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살인사건’ 19년만에 ‘유죄’…패터슨 징역 20년

입력 2016.01.29 (16:41) 수정 2016.01.29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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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살 청년 조중필 씨를 미국 10대 청소년이 아무 이유 없이 흉기로 찔러 살해한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기소된 아더 존 패터슨(37, 미국)이 징역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사건 발생 19년 만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심규홍 부장판사)는 29일 "패터슨이 피해자를 칼로 찌르는 걸 목격했다는 공범 에드워드 리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징역 20년은 범행 당시 만 18세 미만의 나이였던 패터슨에게 선고될 수 있는 법정최고형이다.

재판부는 "사건이 일어난 화장실 벽에 묻은 혈흔을 보면 가해자의 온몸과 오른손에 상당히 많은 양의 피가 묻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사건 직후 패터슨은 온몸에 피가 묻어 화장실에서 씻고 옷도 갈아입었지만, 에드워드 리는 상의에 적은 양의 피가 뿌린 듯 묻어 있었다"며 "리가 피해자를 찔렀다는 패터슨의 진술은 객관적 증거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패터슨이 "범행을 저지르고도 공범인 에드워드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 뒤 자신의 범행을 반성하지 않고 있고,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피해 변상은 물론 진심 어린 위로도 없었다"며 "비록 피고인이 범행 당시 18세 미만 소년이었고 치밀하게 계획된 범행이 아님을 고려하더라도 책임에 상응하는 엄한 형벌로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와함께 에드워드가 "패터슨에게 살인을 부추기고 앞장서서 화장실에 들어갔다"며 그 역시 살인의 공범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이미 살인 혐의에 대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만큼 이중처벌 금지 원칙에 따라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

범죄가 일어난 지 15년이 흘렀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패터슨 측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패터슨은 1997년 사건이 발생했고, 한국으로 신병이 인도된 2015년 9월은 범행 종료로부터 18년이 지나 살인죄 공소시효 15년을 넘겼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범행일로부터 15년이 지나기 전인 2011년 12월 22일 공소제기가 이뤄져 그동안 공소 시효가 정지된 상태였다"며 "패터슨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약 15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은 이날 사건 관계자들과 취재진들로 가득 찼다. 푸른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들어온 패터슨은 선고가 내려지자 짧은 한숨을 쉬었고 눈물을 비추기도 했다. 재판부가 양형 이유를 설명할 때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기도 했다.

패터슨은 앞서 지난 15일 열린 1심 마지막 공판에서도 최후진술로 "검사가 기소한 내용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나는 당시 에드워드 리가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난 뒤에도, 상황을 도저히 믿지 못했다"고 결백하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태원 살인사건이태원 살인사건


이태원 살인 사건은 1997년 4월 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고(故) 조중필(당시 22세)씨가 살해된 채 발견됐다. 흉기에 수차례 찔린 상태였다.

함께 화장실에 있던 2명이 유력한 용의자였다. 재미동포 에드워드 리와 미 군속의 아들인 혼혈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으로, 둘 다 당시 17세였다.

검찰은 이들 중 리를 살인 혐의로, 패터슨을 흉기 소지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그해 10월 1심 재판부는 리에게 무기징역을, 패터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각각 선고했고 이듬해 1월 항소심 재판부는 리에게 징역 20년을, 패터슨에게 장기 1년 6개월·단기 1년의 징역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1998년 4월 리의 사건에 대해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1999년 9월 재상고심에서 대법원은 "리는 범인이 아닌 목격자로 추정된다"며 무죄를 확정했다.

검찰은 패터슨을 진범으로 지목하고 재수사에 착수했지만 때가 늦었다. 2심 선고 후 주범이 아닌 공범으로 징역형을 살던 패터슨은 수감 태도가 좋다는 이유로 1998년 8·15 특별사면으로 이미 석방됐다.

패터슨은 1999년 8월 23일 출국금지 기간이 만료되자 이튿날인 24일 미국으로 떠났다. 인사이동을 앞둔 검찰이 깜박하고 출국금지 연장신청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19년을 이어온 비극의 시작이었다.

패터슨의 해외 도피는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숨진 조 씨의 유족들은 사건의 진상을 규명할 기회를 박탈당했다며 국가에 배상을 요구했고, 법원에서 이를 받아들여 3천400만 원을 유족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이태원 살인사건이태원 살인사건


정부는 패터슨에 대해 미국에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고, 검찰은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심정으로 치밀한 재수사를 벌였다. 패터슨의 신병을 다시 확보하기 전까지 그가 주범이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들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검찰이 당초 리를 주범으로 기소했던 것은 "건장한 대학생이던 조 씨에게서 반항한 흔적이 없다는 점에서 범인은 조 씨를 제압할 정도로 덩치가 클 것으로 추정된다"는 부검의 소견에 따른 측면이 컸다. 리는 100㎏이 넘는 거구였고 조 씨보다 키가 2㎝ 컸다. 반면 패터슨은 조 씨보다 6㎝가 작았다.

하지만 재수사에서 검찰은 조씨가 배낭을 메고 있었던 사실에 주목했다. 패터슨이 조 씨보다 키가 작더라도 뒤에서 배낭을 붙잡았다면 충분히 범행할 수 있다는 추정이 나왔다.

첨단 과학수사기법도 동원됐다. 화장실 벽면에 묻은 혈흔을 분석한 것이다. 앞선 검찰 조사에서 조 씨에게 흉기를 휘두른 사람이 누구인지를 두고 리는 패터슨을, 패터슨은 리를 각각 지목했고 흉기를 사용한 동작도 서로 다르게 묘사했다. 혈흔 분석 결과는 패터슨이 흉기를 휘둘렀다고 말한 리의 진술에서 나온 살해 동작과 맞아떨어졌다.

이 밖에도 사건 직후 패터슨의 얼굴과 양손, 상하의 모두에는 피가 흥건히 묻어 있던 반면 리는 상의에 핏방울 몇 개가 묻어 있었던 점 등도 패터슨이 진범으로 지목된 배경이 됐다.

검찰은 2011년 5월 패터슨이 미국에서 체포되자 그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이듬해 미국 법원은 범죄인 인도 허가 결정을 내렸고 이에 불응하는 패터슨이 끈질기게 소송전을 벌이면서 국내 송환 절차를 지연시켰다.

현지 법원의 확정판결로 지난해 9월 패터슨은 국내로 송환됐고 다시 법정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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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 달의 재판 동안 패터슨은 19년 전과 마찬가지로 현장에 함께 있던 리가 조 씨를 찔렀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리도 유일한 '목격자'로서 법정에 나와 패터슨이 살해범이라고 증언했다. 리는 패터슨의 공범으로 적시됐으나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처벌받지 않는다.

검찰은 사건 현장 혈흔 분석 등 첨단수사기법을 동원해 패터슨의 유죄를 입증하려 노력했다. 그간 나온 증인들도 다수가 패터슨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

[연관 기사]☞ ‘이태원 살인사건’ 첫 공판…“패터슨이 찔렀다”

'범인 없는 살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이 사건은 2009년 영화로도 만들어져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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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태원 살인사건’ 19년만에 ‘유죄’…패터슨 징역 20년
    • 입력 2016-01-29 16:41:48
    • 수정2016-01-29 18:4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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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살 청년 조중필 씨를 미국 10대 청소년이 아무 이유 없이 흉기로 찔러 살해한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기소된 아더 존 패터슨(37, 미국)이 징역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사건 발생 19년 만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심규홍 부장판사)는 29일 "패터슨이 피해자를 칼로 찌르는 걸 목격했다는 공범 에드워드 리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징역 20년은 범행 당시 만 18세 미만의 나이였던 패터슨에게 선고될 수 있는 법정최고형이다.

재판부는 "사건이 일어난 화장실 벽에 묻은 혈흔을 보면 가해자의 온몸과 오른손에 상당히 많은 양의 피가 묻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사건 직후 패터슨은 온몸에 피가 묻어 화장실에서 씻고 옷도 갈아입었지만, 에드워드 리는 상의에 적은 양의 피가 뿌린 듯 묻어 있었다"며 "리가 피해자를 찔렀다는 패터슨의 진술은 객관적 증거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패터슨이 "범행을 저지르고도 공범인 에드워드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 뒤 자신의 범행을 반성하지 않고 있고,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피해 변상은 물론 진심 어린 위로도 없었다"며 "비록 피고인이 범행 당시 18세 미만 소년이었고 치밀하게 계획된 범행이 아님을 고려하더라도 책임에 상응하는 엄한 형벌로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와함께 에드워드가 "패터슨에게 살인을 부추기고 앞장서서 화장실에 들어갔다"며 그 역시 살인의 공범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이미 살인 혐의에 대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만큼 이중처벌 금지 원칙에 따라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

범죄가 일어난 지 15년이 흘렀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패터슨 측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패터슨은 1997년 사건이 발생했고, 한국으로 신병이 인도된 2015년 9월은 범행 종료로부터 18년이 지나 살인죄 공소시효 15년을 넘겼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범행일로부터 15년이 지나기 전인 2011년 12월 22일 공소제기가 이뤄져 그동안 공소 시효가 정지된 상태였다"며 "패터슨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약 15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은 이날 사건 관계자들과 취재진들로 가득 찼다. 푸른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들어온 패터슨은 선고가 내려지자 짧은 한숨을 쉬었고 눈물을 비추기도 했다. 재판부가 양형 이유를 설명할 때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기도 했다.

패터슨은 앞서 지난 15일 열린 1심 마지막 공판에서도 최후진술로 "검사가 기소한 내용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나는 당시 에드워드 리가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난 뒤에도, 상황을 도저히 믿지 못했다"고 결백하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태원 살인사건


이태원 살인 사건은 1997년 4월 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고(故) 조중필(당시 22세)씨가 살해된 채 발견됐다. 흉기에 수차례 찔린 상태였다.

함께 화장실에 있던 2명이 유력한 용의자였다. 재미동포 에드워드 리와 미 군속의 아들인 혼혈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으로, 둘 다 당시 17세였다.

검찰은 이들 중 리를 살인 혐의로, 패터슨을 흉기 소지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그해 10월 1심 재판부는 리에게 무기징역을, 패터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각각 선고했고 이듬해 1월 항소심 재판부는 리에게 징역 20년을, 패터슨에게 장기 1년 6개월·단기 1년의 징역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1998년 4월 리의 사건에 대해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1999년 9월 재상고심에서 대법원은 "리는 범인이 아닌 목격자로 추정된다"며 무죄를 확정했다.

검찰은 패터슨을 진범으로 지목하고 재수사에 착수했지만 때가 늦었다. 2심 선고 후 주범이 아닌 공범으로 징역형을 살던 패터슨은 수감 태도가 좋다는 이유로 1998년 8·15 특별사면으로 이미 석방됐다.

패터슨은 1999년 8월 23일 출국금지 기간이 만료되자 이튿날인 24일 미국으로 떠났다. 인사이동을 앞둔 검찰이 깜박하고 출국금지 연장신청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19년을 이어온 비극의 시작이었다.

패터슨의 해외 도피는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숨진 조 씨의 유족들은 사건의 진상을 규명할 기회를 박탈당했다며 국가에 배상을 요구했고, 법원에서 이를 받아들여 3천400만 원을 유족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이태원 살인사건


정부는 패터슨에 대해 미국에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고, 검찰은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심정으로 치밀한 재수사를 벌였다. 패터슨의 신병을 다시 확보하기 전까지 그가 주범이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들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검찰이 당초 리를 주범으로 기소했던 것은 "건장한 대학생이던 조 씨에게서 반항한 흔적이 없다는 점에서 범인은 조 씨를 제압할 정도로 덩치가 클 것으로 추정된다"는 부검의 소견에 따른 측면이 컸다. 리는 100㎏이 넘는 거구였고 조 씨보다 키가 2㎝ 컸다. 반면 패터슨은 조 씨보다 6㎝가 작았다.

하지만 재수사에서 검찰은 조씨가 배낭을 메고 있었던 사실에 주목했다. 패터슨이 조 씨보다 키가 작더라도 뒤에서 배낭을 붙잡았다면 충분히 범행할 수 있다는 추정이 나왔다.

첨단 과학수사기법도 동원됐다. 화장실 벽면에 묻은 혈흔을 분석한 것이다. 앞선 검찰 조사에서 조 씨에게 흉기를 휘두른 사람이 누구인지를 두고 리는 패터슨을, 패터슨은 리를 각각 지목했고 흉기를 사용한 동작도 서로 다르게 묘사했다. 혈흔 분석 결과는 패터슨이 흉기를 휘둘렀다고 말한 리의 진술에서 나온 살해 동작과 맞아떨어졌다.

이 밖에도 사건 직후 패터슨의 얼굴과 양손, 상하의 모두에는 피가 흥건히 묻어 있던 반면 리는 상의에 핏방울 몇 개가 묻어 있었던 점 등도 패터슨이 진범으로 지목된 배경이 됐다.

검찰은 2011년 5월 패터슨이 미국에서 체포되자 그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이듬해 미국 법원은 범죄인 인도 허가 결정을 내렸고 이에 불응하는 패터슨이 끈질기게 소송전을 벌이면서 국내 송환 절차를 지연시켰다.

현지 법원의 확정판결로 지난해 9월 패터슨은 국내로 송환됐고 다시 법정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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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 달의 재판 동안 패터슨은 19년 전과 마찬가지로 현장에 함께 있던 리가 조 씨를 찔렀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리도 유일한 '목격자'로서 법정에 나와 패터슨이 살해범이라고 증언했다. 리는 패터슨의 공범으로 적시됐으나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처벌받지 않는다.

검찰은 사건 현장 혈흔 분석 등 첨단수사기법을 동원해 패터슨의 유죄를 입증하려 노력했다. 그간 나온 증인들도 다수가 패터슨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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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없는 살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이 사건은 2009년 영화로도 만들어져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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