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대학 스포츠, 이 길 밖에 없다 ① 팀 해체가 최선입니까?

입력 2015.08.17 (18:00) 수정 2015.08.30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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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고 코치의 제자 성폭행, 학교 체육에 대한 본격 취재는 그 사건의 내면이 갖고 있는 근본적 부조리에 의문을 품으면서 시작됐습니다. 지난 10여년간 스포츠 인권 문제와 만연한 입시 비리 등 학교 체육의 현실을 취재해오는 동안 시스템 개혁이 진행됐고 그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기도 했습니다. 그동안의 현장 취재 과정을 담아서 3회에 걸친 연재 기사 '대학 스포츠, 이 길밖에 없다' 를 준비했습니다. 1편 <팀 해체가 최선입니까?>는 현재 대학 스포츠가 처한 생존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2편 <시스템 개혁, 희망은 있다>는 벼랑 끝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혁 작업과 그 방향을 분석합니다. 3편 <한국형 NCAA, 그 무한한 가능성>은 근본적 시스템 개혁이 만들어 줄 새로운 가능성과 대안을 제시합니다.

1편 <팀 해체가 최선입니까?>
2편 <시스템 개혁, 희망은 있다>
3편 <한국형 NCAA, 그 무한한 가능성>

**본 기사는 담당 기자가 한국체육학회 통합학술대회에 발표한 원고를 토대로 재편집한 글입니다**



1편 <팀 해체가 최선입니까?>

지난 2008년 스포츠계의 성폭력 문제를 취재하던 중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한민국 학원 스포츠의 민낯을 경험했다. 여자 고등학교 코치가 제자들을 성폭행했는데도 학교와 학부모, 협회 모두 조용히 문제를 덮고 넘어갔다. 그 당시 만났던 한 관계자의 인터뷰는 대한민국 스포츠에서 대학 진학이 갖는 의미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간단한 거죠. 운동선수들 고등학교 때 공부를 안 하잖아요? 운동만 하고.. 그럼 취업할 데가 어디 회사가 아니잖아요? 대학 가고 실업 팀 가는 게 최우선 아닙니까? 그것 때문에 덮은 거죠. 학교는 학교대로 막으려고 하고 학교에서 터지면 교장부터 전부 다 모가지니까.. 학부모들은 애들 경찰서 가고,. 언론에 나고.. 그런 애들 어느 대학 팀, 실업 팀에서 뽑아 주겠어? 그 지도자들 더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서로 연락해서 누구 뽑지 마라 하면 운동 더 못하는 거지. 학부모들하고 애들은 절대적으로 약자죠. 나중에 보니까 학부모들도 어느 정도 이상한 눈치는 채고 있었는데 애들 취업이나 대학이나 진로 때문에 아무 소리 못하고 끙끙 앓고 있었다고 해요”

-KBS 시사기획 쌈 ‘스포츠와 성폭력에 대한 인권 보고서’중-


KBS 시사기획 쌈 ‘스포츠와 성폭력에 관한 인권 보고서’ 2008년KBS 시사기획 쌈 ‘스포츠와 성폭력에 관한 인권 보고서’ 2008년

KBS 시사기획 쌈 ‘스포츠와 성폭력에 관한 인권 보고서’ 2008년KBS 시사기획 쌈 ‘스포츠와 성폭력에 관한 인권 보고서’ 2008년


지난 2009년 어느 날 출근길이었다. 아침부터 다급하게 울리던 전화 속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정 기자님 우리 팀 해체된답니다. 살려 주세요” 대학 스포츠 명문 건국대학교가 사실상 운동부 해체를 결정하고 앞으로 엘리트 선수들을 받지 않겠다는 정책을 공식 결정하려고 한다는 제보 전화였다. 그 날 KBS 스포츠 뉴스는 현재 대학 운동부 운영의 어려움은 인정하지만 건국대 스포츠 팀의 해체는 대학 스포츠 해체 도미노 현상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우려를 보도했고 결국 대학은 팀 해체를 유보했다.

KBS 스포츠 뉴스 '건국대 운동부 사실상 해체 파문' (2009.03.25)KBS 스포츠 뉴스 '건국대 운동부 사실상 해체 파문' (2009.03.25)


당장 팀 해체는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최근 몇 년 간 한양대, 동아대, 성균관대 등 수많은 대학에서 똑같은 홍역을 앓았다. 대학 구조 조정의 압박 속에 재정적 부담은 크고, 홍보 효과는 없고, 입시 비리 등 잡음이 끊이지 않는 대학 운동부는 여전히 구조조정 1순위다.

단언하건대 2015년 현재 대한민국 대학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은 비정상이다. 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대학 엘리트 스포츠 팀은 외부 지원이 없다면 조만간 대부분 해체될 위기다. 말 그대로 생존의 위기다. 그것도 벼랑 끝에 몰려 있다. 한 두 사람이 만든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근원은 시스템 오작동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스포츠 그 중에서도 대학 스포츠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시스템 개혁이 필수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제도와 시스템 자체를 고치려고 하기 보다는 눈앞에 닥친 지엽적인 문제들을 먼저 해결하려 한다. 그런 땜질 처방은 시스템 개혁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대학 스포츠 시스템 오류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불투명한 선수 선발 방식, 부족한 예산 그리고 비상식적인 대회 운영 방식 등 다양하다. 그러나 그 중 핵심은 ‘체육 특기자 제도’와 ‘열악한 재정’이다.

특히 체육 특기자 제도는 현재의 학교체육 시스템이 풀어야 할 근원적인 문제이다. 체육 특기자 제도란 ‘체육에 특별한 소질을 가진 학생들을 발굴, 육성하기 위하여 상급학교 입학시 특례를 인정’하는 제도로 1972년부터 시행됐다. 한 마디로 운동을 잘 하면 학업성적과 무관하게 대학교까지 진학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줌으로써 운동선수를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1997년 이후 체육 특기자 대학 진학 전형은 고등교육법 시행령 34조 2항에 따라 각 대학의 장이 자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특별한 경력이나 소질 등 대학이 제시하는 기준 또는 차등적인 교육적 보상기준에 의한 전형이 필요한 자를 대상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전형으로서 사회 통념적 가치기준에 적합한 합리적인 입학전형의 기준 및 방법에 따라 공정한 경쟁에 의하여 공개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여전히 ‘합리적 입학전형의 기준 및 방법’보다는 선수 스카우트를 위해 검은 돈이 오가는 불법, 탈법의 온상이다. 지난 2012년 감사원의 학사운영 및 관리 실태감사 결과 보고서에 적발된 입시 비리 사례만 8개 대학 72명이고 스카우트 비용으로 오간 돈만 29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8년 학원 스포츠의 승부조작과 대학 진학을 둘러싼 암시장을 파헤친 KBS 시사기획 쌈 ‘코트의 마피아’를 취재하던 과정에서 만난 현실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몇 년 전, 조용하던 한 지방 마을에서 아내가 남편을 청부 살해하려다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아내의 우연한 증언 한 마디가 스포츠계를 둘러싼 불법 선수 암거래 시장의 실체를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부인: 제가 낳은 자식이 아니었어도 제가 12년을 키웠고 지방대 나온 사람하고 서울에서 명문대를 다니면 학력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좋은 대학 보내고 싶었습니다.

아내는 현금 1억 원을 주고 아들을 명문 00대 농구부에 부정입학시킨 사실을 자백했다. 계모였지만 아들과 남편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부부는 아들이 다니던 고등학교 농구부 감독에게 1억 원을 건넸다. 감독은 다시 당시 농구협회 심판 간사에게 이 돈을 전달했다. 심판 간사는 모든 경기에 들어갈 심판을 배정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당시 심판 간사는 협회 핵심 파벌을 등에 업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구속된 심판 간사는 1억 원 가운데 고교 감독에게 1천 5백만 원, 00대 측에 2천만 원을 건네고, 나머지 6천 5백만 원을 직접 챙겼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학부모를 이용해 돈세탁까지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처럼 범최행각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범죄가 재발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법적 처벌을 받은 농구협회 심판 간사, 그리고 고교 감독, 대학 지도자 모두 자연스럽게 현장에 복귀했다.
전직 협회 간부: 제가 다 잘못한 거니까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실제로는 선수 플레이하는 거 딱 한 번밖에 못 봤습니다. 감독 선생님이 조금만 신경 써 주시면 대학에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고교 감독도 마찬가지다. 석방된 다음날 경기장에 다시 나타난 그는 진학 실적을 높이기 위해선 돈을 주고라도 제자를 명문 대학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00고 감독: 본의 아니게 물의를 끼쳐 죄송하게 생각해요. 대학 진학도 못 시키면 후배들이나 또 그 학부모들이 운동을 해도 대학을 못 가는 구나 그렇게 되면 정말 팀 끌고 가기 힘들어요.

주목해야 할 부분은 우연히 드러난 증거 때문에 일부 관계자들이 형사 처벌을 받긴 했지만 협회 고위층이나 대학 고위 관계자는 모두 법적 책임을 피해 갔다는 점이다. 협회나 대학의 고위층이 관계됐거나 최소한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심증은 있지만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돈의 흐름 역시 피고인들의 증언이 없다면 더 이상 확인이 불가능하다.

KBS 시사기획 쌈 ‘코트의 마피아’ 중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학교체육 비리의 핵심은 대학 입시다. 공부는 안 해도 대회에서 성적만 낼 수 있다면 체육 특기자 제도를 통해 대학 진학이 가능하다 보니 협회 내 파벌 싸움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고 그를 통해 심판진을 장악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일단 권력을 잡으면 승부조작을 통해 고교 선수들의 대학 진학에 막대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고교와 대학 감독들 그리고 협회 간부는 학연과 지연을 통한 선후배 관계로 끈끈하게 엮여 있다. 특히 한 번 ‘작업’을 성공시키면 관련자들 사이엔 영원히 함께 가져갈 수밖에 없는 비밀스러운 유대가 형성된다. 현재의 제도와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한 두 사람을 처벌함으로써 이 거대한 암시장을 허물겠다는 발상은 그래서 비현실적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대학 진학 과정을 투명하게 관리할 시스템이 없는 상태에서 학교 체육 정상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전체 체육 특기자들의 70% 이상은 올림픽 금메달이 아니라 대학 진학을 위해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스포츠계 먹이 사실을 맨 꼭대기에 있는 대학이 바로 서지 않은 상태에서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가 먼저 정상화되길 기대할 수는 없다. 학교체육 정상화를 위한 시스템 개혁의 출발점은 그래서 대학이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승부조작, 입시비리, 조직사유화, (성)폭력 등 이른 바 ‘스포츠계 4대악’의 근본 원인으로 ‘체육 특기자’ 제도를 꼽고 있을 만큼 부작용은 심각하다.

더구나 프로 출범 이후 대학 스포츠에 대한 국민과 언론의 관심까지 차갑게 식은 상태에서 재정 자립이나 산업화를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이 어렵다고 해서 대학 엘리트 스포츠를 포기할 수는 없다. 지난 밴쿠버 올림픽 메달리스트 19명 중 10명이 대학 선수들이다. 대학 스포츠가 무너진다면 초중고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도 줄줄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해법은 무엇인가?

2편 <시스템 개혁, 희망은 있다>로 이어집니다.

[연관 기사]

☞ [취재후] 대학 스포츠 ② 시스템 개혁, 희망은 있다

☞ [취재후] 대학 스포츠 이 길밖에 없다 ③ 한국형 NCAA, 그 무한한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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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대학 스포츠, 이 길 밖에 없다 ① 팀 해체가 최선입니까?
    • 입력 2015-08-17 18:00:15
    • 수정2015-08-30 07:48:12
    취재후·사건후
한 여고 코치의 제자 성폭행, 학교 체육에 대한 본격 취재는 그 사건의 내면이 갖고 있는 근본적 부조리에 의문을 품으면서 시작됐습니다. 지난 10여년간 스포츠 인권 문제와 만연한 입시 비리 등 학교 체육의 현실을 취재해오는 동안 시스템 개혁이 진행됐고 그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기도 했습니다. 그동안의 현장 취재 과정을 담아서 3회에 걸친 연재 기사 '대학 스포츠, 이 길밖에 없다' 를 준비했습니다. 1편 <팀 해체가 최선입니까?>는 현재 대학 스포츠가 처한 생존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2편 <시스템 개혁, 희망은 있다>는 벼랑 끝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혁 작업과 그 방향을 분석합니다. 3편 <한국형 NCAA, 그 무한한 가능성>은 근본적 시스템 개혁이 만들어 줄 새로운 가능성과 대안을 제시합니다.

1편 <팀 해체가 최선입니까?>
2편 <시스템 개혁, 희망은 있다>
3편 <한국형 NCAA, 그 무한한 가능성>

**본 기사는 담당 기자가 한국체육학회 통합학술대회에 발표한 원고를 토대로 재편집한 글입니다**



1편 <팀 해체가 최선입니까?>

지난 2008년 스포츠계의 성폭력 문제를 취재하던 중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한민국 학원 스포츠의 민낯을 경험했다. 여자 고등학교 코치가 제자들을 성폭행했는데도 학교와 학부모, 협회 모두 조용히 문제를 덮고 넘어갔다. 그 당시 만났던 한 관계자의 인터뷰는 대한민국 스포츠에서 대학 진학이 갖는 의미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간단한 거죠. 운동선수들 고등학교 때 공부를 안 하잖아요? 운동만 하고.. 그럼 취업할 데가 어디 회사가 아니잖아요? 대학 가고 실업 팀 가는 게 최우선 아닙니까? 그것 때문에 덮은 거죠. 학교는 학교대로 막으려고 하고 학교에서 터지면 교장부터 전부 다 모가지니까.. 학부모들은 애들 경찰서 가고,. 언론에 나고.. 그런 애들 어느 대학 팀, 실업 팀에서 뽑아 주겠어? 그 지도자들 더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서로 연락해서 누구 뽑지 마라 하면 운동 더 못하는 거지. 학부모들하고 애들은 절대적으로 약자죠. 나중에 보니까 학부모들도 어느 정도 이상한 눈치는 채고 있었는데 애들 취업이나 대학이나 진로 때문에 아무 소리 못하고 끙끙 앓고 있었다고 해요”

-KBS 시사기획 쌈 ‘스포츠와 성폭력에 대한 인권 보고서’중-


KBS 시사기획 쌈 ‘스포츠와 성폭력에 관한 인권 보고서’ 2008년
KBS 시사기획 쌈 ‘스포츠와 성폭력에 관한 인권 보고서’ 2008년


지난 2009년 어느 날 출근길이었다. 아침부터 다급하게 울리던 전화 속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정 기자님 우리 팀 해체된답니다. 살려 주세요” 대학 스포츠 명문 건국대학교가 사실상 운동부 해체를 결정하고 앞으로 엘리트 선수들을 받지 않겠다는 정책을 공식 결정하려고 한다는 제보 전화였다. 그 날 KBS 스포츠 뉴스는 현재 대학 운동부 운영의 어려움은 인정하지만 건국대 스포츠 팀의 해체는 대학 스포츠 해체 도미노 현상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우려를 보도했고 결국 대학은 팀 해체를 유보했다.

KBS 스포츠 뉴스 '건국대 운동부 사실상 해체 파문' (2009.03.25)


당장 팀 해체는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최근 몇 년 간 한양대, 동아대, 성균관대 등 수많은 대학에서 똑같은 홍역을 앓았다. 대학 구조 조정의 압박 속에 재정적 부담은 크고, 홍보 효과는 없고, 입시 비리 등 잡음이 끊이지 않는 대학 운동부는 여전히 구조조정 1순위다.

단언하건대 2015년 현재 대한민국 대학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은 비정상이다. 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대학 엘리트 스포츠 팀은 외부 지원이 없다면 조만간 대부분 해체될 위기다. 말 그대로 생존의 위기다. 그것도 벼랑 끝에 몰려 있다. 한 두 사람이 만든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근원은 시스템 오작동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스포츠 그 중에서도 대학 스포츠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시스템 개혁이 필수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제도와 시스템 자체를 고치려고 하기 보다는 눈앞에 닥친 지엽적인 문제들을 먼저 해결하려 한다. 그런 땜질 처방은 시스템 개혁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대학 스포츠 시스템 오류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불투명한 선수 선발 방식, 부족한 예산 그리고 비상식적인 대회 운영 방식 등 다양하다. 그러나 그 중 핵심은 ‘체육 특기자 제도’와 ‘열악한 재정’이다.

특히 체육 특기자 제도는 현재의 학교체육 시스템이 풀어야 할 근원적인 문제이다. 체육 특기자 제도란 ‘체육에 특별한 소질을 가진 학생들을 발굴, 육성하기 위하여 상급학교 입학시 특례를 인정’하는 제도로 1972년부터 시행됐다. 한 마디로 운동을 잘 하면 학업성적과 무관하게 대학교까지 진학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줌으로써 운동선수를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1997년 이후 체육 특기자 대학 진학 전형은 고등교육법 시행령 34조 2항에 따라 각 대학의 장이 자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특별한 경력이나 소질 등 대학이 제시하는 기준 또는 차등적인 교육적 보상기준에 의한 전형이 필요한 자를 대상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전형으로서 사회 통념적 가치기준에 적합한 합리적인 입학전형의 기준 및 방법에 따라 공정한 경쟁에 의하여 공개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여전히 ‘합리적 입학전형의 기준 및 방법’보다는 선수 스카우트를 위해 검은 돈이 오가는 불법, 탈법의 온상이다. 지난 2012년 감사원의 학사운영 및 관리 실태감사 결과 보고서에 적발된 입시 비리 사례만 8개 대학 72명이고 스카우트 비용으로 오간 돈만 29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8년 학원 스포츠의 승부조작과 대학 진학을 둘러싼 암시장을 파헤친 KBS 시사기획 쌈 ‘코트의 마피아’를 취재하던 과정에서 만난 현실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몇 년 전, 조용하던 한 지방 마을에서 아내가 남편을 청부 살해하려다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아내의 우연한 증언 한 마디가 스포츠계를 둘러싼 불법 선수 암거래 시장의 실체를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부인: 제가 낳은 자식이 아니었어도 제가 12년을 키웠고 지방대 나온 사람하고 서울에서 명문대를 다니면 학력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좋은 대학 보내고 싶었습니다.

아내는 현금 1억 원을 주고 아들을 명문 00대 농구부에 부정입학시킨 사실을 자백했다. 계모였지만 아들과 남편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부부는 아들이 다니던 고등학교 농구부 감독에게 1억 원을 건넸다. 감독은 다시 당시 농구협회 심판 간사에게 이 돈을 전달했다. 심판 간사는 모든 경기에 들어갈 심판을 배정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당시 심판 간사는 협회 핵심 파벌을 등에 업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구속된 심판 간사는 1억 원 가운데 고교 감독에게 1천 5백만 원, 00대 측에 2천만 원을 건네고, 나머지 6천 5백만 원을 직접 챙겼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학부모를 이용해 돈세탁까지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처럼 범최행각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범죄가 재발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법적 처벌을 받은 농구협회 심판 간사, 그리고 고교 감독, 대학 지도자 모두 자연스럽게 현장에 복귀했다.
전직 협회 간부: 제가 다 잘못한 거니까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실제로는 선수 플레이하는 거 딱 한 번밖에 못 봤습니다. 감독 선생님이 조금만 신경 써 주시면 대학에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고교 감독도 마찬가지다. 석방된 다음날 경기장에 다시 나타난 그는 진학 실적을 높이기 위해선 돈을 주고라도 제자를 명문 대학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00고 감독: 본의 아니게 물의를 끼쳐 죄송하게 생각해요. 대학 진학도 못 시키면 후배들이나 또 그 학부모들이 운동을 해도 대학을 못 가는 구나 그렇게 되면 정말 팀 끌고 가기 힘들어요.

주목해야 할 부분은 우연히 드러난 증거 때문에 일부 관계자들이 형사 처벌을 받긴 했지만 협회 고위층이나 대학 고위 관계자는 모두 법적 책임을 피해 갔다는 점이다. 협회나 대학의 고위층이 관계됐거나 최소한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심증은 있지만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돈의 흐름 역시 피고인들의 증언이 없다면 더 이상 확인이 불가능하다.

KBS 시사기획 쌈 ‘코트의 마피아’ 중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학교체육 비리의 핵심은 대학 입시다. 공부는 안 해도 대회에서 성적만 낼 수 있다면 체육 특기자 제도를 통해 대학 진학이 가능하다 보니 협회 내 파벌 싸움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고 그를 통해 심판진을 장악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일단 권력을 잡으면 승부조작을 통해 고교 선수들의 대학 진학에 막대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고교와 대학 감독들 그리고 협회 간부는 학연과 지연을 통한 선후배 관계로 끈끈하게 엮여 있다. 특히 한 번 ‘작업’을 성공시키면 관련자들 사이엔 영원히 함께 가져갈 수밖에 없는 비밀스러운 유대가 형성된다. 현재의 제도와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한 두 사람을 처벌함으로써 이 거대한 암시장을 허물겠다는 발상은 그래서 비현실적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대학 진학 과정을 투명하게 관리할 시스템이 없는 상태에서 학교 체육 정상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전체 체육 특기자들의 70% 이상은 올림픽 금메달이 아니라 대학 진학을 위해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스포츠계 먹이 사실을 맨 꼭대기에 있는 대학이 바로 서지 않은 상태에서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가 먼저 정상화되길 기대할 수는 없다. 학교체육 정상화를 위한 시스템 개혁의 출발점은 그래서 대학이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승부조작, 입시비리, 조직사유화, (성)폭력 등 이른 바 ‘스포츠계 4대악’의 근본 원인으로 ‘체육 특기자’ 제도를 꼽고 있을 만큼 부작용은 심각하다.

더구나 프로 출범 이후 대학 스포츠에 대한 국민과 언론의 관심까지 차갑게 식은 상태에서 재정 자립이나 산업화를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이 어렵다고 해서 대학 엘리트 스포츠를 포기할 수는 없다. 지난 밴쿠버 올림픽 메달리스트 19명 중 10명이 대학 선수들이다. 대학 스포츠가 무너진다면 초중고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도 줄줄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해법은 무엇인가?

2편 <시스템 개혁, 희망은 있다>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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