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간다] 내 버스인데…내 것이 아닙니다

입력 2013.11.08 (23:15) 수정 2013.11.0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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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요즘 거리에 다니는 버스를 보면 똑같은 상호나 색깔의 고속버스나 시내버스 말고도 관광버스 같은 전세버스들을 쉽게 보실 수 있을텐데요.

전세버스가 전국에 4만 여대에 달하면서, 이젠 통근과 통학을 상당부분을 책임지는, 사실상의 대중교통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전세버스 기사들이 일부 버스회사 측의 횡포로 막대한 피해를 입고, 안전 운행까지 위협받고 있다고 합니다.

왜 그런 걸까요?

김상협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충북 진천군 진천읍, 읍내와 시골 마을들을 연결하는 교통편은 주로 마을버스입니다.

<녹취>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마을버스 운전기사 금화섭씨.

승객들과 인사를 할 때 외에는 안색이 그리 밝지 않습니다.

<녹취> "한 달에 280만원 받고 있습니다. (기름값은 얼마나 지출합니까?) 기름값은 90-100만원 정도 나가요."

금화섭씨에게 시름이 생긴 건 6년 전, 버스를 사면서부터입니다.

모아둔 돈 2천만 원에다 아버지의 보증까지 더해 45인승 대형 버스 1대를 샀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내 차를 갖고 사업을 해보겠다고 한 것인데, 불행의 시작이 됐습니다.

버스를 사도록 주선했던 버스 회사의 대표가 회사 버스들을 모두 처분하고 달아난 겁니다.

버스를 회사 명의로 해야 기사로 등록해 주는, 이른바 지입제도를 악용한 사기 행각이었습니다.

<녹취> "(버스 회사에 취직하셨을 때에도 버스를 사야 했던 건가요?) 네, (버스를 사지 않으면 일을 안 시키나요?) 안 시키죠. 이 운수업을 하시는 분들 중에 거의 80% 이상은 저처럼 일하고 계실 거에요."

2억원대의 버스를 살 때 연대보증을 섰던 금씨의 부모.

평생 일궈왔던 논밭이 모두 압류되고 경매로 넘어가자 충격으로 쓰러졌습니다.

어머니는 뇌졸중을 앓다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 재산을 날린 금씨 아버지는 병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녹취> "(많이 불편하세요?) 괜찮아."

<녹취> "너무나 못해드려서...지금은 제가 아버지라도 건강하실 수 있게 해드려야 하는데 집에 와서 뭐를 해주고 싶어도 물질적으로 모든 게 뒷받침이 안되고 저도 병으로 아프니까요..."

2억원이 넘는 빚을 온 가족이 떠안으면서, 금씨의 아내도 졸지에 신용불량자가 됐고, 이자라도 갚자며 아픈 몸을 끌고 식당일을 하고 있습니다.

<녹취> 금 씨 아내 : "저도 당뇨에다 신장 쪽도 안 좋고 혈압도 있고 하혈이 심해서 다 죽는다고 그랬었어요. 그 과정에서 그래도 애들 때문에 먹고 살아야 하니까 제가 나섰었어요. 아직까지 남편이 (빚 갚느라) 생활비를 준 적이 거의 없어요..."

피해를 입는 것은 개인 기사 뿐이 아닙니다.

버스 기사를 단체로 고용하겠다고 속여 버스를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버스를 통째로 빼돌리는 경우도 전국에 걸쳐 수십여건에 달하고 있습니다.

전남 영광의 한 버스회사 앞.

전세버스들이 하나 둘 모여 듭니다.

이 버스 기사들은 모두 관광버스 회사로부터 사기를 당한 지입차 기사들입니다.

<녹취> "보상해라! 보상해라!"

한 관광버스 회사에서 각기 자기 버스를 갖고 지입 기사로 일하던 이들은, 안정된 일자리를 주겠다며 다른 회사로 옮기라는 사장의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하지만 기사들이 자신들의 버스를 다른 관광버스 회사 명의로 옮겨놓자, 이 회사 대표는 버스 10대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돈을 챙긴 뒤 잠적해 버렸습니다.

원래 일했던 관광버스 회사 대표 역시 잠적했습니다.

<녹취> 이경헌(버스기사) : "우리가 모르게 대출을 받은 상태에서 계약을 했기 때문에 우리가 전 재산을 털어갖고 딸린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지금 이 버스를 팔게 되면 우리는 어디에 머무를 곳이 없습니다."

딱한 사정들.

그러면서도 사기를 당하기 쉬운 자신들의 처지가 너무도 억울하다는 게 지입버스 기사들의 한결같은 목소리입니다.

<녹취> 이경헌(버스 기사) : "자기 차이지만 회사에서 지입을 안하게 되면 운행을 못합니다. 자가용으로 운행하는 건 불법이기 때문에 못하고요,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버스 회사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회사는 그것을 약점으로 잡아 우리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피해는 이 곳 뿐이 아닙니다.

전국 곳곳의 전세버스 회사에서 비슷한 수법으로 당한 수백 명의 버스기사들이 지금도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러면 일부 전세버스 회사들의 탈법과 사기 행각은 한 두 번도 아니고 왜 계속되고 있을까?

지입 기사들만 모으면 쉽게 회사를 차릴 수 있는 제도적 헛점 때문입니다.

<녹취> 고승보(버스기사) : "업체 대표들이 지입료를 받고 차량 늘리기에 혈안이 돼 있고요, 잘못된 법안 때문에 업체 대표들이 지입 기사들의 약점을 이용해서 많은 횡포와 횡령을 일삼고 있는 지경입니다."

피해사례를 보셨습니다만, 전국의 전세버스에 대한 전수조사 결과, 절반 가까이가 지입 버스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원래 소유는 버스기사이지만 운수 회사 이름으로 등록돼 있는 지입 버스, 모두 불법입니다.

이런 식으로 운영을 하면 회사측은 별다른 추가 부담 없이 버스를 늘려 운행할 수 있고요, 앞서 보신 것처럼 버스를 담보로 돈을 챙긴 뒤 고의로 부도를 내고 도망가는 등 악용 사례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기사들이 자기 버스를 회사 명의로 둘 수 밖에 없는 이유, 현행법상 전세버스 기사의 경우 개인 사업자로 인정받지 못하는데다, 일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할 현실적 필요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입 버스 문제는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주요 이슈였습니다.

여야 모두 한 목소리로 지입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부실한 전세버스 회사들로 인해 안전 운행에 빨간 불이 켜졌다며 정부를 질타했습니다.

<녹취> 신기남(국토교통위원/민주당) : "각종 불법 사태로 피해자를 양산하는 이 현재의 전세버스 지입제도, 이거 그대로 둘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이 불법 사태를 근절하는 유일한 방향은 차라리 양성화해 가지고 개별 사업권을 부여하는 것 밖에 없다."

<녹취> 서승환(국토교통부 장관) : "각각의 개인 차주들이 컨소시엄의 형태로 연합해서 회사를 만들어서 그 문제를 해결하는 뭐 이런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녹취> 심재철(국토교통위원/새누리당) : "전세버스 사고 같은 경우는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안전운전 의무를 위반하지 않도록 특별하게 전문성 강화 교육을 해야할 것 같고..."

국감장 밖에서는 전국의 지입버스 기사들이 모여 억울함을 호소하고 나섰습니다.

지입버스 기사들은 버스도 택시처럼 개인 면허권을 부여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녹취> 신정석(지입버스 기사) : "저희들은 개인 면허로 가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개별 사업권을 줘서 내 재산 내가 지킬 수 있게 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정적으로 할 수 있고..."

하지만 정부의 생각은 다릅니다.

버스 공급을 조절하고, 부실한 회사를 도태시키면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

개인버스 면허제를 도입하면 오히려 부실 정비 등으로 안전이 위협받기 쉽다는 겁니다.

<녹취> 박상열(국토교통부 대중교통과장) : "개별 허가권을 허용할 경우엔 차량 안전관리를 담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과잉 공급이 심화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아주 신중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전세버스 회사들도, 지입버스 기사들의 사기 피해는 극히 일부 회사의 사례로 대부분은 문제 없이 운행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녹취> 이병철(전세버스연합회 회장) : "전세버스는 승객이 보통 3-40명씩 탑승하고 운영합니다. 개인 택시나 화물차하곤 차원이 다릅니다. 저희들은 한번 중대사고가 나면 대처할 방법이 없습니다. 아주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도권 전세버스들의 기착지 역할을 하고 있는 서울 사당전철역 일대.

출퇴근 시간마다 전세버스들로 붐빕니다.

10년째 전세버스를 운전하고 있는 윤봉준 씨도 매일 아침 이 곳으로 출근해 승객들을 싣고 서울과 부천을 오갑니다.

버스 할부금에 보험료, 50만 원 가량의 지입료까지 회사에 내고 나면 생계를 꾸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윤 씨는 요즘 어린이 통학버스 일까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녹취> 윤봉준(버스기사) : "중간엔 유치원 어린이들을 태우고 가기도 하고 시간이 맞는 일을 하는 거죠. (아침부터 운전을 많이 하시넸네요?) 그렇죠. 거의 계속 운전한다고 봐야죠. (계속 운전하면 피곤하지 않으세요?) 피곤하죠. 어떻게 피곤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전세버스 기사들이 피곤을 무릅쓰고 무리한 운행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

<녹취> 황태환(버스 승객) : "버스 타고 가다보면 과속이라든지 이 운행 끝내고 다른 운행도 빨리 잡아서 해야 돼서 무리가 많이 가는 것 같아요. 그로 인해
사고 같은 것도 발생할 수 있고요..."

전세버스 사고는 지난해만 해도 천 백여 건을 넘고 사망자는 44명에 달했습니다.

교통사고 100건당 사상자 수를 비교해 보면 전세버스가 가장 높고, 1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형 교통사고를 분석해 봐도 전세버스가 전체의 절반을 차지할 정돕니다.

전세버스가 보편화돼 있는 상당수 선진국의 경우, 기사들 개인에게 책임감을 주기 위해 개인 면허를 원칙적으로 인정해주면서 안전 운행 여부에 대해선 국가가 철저히 개입하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녹취> 모창환(한국 국토교통연구원) : "거의 대중교통처럼 이용이 되는 거잖아요. 공공성이 높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정부가 어떻게 안전 측면에서 개입을 할 필요가 있다."

지난 1993년 면허제에서 등록제로 완화된 이후 전국의 전세버스는 7천여 대에서 4만 대로 급격히 늘었습니다.

연 수송인원 2억 5천만 명, 전체 버스 가운데 수송분담률 36%, 또 전세버스의 3/4이 통근.통학용으로 운행될 정도로 사실상 대중교통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자신 소유의 버스를 자기 것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현실.

말을 하면 불법을 공표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지입버스 기사들.

사기를 당해 버스를 빼앗겨 울고, 무리한 운행을 하며 피곤에 찌들고, 그 속에서 승객들은 불안해 할 수밖에 없는 지입버스 문제들.

오늘도 우리 곁엔 이런 버스 4만 대가 도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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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가 간다] 내 버스인데…내 것이 아닙니다
    • 입력 2013-11-08 20:20:14
    • 수정2013-11-09 11:10:14
    취재파일K
<앵커 멘트>

요즘 거리에 다니는 버스를 보면 똑같은 상호나 색깔의 고속버스나 시내버스 말고도 관광버스 같은 전세버스들을 쉽게 보실 수 있을텐데요.

전세버스가 전국에 4만 여대에 달하면서, 이젠 통근과 통학을 상당부분을 책임지는, 사실상의 대중교통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전세버스 기사들이 일부 버스회사 측의 횡포로 막대한 피해를 입고, 안전 운행까지 위협받고 있다고 합니다.

왜 그런 걸까요?

김상협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충북 진천군 진천읍, 읍내와 시골 마을들을 연결하는 교통편은 주로 마을버스입니다.

<녹취>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마을버스 운전기사 금화섭씨.

승객들과 인사를 할 때 외에는 안색이 그리 밝지 않습니다.

<녹취> "한 달에 280만원 받고 있습니다. (기름값은 얼마나 지출합니까?) 기름값은 90-100만원 정도 나가요."

금화섭씨에게 시름이 생긴 건 6년 전, 버스를 사면서부터입니다.

모아둔 돈 2천만 원에다 아버지의 보증까지 더해 45인승 대형 버스 1대를 샀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내 차를 갖고 사업을 해보겠다고 한 것인데, 불행의 시작이 됐습니다.

버스를 사도록 주선했던 버스 회사의 대표가 회사 버스들을 모두 처분하고 달아난 겁니다.

버스를 회사 명의로 해야 기사로 등록해 주는, 이른바 지입제도를 악용한 사기 행각이었습니다.

<녹취> "(버스 회사에 취직하셨을 때에도 버스를 사야 했던 건가요?) 네, (버스를 사지 않으면 일을 안 시키나요?) 안 시키죠. 이 운수업을 하시는 분들 중에 거의 80% 이상은 저처럼 일하고 계실 거에요."

2억원대의 버스를 살 때 연대보증을 섰던 금씨의 부모.

평생 일궈왔던 논밭이 모두 압류되고 경매로 넘어가자 충격으로 쓰러졌습니다.

어머니는 뇌졸중을 앓다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 재산을 날린 금씨 아버지는 병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녹취> "(많이 불편하세요?) 괜찮아."

<녹취> "너무나 못해드려서...지금은 제가 아버지라도 건강하실 수 있게 해드려야 하는데 집에 와서 뭐를 해주고 싶어도 물질적으로 모든 게 뒷받침이 안되고 저도 병으로 아프니까요..."

2억원이 넘는 빚을 온 가족이 떠안으면서, 금씨의 아내도 졸지에 신용불량자가 됐고, 이자라도 갚자며 아픈 몸을 끌고 식당일을 하고 있습니다.

<녹취> 금 씨 아내 : "저도 당뇨에다 신장 쪽도 안 좋고 혈압도 있고 하혈이 심해서 다 죽는다고 그랬었어요. 그 과정에서 그래도 애들 때문에 먹고 살아야 하니까 제가 나섰었어요. 아직까지 남편이 (빚 갚느라) 생활비를 준 적이 거의 없어요..."

피해를 입는 것은 개인 기사 뿐이 아닙니다.

버스 기사를 단체로 고용하겠다고 속여 버스를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버스를 통째로 빼돌리는 경우도 전국에 걸쳐 수십여건에 달하고 있습니다.

전남 영광의 한 버스회사 앞.

전세버스들이 하나 둘 모여 듭니다.

이 버스 기사들은 모두 관광버스 회사로부터 사기를 당한 지입차 기사들입니다.

<녹취> "보상해라! 보상해라!"

한 관광버스 회사에서 각기 자기 버스를 갖고 지입 기사로 일하던 이들은, 안정된 일자리를 주겠다며 다른 회사로 옮기라는 사장의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하지만 기사들이 자신들의 버스를 다른 관광버스 회사 명의로 옮겨놓자, 이 회사 대표는 버스 10대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돈을 챙긴 뒤 잠적해 버렸습니다.

원래 일했던 관광버스 회사 대표 역시 잠적했습니다.

<녹취> 이경헌(버스기사) : "우리가 모르게 대출을 받은 상태에서 계약을 했기 때문에 우리가 전 재산을 털어갖고 딸린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지금 이 버스를 팔게 되면 우리는 어디에 머무를 곳이 없습니다."

딱한 사정들.

그러면서도 사기를 당하기 쉬운 자신들의 처지가 너무도 억울하다는 게 지입버스 기사들의 한결같은 목소리입니다.

<녹취> 이경헌(버스 기사) : "자기 차이지만 회사에서 지입을 안하게 되면 운행을 못합니다. 자가용으로 운행하는 건 불법이기 때문에 못하고요,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버스 회사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회사는 그것을 약점으로 잡아 우리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피해는 이 곳 뿐이 아닙니다.

전국 곳곳의 전세버스 회사에서 비슷한 수법으로 당한 수백 명의 버스기사들이 지금도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러면 일부 전세버스 회사들의 탈법과 사기 행각은 한 두 번도 아니고 왜 계속되고 있을까?

지입 기사들만 모으면 쉽게 회사를 차릴 수 있는 제도적 헛점 때문입니다.

<녹취> 고승보(버스기사) : "업체 대표들이 지입료를 받고 차량 늘리기에 혈안이 돼 있고요, 잘못된 법안 때문에 업체 대표들이 지입 기사들의 약점을 이용해서 많은 횡포와 횡령을 일삼고 있는 지경입니다."

피해사례를 보셨습니다만, 전국의 전세버스에 대한 전수조사 결과, 절반 가까이가 지입 버스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원래 소유는 버스기사이지만 운수 회사 이름으로 등록돼 있는 지입 버스, 모두 불법입니다.

이런 식으로 운영을 하면 회사측은 별다른 추가 부담 없이 버스를 늘려 운행할 수 있고요, 앞서 보신 것처럼 버스를 담보로 돈을 챙긴 뒤 고의로 부도를 내고 도망가는 등 악용 사례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기사들이 자기 버스를 회사 명의로 둘 수 밖에 없는 이유, 현행법상 전세버스 기사의 경우 개인 사업자로 인정받지 못하는데다, 일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할 현실적 필요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입 버스 문제는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주요 이슈였습니다.

여야 모두 한 목소리로 지입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부실한 전세버스 회사들로 인해 안전 운행에 빨간 불이 켜졌다며 정부를 질타했습니다.

<녹취> 신기남(국토교통위원/민주당) : "각종 불법 사태로 피해자를 양산하는 이 현재의 전세버스 지입제도, 이거 그대로 둘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이 불법 사태를 근절하는 유일한 방향은 차라리 양성화해 가지고 개별 사업권을 부여하는 것 밖에 없다."

<녹취> 서승환(국토교통부 장관) : "각각의 개인 차주들이 컨소시엄의 형태로 연합해서 회사를 만들어서 그 문제를 해결하는 뭐 이런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녹취> 심재철(국토교통위원/새누리당) : "전세버스 사고 같은 경우는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안전운전 의무를 위반하지 않도록 특별하게 전문성 강화 교육을 해야할 것 같고..."

국감장 밖에서는 전국의 지입버스 기사들이 모여 억울함을 호소하고 나섰습니다.

지입버스 기사들은 버스도 택시처럼 개인 면허권을 부여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녹취> 신정석(지입버스 기사) : "저희들은 개인 면허로 가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개별 사업권을 줘서 내 재산 내가 지킬 수 있게 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정적으로 할 수 있고..."

하지만 정부의 생각은 다릅니다.

버스 공급을 조절하고, 부실한 회사를 도태시키면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

개인버스 면허제를 도입하면 오히려 부실 정비 등으로 안전이 위협받기 쉽다는 겁니다.

<녹취> 박상열(국토교통부 대중교통과장) : "개별 허가권을 허용할 경우엔 차량 안전관리를 담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과잉 공급이 심화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아주 신중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전세버스 회사들도, 지입버스 기사들의 사기 피해는 극히 일부 회사의 사례로 대부분은 문제 없이 운행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녹취> 이병철(전세버스연합회 회장) : "전세버스는 승객이 보통 3-40명씩 탑승하고 운영합니다. 개인 택시나 화물차하곤 차원이 다릅니다. 저희들은 한번 중대사고가 나면 대처할 방법이 없습니다. 아주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도권 전세버스들의 기착지 역할을 하고 있는 서울 사당전철역 일대.

출퇴근 시간마다 전세버스들로 붐빕니다.

10년째 전세버스를 운전하고 있는 윤봉준 씨도 매일 아침 이 곳으로 출근해 승객들을 싣고 서울과 부천을 오갑니다.

버스 할부금에 보험료, 50만 원 가량의 지입료까지 회사에 내고 나면 생계를 꾸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윤 씨는 요즘 어린이 통학버스 일까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녹취> 윤봉준(버스기사) : "중간엔 유치원 어린이들을 태우고 가기도 하고 시간이 맞는 일을 하는 거죠. (아침부터 운전을 많이 하시넸네요?) 그렇죠. 거의 계속 운전한다고 봐야죠. (계속 운전하면 피곤하지 않으세요?) 피곤하죠. 어떻게 피곤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전세버스 기사들이 피곤을 무릅쓰고 무리한 운행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

<녹취> 황태환(버스 승객) : "버스 타고 가다보면 과속이라든지 이 운행 끝내고 다른 운행도 빨리 잡아서 해야 돼서 무리가 많이 가는 것 같아요. 그로 인해
사고 같은 것도 발생할 수 있고요..."

전세버스 사고는 지난해만 해도 천 백여 건을 넘고 사망자는 44명에 달했습니다.

교통사고 100건당 사상자 수를 비교해 보면 전세버스가 가장 높고, 1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형 교통사고를 분석해 봐도 전세버스가 전체의 절반을 차지할 정돕니다.

전세버스가 보편화돼 있는 상당수 선진국의 경우, 기사들 개인에게 책임감을 주기 위해 개인 면허를 원칙적으로 인정해주면서 안전 운행 여부에 대해선 국가가 철저히 개입하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녹취> 모창환(한국 국토교통연구원) : "거의 대중교통처럼 이용이 되는 거잖아요. 공공성이 높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정부가 어떻게 안전 측면에서 개입을 할 필요가 있다."

지난 1993년 면허제에서 등록제로 완화된 이후 전국의 전세버스는 7천여 대에서 4만 대로 급격히 늘었습니다.

연 수송인원 2억 5천만 명, 전체 버스 가운데 수송분담률 36%, 또 전세버스의 3/4이 통근.통학용으로 운행될 정도로 사실상 대중교통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자신 소유의 버스를 자기 것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현실.

말을 하면 불법을 공표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지입버스 기사들.

사기를 당해 버스를 빼앗겨 울고, 무리한 운행을 하며 피곤에 찌들고, 그 속에서 승객들은 불안해 할 수밖에 없는 지입버스 문제들.

오늘도 우리 곁엔 이런 버스 4만 대가 도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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