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재해 산업현장의 진실

입력 2015.09.20 (23:35) 수정 2015.09.21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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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어쩔 수 없이 죽은게 아니라..안 죽어도 될 사람을 죽인거다"

<녹취> "문이 닫혀있었어요. 닫혀있는 상태로 100 미터 기어서 들어갔거든요."

<녹취> "은폐를 해서 감독을 면하고 그리고 또 감독을 안받게 되면 작업환경을 개선한다든지/수행하지 않게 되니까 계속 악순환의 고리가 발생하는 거죠."

<오프닝>

청주의 한 사찰에서 지난 7월 숨진 30대 근로자의 49제가 열렸습니다.

바로 한 화장품제조업체의 부적절한 산업재해 대처때문에 숨진 이 모 씨의 넋을 기리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그동안 은폐된 산재가 더 있다는 유가족들의 주장은 단독 입수한 특별근로감독 조사 결과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대체 왜 이 업체는 그동안 산업재해를 숨겨왔던 것일까요?

<리포트>

다음 생에서는 좋은 곳에서 태어나길 바라는 의식.

이 씨가 세상을 떠난지 49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가족들은 왜 아들이, 동생이 허망하게 가야만 했는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인터뷰> 이 씨 유가족(음성변조) : "죽으라고 내팽겨쳐둔 사람이니까 절대 용서해줘선 안돼"

LG생활건강의 협력업체인 주식회사 에버코스에서 3년 넘게 물류 운반일을 했던 이 씨.

7월 29일 그 날도 이 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을 했습니다.

샴푸 공정 라인에서 일했던 이 씨는 그 날 따라 화장품 공정 라인에 투입됐습니다.

도로에 가득 쌓여있는 상품들.

한 사람이 순식간에 지게차에 치여 5미터나 끌려갑니다.

18분쯤 뒤 직원들이 담요를 들고나오더니 제대로 된 들것도 없이 다친 사람을 담요에 싸서 승합차에 실어 나릅니다.

지게차에 받친 뒤 실려나간 사람, 바로 이 씨였습니다.

사고 직후 신고를 받고 119 구급대가 출동했지만 한 직원이 단순 찰과상이라며 119 구급대를 돌려보낸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이 씨는 그 뒤 회사 승합차에서 지정병원 차량에 옮겨졌습니다.

회사 지정병원으로 갔지만 지정병원 의료진은 이씨의 상태가 위중하다며 더 큰 병원으로 이 씨를 또 이송했습니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1시간 가량이 소요됐다고 밝혔습니다.

이씨는 사고가 난 뒤 8시간 만에 숨을 거뒀습니다.

경찰 부검 결과 사인은 장기 손상에 의한 과다 출혈.

<인터뷰> 민경욱(사망자 유족) : "승합차에 태우고 간 것만 하더라도, 가까운 병원 놔두고 먼 병원으로 돌아간 것만 하더라도 최소한 업무상 과실치사다. 이건 그냥 죽을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죽은게 아니라 최소한 안 죽어도 될 사람을 죽인거다"

왜 출동한 119구급대를 돌려보냈을까?

또 가까운 병원을 놔두고 왜 회사 지정병원까지 가야만 했을까?

취재진이 입수한 이 회사의 비상사태 대비 대응 지침서입니다.

상황별로 어느 병원으로 후송하라고 자세히 정해져 있습니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만 119에 신고하고 다른 사고시에는 지정한 A나 B병원으로 데려가도록 명시해놓았습니다.

특히 비상사태를 대비한 훈련 시나리오에는 인명 사고가 났을 경우 즉시 가능한 차량을 수배해 사고자를 탑승시키라고 적혀있습니다.

119구급대를 부르지 않고 직원들이 자체적으로 부상자를 이송시키는 겁니다.

그 날도 이 씨는 도착한 119 구급차량 대신 회사 승합차로 후송됐습니다.

회사측에 언제 누가 지침서를 만들었는지 물었습니다.

<녹취> (주)에버코스 관계자 : "그 때 계셨던 분들은 아무도 없을건데요."

회사 관계자는 지침서대로 하는게 119를 부르는 것보다 낫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주)에버코스 관계자 : "KBS 혹시 일하시면서 업무 중에 다치실 일 없습니까? 다 119 불러서 가세요? 저희는 가까운데 병원이 있으면 큰 상처가 아니면요 그냥 바로 가는게 상식적이거든요."

숨진 이 씨가 당한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1월에도 이 씨는 작업 중에 다리를 지게차에 크게 다쳤습니다.

석 달 동안 회사를 쉬어야 할 정도의 부상이었지만 회사는 당시에도 119 구급대를 찾지 않았습니다.

대신 직원차량을 이용해 이 씨를 지정병원으로 후송했습니다.

이 업체에서 보름에 한 번 꼴로 작성하는 내부 안전 기록입니다.

한결같이 재해율을 0으로 표기해 놓았습니다.

이 업체는 회사가 무재해를 계산하기 시작한 2003년부터 이 씨가 숨지기 전까지 무재해 4000여 일을 달성했습니다.

덕분에 산재 보험료도 연간 천6백만 원에서 3천 2백만 원까지 매년 감액받았습니다.

무재해 기간 일을 하다 작업장에서 다친 직원은 이 씨가 유일한 것일까?

취재진이 단독 입수한 특별근로감독 결과입니다.

2012년 7월부터 올해 8월까지 3년 사이만도 신고하지 않은 산업재해가 무려 26건.

특별감독 직전에 이뤄진 수시감독에서 밝혀진 산재까지 더하면 3년 동안 모두 29건을 은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사고가 났을 때 119를 부르지 않고 사적 계약관계인 지정병원으로 이송하는 행동 자체가 산업재해를 숨기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최 민(직업환경의학 전문의) : "지정병원으로 보내는 것은 정말 산재 은폐를 하기 위해서하는 생각이 들고 실제로 어떻게 지정병원과 회사가 계약 혹은 짬짜미를 통해서 산재를 은폐해 왔는지가 속속 드러나고 있고요."

경찰은 119 구급대를 돌려보낸 상황을 집중 분석하면서, 업무상 과실치사 보다 훨씬 처벌이 강한 부작위 살인혐의 적용이 가능한지 검토하고 있습니다.

부산의 공사현장.

한 남자를 응급 차량에서 다시 빼내 119 구급차로 옮겨 싣고 있습니다.

이미 바닥은 부상자가 흘린 피로 흥건히 물들었고 한켠에는 안전모가 나뒹굴고 있습니다.

출동한 119 구급차량 블랙박스에 당시 상황이 고스라니 기록됐습니다.

지난 2월 7미터 높이에서 안전망 연결작업을 하던 조계택 씨가 추락한 뒤 벌어진 모습입니다.

사고 당시 119 신고를 한 사람은 현장에 있던 업체 직원이 아닌 지나가던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출동한 소방서의 동향보고에는 신고자가 현장을 지나가다 추락한 환자가 있는데도 현장관계자들이 신고를 하지 않고 다른 조치도 하지 않는 것 같아서 119로 신고를 했다고 적혀있습니다.

숨진 조 씨가 속한 중아건설의 원도급 업체인 신세계 건설측은 어찌된 일인지 지정병원에 신고를 했습니다.

현장에 도착한 지정 병원 응급차량은 부상 정도가 너무 심해서 자신들이 책임지기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습니다.

곧이어 119 응급차량이 도착했지만 119 구급대원들에게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당시 출동 119구조 대원 : "게이트 문을 열면 차가 왔다 갔다 하는데 문이 닫혀있었어요. 닫혀있는 상태로 100 미터 기어서 들어갔거든요."

지정병원 응급 차량에 실려있던 조 씨는 119에 구급차량으로 옮겨졌습니다.

<인터뷰> 구원효(사망자 유족) : "사고가 29분에 났었으니까 여기서 50분 정도에 출발했으니까 20분 정도는 현장에서 어떤 조치도 없이 그냥 있었던거죠. 저희 매형이 어떻게 해서 떨어지셨는지 지금도 정확한 원인을 모릅니다."

업체측은 지정병원에 신고를 한다고 해서 꼭 지정병원으로 이송하는 건 아니라며 모든 안전조치를 다했다는 입장입니다.

<인터뷰> 신세계건설 관계자 : "저희가 그런거(산업재해) 가지고 은폐하고 그럴려고 그런건 없어요. 정확한 상황은 현장인데 직원이 그만둬 버려가지고.."

119에 신고하지 않고 지정된 병원에 자체적으로 이송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산업재해가 신고될 경우 경제적으로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인터뷰> 박혜영(노동건강연대 공인노무사) : "산재 하나 (처리)해주면 재계약 못한다고 회사에서. 그러면 회사의 존폐가 달려있는데 공상 처리 하고 말죠."

숨진 이 씨가 다녔던 업체는 지금도 LG생활건강에 납품을 하고 있습니다

LG생활건강은 해마다 협력사 현장 실사 평가를 하는데 전체 230점 가운데 10% 정도가 안전보건과 관련된 점수입니다.

<인터뷰> 정혜선(카톨릭대 보건대학원 교수) : "산재가 발생을 해도 그걸 은폐를 해서 (근로)감독을 면하고 그리고 또 감독을 안 받게 되면 작업환경을 개선한다든지 하는 그런 적극적인 일들을 수행하지 않게 되니까 계속 악순환의 고리가 발생하는 거죠."

현장 실사 평가를 했는데도 산업재해를 숨기는 줄 몰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LG생활건강은 정식 인터뷰 대신 서면 답변을 보냈습니다.

사고가 난 업체는 2000여 개 제조협력회사 중 하나이며 지난 사고와 관련해서는 어떠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도 한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지난 5년간 산업재해자수를 9만 8천여 명에서 9만 여 명으로 꾸준히 줄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정부 통계는 근로복지공단과 고용노동부로 접수돼 보험 처리가 인정된 산업재해만을 집계한 것입니다.

<인터뷰> 한정애(의원/국회 환경노동위) : "(환경노동위) 노동부는 지금 산재가 계속 준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산재가 준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이 정말 산재가 주는 것이냐, 그게 아니라 점점 더 많은 은폐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냐.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상황인거예요."

고용노동부는 산업재해를 은폐하다가 적발된 건수가 2013년 192건에서 지난해에는 726건으로 3.8배나 급증했다고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밝혔습니다.

이같은 산재 은폐를 막기위해 재해가 생기면 우선적으로 119 신고를 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아직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 상황.

사고 여파를 우려하기 보다는 근본적으로 사고를 막거나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하는 실효성있는 방안 추진이 절실합니다.

[연관 기사]

☞ [디·퍼/단독] ‘청주 지게차 사고’ 회사 은폐 자료 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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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재해 산업현장의 진실
    • 입력 2015-09-20 23:10:11
    • 수정2015-09-21 06:52:47
    취재파일K
<녹취> "어쩔 수 없이 죽은게 아니라..안 죽어도 될 사람을 죽인거다"

<녹취> "문이 닫혀있었어요. 닫혀있는 상태로 100 미터 기어서 들어갔거든요."

<녹취> "은폐를 해서 감독을 면하고 그리고 또 감독을 안받게 되면 작업환경을 개선한다든지/수행하지 않게 되니까 계속 악순환의 고리가 발생하는 거죠."

<오프닝>

청주의 한 사찰에서 지난 7월 숨진 30대 근로자의 49제가 열렸습니다.

바로 한 화장품제조업체의 부적절한 산업재해 대처때문에 숨진 이 모 씨의 넋을 기리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그동안 은폐된 산재가 더 있다는 유가족들의 주장은 단독 입수한 특별근로감독 조사 결과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대체 왜 이 업체는 그동안 산업재해를 숨겨왔던 것일까요?

<리포트>

다음 생에서는 좋은 곳에서 태어나길 바라는 의식.

이 씨가 세상을 떠난지 49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가족들은 왜 아들이, 동생이 허망하게 가야만 했는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인터뷰> 이 씨 유가족(음성변조) : "죽으라고 내팽겨쳐둔 사람이니까 절대 용서해줘선 안돼"

LG생활건강의 협력업체인 주식회사 에버코스에서 3년 넘게 물류 운반일을 했던 이 씨.

7월 29일 그 날도 이 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을 했습니다.

샴푸 공정 라인에서 일했던 이 씨는 그 날 따라 화장품 공정 라인에 투입됐습니다.

도로에 가득 쌓여있는 상품들.

한 사람이 순식간에 지게차에 치여 5미터나 끌려갑니다.

18분쯤 뒤 직원들이 담요를 들고나오더니 제대로 된 들것도 없이 다친 사람을 담요에 싸서 승합차에 실어 나릅니다.

지게차에 받친 뒤 실려나간 사람, 바로 이 씨였습니다.

사고 직후 신고를 받고 119 구급대가 출동했지만 한 직원이 단순 찰과상이라며 119 구급대를 돌려보낸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이 씨는 그 뒤 회사 승합차에서 지정병원 차량에 옮겨졌습니다.

회사 지정병원으로 갔지만 지정병원 의료진은 이씨의 상태가 위중하다며 더 큰 병원으로 이 씨를 또 이송했습니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1시간 가량이 소요됐다고 밝혔습니다.

이씨는 사고가 난 뒤 8시간 만에 숨을 거뒀습니다.

경찰 부검 결과 사인은 장기 손상에 의한 과다 출혈.

<인터뷰> 민경욱(사망자 유족) : "승합차에 태우고 간 것만 하더라도, 가까운 병원 놔두고 먼 병원으로 돌아간 것만 하더라도 최소한 업무상 과실치사다. 이건 그냥 죽을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죽은게 아니라 최소한 안 죽어도 될 사람을 죽인거다"

왜 출동한 119구급대를 돌려보냈을까?

또 가까운 병원을 놔두고 왜 회사 지정병원까지 가야만 했을까?

취재진이 입수한 이 회사의 비상사태 대비 대응 지침서입니다.

상황별로 어느 병원으로 후송하라고 자세히 정해져 있습니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만 119에 신고하고 다른 사고시에는 지정한 A나 B병원으로 데려가도록 명시해놓았습니다.

특히 비상사태를 대비한 훈련 시나리오에는 인명 사고가 났을 경우 즉시 가능한 차량을 수배해 사고자를 탑승시키라고 적혀있습니다.

119구급대를 부르지 않고 직원들이 자체적으로 부상자를 이송시키는 겁니다.

그 날도 이 씨는 도착한 119 구급차량 대신 회사 승합차로 후송됐습니다.

회사측에 언제 누가 지침서를 만들었는지 물었습니다.

<녹취> (주)에버코스 관계자 : "그 때 계셨던 분들은 아무도 없을건데요."

회사 관계자는 지침서대로 하는게 119를 부르는 것보다 낫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주)에버코스 관계자 : "KBS 혹시 일하시면서 업무 중에 다치실 일 없습니까? 다 119 불러서 가세요? 저희는 가까운데 병원이 있으면 큰 상처가 아니면요 그냥 바로 가는게 상식적이거든요."

숨진 이 씨가 당한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1월에도 이 씨는 작업 중에 다리를 지게차에 크게 다쳤습니다.

석 달 동안 회사를 쉬어야 할 정도의 부상이었지만 회사는 당시에도 119 구급대를 찾지 않았습니다.

대신 직원차량을 이용해 이 씨를 지정병원으로 후송했습니다.

이 업체에서 보름에 한 번 꼴로 작성하는 내부 안전 기록입니다.

한결같이 재해율을 0으로 표기해 놓았습니다.

이 업체는 회사가 무재해를 계산하기 시작한 2003년부터 이 씨가 숨지기 전까지 무재해 4000여 일을 달성했습니다.

덕분에 산재 보험료도 연간 천6백만 원에서 3천 2백만 원까지 매년 감액받았습니다.

무재해 기간 일을 하다 작업장에서 다친 직원은 이 씨가 유일한 것일까?

취재진이 단독 입수한 특별근로감독 결과입니다.

2012년 7월부터 올해 8월까지 3년 사이만도 신고하지 않은 산업재해가 무려 26건.

특별감독 직전에 이뤄진 수시감독에서 밝혀진 산재까지 더하면 3년 동안 모두 29건을 은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사고가 났을 때 119를 부르지 않고 사적 계약관계인 지정병원으로 이송하는 행동 자체가 산업재해를 숨기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최 민(직업환경의학 전문의) : "지정병원으로 보내는 것은 정말 산재 은폐를 하기 위해서하는 생각이 들고 실제로 어떻게 지정병원과 회사가 계약 혹은 짬짜미를 통해서 산재를 은폐해 왔는지가 속속 드러나고 있고요."

경찰은 119 구급대를 돌려보낸 상황을 집중 분석하면서, 업무상 과실치사 보다 훨씬 처벌이 강한 부작위 살인혐의 적용이 가능한지 검토하고 있습니다.

부산의 공사현장.

한 남자를 응급 차량에서 다시 빼내 119 구급차로 옮겨 싣고 있습니다.

이미 바닥은 부상자가 흘린 피로 흥건히 물들었고 한켠에는 안전모가 나뒹굴고 있습니다.

출동한 119 구급차량 블랙박스에 당시 상황이 고스라니 기록됐습니다.

지난 2월 7미터 높이에서 안전망 연결작업을 하던 조계택 씨가 추락한 뒤 벌어진 모습입니다.

사고 당시 119 신고를 한 사람은 현장에 있던 업체 직원이 아닌 지나가던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출동한 소방서의 동향보고에는 신고자가 현장을 지나가다 추락한 환자가 있는데도 현장관계자들이 신고를 하지 않고 다른 조치도 하지 않는 것 같아서 119로 신고를 했다고 적혀있습니다.

숨진 조 씨가 속한 중아건설의 원도급 업체인 신세계 건설측은 어찌된 일인지 지정병원에 신고를 했습니다.

현장에 도착한 지정 병원 응급차량은 부상 정도가 너무 심해서 자신들이 책임지기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습니다.

곧이어 119 응급차량이 도착했지만 119 구급대원들에게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당시 출동 119구조 대원 : "게이트 문을 열면 차가 왔다 갔다 하는데 문이 닫혀있었어요. 닫혀있는 상태로 100 미터 기어서 들어갔거든요."

지정병원 응급 차량에 실려있던 조 씨는 119에 구급차량으로 옮겨졌습니다.

<인터뷰> 구원효(사망자 유족) : "사고가 29분에 났었으니까 여기서 50분 정도에 출발했으니까 20분 정도는 현장에서 어떤 조치도 없이 그냥 있었던거죠. 저희 매형이 어떻게 해서 떨어지셨는지 지금도 정확한 원인을 모릅니다."

업체측은 지정병원에 신고를 한다고 해서 꼭 지정병원으로 이송하는 건 아니라며 모든 안전조치를 다했다는 입장입니다.

<인터뷰> 신세계건설 관계자 : "저희가 그런거(산업재해) 가지고 은폐하고 그럴려고 그런건 없어요. 정확한 상황은 현장인데 직원이 그만둬 버려가지고.."

119에 신고하지 않고 지정된 병원에 자체적으로 이송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산업재해가 신고될 경우 경제적으로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인터뷰> 박혜영(노동건강연대 공인노무사) : "산재 하나 (처리)해주면 재계약 못한다고 회사에서. 그러면 회사의 존폐가 달려있는데 공상 처리 하고 말죠."

숨진 이 씨가 다녔던 업체는 지금도 LG생활건강에 납품을 하고 있습니다

LG생활건강은 해마다 협력사 현장 실사 평가를 하는데 전체 230점 가운데 10% 정도가 안전보건과 관련된 점수입니다.

<인터뷰> 정혜선(카톨릭대 보건대학원 교수) : "산재가 발생을 해도 그걸 은폐를 해서 (근로)감독을 면하고 그리고 또 감독을 안 받게 되면 작업환경을 개선한다든지 하는 그런 적극적인 일들을 수행하지 않게 되니까 계속 악순환의 고리가 발생하는 거죠."

현장 실사 평가를 했는데도 산업재해를 숨기는 줄 몰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LG생활건강은 정식 인터뷰 대신 서면 답변을 보냈습니다.

사고가 난 업체는 2000여 개 제조협력회사 중 하나이며 지난 사고와 관련해서는 어떠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도 한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지난 5년간 산업재해자수를 9만 8천여 명에서 9만 여 명으로 꾸준히 줄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정부 통계는 근로복지공단과 고용노동부로 접수돼 보험 처리가 인정된 산업재해만을 집계한 것입니다.

<인터뷰> 한정애(의원/국회 환경노동위) : "(환경노동위) 노동부는 지금 산재가 계속 준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산재가 준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이 정말 산재가 주는 것이냐, 그게 아니라 점점 더 많은 은폐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냐.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상황인거예요."

고용노동부는 산업재해를 은폐하다가 적발된 건수가 2013년 192건에서 지난해에는 726건으로 3.8배나 급증했다고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밝혔습니다.

이같은 산재 은폐를 막기위해 재해가 생기면 우선적으로 119 신고를 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아직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 상황.

사고 여파를 우려하기 보다는 근본적으로 사고를 막거나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하는 실효성있는 방안 추진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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