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비평] ①스웨덴 복지모델의 패배? 성급한 언론

입력 2006.09.24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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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17일 치러진 스웨덴 총선에서 그동안 장기 집권해온 좌파진영인 사회민주당이 패배했습니다.
보수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사민당의 패배를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상징되는 스웨덴 복지모델의 패배로 규정했습니다. 과연 그런 걸까요?

이슈 앤 비평 첫 순서, 우리사회의 성장과 분배논쟁까지 부른 이번 스웨덴 총선과 우리 언론의 보도태도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자리에 박현진 기자 나와 있습니다.

<질문> 박 기자, 먼저 이번 스웨덴 총선 결과부터 짚어볼까요? 결과가 어떻게 나왔길래 이렇게 말들이 많은 겁니까?

<답변>박현진 기자: 네, 최근 유럽 국가의 총선 결과에 대해서 이번만큼 관심이 많았던 적이 있었나 싶은데요. 이번 스웨덴 총선에서는 집권당이었던 사회민주당이 패배하고 대신 중도우파연합이 승리를 거뒀습니다. 좌파인 사민당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 온 스웨덴에서 12년 만에 이뤄진 정권 교체였습니다.

지난 17일 치러진 스웨덴의 총선 결과 보수당과 자유당 등 4개 정당으로 구성된 중도우파연합이 사민당을 중심으로 한 좌파 진영을 눌렀습니다.

젊음과 변화를 내세운 41살의 보수당 당수 라인펠트가 57살의 현 총리 예란 페르손을 누른 것입니다.

178대 171, 불과 7석, 1.9%의 차이가 명암을 갈랐습니다.

<인터뷰>프레드릭 라인펠트 (스웨덴 보수당 당수):“스웨덴 국민은 연합 정부를 선택했습니다. 새로운 보수파가 이번 선거의 승리자입니다”

이로써 지난 1932년 이후 단 두 차례를 제외하고 65년 동안 집권해온 스웨덴식 복지 모델의 전령사, 사민당은 권좌에서 물러나게 됐습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회가 책임진다는 복지국가의 전형으로 인식돼 온 스웨덴의 정권 교체에 우리 언론은 많은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스웨덴식 복지 모델이 멈춰 섰다, 스웨덴 국민들이 복지보다 효율을 선택했다”며 언론들은 대체로 좌파 진영의 정책 실패 때문에 민심이 등을 돌렸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정권 교체로 스웨덴 복지 모델이 크게 수정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습니다.

여기에다 한발 더 나아가, 스웨덴 복지 모델을 지향하는 우리의 복지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며 현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일부 신문에선 이번 총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복지 모델의 변화는 없을 것이며 한국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해 차이를 드러냈습니다.

이처럼 논란이 일자 이번엔 정부가 나서서 스웨덴 총선 결과를 우리 복지 정책과 연관 짓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밝히는 등 스웨덴 총선 결과를 놓고 우리 정부와 언론이 대리전을 치르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질문>네...이번 총선 결과를 두고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이 과연 좌파의 패배가 복지 모델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냐...이거 아니겠습니까?

<답변>박현진 기자: 네, 그렇습니다. 앞서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보수 신문 대부분은 이번 좌파 진영의 패배가 이른바 큰 정부의 복지 정책에 대해 유권자들이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다...스웨덴식 복지 모델은 실패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실제로 스웨덴 국민 다수가 좌파 대신 우파를 선택한 만큼 언뜻 보면 그렇게 이해할 수 있을 텐데요. 하지만 이번 선거 패인을 그렇게 단순화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스웨덴 총선을 며칠 앞두고 일부 언론은 사민당의 패배를 예상하면서, 이는 집권당의 실패한 복지 정책 때문이라는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우파연합이 정권 교체를 이뤄내자 보수 언론은 스웨덴 복지 정책의 실패를 기정사실화 하는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유권자들이 분배보다 성장을 선택했으며, 따라서 높은 실업률과 과도한 재정 부담으로 비효율을 초래한 정부의 복지 정책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이번 총선 결과를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대변되는 스웨덴 복지 모델의 실패로 해석할 수 있을까.

이번 스웨덴 총선에서 승리한 우파연합은 복지정책의 변화를 주장하면서, 일자리 창출을 첫 번째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실업자가 되면 200일간 지급하는 실업수당을 현재 월급의 80%에서 65%로 하향 조정하겠다고 밝혔고, 일부 감세 계획도 내놨습니다.

<인터뷰>김승욱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아무래도 복지를 늘리려면 세금을 많이 거둬야 되고 세금을 많이 거둔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의 자율성을, 효율성을 저해할 수밖에 없거든요. 스웨덴 국민들조차도 이게 한계에 도달했다. 이거 가지고는 치열한 세계화 경쟁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하겠구나 이걸 깨달아 가는 것이 아니냐...전 그렇게 판단합니다.”

그러나 우파 연합의 라인펠트 보수당 당수도 스웨덴식 복지 모델 자체는 결코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난 2002년 너무 오른쪽에 치우쳐 대대적인 감세 등을 주장했다 집권에 실패한 경험을 교훈삼아 복지 정책의 근간은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며 유권자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인터뷰>안상훈 (서울대 복지학과 교수): “가장 기본적으로는 스웨덴 총선에서 이슈란 것이 복지 국가 할거냐 말거냐 문제는 전혀 아니었고 복지 어떻게 해야 오랫동안 잘 끌고 갈 수 있을 것인가 라는데 그 포인트가 있다라고 보는 것이 옮은 해석일거 같습니다.”

따라서 스웨덴의 정권 교체는 복지 정책에 대한 좌.우 이념의 차이에서 빚어졌다기 보다는 경제 성장을 과신하고 높은 실업률을 방치한 집권 여당의 안일한 태도에다 지난 2004년 스웨덴 국민 5백명이 넘는 엄청난 인명피해를 낸 인도양 쓰나미 재앙 당시 무기력하게 대처한 현 정부와 총리에 대한 반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주요 외신들의 분석도 대체로 비슷합니다.

<인터뷰>링그런 (스웨덴 정치 평론가/CNN 전화 인터뷰): “우파 보수당이 이번 총선에서 큰 성과를 거둔 이유는 오로지 중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다른 모든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중도적인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파 쪽으로 바뀌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또 지난 90년대 이후 집권 사민당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많은 복지 혜택이 돌아가도록 기존 정책을 오른쪽으로 이동시켜왔고 이번에 승리한 우파는 사민당 복지 모델의 근간을 흔들지 않겠다고 공언한 만큼, 둘 사이의 크지 않은 좌.우 이념 차이를 부각시켜 단순화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인터뷰>김용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우리가 보고 있는 시각과 달리 유럽에서 좌파 우파는 그 기본 틀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거든요. 스웨덴 우파 또한 레이건이나 대처와 달리 전면적인 감세나 국가 재정 축소 같은 건 내걸고 있지 않죠.”

<질문>네...그런데 이번 스웨덴 총선 결과를 언론이 굳이 우리나라 복지정책과 연관 지어 확대 해석하는 이유는 뭔가요?

<답변>박현진 기자: 네, 일부 언론은 스웨덴 총선 결과가 분배보다는 성장과 효율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것을 확인시켜 줬다면서, 스웨덴 모델을 표방한 우리 복지 정책을 이제라도 재검토해야 한다고 정부를 압박했습니다. 이번 스웨덴 총선 관련 기사가 특히 많았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는데요. 이에 정부가 곧바로 이를 반박하고 나서는 등 논란은 이어졌습니다.

스웨덴 우파 연합의 총선 승리, 좌파의 패배는 참여 정부 경제정책 모델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습니다.

언론은 스웨덴 복지 모델을 노무현 정부의 경제 참고서라고 이름 붙이면서, 스웨덴 정책이 외면당한만큼 우리 정부의 경제 운용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세계에서 버려지고 있는 스웨덴 모델을 흉내낸 것을 부끄러워하라며 스웨덴 허상에서 벗어나라고 우리 정부에 충고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지난달 말 정부가 내놓은 비전 2030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언론은 복지를 강조하는 이 계획이 평소 노무현 정부가 지향해 온 스웨덴식 복지 모델을 모방한 것으로 오는 2030년까지 복지 분야에 1,100조원의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것은 노 정권의 코드형 정책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에 정부 당국은 즉각 해명에 나섰습니다.

참여정부는 스웨덴의 고복지 모델을 그대로 차용하지 않았으며 자신들은 성장과 복지가 함께 가는 적정한 수준의 동반 성장 패러다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터뷰>조원동 (재경부 경제 정책 국장): “지금 세계 각국을 보면은 성장과 복지를 얼마나 조화를 시키느냐 하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에는 복지가 워낙 열악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올려 가는 상황에서 상당히 복지 부문이 부각이 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또 언론들은 이제 와서 정부가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며 이는 실패한 모델을 따라 하느냐는 비판의 표적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스웨덴 총선 결과를 우리나라 복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이용한 것은 견강부회, 아전인수식 무리한 해석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스웨덴과 우리나라의 복지 정책을 단순 비교하기에는 두 나라 사이 복지의 개념과 규모 등 상황이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복지에 있어 과체중인 스웨덴이 다이어트한다고, 영양실조인 한국이 따라해야 하느냐는 정부와 일부 신문들의 논조가 이번 사안에 있어서만큼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인터뷰>안상훈 (서울대 복지학과 교수): “현 정부에서 던진 복지 미래상 한국형 복지 미래상이라는 것이 오히려 스웨덴 보수 우파 연합에서 개혁 이후에 상으로 보고 있는 변화된 스웨덴 모습과 견줘 봐도 한참 떨어진 수준의 복지 국가 정도만 전략이나 비전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물론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복지 정책의 효용과 타당성을 따져 보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번처럼 스웨덴 상황을 납득할만한 근거 없이 무리하게 우리 복지 정책의 비판 근거로 삼게 되면 정파적 논리에 치우쳤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질문> 네, 그런데 박 기자. 이번 스웨덴 보도에서처럼, 우리 언론이 해외의 어떤 이슈를 각자의 이념적 틀에 맞춰 상황에 따라 자의적으로 보도한 사례가 과거에도 있었죠?

<답변>박현진 기자: 네, 사실 해외 뉴스는 외신 보도에 의존해서 기사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요. 특히 선거와 같이 정치적 이슈에 대한 기사는 그 나라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 제대로 된 분석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 오역이 나오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일부로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외신을 왜곡하고 견강부회식으로 끌어다 맞추는 보도가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지난 97년, 영국에서는 18년 만에 정권 교체가 이뤄집니다.

‘철의 여인’ 대처 총리의 보수당이 40대의 젊은 토니 블레어 당수를 내세운 노동당에게 완패한 것입니다.

당시 대다수 우리 언론은 노동당의 승리는 기존 좌파적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보수적 색채를 가미한 덕분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오히려 좌파적 정책을 포기한 것이 좌파의 승리에 주효했다는 설명입니다.

이번에도 스웨덴 우파의 집권은 우파적 성격을 줄이고 이른바 ‘중앙’으로 향했기 때문이라는 외신들의 분석이 많았지만 우리 언론은 승리 요인을 기존 좌파의 정책 실패 때문으로 몰아갔습니다.

또 지난해 독일 총선에서 중도우파인 메르켈 기민당 당수가 집권했을 당시에는 국내 보수 언론은 이번 스웨덴 건과 마찬가지로 과도한 사회 보장을 근거로 한 고질적인 ‘독일병’ 치유에 초점을 맞추며 많은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집권 세력의 좌.우 이념 성향에 따라 기사에 대한 접근 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인터뷰>이세영 (서울신문 국제부 기자): “기자들의 편견, 언론사의 스탠스, 대표적인 것이 유럽의 문제를 다룰 때는 유럽의 문제는 항상 복지병에서 비롯된 거죠. 그러다 보니 정작 정치적인 문제를 다룰 때 정밀한 분석이 되기 보다는 자기가 갖고 있는 주관적인 틀에 따라서 현상을 재단하는 나아가서 현실을 과장하거나 왜곡하거나 혹은 정치적으로 견강부회하게 되는 이런 상황이 빚어지게 되는 거 같아요.”

외신 기사의 정치적 왜곡은 비단 좌파.우파가 대결하는 선거보도만의 현상은 아닙니다.

올해 초 학생과 노동자들의 반발로 무산된 프랑스의 최초 고용계약제 문제를 다룰때도, 또 외국의 교육 제도를 논할 때도 언론은 각자의 틀에 맞춘 자의적인 해석을 통해 해외 사례를 우리나라 상황에 적용시켰습니다.

<인터뷰>전규찬 (서울종합예술원 교수): “정치적 결과만을 달랑 떼서 우리 입맛에 맞춰 풀이해 내는 것, 결국 이런 뉴스들은 세계 시민과의 일반적 경향과 동떨어지는 모습으로 강요하는 문제 있는 태도라고 보여 집니다.”

이번 스웨덴 총선 관련 기사가 소모적인 정치 공방으로 변질되면서 정작 필요한 복지 정책에 대한 발전적 논의를 오히려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해외 뉴스를 무리하게 왜곡하고 변형시켜 전달하면 세계를 보는 국민들의 눈이 뒤틀릴 뿐 아니라 우리 내부의 건설적 정책 논의의 동력을 잃을 수도 있음을 언론은 다시 한 번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 보수언론이 스웨덴 보수세력의 승리를 기뻐하는 거야 뭐 그럴수도 있겠다 싶습니다만 뭐든지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는 그런 보도태도는 그만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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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비평] ①스웨덴 복지모델의 패배? 성급한 언론
    • 입력 2006-09-24 09: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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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17일 치러진 스웨덴 총선에서 그동안 장기 집권해온 좌파진영인 사회민주당이 패배했습니다. 보수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사민당의 패배를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상징되는 스웨덴 복지모델의 패배로 규정했습니다. 과연 그런 걸까요? 이슈 앤 비평 첫 순서, 우리사회의 성장과 분배논쟁까지 부른 이번 스웨덴 총선과 우리 언론의 보도태도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자리에 박현진 기자 나와 있습니다. <질문> 박 기자, 먼저 이번 스웨덴 총선 결과부터 짚어볼까요? 결과가 어떻게 나왔길래 이렇게 말들이 많은 겁니까? <답변>박현진 기자: 네, 최근 유럽 국가의 총선 결과에 대해서 이번만큼 관심이 많았던 적이 있었나 싶은데요. 이번 스웨덴 총선에서는 집권당이었던 사회민주당이 패배하고 대신 중도우파연합이 승리를 거뒀습니다. 좌파인 사민당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 온 스웨덴에서 12년 만에 이뤄진 정권 교체였습니다. 지난 17일 치러진 스웨덴의 총선 결과 보수당과 자유당 등 4개 정당으로 구성된 중도우파연합이 사민당을 중심으로 한 좌파 진영을 눌렀습니다. 젊음과 변화를 내세운 41살의 보수당 당수 라인펠트가 57살의 현 총리 예란 페르손을 누른 것입니다. 178대 171, 불과 7석, 1.9%의 차이가 명암을 갈랐습니다. <인터뷰>프레드릭 라인펠트 (스웨덴 보수당 당수):“스웨덴 국민은 연합 정부를 선택했습니다. 새로운 보수파가 이번 선거의 승리자입니다” 이로써 지난 1932년 이후 단 두 차례를 제외하고 65년 동안 집권해온 스웨덴식 복지 모델의 전령사, 사민당은 권좌에서 물러나게 됐습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회가 책임진다는 복지국가의 전형으로 인식돼 온 스웨덴의 정권 교체에 우리 언론은 많은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스웨덴식 복지 모델이 멈춰 섰다, 스웨덴 국민들이 복지보다 효율을 선택했다”며 언론들은 대체로 좌파 진영의 정책 실패 때문에 민심이 등을 돌렸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정권 교체로 스웨덴 복지 모델이 크게 수정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습니다. 여기에다 한발 더 나아가, 스웨덴 복지 모델을 지향하는 우리의 복지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며 현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일부 신문에선 이번 총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복지 모델의 변화는 없을 것이며 한국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해 차이를 드러냈습니다. 이처럼 논란이 일자 이번엔 정부가 나서서 스웨덴 총선 결과를 우리 복지 정책과 연관 짓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밝히는 등 스웨덴 총선 결과를 놓고 우리 정부와 언론이 대리전을 치르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질문>네...이번 총선 결과를 두고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이 과연 좌파의 패배가 복지 모델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냐...이거 아니겠습니까? <답변>박현진 기자: 네, 그렇습니다. 앞서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보수 신문 대부분은 이번 좌파 진영의 패배가 이른바 큰 정부의 복지 정책에 대해 유권자들이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다...스웨덴식 복지 모델은 실패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실제로 스웨덴 국민 다수가 좌파 대신 우파를 선택한 만큼 언뜻 보면 그렇게 이해할 수 있을 텐데요. 하지만 이번 선거 패인을 그렇게 단순화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스웨덴 총선을 며칠 앞두고 일부 언론은 사민당의 패배를 예상하면서, 이는 집권당의 실패한 복지 정책 때문이라는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우파연합이 정권 교체를 이뤄내자 보수 언론은 스웨덴 복지 정책의 실패를 기정사실화 하는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유권자들이 분배보다 성장을 선택했으며, 따라서 높은 실업률과 과도한 재정 부담으로 비효율을 초래한 정부의 복지 정책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이번 총선 결과를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대변되는 스웨덴 복지 모델의 실패로 해석할 수 있을까. 이번 스웨덴 총선에서 승리한 우파연합은 복지정책의 변화를 주장하면서, 일자리 창출을 첫 번째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실업자가 되면 200일간 지급하는 실업수당을 현재 월급의 80%에서 65%로 하향 조정하겠다고 밝혔고, 일부 감세 계획도 내놨습니다. <인터뷰>김승욱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아무래도 복지를 늘리려면 세금을 많이 거둬야 되고 세금을 많이 거둔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의 자율성을, 효율성을 저해할 수밖에 없거든요. 스웨덴 국민들조차도 이게 한계에 도달했다. 이거 가지고는 치열한 세계화 경쟁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하겠구나 이걸 깨달아 가는 것이 아니냐...전 그렇게 판단합니다.” 그러나 우파 연합의 라인펠트 보수당 당수도 스웨덴식 복지 모델 자체는 결코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난 2002년 너무 오른쪽에 치우쳐 대대적인 감세 등을 주장했다 집권에 실패한 경험을 교훈삼아 복지 정책의 근간은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며 유권자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인터뷰>안상훈 (서울대 복지학과 교수): “가장 기본적으로는 스웨덴 총선에서 이슈란 것이 복지 국가 할거냐 말거냐 문제는 전혀 아니었고 복지 어떻게 해야 오랫동안 잘 끌고 갈 수 있을 것인가 라는데 그 포인트가 있다라고 보는 것이 옮은 해석일거 같습니다.” 따라서 스웨덴의 정권 교체는 복지 정책에 대한 좌.우 이념의 차이에서 빚어졌다기 보다는 경제 성장을 과신하고 높은 실업률을 방치한 집권 여당의 안일한 태도에다 지난 2004년 스웨덴 국민 5백명이 넘는 엄청난 인명피해를 낸 인도양 쓰나미 재앙 당시 무기력하게 대처한 현 정부와 총리에 대한 반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주요 외신들의 분석도 대체로 비슷합니다. <인터뷰>링그런 (스웨덴 정치 평론가/CNN 전화 인터뷰): “우파 보수당이 이번 총선에서 큰 성과를 거둔 이유는 오로지 중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다른 모든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중도적인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파 쪽으로 바뀌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또 지난 90년대 이후 집권 사민당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많은 복지 혜택이 돌아가도록 기존 정책을 오른쪽으로 이동시켜왔고 이번에 승리한 우파는 사민당 복지 모델의 근간을 흔들지 않겠다고 공언한 만큼, 둘 사이의 크지 않은 좌.우 이념 차이를 부각시켜 단순화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인터뷰>김용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우리가 보고 있는 시각과 달리 유럽에서 좌파 우파는 그 기본 틀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거든요. 스웨덴 우파 또한 레이건이나 대처와 달리 전면적인 감세나 국가 재정 축소 같은 건 내걸고 있지 않죠.” <질문>네...그런데 이번 스웨덴 총선 결과를 언론이 굳이 우리나라 복지정책과 연관 지어 확대 해석하는 이유는 뭔가요? <답변>박현진 기자: 네, 일부 언론은 스웨덴 총선 결과가 분배보다는 성장과 효율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것을 확인시켜 줬다면서, 스웨덴 모델을 표방한 우리 복지 정책을 이제라도 재검토해야 한다고 정부를 압박했습니다. 이번 스웨덴 총선 관련 기사가 특히 많았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는데요. 이에 정부가 곧바로 이를 반박하고 나서는 등 논란은 이어졌습니다. 스웨덴 우파 연합의 총선 승리, 좌파의 패배는 참여 정부 경제정책 모델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습니다. 언론은 스웨덴 복지 모델을 노무현 정부의 경제 참고서라고 이름 붙이면서, 스웨덴 정책이 외면당한만큼 우리 정부의 경제 운용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세계에서 버려지고 있는 스웨덴 모델을 흉내낸 것을 부끄러워하라며 스웨덴 허상에서 벗어나라고 우리 정부에 충고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지난달 말 정부가 내놓은 비전 2030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언론은 복지를 강조하는 이 계획이 평소 노무현 정부가 지향해 온 스웨덴식 복지 모델을 모방한 것으로 오는 2030년까지 복지 분야에 1,100조원의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것은 노 정권의 코드형 정책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에 정부 당국은 즉각 해명에 나섰습니다. 참여정부는 스웨덴의 고복지 모델을 그대로 차용하지 않았으며 자신들은 성장과 복지가 함께 가는 적정한 수준의 동반 성장 패러다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터뷰>조원동 (재경부 경제 정책 국장): “지금 세계 각국을 보면은 성장과 복지를 얼마나 조화를 시키느냐 하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에는 복지가 워낙 열악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올려 가는 상황에서 상당히 복지 부문이 부각이 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또 언론들은 이제 와서 정부가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며 이는 실패한 모델을 따라 하느냐는 비판의 표적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스웨덴 총선 결과를 우리나라 복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이용한 것은 견강부회, 아전인수식 무리한 해석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스웨덴과 우리나라의 복지 정책을 단순 비교하기에는 두 나라 사이 복지의 개념과 규모 등 상황이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복지에 있어 과체중인 스웨덴이 다이어트한다고, 영양실조인 한국이 따라해야 하느냐는 정부와 일부 신문들의 논조가 이번 사안에 있어서만큼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인터뷰>안상훈 (서울대 복지학과 교수): “현 정부에서 던진 복지 미래상 한국형 복지 미래상이라는 것이 오히려 스웨덴 보수 우파 연합에서 개혁 이후에 상으로 보고 있는 변화된 스웨덴 모습과 견줘 봐도 한참 떨어진 수준의 복지 국가 정도만 전략이나 비전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물론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복지 정책의 효용과 타당성을 따져 보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번처럼 스웨덴 상황을 납득할만한 근거 없이 무리하게 우리 복지 정책의 비판 근거로 삼게 되면 정파적 논리에 치우쳤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질문> 네, 그런데 박 기자. 이번 스웨덴 보도에서처럼, 우리 언론이 해외의 어떤 이슈를 각자의 이념적 틀에 맞춰 상황에 따라 자의적으로 보도한 사례가 과거에도 있었죠? <답변>박현진 기자: 네, 사실 해외 뉴스는 외신 보도에 의존해서 기사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요. 특히 선거와 같이 정치적 이슈에 대한 기사는 그 나라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 제대로 된 분석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 오역이 나오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일부로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외신을 왜곡하고 견강부회식으로 끌어다 맞추는 보도가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지난 97년, 영국에서는 18년 만에 정권 교체가 이뤄집니다. ‘철의 여인’ 대처 총리의 보수당이 40대의 젊은 토니 블레어 당수를 내세운 노동당에게 완패한 것입니다. 당시 대다수 우리 언론은 노동당의 승리는 기존 좌파적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보수적 색채를 가미한 덕분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오히려 좌파적 정책을 포기한 것이 좌파의 승리에 주효했다는 설명입니다. 이번에도 스웨덴 우파의 집권은 우파적 성격을 줄이고 이른바 ‘중앙’으로 향했기 때문이라는 외신들의 분석이 많았지만 우리 언론은 승리 요인을 기존 좌파의 정책 실패 때문으로 몰아갔습니다. 또 지난해 독일 총선에서 중도우파인 메르켈 기민당 당수가 집권했을 당시에는 국내 보수 언론은 이번 스웨덴 건과 마찬가지로 과도한 사회 보장을 근거로 한 고질적인 ‘독일병’ 치유에 초점을 맞추며 많은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집권 세력의 좌.우 이념 성향에 따라 기사에 대한 접근 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인터뷰>이세영 (서울신문 국제부 기자): “기자들의 편견, 언론사의 스탠스, 대표적인 것이 유럽의 문제를 다룰 때는 유럽의 문제는 항상 복지병에서 비롯된 거죠. 그러다 보니 정작 정치적인 문제를 다룰 때 정밀한 분석이 되기 보다는 자기가 갖고 있는 주관적인 틀에 따라서 현상을 재단하는 나아가서 현실을 과장하거나 왜곡하거나 혹은 정치적으로 견강부회하게 되는 이런 상황이 빚어지게 되는 거 같아요.” 외신 기사의 정치적 왜곡은 비단 좌파.우파가 대결하는 선거보도만의 현상은 아닙니다. 올해 초 학생과 노동자들의 반발로 무산된 프랑스의 최초 고용계약제 문제를 다룰때도, 또 외국의 교육 제도를 논할 때도 언론은 각자의 틀에 맞춘 자의적인 해석을 통해 해외 사례를 우리나라 상황에 적용시켰습니다. <인터뷰>전규찬 (서울종합예술원 교수): “정치적 결과만을 달랑 떼서 우리 입맛에 맞춰 풀이해 내는 것, 결국 이런 뉴스들은 세계 시민과의 일반적 경향과 동떨어지는 모습으로 강요하는 문제 있는 태도라고 보여 집니다.” 이번 스웨덴 총선 관련 기사가 소모적인 정치 공방으로 변질되면서 정작 필요한 복지 정책에 대한 발전적 논의를 오히려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해외 뉴스를 무리하게 왜곡하고 변형시켜 전달하면 세계를 보는 국민들의 눈이 뒤틀릴 뿐 아니라 우리 내부의 건설적 정책 논의의 동력을 잃을 수도 있음을 언론은 다시 한 번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 보수언론이 스웨덴 보수세력의 승리를 기뻐하는 거야 뭐 그럴수도 있겠다 싶습니다만 뭐든지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는 그런 보도태도는 그만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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