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K] ‘명장’으로 가는 길…40년 물레 인생

입력 2021.04.15 (19:31) 수정 2021.04.15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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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북 문화예술인들의 삶과 작품 이야기를 듣는 〈문화 K〉 시간입니다.

오늘은 명장이 되기 위해 40년 물레 인생, 한 길을 걷고 있는 도예가를 만났습니다.

이화연 기자입니다.

[리포트]

부드럽게 굴곡진 선이 감싼 새하얀 도자기.

불이 만들어낸 붉은 빛은 춤을 추는 것 같습니다.

질박한 찻사발에는 흙의 투박함이 녹아 있습니다.

화가가 꿈이었던 김상곤 도예가. 17살 때 도자기를 만난 뒤 40년 넘게 도공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김상곤/도예가 : "도자기로써 표현도 할 수 있고, 거기에 그림도 그릴 수 있고 여러 가지 표현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종합예술이라고 생각이 든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도자기를 해야 되겠다 마음먹기 시작한 거죠."]

옛 선조들에겐 생활 그릇이었던 도자기.

지금은 놓아두고 보는 비싼 공예품으로 여기는 현실에 무명 도예가의 밥벌이는 고달펐습니다.

전통을 현대 실생활에 맞게 바꿀 수 없을까, 고민 끝에 찾은 게 찻사발입니다.

["전통을 현대화시키는 게 막연하거든요. 실질적으로. 근데 저는 찻사발 만드는 과정에서 흙을 새롭게 만들어 쓰는 것과 불을 새롭게 때는 것을 배운 거예요."]

정호다완.

조선의 이름없는 도공들이 만들었던 찻잔.

지금은 말차 전용으로 씁니다.

["한번 들어보실래요? 굉장히 가볍죠? (네.) 크기에 비해서 굉장히 가볍죠? 이게 수수께끼예요. 그러면 이렇게 가볍게 만들려면 흙자체도 가벼워야 되지만 기술이 좋아야 되거든요. 정확하게. 하면 할수록 옛날 사람들한테 놀라는 게 옛날 사람들이 이걸 예술품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가볍고…."]

전통 장작 가마보다 도자기를 더 많이, 더 쉽게 구울 수 있는 가스 가마에서 옛것에 가깝게 불 때는 기법으로 생활 도자기를 만들었습니다.

시장 반응도 좋았습니다.

["수소문해서 찾아오기 시작한 거예요. (식당) 오픈 점들이. 그래서 5년 이상 제가 강남의 (식당) 오픈점만 계속 맡았어요. 심지어는 중국의 어마어마하게 큰 식당의 오픈점도 맡아서 하고요."]

힘주어 흙을 치대고, 발로 물레를 돌리고, 묵묵히 불을 때는 과정.

흙과 물, 그리고 불 어느 하나라도 넘치거나 모자라서는 안 됩니다.

대표적인 도자기 고장인 경기도 이천에서 20년 동안 도자기를 만들다 9년 전 무주에 터를 잡았습니다.

도자기를 더 널리 알리고 싶어서였습니다.

["도자기의 기능성이나 실용성에 대해서 강의도 하고 그 사람들이 체험해서 그릇을 만들어갈 수 있는 그런 걸 생각하던 와중에 무주군의 초대를 받았죠. 도자기가 발전하려면 그 사람들이(소비자) 보고 정말 좋은 것을 선택해줘야지 이 사람들이(공예인들이) 용기를 내서 하잖아요. 그래서 그분들을 똑똑하게 만들려고 교육하려고 여기 왔었어요."]

전통가마도 벽돌 한 장 한 장 손수 다 찍어서 만들었습니다.

40년 넘게 물레 인생을 묵묵히 걸어온 이유. 그 길 끝에 명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최고가 되는 마지막 길이라고 해야 할까요? 나라에서 인정하는 능력이 부여되는 거니까요."]

하지만, 녹록지 않습니다.

명장 이전 단계인 우수숙련기술자가 됐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요즘에는 논문도 써야되고 책도 써야되고 뭐 이런 것들이 부수적으로 붙었어요. 그리고 거기에 특허가 몇 건이냐, 디자인 등록이 몇 건이냐 이런 것들이 점수가 가산이 되기 때문에... 공예인들이 밥 먹고 살기 힘든 상태에서 그런 것을 한 다는 게 좀 많이 힘들죠."]

정부가 인정한 대한민국 도예 명장은 전국에 열일곱 명. 전북에는 한 명도 없습니다.

그만큼 고된 길이지만 도공의 꿈은 더 큽니다.

["대중들이 원하는 도자기 만드는 게 꿈이에요. 좀 더 나가서 욕심을 부린다면 현재 제가 만드는 기물들이 세계인들이 좋아할 만한 도자기를 만드는 게 꿈이에요. (가능성 있다고 보세요?) 네. 저는 노력하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진묵, 자신의 호처럼 한국 도예 발전의 디딤돌도 되고 싶습니다.

["우리는 역사가 깊은데도 불구하고 지금 뿌리를 제대로 못 내렸다랄까요? 저는 마지막까지 도자기를 하면서 그 뿌리라도 한번 내리고 도예인들한테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와 자료를 제공하고 싶어요."]

흙 속에 묻혀 사는 것.

흙이 품은 수천 년의 생명력과 불의 열정으로 숨은 보석을 만드는 일.

천 년의 전통을 잇는다는 책임감을 안고 사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도공의 길입니다.

KBS 뉴스 이화연입니다.

촬영:VJ 이현권/편집:한상근/그래픽: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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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K] ‘명장’으로 가는 길…40년 물레 인생
    • 입력 2021-04-15 19:31:11
    • 수정2021-04-15 19:48:23
    뉴스7(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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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문화예술인들의 삶과 작품 이야기를 듣는 〈문화 K〉 시간입니다.

오늘은 명장이 되기 위해 40년 물레 인생, 한 길을 걷고 있는 도예가를 만났습니다.

이화연 기자입니다.

[리포트]

부드럽게 굴곡진 선이 감싼 새하얀 도자기.

불이 만들어낸 붉은 빛은 춤을 추는 것 같습니다.

질박한 찻사발에는 흙의 투박함이 녹아 있습니다.

화가가 꿈이었던 김상곤 도예가. 17살 때 도자기를 만난 뒤 40년 넘게 도공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김상곤/도예가 : "도자기로써 표현도 할 수 있고, 거기에 그림도 그릴 수 있고 여러 가지 표현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종합예술이라고 생각이 든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도자기를 해야 되겠다 마음먹기 시작한 거죠."]

옛 선조들에겐 생활 그릇이었던 도자기.

지금은 놓아두고 보는 비싼 공예품으로 여기는 현실에 무명 도예가의 밥벌이는 고달펐습니다.

전통을 현대 실생활에 맞게 바꿀 수 없을까, 고민 끝에 찾은 게 찻사발입니다.

["전통을 현대화시키는 게 막연하거든요. 실질적으로. 근데 저는 찻사발 만드는 과정에서 흙을 새롭게 만들어 쓰는 것과 불을 새롭게 때는 것을 배운 거예요."]

정호다완.

조선의 이름없는 도공들이 만들었던 찻잔.

지금은 말차 전용으로 씁니다.

["한번 들어보실래요? 굉장히 가볍죠? (네.) 크기에 비해서 굉장히 가볍죠? 이게 수수께끼예요. 그러면 이렇게 가볍게 만들려면 흙자체도 가벼워야 되지만 기술이 좋아야 되거든요. 정확하게. 하면 할수록 옛날 사람들한테 놀라는 게 옛날 사람들이 이걸 예술품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가볍고…."]

전통 장작 가마보다 도자기를 더 많이, 더 쉽게 구울 수 있는 가스 가마에서 옛것에 가깝게 불 때는 기법으로 생활 도자기를 만들었습니다.

시장 반응도 좋았습니다.

["수소문해서 찾아오기 시작한 거예요. (식당) 오픈 점들이. 그래서 5년 이상 제가 강남의 (식당) 오픈점만 계속 맡았어요. 심지어는 중국의 어마어마하게 큰 식당의 오픈점도 맡아서 하고요."]

힘주어 흙을 치대고, 발로 물레를 돌리고, 묵묵히 불을 때는 과정.

흙과 물, 그리고 불 어느 하나라도 넘치거나 모자라서는 안 됩니다.

대표적인 도자기 고장인 경기도 이천에서 20년 동안 도자기를 만들다 9년 전 무주에 터를 잡았습니다.

도자기를 더 널리 알리고 싶어서였습니다.

["도자기의 기능성이나 실용성에 대해서 강의도 하고 그 사람들이 체험해서 그릇을 만들어갈 수 있는 그런 걸 생각하던 와중에 무주군의 초대를 받았죠. 도자기가 발전하려면 그 사람들이(소비자) 보고 정말 좋은 것을 선택해줘야지 이 사람들이(공예인들이) 용기를 내서 하잖아요. 그래서 그분들을 똑똑하게 만들려고 교육하려고 여기 왔었어요."]

전통가마도 벽돌 한 장 한 장 손수 다 찍어서 만들었습니다.

40년 넘게 물레 인생을 묵묵히 걸어온 이유. 그 길 끝에 명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최고가 되는 마지막 길이라고 해야 할까요? 나라에서 인정하는 능력이 부여되는 거니까요."]

하지만, 녹록지 않습니다.

명장 이전 단계인 우수숙련기술자가 됐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요즘에는 논문도 써야되고 책도 써야되고 뭐 이런 것들이 부수적으로 붙었어요. 그리고 거기에 특허가 몇 건이냐, 디자인 등록이 몇 건이냐 이런 것들이 점수가 가산이 되기 때문에... 공예인들이 밥 먹고 살기 힘든 상태에서 그런 것을 한 다는 게 좀 많이 힘들죠."]

정부가 인정한 대한민국 도예 명장은 전국에 열일곱 명. 전북에는 한 명도 없습니다.

그만큼 고된 길이지만 도공의 꿈은 더 큽니다.

["대중들이 원하는 도자기 만드는 게 꿈이에요. 좀 더 나가서 욕심을 부린다면 현재 제가 만드는 기물들이 세계인들이 좋아할 만한 도자기를 만드는 게 꿈이에요. (가능성 있다고 보세요?) 네. 저는 노력하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진묵, 자신의 호처럼 한국 도예 발전의 디딤돌도 되고 싶습니다.

["우리는 역사가 깊은데도 불구하고 지금 뿌리를 제대로 못 내렸다랄까요? 저는 마지막까지 도자기를 하면서 그 뿌리라도 한번 내리고 도예인들한테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와 자료를 제공하고 싶어요."]

흙 속에 묻혀 사는 것.

흙이 품은 수천 년의 생명력과 불의 열정으로 숨은 보석을 만드는 일.

천 년의 전통을 잇는다는 책임감을 안고 사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도공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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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VJ 이현권/편집:한상근/그래픽: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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