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연락 끊긴 며느리도 부양의무자?

입력 2015.11.09 (06:04) 수정 2015.11.09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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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초생활수급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란?

국가가 빈곤층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자립을 지원하는 제도가 기초생활보장제도입니다. 정부는 지난 7월부터는 맞춤형 기초생활보장제도로 변경해 생계, 의료, 주거, 교육급여별로 수급 선정 기준을 다르게 해 수급자 대상 확대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수급자를 선정할 때 수급 대상자의 소득만을 보고 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양의무자도 같이 봅니다. 부양의무자란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자를 부양할 책임이 있는 부모, 자녀, 며느리, 사위를 의미합니다.
만약 부양의무자가 생존해 있고 부양 능력이 될 만한 일정 소득이 있으며 수급 대상자와 관계가 끊기지 않았다면 수급에 제한을 가하게 됩니다. 즉 부양의무자의 부양 능력 여부를 판단해 수급 대상자를 선정하는 기준이 부양의무자 기준입니다. 언뜻 보면 부양의무자 기준은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소득이 없어 생활이 힘든 부모가 있을 경우 자식이 돈을 많이 번다면 직.간접적으로 부모를 충분히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효 사상과 가족 중시 문화가 이어져 온 우리나라 전통에서 부양과 복지의 1차적 책임이 자연스럽게 가족에 놓이면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도입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현실은…“돈 버는 아들은 빚 갚느라 부양 못 해”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빈곤 문제를 다뤄온 시민단체들은 말합니다. 수급 대상자와 부양의무자인 가족 간 관계에는 여러 사정이 있을 수 있고, 부양의무자가 충분히 소득 활동을 하더라도 실제로는 부양 능력이 없을 수 있다는 겁니다.
서울 강서에 사는 59살 정 모 씨의 사연입니다. 정 씨는 지난해까지 기초생활 수급 혜택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 들어 수급비가 갑자기 끊겼고 지난 7월에는 수급자에 탈락했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알고 보니 경북 구미에 살면서 공장에서 일하는 30대 아들의 월급이 인상됐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이전까지 아들의 소득은 아버지를 부양할 만한 소득이 아닌 것으로 판정돼 아버지의 수급에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월급 인상으로 부양 능력이 있다고 판정된 겁니다. 그러나 과거 사업 실패로 많은 빚을 진 아들은 월급 대부분을 빚을 갚는 데 쓰고 있어 아버지를 부양하거나 도울 수 있는 형편이 못됩니다.

■ “연락 끊긴 며느리 소득 있다고 수급에서 탈락”

기초생활 수급 탈락기초생활 수급 탈락


다른 사연을 보겠습니다. 경기도 부천에서 월세 25만 원짜리 방에 사는 61살 정 모 씨는 남편과 함께 사는 2인 가구입니다. 한때 재산과 소득이 꽤 있어 여유롭게 살던 정 씨는 4~5년 전부터 남편이 정신질환을 앓으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고 급기야 큰 빚까지 지게 됐습니다. 월세마저 밀릴 정도로 어렵게 생활해 최근 기초생활 수급을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탈락 통보를 받았습니다. 부양의무자로 돼 있는 며느리가 교사로서 부양할 만한 수준의 월급이 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정 씨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며느리와는 연락이 끊기고 관계가 소원해진 지가 오래돼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처지라고 설명했지만 결국 탈락했습니다. 관할 주민센터는 완전한 관계 단절이 아니라며 그 이유를 들었습니다.

■ “‘가족 중시’ 부양의무자 기준, 오히려 가족 해체의 원인”

이처럼 부양의무자가 부양 능력을 갖춘 것으로 인정받는 수준의 소득 활동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소득의 상당 부분이 부채 상황에 쓰이면서 부양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현실에서는 이 같은 사정이 잘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현 제도에서도 부양의무자의 채무변제액을 실제 소득에서 차감하거나 필수 지출비용으로 인정해 부양의무자의 소득을 판정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준은 신용회복위원회나 한국자산관리공사의 채무 상환 프로그램을 이용하거나 법원에서 판결을 받아 납부하고 있는 것만 인정이 됩니다. 시민단체는 채무변제액 인정 부분이 너무 협소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개인간 빚 상환이나 주택대출 상환액, 학자금 대출 상환액 등도 부양의무자 소득에서 차감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기초수급기초수급


아울러 수급 대상자와 부양의무자와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됐음을 증명해야만 수급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관계 단절' 기준도 문제입니다. 실제로 가족 간에는 완전한 관계 단절은 아니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관계가 유지되지 않아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없는 상황이 많은데 이를 고려해주지 않고 있다는 게 시민단체의 지적입니다. 빈곤사회연대는 부양의무자와 관계 단절을 인정받아야만 수급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은 오히려 가족 해체의 원인이라고 꼬집었습니다.

2010년 보건사회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급을 못 받고 있는 빈곤층이 110여 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시민단체는 그동안 부양의무자 기준이 완화돼 수급자가 늘었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현재 100만 명 가량이 여전히 부양의무자 기준이라는 장애물로 인해 혜택을 못 받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부양의무자 기준이 복지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는 셈입니다. 빈곤사회연대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빈곤층의 생활을 돕기 위한 제도가 기초생활보장제도인 만큼 부양의무자 기준을 대폭 완화하거나 폐지할 것을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연관 기사]
☞ 부양 의무자 기준, 일부 빈곤층 기초수급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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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연락 끊긴 며느리도 부양의무자?
    • 입력 2015-11-09 06:04:26
    • 수정2015-11-09 06:11:44
    취재후·사건후
■ 기초생활수급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란? 국가가 빈곤층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자립을 지원하는 제도가 기초생활보장제도입니다. 정부는 지난 7월부터는 맞춤형 기초생활보장제도로 변경해 생계, 의료, 주거, 교육급여별로 수급 선정 기준을 다르게 해 수급자 대상 확대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수급자를 선정할 때 수급 대상자의 소득만을 보고 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양의무자도 같이 봅니다. 부양의무자란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자를 부양할 책임이 있는 부모, 자녀, 며느리, 사위를 의미합니다. 만약 부양의무자가 생존해 있고 부양 능력이 될 만한 일정 소득이 있으며 수급 대상자와 관계가 끊기지 않았다면 수급에 제한을 가하게 됩니다. 즉 부양의무자의 부양 능력 여부를 판단해 수급 대상자를 선정하는 기준이 부양의무자 기준입니다. 언뜻 보면 부양의무자 기준은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소득이 없어 생활이 힘든 부모가 있을 경우 자식이 돈을 많이 번다면 직.간접적으로 부모를 충분히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효 사상과 가족 중시 문화가 이어져 온 우리나라 전통에서 부양과 복지의 1차적 책임이 자연스럽게 가족에 놓이면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도입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현실은…“돈 버는 아들은 빚 갚느라 부양 못 해”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빈곤 문제를 다뤄온 시민단체들은 말합니다. 수급 대상자와 부양의무자인 가족 간 관계에는 여러 사정이 있을 수 있고, 부양의무자가 충분히 소득 활동을 하더라도 실제로는 부양 능력이 없을 수 있다는 겁니다. 서울 강서에 사는 59살 정 모 씨의 사연입니다. 정 씨는 지난해까지 기초생활 수급 혜택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 들어 수급비가 갑자기 끊겼고 지난 7월에는 수급자에 탈락했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알고 보니 경북 구미에 살면서 공장에서 일하는 30대 아들의 월급이 인상됐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이전까지 아들의 소득은 아버지를 부양할 만한 소득이 아닌 것으로 판정돼 아버지의 수급에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월급 인상으로 부양 능력이 있다고 판정된 겁니다. 그러나 과거 사업 실패로 많은 빚을 진 아들은 월급 대부분을 빚을 갚는 데 쓰고 있어 아버지를 부양하거나 도울 수 있는 형편이 못됩니다. ■ “연락 끊긴 며느리 소득 있다고 수급에서 탈락”
기초생활 수급 탈락
다른 사연을 보겠습니다. 경기도 부천에서 월세 25만 원짜리 방에 사는 61살 정 모 씨는 남편과 함께 사는 2인 가구입니다. 한때 재산과 소득이 꽤 있어 여유롭게 살던 정 씨는 4~5년 전부터 남편이 정신질환을 앓으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고 급기야 큰 빚까지 지게 됐습니다. 월세마저 밀릴 정도로 어렵게 생활해 최근 기초생활 수급을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탈락 통보를 받았습니다. 부양의무자로 돼 있는 며느리가 교사로서 부양할 만한 수준의 월급이 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정 씨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며느리와는 연락이 끊기고 관계가 소원해진 지가 오래돼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처지라고 설명했지만 결국 탈락했습니다. 관할 주민센터는 완전한 관계 단절이 아니라며 그 이유를 들었습니다. ■ “‘가족 중시’ 부양의무자 기준, 오히려 가족 해체의 원인” 이처럼 부양의무자가 부양 능력을 갖춘 것으로 인정받는 수준의 소득 활동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소득의 상당 부분이 부채 상황에 쓰이면서 부양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현실에서는 이 같은 사정이 잘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현 제도에서도 부양의무자의 채무변제액을 실제 소득에서 차감하거나 필수 지출비용으로 인정해 부양의무자의 소득을 판정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준은 신용회복위원회나 한국자산관리공사의 채무 상환 프로그램을 이용하거나 법원에서 판결을 받아 납부하고 있는 것만 인정이 됩니다. 시민단체는 채무변제액 인정 부분이 너무 협소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개인간 빚 상환이나 주택대출 상환액, 학자금 대출 상환액 등도 부양의무자 소득에서 차감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기초수급
아울러 수급 대상자와 부양의무자와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됐음을 증명해야만 수급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관계 단절' 기준도 문제입니다. 실제로 가족 간에는 완전한 관계 단절은 아니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관계가 유지되지 않아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없는 상황이 많은데 이를 고려해주지 않고 있다는 게 시민단체의 지적입니다. 빈곤사회연대는 부양의무자와 관계 단절을 인정받아야만 수급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은 오히려 가족 해체의 원인이라고 꼬집었습니다. 2010년 보건사회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급을 못 받고 있는 빈곤층이 110여 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시민단체는 그동안 부양의무자 기준이 완화돼 수급자가 늘었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현재 100만 명 가량이 여전히 부양의무자 기준이라는 장애물로 인해 혜택을 못 받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부양의무자 기준이 복지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는 셈입니다. 빈곤사회연대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빈곤층의 생활을 돕기 위한 제도가 기초생활보장제도인 만큼 부양의무자 기준을 대폭 완화하거나 폐지할 것을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연관 기사] ☞ 부양 의무자 기준, 일부 빈곤층 기초수급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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