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 ‘미인도’ 보려고 구름같이 몰려든 곳은…

입력 2015.10.31 (00:01) 수정 2015.10.31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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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 방송된 〈바람의 화원〉이란 드라마 기억하시는지요? 소설가 이정명이 쓴 같은 제목의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20부작 드라마로 방송 당시 장안의 화제가 됐죠. 조선 최고의 화가 중 한 명인 혜원 신윤복을 여자로 설정한 덕분(?)에 참 말도 많았던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이야기를 해드리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저 유명한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고 사람들이 도대체 저 그림 어디 가면 볼 수 있나 궁금해했고,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 그림이 소장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술관에 관람객이 폭주하기 시작한 겁니다. 간송미술관에 가보신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미술관이 문을 열기도 전에 몇백 미터씩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그 엄청난 인파 말입니다. 그전까지는 사람들이 잘 몰랐던 간송미술관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었던 겁니다.
방송이 회를 거듭하면서 간송미술관의 보물들을 직접 두 눈으로 봐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따가운 햇볕 아래서 길게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려야 하는데도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교과서에서나 봤던 신윤복의 ‘미인도’를, 희대의 명작들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던 겁니다. 이렇게 해서 한 편의 드라마가 조용했던 미술관을 전시회 때마다 시끌벅적하게 만들었고, 이 귀중한 보물들을 지켜내고 미술관을 설립해 민족의 자산으로 만든 위대한 선각자 간송 전형필(1906~1962) 선생의 이름도 비로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연관 기사]
☞ 간송의 진경을 만나다…관람객 연일 ‘북적’(KBS 뉴스9 2012년 5월 24일)

☞ KBS 한국의 유산 – 간송 전형필 (2013년)


하지만 이 뜻하지 않은 열풍은 다른 한 편으론 대단히 불편할 수밖에 없는 간송미술관의 전시 관람 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전시회 때마다 몇 시간씩 긴 줄을 서야 하고, 막상 들어가 보면 전시 공간이나 시설은 좁고 불편하거든요. 사람들은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과거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유물들은 좀처럼 외부로 반출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간송미술관이 봄과 가을에 한 차례씩 1년에 두 번 정기적으로 여는 전시회 때만 소장 유물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지나치게 폐쇄적이란 지적이 나왔지요. 요는 더 많은 사람이 더 좋은 공간에서 간송미술관의 귀중한 유물들을 볼 수 있게 하자는 거였습니다.
이런 논의들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변화의 물꼬를 틔웠습니다. 서울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새로 지은 복합 문화 공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개관에 맞춰 간송미술관의 보물들을 이곳에 모셔와 전시하자는 계획이 성사된 겁니다. 미술계에서 근래 보기 드문 일대 사건이었지요. 그렇게 해서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빛나는 유물들이 마침내 바깥세상으로 나들이를 하게 된 겁니다. 2014년 3월, 드디어 ‘간송문화전’이란 이름으로 첫 외부 전시회가 역사적인 개막을 알렸습니다. 국보와 보물이 수두룩한 간송미술관 수장고의 문이 활짝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입장료를 내야 하는 유료 전시회였지만 관람객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간송문화전은 지금까지 주제와 유물을 바꿔 모두 네 차례 성황리에 이어졌습니다.

[연관 기사]
☞ ‘국보 창고’ 간송 미술관 진품 첫 대규모 외부 전시(KBS 뉴스9 2014년 3월 18일)


단원 김홍도의 황묘농접단원 김홍도의 황묘농접

▲ 단원 김홍도 ‘황묘농접’


그리고 이제 새롭게 선보이는 다섯 번째 간송문화전의 주제는 화훼영모(花卉翎毛)입니다. ‘화훼영모’란 꽃, 풀, 날짐승, 길짐승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식물과 동물을 그린 그림입니다. 보통 우리 옛 그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풍경을 그린 산수화잖아요. 물론 인물화도 있고 풍속화도 있고 기록화도 있고 내용과 주제와 기법에 따라 다양한 옛 그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왠지 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죠. 아무런 지식 없이도 딱 보면 정말 좋아지는 그림이라고 하면 뭐니 뭐니 해도 동식물 그림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 조상들이 그린 꽃과 나비, 개와 고양이, 까치와 기러기 등등이 모두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바로 그 식물과 그 동물들의 모습이니까요. 그래서 이런 그림들은 남녀노소 누구나 쉽고 편안하고 즐겁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냥 보기만 해도 우리 옛 그림은 참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림이라는 게 대상이 그저 예뻐서, 좋아서 그린 것만은 또 아닙니다. 그림의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하찮게 보이는 동식물에도 깊은 뜻이 담겨 있거든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단원 김홍도의 그림 ‘황묘농접’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언제 봐도 참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림입니다. 나비 하며 고양이 하며 저 생동감 있는 모습에 색깔은 또 어찌나 고운지요. 그런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 깊은 애정이 생깁니다. 예로부터 고양이는 일흔 노인, 나비는 여든 노인을 상징했다고 해요. 게다가 변하지 않는 바위, ‘청춘’을 뜻하는 패랭이꽃까지 그림 속의 모든 소재가 오래 사는 일, 즉 ‘장수’와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누군가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오래 사시라는 기원을 담은 그림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이광사·이영익의 잉어이광사·이영익의 잉어

▲ 이광사·이영익 ‘잉어’

단원 김홍도의 해탐노화단원 김홍도의 해탐노화

▲ 단원 김홍도 ‘해탐노화’


여기 잉어 한 마리가 있습니다. 잉어 그림은 예로부터 ‘과거 급제’나 ‘승차’(陞差, 승진)를 기원하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종종 만나는 표현 중에 ‘등용문’(登龍門)이란 말이 있지요. 잉어가 높이 튀어 올라 용문(龍門)에 들어간다는 옛 고사에서 유래된 말로 ‘입신출세’를 의미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수능 시험 잘 보라, 승진하시라고 기원하는 그림입니다. 같은 염원을 담은 그림이 또 한 점 있습니다. 단원 김홍도가 그린 게 그림인데요. 게가 갈대꽃을 붙잡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게가 갈대꽃을 잡고 있는 그림도 과거 급제를 기원하는 의미로 그려진 거라고 합니다. 게가 두 마리면 소과, 대과 두 번 다 합격하란 뜻이랍니다. 역시 지금 시대에 맞춰 보자면 수능 만점(?) 받으라는 기원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옛 그림에 담긴 이런 의미와 내용을 알고 보면 그림 보는 재미가 더 쏠쏠해집니다. 아래 그림은 단원 김홍도의 스승으로 널리 알려진 표암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의 연꽃 그림입니다. 연꽃이라는 게 진흙에 뿌리를 박고 꽃을 피워 올리는 식물인데도 진흙의 더러움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을 만큼 꽃이 아름답고 곱습니다. 그래서 꼿꼿한 자세를 잃지 않는 군자의 모습을 닮았다고 풀이합니다. 그다음은 조선 중기 화가 창강 조속(趙涑, 1595~1668)의 까치 그림입니다. 지금은 하도 농사에 이런저런 해를 끼쳐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지만, 본래 까치는 예로부터 기쁜 소식을 알려주는 전령사였습니다. “까치 까치 설날은~” 하는 동요 가사가 있을 정도니까요. 긴 겨울의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고 봄날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좋은 의미가 그림에 담겼습니다. 매화 가지에 앉은 까치의 야무지고 당당한 모습을 절묘하게 묘사한 걸작입니다.

표암 강세황의 향원익청표암 강세황의 향원익청

▲ 표암 강세황 ‘향원익청’

창강 조속의 고매서작창강 조속의 고매서작

▲ 창강 조속 ‘고매서작’


전시회에 직접 가보시면 여기 소개한 그림들뿐 아니라 두 마리 양을 그린 고려 공민왕(恭愍王, 1330~1374)의 ‘이양도’(二羊圖)부터 국운이 쇠락과 함께 그림마저 전통의 멋을 잃고 만 1900년대 초반 그림까지 장장 550여 년에 걸친 동식물 그림 90여 점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여류 문인 신사임당(申氏, 1504~1551)의 것으로 전하는 단아한 꽃 그림, 신사임당을 능가하는 조선 중기 포도 그림의 대가 황집중(黃執中, 1533~1593 이후)의 포도,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의 개구리와 두꺼비, 조선 후기 남종문인화의 대가 현재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의 다채로운 화훼영모도, 닭과 고양이를 하도 잘 그려서 별명이 변닭, 변고양이였던 화재 변상벽(卞相璧, 1730~1775)의 닭과 고양이까지 한 자리에 모으기도 힘든 최고의 동식물 그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다섯 번의 간송문화전을 열면서 매번 똑같았던 전시 방식을 다음 전시 때부터는 확 바꿀 예정이라 합니다. 지금까지는 귀중한 문화재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그 문화재들을 어떤 이야기로 엮어서 어떻게 다르게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하겠다는 뜻입니다. 진열장 안에 죽 펼쳐놓고 잘 감상하시오, 하는 전시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전통과 현대가 서로 호흡할 수 있는 새로운 전시 방식을 선보이게 되겠지요. 어쨌든 간송문화전도 또 한 번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우리 옛 동식물 그림과 함께 낙엽이 짙게 물들어가는 가을 정취에 젖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변상벽의 자웅장추변상벽의 자웅장추

▲ 변상벽 ‘자웅장추’


[연관 기사]
☞ 조상의 지혜와 멋이 담긴 옛 동식물 그림 향연(KBS 뉴스광장 2015년 10월 23일)



※ 전시 정보
제목: 간송문화전 5부 ‘화훼영모 – 자연을 품다’
기간: 2016년 3월 27일까지
장소: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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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윤복 ‘미인도’ 보려고 구름같이 몰려든 곳은…
    • 입력 2015-10-31 00:01:20
    • 수정2015-10-31 08:47:00
    컬처 스토리
2008년에 방송된 〈바람의 화원〉이란 드라마 기억하시는지요? 소설가 이정명이 쓴 같은 제목의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20부작 드라마로 방송 당시 장안의 화제가 됐죠. 조선 최고의 화가 중 한 명인 혜원 신윤복을 여자로 설정한 덕분(?)에 참 말도 많았던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이야기를 해드리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저 유명한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고 사람들이 도대체 저 그림 어디 가면 볼 수 있나 궁금해했고,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 그림이 소장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술관에 관람객이 폭주하기 시작한 겁니다. 간송미술관에 가보신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미술관이 문을 열기도 전에 몇백 미터씩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그 엄청난 인파 말입니다. 그전까지는 사람들이 잘 몰랐던 간송미술관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었던 겁니다.
방송이 회를 거듭하면서 간송미술관의 보물들을 직접 두 눈으로 봐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따가운 햇볕 아래서 길게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려야 하는데도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교과서에서나 봤던 신윤복의 ‘미인도’를, 희대의 명작들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던 겁니다. 이렇게 해서 한 편의 드라마가 조용했던 미술관을 전시회 때마다 시끌벅적하게 만들었고, 이 귀중한 보물들을 지켜내고 미술관을 설립해 민족의 자산으로 만든 위대한 선각자 간송 전형필(1906~1962) 선생의 이름도 비로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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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한국의 유산 – 간송 전형필 (2013년)


하지만 이 뜻하지 않은 열풍은 다른 한 편으론 대단히 불편할 수밖에 없는 간송미술관의 전시 관람 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전시회 때마다 몇 시간씩 긴 줄을 서야 하고, 막상 들어가 보면 전시 공간이나 시설은 좁고 불편하거든요. 사람들은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과거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유물들은 좀처럼 외부로 반출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간송미술관이 봄과 가을에 한 차례씩 1년에 두 번 정기적으로 여는 전시회 때만 소장 유물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지나치게 폐쇄적이란 지적이 나왔지요. 요는 더 많은 사람이 더 좋은 공간에서 간송미술관의 귀중한 유물들을 볼 수 있게 하자는 거였습니다.
이런 논의들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변화의 물꼬를 틔웠습니다. 서울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새로 지은 복합 문화 공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개관에 맞춰 간송미술관의 보물들을 이곳에 모셔와 전시하자는 계획이 성사된 겁니다. 미술계에서 근래 보기 드문 일대 사건이었지요. 그렇게 해서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빛나는 유물들이 마침내 바깥세상으로 나들이를 하게 된 겁니다. 2014년 3월, 드디어 ‘간송문화전’이란 이름으로 첫 외부 전시회가 역사적인 개막을 알렸습니다. 국보와 보물이 수두룩한 간송미술관 수장고의 문이 활짝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입장료를 내야 하는 유료 전시회였지만 관람객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간송문화전은 지금까지 주제와 유물을 바꿔 모두 네 차례 성황리에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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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의 황묘농접
▲ 단원 김홍도 ‘황묘농접’


그리고 이제 새롭게 선보이는 다섯 번째 간송문화전의 주제는 화훼영모(花卉翎毛)입니다. ‘화훼영모’란 꽃, 풀, 날짐승, 길짐승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식물과 동물을 그린 그림입니다. 보통 우리 옛 그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풍경을 그린 산수화잖아요. 물론 인물화도 있고 풍속화도 있고 기록화도 있고 내용과 주제와 기법에 따라 다양한 옛 그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왠지 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죠. 아무런 지식 없이도 딱 보면 정말 좋아지는 그림이라고 하면 뭐니 뭐니 해도 동식물 그림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 조상들이 그린 꽃과 나비, 개와 고양이, 까치와 기러기 등등이 모두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바로 그 식물과 그 동물들의 모습이니까요. 그래서 이런 그림들은 남녀노소 누구나 쉽고 편안하고 즐겁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냥 보기만 해도 우리 옛 그림은 참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림이라는 게 대상이 그저 예뻐서, 좋아서 그린 것만은 또 아닙니다. 그림의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하찮게 보이는 동식물에도 깊은 뜻이 담겨 있거든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단원 김홍도의 그림 ‘황묘농접’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언제 봐도 참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림입니다. 나비 하며 고양이 하며 저 생동감 있는 모습에 색깔은 또 어찌나 고운지요. 그런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 깊은 애정이 생깁니다. 예로부터 고양이는 일흔 노인, 나비는 여든 노인을 상징했다고 해요. 게다가 변하지 않는 바위, ‘청춘’을 뜻하는 패랭이꽃까지 그림 속의 모든 소재가 오래 사는 일, 즉 ‘장수’와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누군가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오래 사시라는 기원을 담은 그림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이광사·이영익의 잉어
▲ 이광사·이영익 ‘잉어’

단원 김홍도의 해탐노화
▲ 단원 김홍도 ‘해탐노화’


여기 잉어 한 마리가 있습니다. 잉어 그림은 예로부터 ‘과거 급제’나 ‘승차’(陞差, 승진)를 기원하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종종 만나는 표현 중에 ‘등용문’(登龍門)이란 말이 있지요. 잉어가 높이 튀어 올라 용문(龍門)에 들어간다는 옛 고사에서 유래된 말로 ‘입신출세’를 의미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수능 시험 잘 보라, 승진하시라고 기원하는 그림입니다. 같은 염원을 담은 그림이 또 한 점 있습니다. 단원 김홍도가 그린 게 그림인데요. 게가 갈대꽃을 붙잡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게가 갈대꽃을 잡고 있는 그림도 과거 급제를 기원하는 의미로 그려진 거라고 합니다. 게가 두 마리면 소과, 대과 두 번 다 합격하란 뜻이랍니다. 역시 지금 시대에 맞춰 보자면 수능 만점(?) 받으라는 기원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옛 그림에 담긴 이런 의미와 내용을 알고 보면 그림 보는 재미가 더 쏠쏠해집니다. 아래 그림은 단원 김홍도의 스승으로 널리 알려진 표암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의 연꽃 그림입니다. 연꽃이라는 게 진흙에 뿌리를 박고 꽃을 피워 올리는 식물인데도 진흙의 더러움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을 만큼 꽃이 아름답고 곱습니다. 그래서 꼿꼿한 자세를 잃지 않는 군자의 모습을 닮았다고 풀이합니다. 그다음은 조선 중기 화가 창강 조속(趙涑, 1595~1668)의 까치 그림입니다. 지금은 하도 농사에 이런저런 해를 끼쳐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지만, 본래 까치는 예로부터 기쁜 소식을 알려주는 전령사였습니다. “까치 까치 설날은~” 하는 동요 가사가 있을 정도니까요. 긴 겨울의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고 봄날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좋은 의미가 그림에 담겼습니다. 매화 가지에 앉은 까치의 야무지고 당당한 모습을 절묘하게 묘사한 걸작입니다.

표암 강세황의 향원익청
▲ 표암 강세황 ‘향원익청’

창강 조속의 고매서작
▲ 창강 조속 ‘고매서작’


전시회에 직접 가보시면 여기 소개한 그림들뿐 아니라 두 마리 양을 그린 고려 공민왕(恭愍王, 1330~1374)의 ‘이양도’(二羊圖)부터 국운이 쇠락과 함께 그림마저 전통의 멋을 잃고 만 1900년대 초반 그림까지 장장 550여 년에 걸친 동식물 그림 90여 점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여류 문인 신사임당(申氏, 1504~1551)의 것으로 전하는 단아한 꽃 그림, 신사임당을 능가하는 조선 중기 포도 그림의 대가 황집중(黃執中, 1533~1593 이후)의 포도,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의 개구리와 두꺼비, 조선 후기 남종문인화의 대가 현재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의 다채로운 화훼영모도, 닭과 고양이를 하도 잘 그려서 별명이 변닭, 변고양이였던 화재 변상벽(卞相璧, 1730~1775)의 닭과 고양이까지 한 자리에 모으기도 힘든 최고의 동식물 그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다섯 번의 간송문화전을 열면서 매번 똑같았던 전시 방식을 다음 전시 때부터는 확 바꿀 예정이라 합니다. 지금까지는 귀중한 문화재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그 문화재들을 어떤 이야기로 엮어서 어떻게 다르게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하겠다는 뜻입니다. 진열장 안에 죽 펼쳐놓고 잘 감상하시오, 하는 전시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전통과 현대가 서로 호흡할 수 있는 새로운 전시 방식을 선보이게 되겠지요. 어쨌든 간송문화전도 또 한 번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우리 옛 동식물 그림과 함께 낙엽이 짙게 물들어가는 가을 정취에 젖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변상벽의 자웅장추
▲ 변상벽 ‘자웅장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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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의 지혜와 멋이 담긴 옛 동식물 그림 향연(KBS 뉴스광장 2015년 10월 23일)



※ 전시 정보
제목: 간송문화전 5부 ‘화훼영모 – 자연을 품다’
기간: 2016년 3월 27일까지
장소: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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