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와 철원…불안한 공존

입력 2016.02.27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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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땅 철원, 우리에겐 아픔이지만 철새들에겐 행운입니다. 분단은 사람의 간섭이 없는 비무장지대와 민간인통제구역을 만들었습니다. 드넓은 철원 평야 농경지는 먹거리인 낙곡을 제공했습니다. 한탄강의 여울과 곳곳에 자리 잡은 대형 저수지는 잠자리로 최적입니다. 이런 환경 덕분에 철원은 멸종위기종 두루미와 재두루미, 독수리를 비롯해 수많은 철새의 월동지가 됐습니다.

낙곡을 먹는 재두루미. 철원 평야 농경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사진제공:진익태 철원두루미학교낙곡을 먹는 재두루미. 철원 평야 농경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사진제공:진익태 철원두루미학교




철원... 멸종위기종 철새의 안식처

철원 평야 농경지 사이로 다니다 보면 수시로 두루미나 재두루미를 볼 수 있습니다. 가족 단위로 서너 마리씩 먹이를 먹기도 하고 수십 마리가 함께 모여 있기도 합니다. 이번 겨울 철원에 7백여 마리의 두루미가 찾아왔습니다. 국내에서 월동하는 전체 두루미의 80%를 넘습니다. 일본 홋카이도에 텃새로 살고 있는 두루미를 제외한다면, 철원은 계절따라 이동하는 두루미를 볼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 월동지입니다. 두루미는 전 세계에 3천 마리가량만 남아 있는 멸종위기 1급 조류입니다.

소이산(해발 362m)에서 바라본 철원 평야. 비무장지대 남쪽으로 두루미의 핵심 먹이터인 농경지가 펼쳐진다.소이산(해발 362m)에서 바라본 철원 평야. 비무장지대 남쪽으로 두루미의 핵심 먹이터인 농경지가 펼쳐진다.




소이산(해발 362m)에 오르면 평강고원의 철원 평야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산 아래 논에서 먹이를 찾는 두루미를 육안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북쪽으로 비무장지대와 북한 땅까지 보입니다. 소이산 정상에 한때 군부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민통선이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군부대가 철수하고 민간인에게 개방됐습니다. 고려시대 때부터 봉수대 자리로 이용됐을 정도로 사방을 둘러보는 전망이 탁월합니다. 순천만에 '용산'이라는 걸출한 전망대가 있는 것처럼 철원에는 '소이산'이 있습니다.

한탄강 여울에서 쉬고 있는 두루미 가족한탄강 여울에서 쉬고 있는 두루미 가족




한탄강 여울에서는 두루미가 물을 마시고 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빠른 물살 때문에 겨울에도 얼지 않는 여울은 두루미에게 최적의 잠자리이자 쉼터입니다. 물속의 물고기나 고둥을 먹기도 합니다. 두루미뿐만 아니라 큰고니와 각종 오리들이 무리를 지어 여울에서 쉽니다. 여울의 제방 한쪽에는 탐조대가 한 곳 설치돼 있습니다. 탐조대 안에는 철새들을 보려는 탐조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습니다.

얼어붙은 토교저수지 위에 모여 있는 두루미와 재두루미. 빙판이 된 저수지는 두루미 잠자리로 이용된다. 사진제공: 진익태 철원두루미학교얼어붙은 토교저수지 위에 모여 있는 두루미와 재두루미. 빙판이 된 저수지는 두루미 잠자리로 이용된다. 사진제공: 진익태 철원두루미학교


▲ 토교 저수지 하늘을 덮는 기러기떼

얼어붙은 저수지 한복판에서 무리를 지어 자고 있는 두루미를 볼 수 있는 곳도 철원이 세계적으로 유일합니다. 두루미는 사방이 트인 얼음 한복판에서 자는 걸 좋아합니다. 천적인 삵이나 사람이 접근하는 것을 쉽게 경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잠자리가 철원에만 산명호, 동송저수지, 토쿄저수지, 학저수지 등 곳곳에 있습니다. 저수지에서는 수만 마리의 기러기떼가 잠을 자다가 아침이면 하늘을 덮고 날아가는 장관도 볼 수 있습니다.

위협 요인1. 잇따른 민간인통제지역 축소



▲ 도로 옆 농경지에서 먹이를 먹는 재두루미

철원 지역 민간인통제구역은 계속 축소되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편의와 개발 민원에 따라 민통선을 조금씩 북상시킨 겁니다. 민통선 안에서 사람들의 간섭을 피했던 두루미들이 이제는 수많은 차량과 사람들에게 노출됐습니다. 농경지와 도로 사이에는 두루미를 가려주는 아무런 차폐 시설도 없습니다. 두루미들은 먹이활동을 하다가도 지나가는 차량이나 사람 때문에 머리를 들고 불안스럽게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위협요인2. 각종 개발 행위 증가... 경원선, 비닐하우스, 인삼밭 등

경원선 복원 예정 구간을 따라 깃발이 꽂혀 있다. 두루미 핵심 먹이터를 경원선이 통과한다. 경원선 복원 예정 구간을 따라 깃발이 꽂혀 있다. 두루미 핵심 먹이터를 경원선이 통과한다.




각종 개발도 두루미의 서식지를 위협합니다. 두루미의 핵심 서식지를 경원선이 관통할 예정입니다. 경원선을 따라 또 다른 개발이 잇따를 수 있습니다. DMZ 세계생태평화공원이나 통일경제특구 등의 개발 계획 역시 핵심 서식지를 잠식합니다.

농민들은 소득 증대를 위해 논을 갈아엎고 원예용 비닐하우스나 인삼밭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시설 면적 만큼 먹이터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시설 주변 자체가 두루미가 경계하는 지역이 됩니다. 비닐하우스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설치되는 전깃줄도 두루미를 위협합니다.

[연관 기사] ☞ 전깃줄에 걸리고 독극물에 죽고…철원 두루미의 비극

위협요인3. 두루미 날리는 탐조객들의 사진촬영

한탄강 여울 탐조대에서 두루미를 촬영하는 탐조객한탄강 여울 탐조대에서 두루미를 촬영하는 탐조객


늘고 있는 탐조객은 또 다른 위협입니다. 사람들은 사진 촬영을 위해 농경지 안으로 들어가 두루미에 날리기 일쑤입니다. 두루미가 나는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가까이 접근해 일부러 날리는 겁니다. 몸무게게 11kg에 이르는 두루미는 한번 날 때마다 체력 소모가 심합니다. 그런 행위를 막는 아무런 통제도, 차폐 시설도 없습니다. 순천만이나 일본 이즈미 등에 설치된 통제 장치가 철원에는 없는 겁니다.

한탄강 여울 두루미 잠자리 근처에 있는 탐조시설에서는 밤중에 자고 있던 두루미가 탐조객의 소음 때문에 놀라 날아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한탄강 여울 탐조대 앞에 새들을 유인하기 위해 먹이를 뿌려 놓곤 합니다. 하지만 잠자리에 뿌린 먹이는 다른 야생 동물과 그런 동물을 쫓아오는 천적을 불러들여 두루미를 위협한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연관 기사] ☞ 전봇대 뽑고 먹이주고... 순천만의 정성

두루미의 마지막 피난처 철원... 불안한 공존



철원의 두루미 개체 수는 최근 수년 동안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철원의 서식 환경이 개선된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의 서식 여건이 열악해져 철원으로 모여들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실제로 한때 천 마리가 넘는 두루미류가 월동했던 파주에서는 이제는 백여 마리만 볼 수 있습니다. 김포 홍도평은 한때 백 마리가 넘는 재두루미가 월동했지만 지금은 열 마리가 채 안 됩니다. 연천 임진강 일대도 군남댐에 물을 채우면서 두루미 개체 수가 1/3 수준으로 격감했습니다.

사실상 철원은 한반도에서 두루미의 마지막 피난처인 셈입니다. 이런 피난처가 언제까지 유지될 것인지, 철원의 철새는 불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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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새와 철원…불안한 공존
    • 입력 2016-02-27 08:01:02
    취재K
분단의 땅 철원, 우리에겐 아픔이지만 철새들에겐 행운입니다. 분단은 사람의 간섭이 없는 비무장지대와 민간인통제구역을 만들었습니다. 드넓은 철원 평야 농경지는 먹거리인 낙곡을 제공했습니다. 한탄강의 여울과 곳곳에 자리 잡은 대형 저수지는 잠자리로 최적입니다. 이런 환경 덕분에 철원은 멸종위기종 두루미와 재두루미, 독수리를 비롯해 수많은 철새의 월동지가 됐습니다.

낙곡을 먹는 재두루미. 철원 평야 농경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사진제공:진익태 철원두루미학교



철원... 멸종위기종 철새의 안식처

철원 평야 농경지 사이로 다니다 보면 수시로 두루미나 재두루미를 볼 수 있습니다. 가족 단위로 서너 마리씩 먹이를 먹기도 하고 수십 마리가 함께 모여 있기도 합니다. 이번 겨울 철원에 7백여 마리의 두루미가 찾아왔습니다. 국내에서 월동하는 전체 두루미의 80%를 넘습니다. 일본 홋카이도에 텃새로 살고 있는 두루미를 제외한다면, 철원은 계절따라 이동하는 두루미를 볼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 월동지입니다. 두루미는 전 세계에 3천 마리가량만 남아 있는 멸종위기 1급 조류입니다.

소이산(해발 362m)에서 바라본 철원 평야. 비무장지대 남쪽으로 두루미의 핵심 먹이터인 농경지가 펼쳐진다.



소이산(해발 362m)에 오르면 평강고원의 철원 평야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산 아래 논에서 먹이를 찾는 두루미를 육안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북쪽으로 비무장지대와 북한 땅까지 보입니다. 소이산 정상에 한때 군부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민통선이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군부대가 철수하고 민간인에게 개방됐습니다. 고려시대 때부터 봉수대 자리로 이용됐을 정도로 사방을 둘러보는 전망이 탁월합니다. 순천만에 '용산'이라는 걸출한 전망대가 있는 것처럼 철원에는 '소이산'이 있습니다.

한탄강 여울에서 쉬고 있는 두루미 가족



한탄강 여울에서는 두루미가 물을 마시고 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빠른 물살 때문에 겨울에도 얼지 않는 여울은 두루미에게 최적의 잠자리이자 쉼터입니다. 물속의 물고기나 고둥을 먹기도 합니다. 두루미뿐만 아니라 큰고니와 각종 오리들이 무리를 지어 여울에서 쉽니다. 여울의 제방 한쪽에는 탐조대가 한 곳 설치돼 있습니다. 탐조대 안에는 철새들을 보려는 탐조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습니다.

얼어붙은 토교저수지 위에 모여 있는 두루미와 재두루미. 빙판이 된 저수지는 두루미 잠자리로 이용된다. 사진제공: 진익태 철원두루미학교

▲ 토교 저수지 하늘을 덮는 기러기떼

얼어붙은 저수지 한복판에서 무리를 지어 자고 있는 두루미를 볼 수 있는 곳도 철원이 세계적으로 유일합니다. 두루미는 사방이 트인 얼음 한복판에서 자는 걸 좋아합니다. 천적인 삵이나 사람이 접근하는 것을 쉽게 경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잠자리가 철원에만 산명호, 동송저수지, 토쿄저수지, 학저수지 등 곳곳에 있습니다. 저수지에서는 수만 마리의 기러기떼가 잠을 자다가 아침이면 하늘을 덮고 날아가는 장관도 볼 수 있습니다.

위협 요인1. 잇따른 민간인통제지역 축소



▲ 도로 옆 농경지에서 먹이를 먹는 재두루미

철원 지역 민간인통제구역은 계속 축소되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편의와 개발 민원에 따라 민통선을 조금씩 북상시킨 겁니다. 민통선 안에서 사람들의 간섭을 피했던 두루미들이 이제는 수많은 차량과 사람들에게 노출됐습니다. 농경지와 도로 사이에는 두루미를 가려주는 아무런 차폐 시설도 없습니다. 두루미들은 먹이활동을 하다가도 지나가는 차량이나 사람 때문에 머리를 들고 불안스럽게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위협요인2. 각종 개발 행위 증가... 경원선, 비닐하우스, 인삼밭 등

경원선 복원 예정 구간을 따라 깃발이 꽂혀 있다. 두루미 핵심 먹이터를 경원선이 통과한다.



각종 개발도 두루미의 서식지를 위협합니다. 두루미의 핵심 서식지를 경원선이 관통할 예정입니다. 경원선을 따라 또 다른 개발이 잇따를 수 있습니다. DMZ 세계생태평화공원이나 통일경제특구 등의 개발 계획 역시 핵심 서식지를 잠식합니다.

농민들은 소득 증대를 위해 논을 갈아엎고 원예용 비닐하우스나 인삼밭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시설 면적 만큼 먹이터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시설 주변 자체가 두루미가 경계하는 지역이 됩니다. 비닐하우스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설치되는 전깃줄도 두루미를 위협합니다.

[연관 기사] ☞ 전깃줄에 걸리고 독극물에 죽고…철원 두루미의 비극

위협요인3. 두루미 날리는 탐조객들의 사진촬영

한탄강 여울 탐조대에서 두루미를 촬영하는 탐조객

늘고 있는 탐조객은 또 다른 위협입니다. 사람들은 사진 촬영을 위해 농경지 안으로 들어가 두루미에 날리기 일쑤입니다. 두루미가 나는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가까이 접근해 일부러 날리는 겁니다. 몸무게게 11kg에 이르는 두루미는 한번 날 때마다 체력 소모가 심합니다. 그런 행위를 막는 아무런 통제도, 차폐 시설도 없습니다. 순천만이나 일본 이즈미 등에 설치된 통제 장치가 철원에는 없는 겁니다.

한탄강 여울 두루미 잠자리 근처에 있는 탐조시설에서는 밤중에 자고 있던 두루미가 탐조객의 소음 때문에 놀라 날아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한탄강 여울 탐조대 앞에 새들을 유인하기 위해 먹이를 뿌려 놓곤 합니다. 하지만 잠자리에 뿌린 먹이는 다른 야생 동물과 그런 동물을 쫓아오는 천적을 불러들여 두루미를 위협한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연관 기사] ☞ 전봇대 뽑고 먹이주고... 순천만의 정성

두루미의 마지막 피난처 철원... 불안한 공존



철원의 두루미 개체 수는 최근 수년 동안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철원의 서식 환경이 개선된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의 서식 여건이 열악해져 철원으로 모여들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실제로 한때 천 마리가 넘는 두루미류가 월동했던 파주에서는 이제는 백여 마리만 볼 수 있습니다. 김포 홍도평은 한때 백 마리가 넘는 재두루미가 월동했지만 지금은 열 마리가 채 안 됩니다. 연천 임진강 일대도 군남댐에 물을 채우면서 두루미 개체 수가 1/3 수준으로 격감했습니다.

사실상 철원은 한반도에서 두루미의 마지막 피난처인 셈입니다. 이런 피난처가 언제까지 유지될 것인지, 철원의 철새는 불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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