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 이야기②] 전봇대 뽑고 먹이 주고…순천만의 정성

입력 2016.01.27 (11:39) 수정 2016.02.0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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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두루미 가족이 걷고 있습니다. 앞과 뒤에 엄마와 아빠가 있고 가운데 새는 어린 유조입니다. 어린 흑두루미는 목이 흰색이 아니고 갈색이기 때문에 금방 알아볼 수 있습니다. 순천만 대대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하지만 이런 평화로운 모습을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사람들이 다니는 농로 위를 흑두루미 가족이 걷고 있다는 것, 그만큼 흑두루미가 사람을 덜 경계한다는 걸 보여줍니다.

농로 통행제한 현수막농로 통행제한 현수막


산책로아닙니다 표지판산책로아닙니다 표지판


흑두루미가 마음 놓고 농로를 걸을 수 있는 건 주변에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겨울철엔 대대들에서 사람들의 통행을 제한하는 겁니다.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농민들의 출입도 통제합니다. 자전거와 차량의 출입도 통제합니다. 농로를 갈대차벽으로 막고 '이곳은 산책로가 아닙니다. 새들을 위해 농로 출입을 삼가주세요'라고 현수막을 걸어 놓습니다.

갈대차벽은 대대들을 둘러싸고 길게 세워져 있습니다. 새들을 위해 주변 도로를 오가는 사람들을 가려줄 뿐만 아니라 밤에는 차량의 불빛을 차단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철새지킴이철새지킴이


순천만 철새지킴이 캡션순천만 철새지킴이 캡션


차벽만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들녘을 지킵니다. 철새지킴이들은 순천만 들판에서 농사를 짓는 주민들입니다. '흑두루미 영농단'을 꾸려서 철새를 방해하는 사람이 없도록 지키는 겁니다. 처음에는 농로 출입 제한이 불편하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주민도 있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고 합니다. 철새가 늘고 탐방객도 늘면서 철새 보호 활동에 따른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게 된 겁니다.

흑두루미 캡션흑두루미 캡션


대대들의 벼는 농약을 쓰지 않는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합니다. 낙곡을 먹는 흑두루미가 혹시라도 농약의 해를 입지 않도록 최대한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겁니다. 또 추수가 끝난 논에 볏짚을 그대로 둡니다. 볏짚에 붙은 낙곡이 그만큼 들판에 많이 널리기 때문에 흑두루미의 먹거리가 많아집니다.

볏짚에는 낙곡만 있는 게 아닙니다. 볏짚 아래는 추운 겨울에도 각종 곤충이 서식합니다. 흑두루미는 볏짚을 들춰내고 그런 곤충도 찾아 먹으면서 동물성 영양분을 섭취합니다. 동물성 먹이는 월동뿐만 아니라 봄철에 번식지로 장거리 여행을 위해 중요한 영양분입니다.

먹이 주는 주민먹이 주는 주민


아침이면 주민들은 대대들에 철새 먹이를 뿌려줍니다.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수확물 일부를 새들을 위해 뿌려주는 겁니다. 요즘 철에는 하루 250㎏을 뿌려줍니다. 흑두루미가 번식지로 떠나는 3월이 다가오면 더 많은 양의 먹이를 줍니다. 이런 먹이는 흑두루미만 먹는 게 아닙니다. 기러기와 각종 오리류도 순천만에서 낙곡을 먹습니다.

전봇대 없는 대대들전봇대 없는 대대들


순천만 대대들에는 너른 들판에 전봇대가 하나도 없습니다. 흑두루미를 위해 순천시가 전봇대를 모두 제거했습니다. 흑두루미가 전깃줄에 걸려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 잇따르자 지난 2009년 280여 개의 전봇대를 뽑아버린 겁니다.

두루미의 뼈는 속이 비어있기 때문에 비행 중에 전깃줄에 걸리면 다리나 날개가 쉽게 부러지고 맙니다. 전봇대 제거를 놓고 당연히 전기를 사용하는 농민들의 불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순천시는 주민들을 설득하고 대신 원동기를 보급해 전봇대 제거에 동의를 이끌어냈습니다.

[연관 기사] ☞ [자연과 인간] 잠자리 조성…흑두루미 모여든다

사람 근처 오리들사람 근처 오리들


순천만 사람들의 마음을 이제는 새들도 조금은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리류는 사람들이 가까이 있어도 달아나질 않습니다. 물론 흑두루미는 오리류와 다릅니다. 사람이 접근하면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고개를 들고 경계하다가 사람이 좀 더 가까이 오면 날아오릅니다. 아직은 사람이 큰 위험인 겁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철새 보호가 계속 이어진다면, 언젠가는 탐방객들이 망원경 도움 없이 바로 옆에서 흑두루미를 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연관기사]
[순천만 이야기①] 흑두루미 천마리 순천만에 깃들다
[순천만 이야기③] 흑두루미 지켰더니 멸종위기종 ‘피난처’된 순천만
[순천만 이야기④] 흑두루미 계속 늘어나는데…부족한 먹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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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천만 이야기②] 전봇대 뽑고 먹이 주고…순천만의 정성
    • 입력 2016-01-27 11:39:29
    • 수정2016-02-06 09:05:27
    취재K
흑두루미 가족이 걷고 있습니다. 앞과 뒤에 엄마와 아빠가 있고 가운데 새는 어린 유조입니다. 어린 흑두루미는 목이 흰색이 아니고 갈색이기 때문에 금방 알아볼 수 있습니다. 순천만 대대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하지만 이런 평화로운 모습을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사람들이 다니는 농로 위를 흑두루미 가족이 걷고 있다는 것, 그만큼 흑두루미가 사람을 덜 경계한다는 걸 보여줍니다.

농로 통행제한 현수막


산책로아닙니다 표지판


흑두루미가 마음 놓고 농로를 걸을 수 있는 건 주변에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겨울철엔 대대들에서 사람들의 통행을 제한하는 겁니다.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농민들의 출입도 통제합니다. 자전거와 차량의 출입도 통제합니다. 농로를 갈대차벽으로 막고 '이곳은 산책로가 아닙니다. 새들을 위해 농로 출입을 삼가주세요'라고 현수막을 걸어 놓습니다.

갈대차벽은 대대들을 둘러싸고 길게 세워져 있습니다. 새들을 위해 주변 도로를 오가는 사람들을 가려줄 뿐만 아니라 밤에는 차량의 불빛을 차단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철새지킴이


순천만 철새지킴이 캡션


차벽만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들녘을 지킵니다. 철새지킴이들은 순천만 들판에서 농사를 짓는 주민들입니다. '흑두루미 영농단'을 꾸려서 철새를 방해하는 사람이 없도록 지키는 겁니다. 처음에는 농로 출입 제한이 불편하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주민도 있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고 합니다. 철새가 늘고 탐방객도 늘면서 철새 보호 활동에 따른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게 된 겁니다.

흑두루미 캡션


대대들의 벼는 농약을 쓰지 않는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합니다. 낙곡을 먹는 흑두루미가 혹시라도 농약의 해를 입지 않도록 최대한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겁니다. 또 추수가 끝난 논에 볏짚을 그대로 둡니다. 볏짚에 붙은 낙곡이 그만큼 들판에 많이 널리기 때문에 흑두루미의 먹거리가 많아집니다.

볏짚에는 낙곡만 있는 게 아닙니다. 볏짚 아래는 추운 겨울에도 각종 곤충이 서식합니다. 흑두루미는 볏짚을 들춰내고 그런 곤충도 찾아 먹으면서 동물성 영양분을 섭취합니다. 동물성 먹이는 월동뿐만 아니라 봄철에 번식지로 장거리 여행을 위해 중요한 영양분입니다.

먹이 주는 주민


아침이면 주민들은 대대들에 철새 먹이를 뿌려줍니다.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수확물 일부를 새들을 위해 뿌려주는 겁니다. 요즘 철에는 하루 250㎏을 뿌려줍니다. 흑두루미가 번식지로 떠나는 3월이 다가오면 더 많은 양의 먹이를 줍니다. 이런 먹이는 흑두루미만 먹는 게 아닙니다. 기러기와 각종 오리류도 순천만에서 낙곡을 먹습니다.

전봇대 없는 대대들


순천만 대대들에는 너른 들판에 전봇대가 하나도 없습니다. 흑두루미를 위해 순천시가 전봇대를 모두 제거했습니다. 흑두루미가 전깃줄에 걸려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 잇따르자 지난 2009년 280여 개의 전봇대를 뽑아버린 겁니다.

두루미의 뼈는 속이 비어있기 때문에 비행 중에 전깃줄에 걸리면 다리나 날개가 쉽게 부러지고 맙니다. 전봇대 제거를 놓고 당연히 전기를 사용하는 농민들의 불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순천시는 주민들을 설득하고 대신 원동기를 보급해 전봇대 제거에 동의를 이끌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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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근처 오리들


순천만 사람들의 마음을 이제는 새들도 조금은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리류는 사람들이 가까이 있어도 달아나질 않습니다. 물론 흑두루미는 오리류와 다릅니다. 사람이 접근하면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고개를 들고 경계하다가 사람이 좀 더 가까이 오면 날아오릅니다. 아직은 사람이 큰 위험인 겁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철새 보호가 계속 이어진다면, 언젠가는 탐방객들이 망원경 도움 없이 바로 옆에서 흑두루미를 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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