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 전 자유 향한 여전 ‘흥남 철수’
입력 2015.12.25 (06:57)
수정 2015.12.25 (22:2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1950년 12월 북한 흥남 항에서 철수하는 국군과 연합군이 10만 명에 가까운 민간인을 탈출시킨 사건이 바로 '흥남 철수 작전인데요.
피란민들을 태운 배가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철수하는데 성공해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불리는 이 사건을 조명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당시의 생생한 자료를 통해 자유와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65년 전의 여정을 박수현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인천 상륙 작전 후 북진하던 국군과 연합군.
중공군의 개입으로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크게 패하면서 흥남 철수 작전이 시작됩니다.
후퇴하는 군대를 따라 나선 피란민, 난리 통에도 제사 용품을 챙기고 후일을 위해 전문학교 졸업장과 책을 들고 왔습니다.
<인터뷰> 신유항(생존 피란민) : "호주머니에 영화(영일) 사전하고 화영 사전 두권 넣었습니다 왜냐하면 남한에 오면 영어가 필요할 것 같아서..."
바람 찬 흥남 부두를 가득 메운 인파.
9만 명이 넘는 피란민이 자유를 찾아 파도를 넘었습니다.
그리고 이 항해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됐습니다.
<인터뷰> 손동헌(피란민) : "착륙하니까 1950년 12월 25일 0시 크리스마스 (교회)종이 땡땡 울리는 거예요. 제2의 생일이라고 생각해요."
군용 담요로 바지를, 포탄 껍질로 등잔을 만들어 쓰며, 새 삶을 일궈냈습니다.
<인터뷰> 관람객(중학생) : "지금은 그냥 편하게 잘 살고 있는데 옛날에는 이렇게 전쟁이 일어나서 이런 시대였다는게 잘 믿기지 않았고 한국이 자랑스러웠어요."
하지만 아직도 돌아갈 수 없는 고향.
피난민의 부치지 못한 편지는 '흥남 철수'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비극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KBS 뉴스 박수현입니다.
1950년 12월 북한 흥남 항에서 철수하는 국군과 연합군이 10만 명에 가까운 민간인을 탈출시킨 사건이 바로 '흥남 철수 작전인데요.
피란민들을 태운 배가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철수하는데 성공해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불리는 이 사건을 조명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당시의 생생한 자료를 통해 자유와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65년 전의 여정을 박수현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인천 상륙 작전 후 북진하던 국군과 연합군.
중공군의 개입으로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크게 패하면서 흥남 철수 작전이 시작됩니다.
후퇴하는 군대를 따라 나선 피란민, 난리 통에도 제사 용품을 챙기고 후일을 위해 전문학교 졸업장과 책을 들고 왔습니다.
<인터뷰> 신유항(생존 피란민) : "호주머니에 영화(영일) 사전하고 화영 사전 두권 넣었습니다 왜냐하면 남한에 오면 영어가 필요할 것 같아서..."
바람 찬 흥남 부두를 가득 메운 인파.
9만 명이 넘는 피란민이 자유를 찾아 파도를 넘었습니다.
그리고 이 항해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됐습니다.
<인터뷰> 손동헌(피란민) : "착륙하니까 1950년 12월 25일 0시 크리스마스 (교회)종이 땡땡 울리는 거예요. 제2의 생일이라고 생각해요."
군용 담요로 바지를, 포탄 껍질로 등잔을 만들어 쓰며, 새 삶을 일궈냈습니다.
<인터뷰> 관람객(중학생) : "지금은 그냥 편하게 잘 살고 있는데 옛날에는 이렇게 전쟁이 일어나서 이런 시대였다는게 잘 믿기지 않았고 한국이 자랑스러웠어요."
하지만 아직도 돌아갈 수 없는 고향.
피난민의 부치지 못한 편지는 '흥남 철수'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비극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KBS 뉴스 박수현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65년 전 자유 향한 여전 ‘흥남 철수’
-
- 입력 2015-12-25 06:59:48
- 수정2015-12-25 22:20:20
<앵커 멘트>
1950년 12월 북한 흥남 항에서 철수하는 국군과 연합군이 10만 명에 가까운 민간인을 탈출시킨 사건이 바로 '흥남 철수 작전인데요.
피란민들을 태운 배가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철수하는데 성공해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불리는 이 사건을 조명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당시의 생생한 자료를 통해 자유와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65년 전의 여정을 박수현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인천 상륙 작전 후 북진하던 국군과 연합군.
중공군의 개입으로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크게 패하면서 흥남 철수 작전이 시작됩니다.
후퇴하는 군대를 따라 나선 피란민, 난리 통에도 제사 용품을 챙기고 후일을 위해 전문학교 졸업장과 책을 들고 왔습니다.
<인터뷰> 신유항(생존 피란민) : "호주머니에 영화(영일) 사전하고 화영 사전 두권 넣었습니다 왜냐하면 남한에 오면 영어가 필요할 것 같아서..."
바람 찬 흥남 부두를 가득 메운 인파.
9만 명이 넘는 피란민이 자유를 찾아 파도를 넘었습니다.
그리고 이 항해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됐습니다.
<인터뷰> 손동헌(피란민) : "착륙하니까 1950년 12월 25일 0시 크리스마스 (교회)종이 땡땡 울리는 거예요. 제2의 생일이라고 생각해요."
군용 담요로 바지를, 포탄 껍질로 등잔을 만들어 쓰며, 새 삶을 일궈냈습니다.
<인터뷰> 관람객(중학생) : "지금은 그냥 편하게 잘 살고 있는데 옛날에는 이렇게 전쟁이 일어나서 이런 시대였다는게 잘 믿기지 않았고 한국이 자랑스러웠어요."
하지만 아직도 돌아갈 수 없는 고향.
피난민의 부치지 못한 편지는 '흥남 철수'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비극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KBS 뉴스 박수현입니다.
1950년 12월 북한 흥남 항에서 철수하는 국군과 연합군이 10만 명에 가까운 민간인을 탈출시킨 사건이 바로 '흥남 철수 작전인데요.
피란민들을 태운 배가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철수하는데 성공해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불리는 이 사건을 조명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당시의 생생한 자료를 통해 자유와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65년 전의 여정을 박수현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인천 상륙 작전 후 북진하던 국군과 연합군.
중공군의 개입으로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크게 패하면서 흥남 철수 작전이 시작됩니다.
후퇴하는 군대를 따라 나선 피란민, 난리 통에도 제사 용품을 챙기고 후일을 위해 전문학교 졸업장과 책을 들고 왔습니다.
<인터뷰> 신유항(생존 피란민) : "호주머니에 영화(영일) 사전하고 화영 사전 두권 넣었습니다 왜냐하면 남한에 오면 영어가 필요할 것 같아서..."
바람 찬 흥남 부두를 가득 메운 인파.
9만 명이 넘는 피란민이 자유를 찾아 파도를 넘었습니다.
그리고 이 항해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됐습니다.
<인터뷰> 손동헌(피란민) : "착륙하니까 1950년 12월 25일 0시 크리스마스 (교회)종이 땡땡 울리는 거예요. 제2의 생일이라고 생각해요."
군용 담요로 바지를, 포탄 껍질로 등잔을 만들어 쓰며, 새 삶을 일궈냈습니다.
<인터뷰> 관람객(중학생) : "지금은 그냥 편하게 잘 살고 있는데 옛날에는 이렇게 전쟁이 일어나서 이런 시대였다는게 잘 믿기지 않았고 한국이 자랑스러웠어요."
하지만 아직도 돌아갈 수 없는 고향.
피난민의 부치지 못한 편지는 '흥남 철수'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비극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KBS 뉴스 박수현입니다.
-
-
박수현 기자 supak@kbs.co.kr
박수현 기자의 기사 모음
-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