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 불상이 대접받는 이유는?
입력 2015.10.03 (00:23)
수정 2015.10.2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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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우리 역사, 예술, 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종교입니다. 중세 유럽의 역사와 예술, 문화를 기독교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고대 유물의 상당수가 불교 미술품입니다. 사찰 건물부터 불상, 탑, 승탑(부도), 석등, 불화까지 불교 문화재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중요한 불교 유물 전시회가 열리면 종교를 떠나 꼭 가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5년 전으로 기억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살아생전 다시 보기 힘든 고려 시대 불화를 모아 대규모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이 전시에 나온 불화가 60여 점이었습니다. 그런데 국내에 남아 있는 고려 불화가 몇 점인지 아십니까? 고작 10여 점입니다. 그럼 그 많은 불화는 대체 어디로 갔느냐고요? 일본입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일본에 남아 있는 고려 불화가 자그마치 130여 점이랍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전시회를 하려면 유물이 있어야죠. 그래서 우리 것을 빌리러 외국으로 갔습니다. 힘들게 발품 팔아 60여 점을 모았습니다. 빌리러 다니는 데만 꼬박 2년 걸렸답니다. 그러니 이 전시를 어찌 안 볼 수 있었을까요.
[관련 기사] ☞ [뉴스9] 700년 만에 만나는 고려 불교미술의 꽃
그 뒤로 어느덧 5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광복 70주년이 되는 올해 국립중앙박물관이 또 한 번 기념할 만한 대형 전시를 선보였습니다. 간다라부터 서라벌까지 불교의 전파 경로를 따라 인도, 중국, 한국, 일본의 대표적인 불상들을 한자리에 모은 <고대불교조각대전>입니다. 영국박물관 등 해외 유수의 박물관에서 대여해온 희귀 불상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특기할 만하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건 나란히 국보로 지정돼 있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두 점입니다.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우리에겐 너무나도 친숙한 유물이죠. 더군다나 두 점 모두 유리 상자를 씌우지 않은 채로 전시되기 때문에, 실물 그대로를 맨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다시없는 좋은 기회입니다. 전시장에 가면 반가사유상만 따로 모아 놓은 공간에서 이 귀중한 유물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반가사유상의 뜻은 이렇습니다. 먼저 반가(半跏)란 반가부좌 자세를 말합니다. 의자에 앉아서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무릎 위에 얹은 자세입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면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릎 위에 얹어 놓았습니다. 이 자세로 깊은 사색에 잠긴 모습이라 해서 사유(思惟)라 이름 붙였습니다. 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초기까지 성행한 불상의 한 양식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국보 두 점이 대표작이지요.
국보
▲ (좌) 국보 78호 (우) 국보 83호
그런데 사실 이번 전시의 백미는 따로 있습니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박물관 관계자들이 가장 공들여 모셔온 불상은 바로 ‘봉화 북지리 석조반가상’입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불상의 상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허리 아랫부분만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도 보물 997호로 지정돼 귀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반가사유상이 집중적으로 제작된 시기에 우리 불교 조각 기술이 얼마나 우수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유물이기 때문입니다. 천만다행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왼손의 섬세한 표현을 한 번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적인 옷 주름과 방울 장식 표현은 또 어떤가요?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게다가 하반신만 남아 있는 데도 무게가 무려 2.6톤입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유물 가운데 가장 무겁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당시 석조불상으로는 동양 최대 규모로 평가됩니다. 지금으로부터 1400년 전에 이런 거대한 돌을 쪼개고 깎고 다듬었던 석공들의 기술이 얼마나 대단했을지 상상이 안 갑니다.
봉화 북지리 석조반가상
▲ 봉화 북지리 석조반가상 발견 당시 모습
위 사진은 발굴 당시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이 불상은 1965년 11월 당시 봉화 물야면 북지리에 남아 있던 마애여래좌상의 하반부를 발굴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66년 1월 8일에 가까운 경북대학교로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실 일부러 경북대 박물관을 찾아가지 않는다면 이 귀중한 유물을 볼 일이 없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이 이 불상을 전시에 내놓으려 했던 것도 그 존재조차 모르는 많은 사람에게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거대한 불상을 어떻게 안전하게 옮길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발굴된 지 50년 만에 첫 서울 나들이에 나선 불상을 어떻게 하면 대구에서 서울까지 안전하게 모셔올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고 합니다. 돌이 워낙 오래돼 바스러질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일단 이불로 옷을 꽁꽁 입힌 다음 견인줄을 감아 화물차로 대구에서 서울까지 조심조심 운송했습니다. 박물관에 도착한 뒤엔 지게차로 들어 올려서 국립중앙박물관 석조물 센터 안으로 다시 옮겼습니다. 최근에 만들어진 석조물 센터는 석조 유물을 위한 최고급 호텔(?)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기왕 서울 온 김에 목욕도 해드리기로 했습니다. 이온수를 끓여서 증기로 분사하는 방식으로 1400년 묵은 때를 조심스럽게 벗겨냈습니다. 그다음은 기념촬영 순서입니다. 3차원 스캐너로 불상을 구석구석 촬영해 전후좌우 위아래 모든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 디지털 이미지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반가상 비교
▲ 반가상 비교
자, 이렇게 해서 목욕과 사진촬영이 끝나고 이제 전시장으로 갈 시간이 됐습니다. 전시 개막을 1주일 앞두고 전시장에 불상을 설치하는 작업이 진행됐는데, 이날 아침 8시 반에 시작된 운송 설치 작업이 오후 3시에야 끝났습니다. 같은 박물관 안에서 불과 몇백 미터 거리를 옮기는 데만도 5시간이 넘게 걸린 겁니다. 우린 그저 전시장에 설치된 불상을 편안하게 감상하면 그만이지만, 불상 하나를 관람객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박물관 관계자들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는지는 잘 모르죠. 그들의 땀과 열정이 있었기에 반쪽만 남아서도 찬란한 빛을 발하는 희대의 불상을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저희 KBS가 그 험난했던 과정을 두 달에 걸쳐 영상으로 낱낱이 기록했습니다. 이 뉴스를 보신 뒤에 전시장에서 불상을 마주한다면 그 감동은 몇 배가 될 겁니다. 위 사진을 보세요.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참 많이 닮지 않았나요? 이 귀한 불상 앞에 가만히 서서 어딘가에 잠든 채로 누군가 찾아주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상반신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봅니다. 비록 반쪽만 남아 있지만, 아니 반쪽만 남아 있기에 봉화 북지리 석조반가상은 그 빈자리만큼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이 희대의 불상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래서 더 설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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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정보
제목: 고대불교조각대전
기간: 2015년 11월 15일까지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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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국보 78호 (우) 국보 83호
그런데 사실 이번 전시의 백미는 따로 있습니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박물관 관계자들이 가장 공들여 모셔온 불상은 바로 ‘봉화 북지리 석조반가상’입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불상의 상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허리 아랫부분만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도 보물 997호로 지정돼 귀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반가사유상이 집중적으로 제작된 시기에 우리 불교 조각 기술이 얼마나 우수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유물이기 때문입니다. 천만다행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왼손의 섬세한 표현을 한 번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적인 옷 주름과 방울 장식 표현은 또 어떤가요?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게다가 하반신만 남아 있는 데도 무게가 무려 2.6톤입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유물 가운데 가장 무겁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당시 석조불상으로는 동양 최대 규모로 평가됩니다. 지금으로부터 1400년 전에 이런 거대한 돌을 쪼개고 깎고 다듬었던 석공들의 기술이 얼마나 대단했을지 상상이 안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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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 북지리 석조반가상 발견 당시 모습
위 사진은 발굴 당시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이 불상은 1965년 11월 당시 봉화 물야면 북지리에 남아 있던 마애여래좌상의 하반부를 발굴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66년 1월 8일에 가까운 경북대학교로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실 일부러 경북대 박물관을 찾아가지 않는다면 이 귀중한 유물을 볼 일이 없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이 이 불상을 전시에 내놓으려 했던 것도 그 존재조차 모르는 많은 사람에게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거대한 불상을 어떻게 안전하게 옮길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발굴된 지 50년 만에 첫 서울 나들이에 나선 불상을 어떻게 하면 대구에서 서울까지 안전하게 모셔올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고 합니다. 돌이 워낙 오래돼 바스러질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일단 이불로 옷을 꽁꽁 입힌 다음 견인줄을 감아 화물차로 대구에서 서울까지 조심조심 운송했습니다. 박물관에 도착한 뒤엔 지게차로 들어 올려서 국립중앙박물관 석조물 센터 안으로 다시 옮겼습니다. 최근에 만들어진 석조물 센터는 석조 유물을 위한 최고급 호텔(?)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기왕 서울 온 김에 목욕도 해드리기로 했습니다. 이온수를 끓여서 증기로 분사하는 방식으로 1400년 묵은 때를 조심스럽게 벗겨냈습니다. 그다음은 기념촬영 순서입니다. 3차원 스캐너로 불상을 구석구석 촬영해 전후좌우 위아래 모든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 디지털 이미지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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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가상 비교
자, 이렇게 해서 목욕과 사진촬영이 끝나고 이제 전시장으로 갈 시간이 됐습니다. 전시 개막을 1주일 앞두고 전시장에 불상을 설치하는 작업이 진행됐는데, 이날 아침 8시 반에 시작된 운송 설치 작업이 오후 3시에야 끝났습니다. 같은 박물관 안에서 불과 몇백 미터 거리를 옮기는 데만도 5시간이 넘게 걸린 겁니다. 우린 그저 전시장에 설치된 불상을 편안하게 감상하면 그만이지만, 불상 하나를 관람객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박물관 관계자들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는지는 잘 모르죠. 그들의 땀과 열정이 있었기에 반쪽만 남아서도 찬란한 빛을 발하는 희대의 불상을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저희 KBS가 그 험난했던 과정을 두 달에 걸쳐 영상으로 낱낱이 기록했습니다. 이 뉴스를 보신 뒤에 전시장에서 불상을 마주한다면 그 감동은 몇 배가 될 겁니다. 위 사진을 보세요.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참 많이 닮지 않았나요? 이 귀한 불상 앞에 가만히 서서 어딘가에 잠든 채로 누군가 찾아주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상반신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봅니다. 비록 반쪽만 남아 있지만, 아니 반쪽만 남아 있기에 봉화 북지리 석조반가상은 그 빈자리만큼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이 희대의 불상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래서 더 설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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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5-10-03 00:23:20
- 수정2015-10-27 14:25:15
불교는 우리 역사, 예술, 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종교입니다. 중세 유럽의 역사와 예술, 문화를 기독교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고대 유물의 상당수가 불교 미술품입니다. 사찰 건물부터 불상, 탑, 승탑(부도), 석등, 불화까지 불교 문화재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중요한 불교 유물 전시회가 열리면 종교를 떠나 꼭 가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5년 전으로 기억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살아생전 다시 보기 힘든 고려 시대 불화를 모아 대규모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이 전시에 나온 불화가 60여 점이었습니다. 그런데 국내에 남아 있는 고려 불화가 몇 점인지 아십니까? 고작 10여 점입니다. 그럼 그 많은 불화는 대체 어디로 갔느냐고요? 일본입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일본에 남아 있는 고려 불화가 자그마치 130여 점이랍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전시회를 하려면 유물이 있어야죠. 그래서 우리 것을 빌리러 외국으로 갔습니다. 힘들게 발품 팔아 60여 점을 모았습니다. 빌리러 다니는 데만 꼬박 2년 걸렸답니다. 그러니 이 전시를 어찌 안 볼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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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어느덧 5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광복 70주년이 되는 올해 국립중앙박물관이 또 한 번 기념할 만한 대형 전시를 선보였습니다. 간다라부터 서라벌까지 불교의 전파 경로를 따라 인도, 중국, 한국, 일본의 대표적인 불상들을 한자리에 모은 <고대불교조각대전>입니다. 영국박물관 등 해외 유수의 박물관에서 대여해온 희귀 불상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특기할 만하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건 나란히 국보로 지정돼 있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두 점입니다.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우리에겐 너무나도 친숙한 유물이죠. 더군다나 두 점 모두 유리 상자를 씌우지 않은 채로 전시되기 때문에, 실물 그대로를 맨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다시없는 좋은 기회입니다. 전시장에 가면 반가사유상만 따로 모아 놓은 공간에서 이 귀중한 유물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반가사유상의 뜻은 이렇습니다. 먼저 반가(半跏)란 반가부좌 자세를 말합니다. 의자에 앉아서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무릎 위에 얹은 자세입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면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릎 위에 얹어 놓았습니다. 이 자세로 깊은 사색에 잠긴 모습이라 해서 사유(思惟)라 이름 붙였습니다. 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초기까지 성행한 불상의 한 양식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국보 두 점이 대표작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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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국보 78호 (우) 국보 83호
그런데 사실 이번 전시의 백미는 따로 있습니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박물관 관계자들이 가장 공들여 모셔온 불상은 바로 ‘봉화 북지리 석조반가상’입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불상의 상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허리 아랫부분만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도 보물 997호로 지정돼 귀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반가사유상이 집중적으로 제작된 시기에 우리 불교 조각 기술이 얼마나 우수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유물이기 때문입니다. 천만다행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왼손의 섬세한 표현을 한 번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적인 옷 주름과 방울 장식 표현은 또 어떤가요?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게다가 하반신만 남아 있는 데도 무게가 무려 2.6톤입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유물 가운데 가장 무겁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당시 석조불상으로는 동양 최대 규모로 평가됩니다. 지금으로부터 1400년 전에 이런 거대한 돌을 쪼개고 깎고 다듬었던 석공들의 기술이 얼마나 대단했을지 상상이 안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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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 북지리 석조반가상 발견 당시 모습
위 사진은 발굴 당시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이 불상은 1965년 11월 당시 봉화 물야면 북지리에 남아 있던 마애여래좌상의 하반부를 발굴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66년 1월 8일에 가까운 경북대학교로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실 일부러 경북대 박물관을 찾아가지 않는다면 이 귀중한 유물을 볼 일이 없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이 이 불상을 전시에 내놓으려 했던 것도 그 존재조차 모르는 많은 사람에게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거대한 불상을 어떻게 안전하게 옮길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발굴된 지 50년 만에 첫 서울 나들이에 나선 불상을 어떻게 하면 대구에서 서울까지 안전하게 모셔올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고 합니다. 돌이 워낙 오래돼 바스러질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일단 이불로 옷을 꽁꽁 입힌 다음 견인줄을 감아 화물차로 대구에서 서울까지 조심조심 운송했습니다. 박물관에 도착한 뒤엔 지게차로 들어 올려서 국립중앙박물관 석조물 센터 안으로 다시 옮겼습니다. 최근에 만들어진 석조물 센터는 석조 유물을 위한 최고급 호텔(?)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기왕 서울 온 김에 목욕도 해드리기로 했습니다. 이온수를 끓여서 증기로 분사하는 방식으로 1400년 묵은 때를 조심스럽게 벗겨냈습니다. 그다음은 기념촬영 순서입니다. 3차원 스캐너로 불상을 구석구석 촬영해 전후좌우 위아래 모든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 디지털 이미지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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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가상 비교
자, 이렇게 해서 목욕과 사진촬영이 끝나고 이제 전시장으로 갈 시간이 됐습니다. 전시 개막을 1주일 앞두고 전시장에 불상을 설치하는 작업이 진행됐는데, 이날 아침 8시 반에 시작된 운송 설치 작업이 오후 3시에야 끝났습니다. 같은 박물관 안에서 불과 몇백 미터 거리를 옮기는 데만도 5시간이 넘게 걸린 겁니다. 우린 그저 전시장에 설치된 불상을 편안하게 감상하면 그만이지만, 불상 하나를 관람객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박물관 관계자들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는지는 잘 모르죠. 그들의 땀과 열정이 있었기에 반쪽만 남아서도 찬란한 빛을 발하는 희대의 불상을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저희 KBS가 그 험난했던 과정을 두 달에 걸쳐 영상으로 낱낱이 기록했습니다. 이 뉴스를 보신 뒤에 전시장에서 불상을 마주한다면 그 감동은 몇 배가 될 겁니다. 위 사진을 보세요.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참 많이 닮지 않았나요? 이 귀한 불상 앞에 가만히 서서 어딘가에 잠든 채로 누군가 찾아주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상반신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봅니다. 비록 반쪽만 남아 있지만, 아니 반쪽만 남아 있기에 봉화 북지리 석조반가상은 그 빈자리만큼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이 희대의 불상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래서 더 설렙니다.
[연관 기사]
☞ [뉴스9] 희귀 반쪽 대형 석불, 50년 만에 ‘서울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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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정보
제목: 고대불교조각대전
기간: 2015년 11월 15일까지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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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어느덧 5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광복 70주년이 되는 올해 국립중앙박물관이 또 한 번 기념할 만한 대형 전시를 선보였습니다. 간다라부터 서라벌까지 불교의 전파 경로를 따라 인도, 중국, 한국, 일본의 대표적인 불상들을 한자리에 모은 <고대불교조각대전>입니다. 영국박물관 등 해외 유수의 박물관에서 대여해온 희귀 불상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특기할 만하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건 나란히 국보로 지정돼 있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두 점입니다.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우리에겐 너무나도 친숙한 유물이죠. 더군다나 두 점 모두 유리 상자를 씌우지 않은 채로 전시되기 때문에, 실물 그대로를 맨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다시없는 좋은 기회입니다. 전시장에 가면 반가사유상만 따로 모아 놓은 공간에서 이 귀중한 유물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반가사유상의 뜻은 이렇습니다. 먼저 반가(半跏)란 반가부좌 자세를 말합니다. 의자에 앉아서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무릎 위에 얹은 자세입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면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릎 위에 얹어 놓았습니다. 이 자세로 깊은 사색에 잠긴 모습이라 해서 사유(思惟)라 이름 붙였습니다. 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초기까지 성행한 불상의 한 양식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국보 두 점이 대표작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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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국보 78호 (우) 국보 83호
그런데 사실 이번 전시의 백미는 따로 있습니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박물관 관계자들이 가장 공들여 모셔온 불상은 바로 ‘봉화 북지리 석조반가상’입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불상의 상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허리 아랫부분만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도 보물 997호로 지정돼 귀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반가사유상이 집중적으로 제작된 시기에 우리 불교 조각 기술이 얼마나 우수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유물이기 때문입니다. 천만다행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왼손의 섬세한 표현을 한 번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적인 옷 주름과 방울 장식 표현은 또 어떤가요?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게다가 하반신만 남아 있는 데도 무게가 무려 2.6톤입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유물 가운데 가장 무겁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당시 석조불상으로는 동양 최대 규모로 평가됩니다. 지금으로부터 1400년 전에 이런 거대한 돌을 쪼개고 깎고 다듬었던 석공들의 기술이 얼마나 대단했을지 상상이 안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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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 북지리 석조반가상 발견 당시 모습
위 사진은 발굴 당시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이 불상은 1965년 11월 당시 봉화 물야면 북지리에 남아 있던 마애여래좌상의 하반부를 발굴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66년 1월 8일에 가까운 경북대학교로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실 일부러 경북대 박물관을 찾아가지 않는다면 이 귀중한 유물을 볼 일이 없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이 이 불상을 전시에 내놓으려 했던 것도 그 존재조차 모르는 많은 사람에게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거대한 불상을 어떻게 안전하게 옮길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발굴된 지 50년 만에 첫 서울 나들이에 나선 불상을 어떻게 하면 대구에서 서울까지 안전하게 모셔올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고 합니다. 돌이 워낙 오래돼 바스러질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일단 이불로 옷을 꽁꽁 입힌 다음 견인줄을 감아 화물차로 대구에서 서울까지 조심조심 운송했습니다. 박물관에 도착한 뒤엔 지게차로 들어 올려서 국립중앙박물관 석조물 센터 안으로 다시 옮겼습니다. 최근에 만들어진 석조물 센터는 석조 유물을 위한 최고급 호텔(?)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기왕 서울 온 김에 목욕도 해드리기로 했습니다. 이온수를 끓여서 증기로 분사하는 방식으로 1400년 묵은 때를 조심스럽게 벗겨냈습니다. 그다음은 기념촬영 순서입니다. 3차원 스캐너로 불상을 구석구석 촬영해 전후좌우 위아래 모든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 디지털 이미지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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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가상 비교
자, 이렇게 해서 목욕과 사진촬영이 끝나고 이제 전시장으로 갈 시간이 됐습니다. 전시 개막을 1주일 앞두고 전시장에 불상을 설치하는 작업이 진행됐는데, 이날 아침 8시 반에 시작된 운송 설치 작업이 오후 3시에야 끝났습니다. 같은 박물관 안에서 불과 몇백 미터 거리를 옮기는 데만도 5시간이 넘게 걸린 겁니다. 우린 그저 전시장에 설치된 불상을 편안하게 감상하면 그만이지만, 불상 하나를 관람객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박물관 관계자들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는지는 잘 모르죠. 그들의 땀과 열정이 있었기에 반쪽만 남아서도 찬란한 빛을 발하는 희대의 불상을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저희 KBS가 그 험난했던 과정을 두 달에 걸쳐 영상으로 낱낱이 기록했습니다. 이 뉴스를 보신 뒤에 전시장에서 불상을 마주한다면 그 감동은 몇 배가 될 겁니다. 위 사진을 보세요.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참 많이 닮지 않았나요? 이 귀한 불상 앞에 가만히 서서 어딘가에 잠든 채로 누군가 찾아주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상반신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봅니다. 비록 반쪽만 남아 있지만, 아니 반쪽만 남아 있기에 봉화 북지리 석조반가상은 그 빈자리만큼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이 희대의 불상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래서 더 설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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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정보
제목: 고대불교조각대전
기간: 2015년 11월 15일까지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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