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뺑소니로 ‘기억 상실’…3달 만에 가해자 검거

입력 2015.07.09 (08:33) 수정 2015.07.09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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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드라마의 한 장면입니다.

<녹취> 착한남자/KBS 2TV, 2012.10.10 : "(문채원) 차 사고가 났다고 하는데 그래서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요"

이런 기억상실증은 드라마에서 너무 흔하게 쓰이는 설정이죠.

그런데 실제로 비슷한 일이 최근에 일어났습니다.

뺑소니를 당한 피해자가 사고 충격으로 당시 기억을 잃어버려서, 자기가 어떻게 다쳤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요.

양심적인 자동차 공업사 직원과 경찰의 끈질긴 수사 덕분에 결국 가해자가 잡혔다고 합니다.

그 사연을 뉴스따라잡기에서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3월 28일 저녁 7시쯤.

40대 남성 박 모 씨는 한적한 도로변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녹취> 피해자 (음성변조) : "도서관 갔다가 머리가 아프고 그래서 바람 좀 쐬러 양산 솔밭이라고 있거든요. 거기 갔다가 뉘엿뉘엿해서 돌아오는 길이었거든요."

그런데, 순간 기절한 박 씨!

눈을 떠 보니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혼자 쓰러져 있었습니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통증.. 박 씨는 겨우 휴대전화를 찾아 119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녹취> 피해자 (음성변조) : "눈을 뜨니까 새벽 2시 가까이 됐었어요. 머리도 아팠고요. 걸을 수가 없었어요. 제가 어디 도로쯤 인도에 누워있을 테니까 그쪽으로 와달라고 했죠."

박 씨의 몸은 온통 상처 투성이었습니다.

<인터뷰> 최종훈(소방장/충북 영동소방서 학산 119 지역대) : "정확히 어떤 사고가 났는지 기억을 못 하고요. 넘어진 상태라 전신에 타박상을 입으셨고 다리 쪽으로 골절이 약간 (있어서) 통증을 호소했습니다."

박 씨의 기억은 사라져 있었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다쳤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

길을 걷다가 심하게 넘어졌겠거니, 그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녹취> 피해자 (음성변조) : "차 불빛을 본 기억밖에 없어요. 제가 밑으로 피하다가 나가떨어져서 날면서……, 상처 난 부분이 오른쪽 쇄골하고 왼쪽 다리였기 때문에 그렇게 (넘어진) 것 같다고 생각했죠."

열흘 뒤, 대전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박 씨의 병실에 느닷없이 경찰이 찾아왔습니다.

<인터뷰> 피해자 (음성변조) : "경찰이 사고라고…… (전) 교통사고라고 생각을 못 했었어요. 저는 아니라고 했죠. 기억이 없으니까."

자신이 뺑소니를 당했다는 경찰의 말을 박 씨는 믿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인터뷰> 신동선(계장/충북 영동 경찰서 교통조사계) : "저희가 찾아가서 진술을 듣는데 ‘교통사고가 아니다. 혼자 넘어졌다. 그래서 (112에) 신고를 안 했다고."

목격자도 없고, 피해자의 기억마저 사라져버린 사건,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남아 있었습니다.

박 씨가 쓰러진 직후, 근처 CCTV에 포착된 화면입니다.

자동차 한 대가 멈춰서더니 운전자가 내려 앞유리를 살피고는 황급히 사라지는데요.

이틀 뒤 운전자는 날이 밝자마자 공업사에 자동차 수리를 맡겼습니다.

<녹취> 공업사 관계자 (음성변조) : "초행길이고 산길이니까 컴컴한데 가다가 그냥 동물을 친 줄 알았다고 차를 끌고 오셔서 수리를 맡긴 건데"

그런데 차에서 수상한 흔적들이 여럿 발견됐습니다.

정작 차체는 많이 부서지지 않았는데, 깨진 앞유리엔 검은 머리카락이 끼어 있었습니다.

<녹취> 공업사 관계자 (음성변조) : "사람 머리카락 같은 게 유리에 박혀있었고 범퍼 쪽부터 보닛 쪽이 크게 찌그러지진 않았는데 딱 사람이 다치는 그런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부서진) 부위 자체가……."

직원은 차를 고쳐주는 대신, 경찰에 신고부터 해야 한다고 운전자를 설득했습니다.

<녹취> 공업사 관계자 (음성변조) : "여기서 무조건 수리하시는 게 문제가 아니고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신고를 하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이틀 만에 신고를 받고 조사를 시작한 경찰, 하지만 운전자는 '산짐승을 친 것 같다'고 주장했습니다.

<인터뷰> 신동선(계장/충북 영동 경찰서 교통조사계) : "유리창이 파손된 부분에 인체 모발로 보이는 털이 발견되니까 운전자한테 ‘이거 교통사고 아닙니까?’ 하니까, 운전자는 "멧돼지로 추정되는 산짐승을 쳤다"고..."

하지만 증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 결과,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판명됐습니다.

<인터뷰> 신동선(계장/충북 영동 경찰서 교통조사계) : "무조건 산짐승이다. 자기는 사람을 친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다가 감정 결과를 제시하니까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라고."

경찰은 운전자가 사람을 친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일부러 도망쳤다고 확신했습니다.

<인터뷰> 신동선(계장/충북 영동 경찰서 교통조사계) : "저희가 일몰 시간에, 사고 추정 시간에 다시 똑같은 차종으로 시속 40km로 달려봤습니다. 전방 4, 50m는 충분히 가시거리가 나오는 그런 야간 시간대였거든요."

그렇게 뺑소니 가해자를 붙잡은 경찰, 정작 피해자는 찾지 못한 상황이었는데요.

근처 마을을 샅샅이 탐문해, 최근 갑작스레 입원한 주민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인터뷰> 신동선(계장/충북 영동 경찰서 교통조사계) : "사고 장소로 추정되는 도로 주변을 일일이 탐문했습니다. 동네에서 한 분이 누가 혼자 살고 있는데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더라."

경찰은 박 씨의 머리카락과 옷을 감식했고, 사고 차량에 남아있던 모발의 DNA와 일치한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운전자는 자신이 사람을 친 사실을 정말 몰랐다고 주장한다는데요.

<인터뷰> 신동선(계장/충북 영동 경찰서 교통조사계) : "세 가지를 질문합니다. 당시 사람인지 몰랐습니까? '몰랐습니다.' 또 당시에 현장에서 고의로 충격하고 도주한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거짓말 탐지기 조사 결과) 다 거짓말로 나왔습니다."

경찰은 해당 운전자를 뺑소니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인터뷰> 신동선(계장/충북 영동 경찰서 교통조사계) : "시속 40km로 추정한다면 그렇게 빠른 속도는 아닌데 (사람이) 전면 유리에 부딪혀서 유리가 파손됐는데 과연 그 정도를 운전자가 몰랐을까."

기억상실로 하마터면 사고를 당한 사실도 모른채 억울하게 고생해야 했을 피해자!

<인터뷰> 피해자 (음성변조) : "자꾸 주위 양쪽을 쳐다보게 돼요. 더군다나 저는 지금 남들처럼 뛰질 못하니까 슬슬 걸어 다닐 수밖에 없으니까. (사고 직후) 그런 두려움이 생기더라고요."

양심적인 공업사 직원과 끈질긴 경찰 덕분에, 묻힐 뻔한 뺑소니 사고의 진실이 드러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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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뺑소니로 ‘기억 상실’…3달 만에 가해자 검거
    • 입력 2015-07-09 08:36:48
    • 수정2015-07-09 09:5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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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드라마의 한 장면입니다.

<녹취> 착한남자/KBS 2TV, 2012.10.10 : "(문채원) 차 사고가 났다고 하는데 그래서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요"

이런 기억상실증은 드라마에서 너무 흔하게 쓰이는 설정이죠.

그런데 실제로 비슷한 일이 최근에 일어났습니다.

뺑소니를 당한 피해자가 사고 충격으로 당시 기억을 잃어버려서, 자기가 어떻게 다쳤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요.

양심적인 자동차 공업사 직원과 경찰의 끈질긴 수사 덕분에 결국 가해자가 잡혔다고 합니다.

그 사연을 뉴스따라잡기에서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3월 28일 저녁 7시쯤.

40대 남성 박 모 씨는 한적한 도로변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녹취> 피해자 (음성변조) : "도서관 갔다가 머리가 아프고 그래서 바람 좀 쐬러 양산 솔밭이라고 있거든요. 거기 갔다가 뉘엿뉘엿해서 돌아오는 길이었거든요."

그런데, 순간 기절한 박 씨!

눈을 떠 보니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혼자 쓰러져 있었습니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통증.. 박 씨는 겨우 휴대전화를 찾아 119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녹취> 피해자 (음성변조) : "눈을 뜨니까 새벽 2시 가까이 됐었어요. 머리도 아팠고요. 걸을 수가 없었어요. 제가 어디 도로쯤 인도에 누워있을 테니까 그쪽으로 와달라고 했죠."

박 씨의 몸은 온통 상처 투성이었습니다.

<인터뷰> 최종훈(소방장/충북 영동소방서 학산 119 지역대) : "정확히 어떤 사고가 났는지 기억을 못 하고요. 넘어진 상태라 전신에 타박상을 입으셨고 다리 쪽으로 골절이 약간 (있어서) 통증을 호소했습니다."

박 씨의 기억은 사라져 있었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다쳤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

길을 걷다가 심하게 넘어졌겠거니, 그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녹취> 피해자 (음성변조) : "차 불빛을 본 기억밖에 없어요. 제가 밑으로 피하다가 나가떨어져서 날면서……, 상처 난 부분이 오른쪽 쇄골하고 왼쪽 다리였기 때문에 그렇게 (넘어진) 것 같다고 생각했죠."

열흘 뒤, 대전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박 씨의 병실에 느닷없이 경찰이 찾아왔습니다.

<인터뷰> 피해자 (음성변조) : "경찰이 사고라고…… (전) 교통사고라고 생각을 못 했었어요. 저는 아니라고 했죠. 기억이 없으니까."

자신이 뺑소니를 당했다는 경찰의 말을 박 씨는 믿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인터뷰> 신동선(계장/충북 영동 경찰서 교통조사계) : "저희가 찾아가서 진술을 듣는데 ‘교통사고가 아니다. 혼자 넘어졌다. 그래서 (112에) 신고를 안 했다고."

목격자도 없고, 피해자의 기억마저 사라져버린 사건,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남아 있었습니다.

박 씨가 쓰러진 직후, 근처 CCTV에 포착된 화면입니다.

자동차 한 대가 멈춰서더니 운전자가 내려 앞유리를 살피고는 황급히 사라지는데요.

이틀 뒤 운전자는 날이 밝자마자 공업사에 자동차 수리를 맡겼습니다.

<녹취> 공업사 관계자 (음성변조) : "초행길이고 산길이니까 컴컴한데 가다가 그냥 동물을 친 줄 알았다고 차를 끌고 오셔서 수리를 맡긴 건데"

그런데 차에서 수상한 흔적들이 여럿 발견됐습니다.

정작 차체는 많이 부서지지 않았는데, 깨진 앞유리엔 검은 머리카락이 끼어 있었습니다.

<녹취> 공업사 관계자 (음성변조) : "사람 머리카락 같은 게 유리에 박혀있었고 범퍼 쪽부터 보닛 쪽이 크게 찌그러지진 않았는데 딱 사람이 다치는 그런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부서진) 부위 자체가……."

직원은 차를 고쳐주는 대신, 경찰에 신고부터 해야 한다고 운전자를 설득했습니다.

<녹취> 공업사 관계자 (음성변조) : "여기서 무조건 수리하시는 게 문제가 아니고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신고를 하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이틀 만에 신고를 받고 조사를 시작한 경찰, 하지만 운전자는 '산짐승을 친 것 같다'고 주장했습니다.

<인터뷰> 신동선(계장/충북 영동 경찰서 교통조사계) : "유리창이 파손된 부분에 인체 모발로 보이는 털이 발견되니까 운전자한테 ‘이거 교통사고 아닙니까?’ 하니까, 운전자는 "멧돼지로 추정되는 산짐승을 쳤다"고..."

하지만 증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 결과,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판명됐습니다.

<인터뷰> 신동선(계장/충북 영동 경찰서 교통조사계) : "무조건 산짐승이다. 자기는 사람을 친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다가 감정 결과를 제시하니까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라고."

경찰은 운전자가 사람을 친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일부러 도망쳤다고 확신했습니다.

<인터뷰> 신동선(계장/충북 영동 경찰서 교통조사계) : "저희가 일몰 시간에, 사고 추정 시간에 다시 똑같은 차종으로 시속 40km로 달려봤습니다. 전방 4, 50m는 충분히 가시거리가 나오는 그런 야간 시간대였거든요."

그렇게 뺑소니 가해자를 붙잡은 경찰, 정작 피해자는 찾지 못한 상황이었는데요.

근처 마을을 샅샅이 탐문해, 최근 갑작스레 입원한 주민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인터뷰> 신동선(계장/충북 영동 경찰서 교통조사계) : "사고 장소로 추정되는 도로 주변을 일일이 탐문했습니다. 동네에서 한 분이 누가 혼자 살고 있는데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더라."

경찰은 박 씨의 머리카락과 옷을 감식했고, 사고 차량에 남아있던 모발의 DNA와 일치한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운전자는 자신이 사람을 친 사실을 정말 몰랐다고 주장한다는데요.

<인터뷰> 신동선(계장/충북 영동 경찰서 교통조사계) : "세 가지를 질문합니다. 당시 사람인지 몰랐습니까? '몰랐습니다.' 또 당시에 현장에서 고의로 충격하고 도주한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거짓말 탐지기 조사 결과) 다 거짓말로 나왔습니다."

경찰은 해당 운전자를 뺑소니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인터뷰> 신동선(계장/충북 영동 경찰서 교통조사계) : "시속 40km로 추정한다면 그렇게 빠른 속도는 아닌데 (사람이) 전면 유리에 부딪혀서 유리가 파손됐는데 과연 그 정도를 운전자가 몰랐을까."

기억상실로 하마터면 사고를 당한 사실도 모른채 억울하게 고생해야 했을 피해자!

<인터뷰> 피해자 (음성변조) : "자꾸 주위 양쪽을 쳐다보게 돼요. 더군다나 저는 지금 남들처럼 뛰질 못하니까 슬슬 걸어 다닐 수밖에 없으니까. (사고 직후) 그런 두려움이 생기더라고요."

양심적인 공업사 직원과 끈질긴 경찰 덕분에, 묻힐 뻔한 뺑소니 사고의 진실이 드러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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