등을 제외하더라도 한 달 소득의 상당수를 은행에 뺏기더라도 장기적으로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돈이 몰리는 겁니다.

초저금리에 세계는 부동산 열풍…"수도권 집값 상승은 과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집값 상승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주요 국가들이 돈 풀기에 나서면서 장기간 저금리 현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필수재이고 희소가치가 있는 주택은 귀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국제통화기금, IMF는 2000년 1분기를 100으로 놓고 매년 분기마다 '세계 주택가격 지수'를 발표합니다. 이 수치는 지난해 1분기 165.1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습니다.


나라별로 비교해 봤습니다. 조사 대상 63개 나라 가운데 터키와 우크라이나, 브라질 등 21개 나라는 최근 집값이 하락세를 보였고 42개 나라는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는 28위였습니다. 믿지 못하시겠다고요?

지규현 한양사이버대학교 디지털건축도시공학과 교수는 "최근 서울 일부 아파트가 1년 새 몇억 원씩 올랐다는 기사들이 쏟아지면서 착시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전체 집값을 산정하는 지수는 전국 평균이고 이는 크게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어찌 보면 '평균의 함정'이라고도 할 수 있죠.

서울, 소득대비 집값 장기 평균보다 27.7%↑…거품 꺼지면 어쩌나

지 교수는 대신 서울과 지방의 집값 차이가 더 벌어지고 있다며 특히 '소득 대비 집값'을 살펴보는 'PIR (Price to Income Ratio)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전국적으로 보면 이 수치는 2008년 말부터 2019년 8월까지의 장기 평균보다 3.7% 높은 수준에 불과하지만, 서울은 무려 27.7%나 높다는 겁니다.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치보다 집값이 빠르게 올랐다는 뜻으로 상당히 고평가돼 있다는 지적을 했습니다.

현재 부동산 시장이 거품이냐 아니냐에 대해선 판단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집값이 하락기에 접어들면 가계에선 작지 않은 충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엔 LTV, DTI 같은 규제 정책이 있어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까지 가진 않겠지만 유일하고 가장 큰 자산의 가격 하락은 분명 엄청난 부담입니다.

여기에 소득의 상당수가 부동산 그리고 은행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은 경제 전반적으로 봤을 때도 반가운 일은 아닙니다. 가계 소득이 소비로 연결돼 기업으로 돈이 흘러가고, 이 돈이 다시 일자리와 임금 인상 등을 통해 가계로 돌아오는 '선순환'이 돼야 하는데 부동산이란 블랙홀이 돈을 빨아들이면서 이 고리가 막히는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이 심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집값 상승률 1%p 확대돼도 소비 증가율 0.04%p만 올라…집 없으면 모든 연령 소비↓"

한국은행은 2018년 발표한 '주택자산 보유의 세대별 격차가 소비에 미치는 영향'이란 보고서에서 "일반적으로 집값 상승은 가용자산이 늘어 소비를 진작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거주비용이 늘어 실질적인 효과가 제한될 수 있고 과도한 채무부담을 우려해 소비를 늘리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집값이 1% 포인트 상승해도 소비는 0.04% 포인트 느는 데 그치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특히 앞선 기사에서 빚과 원리금 상환부담이 유독 높았던 39세 이하 청년층은 집이 있어도 오히려 소비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진은 "젊은 층은 주택가격이 상승하면 주택구매를 위한 예비적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줄일 가능성이 높다. 또 앞으로 주택 규모를 확장하려는 동기가 강할 경우에 소비 진작 효과는 제한된다."고 해석했습니다.


집이 없는 사람은 어떨까요? 이 경우엔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연령층에서 소비가 감소했습니다. 주택 구입 계획이 있는 경우 집값 상승이 심리적인 부담을 주고 저축을 유도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리고 특히 청년층의 하락폭이 컸는데 소득이나 고용 여건이 상대적으로 더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수출에 먹구름이 꼈습니다. 올해부터 나아질 거로 전망했는데 최대 시장인 중국이 얼어붙으면서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오늘 발표된 2월 중순(11일∼20일) 수출 성적표만 봐도 조업일수를 감안한 하루 평균 수출액이 9.3% 감소했습니다. 지난해 우리 경제는 미·중 무역갈등,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제한조치 등 때문에 힘든 한 해를 보냈습니다. 이런 대외 요인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선 안에서 내수가 탄탄하게 버텨줘야 합니다.

하지만 코로나 19 영향으로 소비는 더 위축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론 미래 세대인 20대와 30대까지 집 때문에 빚을 내야 하는 상황이어서(1편에서 전해드린 것처럼 주택 소유자나 전·월세 거주자 모두 빚 부담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이 돌지 않고 부동산에 묶이고 있습니다.

물론 근본적으로 소비를 늘리기 위해선 좋은 일자리가 많아지고 소득이 높아지는 것이 중요하겠죠. 하지만 지금처럼 집값이 오르고 불안해져 빚 부담을 계속 늘리게 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겁니다. 집값 안정이 왜 중요한지, 정부가 왜 집값을 안정시켜야 하는지,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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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이 뭐길래]② 부동산에 몰리는 돈…집값 올라도 소비 안 는다
    • 입력 2020-02-21 18:23:36
    • 수정2020-02-21 18:23:53
    취재K
제자리 걸음하는 코스피…꾸준히 뜨거운 부동산

2007년 7월 25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증권거래소엔 꽃가루가 뿌려졌습니다.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2,000선을 넘었기 때문입니다. 2005년 2월 1,000선을 돌파한 지 불과 2년 5개월 만에 이룬 쾌거라 주식시장은 기대감에 부풀었습니다. 3,000선을 언제 돌파하는지가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연관기사] ‘주가 2000 돌파’ 경제 전망 청신호
하지만 이후 코스피는 좀처럼 힘을 내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2,200선 위, 아래를 오르내리며 3,000선과는 거리가 멉니다. 코로나 19 영향으로 오늘은 2,160대까지 밀렸군요.


집값과 비교해보면 어떨까요? 코스피가 2,000선을 넘은 시점부터 주택가격 최근 수치가 나온 지난해 말까지 코스피와 집값의 등락을 비교해 봤습니다. 코스피는 약 9.6% 오른데 그친 반면, 집값은 약 27%가 올라 수익률이 3배 정도나 높습니다. 코스피는 종목별로 편차도 크고 등락도 계속되지만, 집값은 견조한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 활력이 떨어지면서 금리도 낮아지고, 예금이라든가 채권 등을 통해서 높은 투자수익을 얻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주가상승에 대한 기대가 약화되면서 가계에선 마땅히 금융시장에서 투자할만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1988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선 은행 금리가 15%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저금리 시대입니다. 1년 만기, 한 달 30만 원 한도지만, 연 5% 금리를 주는 적금에 가입자가 밀려들고 있습니다. 원금 360만 원을 넣으면 최대 8만 원의 이자를 받게 됩니다. 비교적 안전 자산인 달러도 금도 채권도 등락이 있습니다.

하지만 부동산은 다릅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잠시 하락세를 보인 것을 제외하면 꾸준히 뜨거웠습니다. 조 위원은 "그동안 안정적인 수익률을 보장해줬다고 하는 것이 확인된 주택으로 돈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단순히 주거안정성, 육아, 교육 문제 등을 제외하더라도 한 달 소득의 상당수를 은행에 뺏기더라도 장기적으로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돈이 몰리는 겁니다.

초저금리에 세계는 부동산 열풍…"수도권 집값 상승은 과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집값 상승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주요 국가들이 돈 풀기에 나서면서 장기간 저금리 현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필수재이고 희소가치가 있는 주택은 귀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국제통화기금, IMF는 2000년 1분기를 100으로 놓고 매년 분기마다 '세계 주택가격 지수'를 발표합니다. 이 수치는 지난해 1분기 165.1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습니다.


나라별로 비교해 봤습니다. 조사 대상 63개 나라 가운데 터키와 우크라이나, 브라질 등 21개 나라는 최근 집값이 하락세를 보였고 42개 나라는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는 28위였습니다. 믿지 못하시겠다고요?

지규현 한양사이버대학교 디지털건축도시공학과 교수는 "최근 서울 일부 아파트가 1년 새 몇억 원씩 올랐다는 기사들이 쏟아지면서 착시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전체 집값을 산정하는 지수는 전국 평균이고 이는 크게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어찌 보면 '평균의 함정'이라고도 할 수 있죠.

서울, 소득대비 집값 장기 평균보다 27.7%↑…거품 꺼지면 어쩌나

지 교수는 대신 서울과 지방의 집값 차이가 더 벌어지고 있다며 특히 '소득 대비 집값'을 살펴보는 'PIR (Price to Income Ratio)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전국적으로 보면 이 수치는 2008년 말부터 2019년 8월까지의 장기 평균보다 3.7% 높은 수준에 불과하지만, 서울은 무려 27.7%나 높다는 겁니다.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치보다 집값이 빠르게 올랐다는 뜻으로 상당히 고평가돼 있다는 지적을 했습니다.

현재 부동산 시장이 거품이냐 아니냐에 대해선 판단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집값이 하락기에 접어들면 가계에선 작지 않은 충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엔 LTV, DTI 같은 규제 정책이 있어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까지 가진 않겠지만 유일하고 가장 큰 자산의 가격 하락은 분명 엄청난 부담입니다.

여기에 소득의 상당수가 부동산 그리고 은행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은 경제 전반적으로 봤을 때도 반가운 일은 아닙니다. 가계 소득이 소비로 연결돼 기업으로 돈이 흘러가고, 이 돈이 다시 일자리와 임금 인상 등을 통해 가계로 돌아오는 '선순환'이 돼야 하는데 부동산이란 블랙홀이 돈을 빨아들이면서 이 고리가 막히는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이 심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집값 상승률 1%p 확대돼도 소비 증가율 0.04%p만 올라…집 없으면 모든 연령 소비↓"

한국은행은 2018년 발표한 '주택자산 보유의 세대별 격차가 소비에 미치는 영향'이란 보고서에서 "일반적으로 집값 상승은 가용자산이 늘어 소비를 진작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거주비용이 늘어 실질적인 효과가 제한될 수 있고 과도한 채무부담을 우려해 소비를 늘리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집값이 1% 포인트 상승해도 소비는 0.04% 포인트 느는 데 그치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특히 앞선 기사에서 빚과 원리금 상환부담이 유독 높았던 39세 이하 청년층은 집이 있어도 오히려 소비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진은 "젊은 층은 주택가격이 상승하면 주택구매를 위한 예비적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줄일 가능성이 높다. 또 앞으로 주택 규모를 확장하려는 동기가 강할 경우에 소비 진작 효과는 제한된다."고 해석했습니다.


집이 없는 사람은 어떨까요? 이 경우엔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연령층에서 소비가 감소했습니다. 주택 구입 계획이 있는 경우 집값 상승이 심리적인 부담을 주고 저축을 유도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리고 특히 청년층의 하락폭이 컸는데 소득이나 고용 여건이 상대적으로 더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수출에 먹구름이 꼈습니다. 올해부터 나아질 거로 전망했는데 최대 시장인 중국이 얼어붙으면서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오늘 발표된 2월 중순(11일∼20일) 수출 성적표만 봐도 조업일수를 감안한 하루 평균 수출액이 9.3% 감소했습니다. 지난해 우리 경제는 미·중 무역갈등,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제한조치 등 때문에 힘든 한 해를 보냈습니다. 이런 대외 요인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선 안에서 내수가 탄탄하게 버텨줘야 합니다.

하지만 코로나 19 영향으로 소비는 더 위축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론 미래 세대인 20대와 30대까지 집 때문에 빚을 내야 하는 상황이어서(1편에서 전해드린 것처럼 주택 소유자나 전·월세 거주자 모두 빚 부담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이 돌지 않고 부동산에 묶이고 있습니다.

물론 근본적으로 소비를 늘리기 위해선 좋은 일자리가 많아지고 소득이 높아지는 것이 중요하겠죠. 하지만 지금처럼 집값이 오르고 불안해져 빚 부담을 계속 늘리게 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겁니다. 집값 안정이 왜 중요한지, 정부가 왜 집값을 안정시켜야 하는지,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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