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THAAD)와 한미동맹 그리고 오바마

입력 2016.02.28 (15:41) 수정 2016.02.2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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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THAAD)는 죽지 않았다.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라지지도 않는다. 유엔 제재가 성공하게 됐으니 그만하면 잘된 압박카드였지 않느냐는 등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관심을 돌릴 상황도 아니다.

간단히 말하면 늦어도 다음 주에는 사드 배치 협의를 위한 한미 공동실무단이 발족한다. 한미 양국의 물밑 움직임을 조금만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주한미군에 사드를 배치한다’는 기본 방침에는 조금도 굴절이 없다. 유엔 안보리 결의 추진과정 등에 영향받고 중국의 고강도 문제 제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사드 배치와 관련해 한미 양국이 정했던 전략적 선택’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이다. 한미공동실무단의 발족은‘사드를 배치한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바로가기]☞ 미중 외교장관회담 공동 기자회견 (전문)



늦어도 다음주 중 한미 사드 실무단 발족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변했다는 근거로 혹자들은 우선 케리 미 국무장관의 언급을 든다. 지난 23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의 회견에서 케리 장관은 “(북한의) 비핵화만 이룰 수 있다면 사드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사드 배치는 아직 결정이 나지 않았다”는 언급도 했다. 이를 놓고 미국 입장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고 보는 것은 합당치 않은 해석이다. 케리의 언급은 오히려 ‘사드 배치를 계속 추진하거나 사드 배치를 완료해놓고 비핵화 협상이 열릴 경우 추가 카드로 쓰겠다’는 선언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마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북한 핵을 막지 못하면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막지 못한다’며 핵무장 카드로 중국 지도부를 압박해서 6자회담을 성사시켰던 접근방법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케리 장관 발언‘사드 포기’로 볼 수 없어

혹자들은 해리 해리스 태평양군 사령관의 지난 25일 펜타곤 회견 발언을 입장 변화를 시사하는 더 확실한 근거로 들기도 한다. 해리스 사령관은 “한국과 미국 모두 아직 사드의 한국 배치에 동의하지 않았다. 아직 배치가 결정된 것은 아니며 논의하기로 결정한 것이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식의 언급은 ‘중국이 관여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배치에 적극성을 보이던 데서 한 발 빼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문제 제기다. 하지만 이 역시 합당한 해석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해리스 사령관은 기자의 질문내용에 따라 충실하게 답변했을 뿐이고 그 내용도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얘기했을 뿐이다.

케리 장관과 해리스 사령관의 발언을 해석할 때 유념해야 할 것이 또 있다. 당시 상황은 미국과 중국이 유엔 안보리 제재방안을 놓고 막판 담판을 짓던 중이었다. 북한에 대한 제재를 확실하게 강화하는 쪽으로 중국의 양보를 얻어야 하는 매우 민감한 국면이었다. 사드에 크게 반발하고 있는 중국이 이를 빌미로 제재안을 약화시키지 않도록 입조심이 필요하던 시기였다.

‘사드에 대한 한미 양국의 발언이 제재협상에 악영향을 주지 않도록 조심하자’는 대응 지침은 미국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 외교부에서 마련했다고 한다. ‘사드는 한국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한 왕이 외교부장의 미 CSIS 발언을 지켜본 워싱턴 씽크탱크 관계자의 설명이다. 케리 장관이나 해리스 사령관 모두 ‘사드 배치가 필요하다’는 기존의 발언이나 입장을 바꾼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발언 수위를 조절하고 언어 선택에 더 신경을 쓴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지난 7일 서울 국방부에서 커티스 스카파로티 한미연합사령관이 한미 긴급 대책회의를 하기에 앞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지난 7일 서울 국방부에서 커티스 스카파로티 한미연합사령관이 한미 긴급 대책회의를 하기에 앞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조심스런 사드 언급은 한국과 조율된 것”

더욱 중요한 사실관계가 하나 더 있다. 미국 정부가 사드 협상 권한을 커티스 스카파로티 주한미군 사령관에게 일임했다는 점이다. 밖으로 공표하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오바마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미국 정부의 결정사항이다. 그래서 사드를 둘러싼 협상도 한미양국의 국방부가 하지 않고 한국은 국방부가, 미국은 주한미군사령부가 연합사의 모자를 쓰고 진행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사드와 관련해서는 스카파로티 사령관의 결심과 언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카파로티 사령관은 지난 24일 미 하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양국의 공동실무단이 앞으로 1주일 안에 첫 회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 제재 결의안의 채택 등에 영향받아 며칠 늦춰질 수는 있지만 한미공동실무단의 발족과 협의 개시는 기정사실화된 것으로 봐야 한다. 태평양 사령관도 한반도 문제에 관여하지만 사드 문제에 대한 우선적인 결정권은 스카파로티 사령관에게 주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발언이 그 어떤 언급보다 중요하다.

사드 재고 없고 중국 변수 있어 배치해도 늦어질듯

이처럼 ‘사드 배치가 미국과 중국의 타협으로 물건너 갔다’는 일각의 관측은 사실과 다르지만 몇 가지 변수는 남아 있다. 우선 배치 시기에 대한 결정이다. 당초 미군 일각에서는 사드의 즉각 배치를 위한 물밑 준비 움직임도 보였다. 텍사스 포트 블리스(Fort Bliss)에 배치된 사드 포대를 올여름 이전에 들여오겠다는 계획 아래 준비가 진행된 것이다. 이는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속담처럼 ‘한국 정부가 달아올랐을 때 실행하자’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주부터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다. 중고 사드를 서둘러 배치할 긴급성도 없을뿐더러 시간 조절을 통해 중국 정부의 입장을 배려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의견이 힘을 받은 것이다. ‘조급해하지 않는다', '결정에 시간이 걸린다’는 캐리 장관 등의 발언은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사드는 현재 재고가 없고 빨라도 내년이나 돼야 7번 포대가 공장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만큼 이렇게 될 경우 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합의가 이뤄진다 해도 시기는 한참 늦어질 수도 있다.

만일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 'KN08'을 시험발사하고 실전 배치하는 등 미국을 자극할 정도로 한반도 상황이 급박해진다면 사드를 ‘배치가 아닌 긴급전개’ 형식으로 한달 안에라도 한반도에 급파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 거론되고 있는 사드의 한반도 영구 배치가 이뤄지려면 물리적으로도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배치하기로 결정이 이뤄지면 배치 지역을 공표하고 필요한 공사를 해야 하며 미군당국 차원에서는 사드 포대를 준비하고 포대원에 대한 훈련과 인사발령을 내야 한다. 한국 내에서는 배치 지역 주민에 대한 설득 작업도 필요하다. 이래저래 서둘러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드 배치가 한미동맹 명운 문제로 비화

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는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루비콘 강을 건넌 사안이다. 이미 '올인 배팅'을 했다. 한미가 사드 배치 문제를 협의하겠다고 공동으로 발표함으로써 미국도 돌아설 수 없는 길에 들어섰다. 사드 배치 문제는 한미동맹의 명운과 미래를 좌우하는 사안으로 커져 버렸다. 한미 군 당국이 공동 발표까지 한 상황에서 유야무야할 경우 한미동맹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될 형국에 처했다.

더군다나 중국의 반대 때문에 한미 양국이 사드를 포기할 경우 6·25 전쟁 이후 한미군사동맹을 중국이 좌절시키는 첫 사례로 기록되게 된다. 이렇게 될 경우 미국 같은 대국이야 별 탈이 없겠지만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국가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한국 정부는 큰 타격을 피할 수 없다. 사드보다는 선제공격용 한국형 '미사일방어(MD:Missile Defence)'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 시급하고 중국을 자극해야 북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사드 무용론자의 입장에서도 사드 배치론의 다른 측면을 고려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됐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개막식에 참석한, 버락 오바마(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함께 앉아 악수를 나누고 있다.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개막식에 참석한, 버락 오바마(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함께 앉아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드 배치 여부 결정권 한국 정부가 행사해야

한 가지 더 우려되는 것은 오바마 대통령의 의사 결정 스타일이다. 지난 3년간 백악관을 드나들며 가까이서 관찰해 본 오바마 대통령의 의사 결정 방식은 합리적 실용주의다. 사드와 관련해서도 중국의 안보 이익을 침해한다는 입장을 반박할 수 없게 되면 타협점을 모색할 수 있는 스타일이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 등 미국 정치권의 일반적인 정서와는 달리 중국과의 대결보다는 타협을 통한 상생을 우선시하고 있다. 한국 정부나 미군 당국의 입장을 고려해서 오바마 대통령이 당장 다른 소리를 하지는 못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다음 달 미국에서 열릴 핵안보정상회의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오게 하려면 선물 보따리가 있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 입장에서 남중국해는 양보할 수 없는 현안이지만 사드는 긴박한 현안은 아닌 상황이다.

만일 미·중 정상이 둘이 나서서 사드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게 되면 한국 정부의 위신은 크게 실추된다. 사드를 배치하든 연기하든 또는 포기하든 결정을 미국 정부가 주도할 수 있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 한국의 외교당국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사드 결정권을 한국 정부가 행사할 수 있도록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사드를 포기하는 출구전략을 마련해도 한국 정부가 만들어야 한다. 사드 문제는 자위권(自衛權)이 아니라 자주권(自主權)의 문제로 성격이 변전(變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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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드(THAAD)와 한미동맹 그리고 오바마
    • 입력 2016-02-28 15:41:45
    • 수정2016-02-28 16:4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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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THAAD)는 죽지 않았다.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라지지도 않는다. 유엔 제재가 성공하게 됐으니 그만하면 잘된 압박카드였지 않느냐는 등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관심을 돌릴 상황도 아니다. 간단히 말하면 늦어도 다음 주에는 사드 배치 협의를 위한 한미 공동실무단이 발족한다. 한미 양국의 물밑 움직임을 조금만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주한미군에 사드를 배치한다’는 기본 방침에는 조금도 굴절이 없다. 유엔 안보리 결의 추진과정 등에 영향받고 중국의 고강도 문제 제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사드 배치와 관련해 한미 양국이 정했던 전략적 선택’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이다. 한미공동실무단의 발족은‘사드를 배치한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바로가기]☞ 미중 외교장관회담 공동 기자회견 (전문)
늦어도 다음주 중 한미 사드 실무단 발족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변했다는 근거로 혹자들은 우선 케리 미 국무장관의 언급을 든다. 지난 23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의 회견에서 케리 장관은 “(북한의) 비핵화만 이룰 수 있다면 사드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사드 배치는 아직 결정이 나지 않았다”는 언급도 했다. 이를 놓고 미국 입장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고 보는 것은 합당치 않은 해석이다. 케리의 언급은 오히려 ‘사드 배치를 계속 추진하거나 사드 배치를 완료해놓고 비핵화 협상이 열릴 경우 추가 카드로 쓰겠다’는 선언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마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북한 핵을 막지 못하면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막지 못한다’며 핵무장 카드로 중국 지도부를 압박해서 6자회담을 성사시켰던 접근방법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케리 장관 발언‘사드 포기’로 볼 수 없어 혹자들은 해리 해리스 태평양군 사령관의 지난 25일 펜타곤 회견 발언을 입장 변화를 시사하는 더 확실한 근거로 들기도 한다. 해리스 사령관은 “한국과 미국 모두 아직 사드의 한국 배치에 동의하지 않았다. 아직 배치가 결정된 것은 아니며 논의하기로 결정한 것이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식의 언급은 ‘중국이 관여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배치에 적극성을 보이던 데서 한 발 빼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문제 제기다. 하지만 이 역시 합당한 해석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해리스 사령관은 기자의 질문내용에 따라 충실하게 답변했을 뿐이고 그 내용도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얘기했을 뿐이다. 케리 장관과 해리스 사령관의 발언을 해석할 때 유념해야 할 것이 또 있다. 당시 상황은 미국과 중국이 유엔 안보리 제재방안을 놓고 막판 담판을 짓던 중이었다. 북한에 대한 제재를 확실하게 강화하는 쪽으로 중국의 양보를 얻어야 하는 매우 민감한 국면이었다. 사드에 크게 반발하고 있는 중국이 이를 빌미로 제재안을 약화시키지 않도록 입조심이 필요하던 시기였다. ‘사드에 대한 한미 양국의 발언이 제재협상에 악영향을 주지 않도록 조심하자’는 대응 지침은 미국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 외교부에서 마련했다고 한다. ‘사드는 한국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한 왕이 외교부장의 미 CSIS 발언을 지켜본 워싱턴 씽크탱크 관계자의 설명이다. 케리 장관이나 해리스 사령관 모두 ‘사드 배치가 필요하다’는 기존의 발언이나 입장을 바꾼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발언 수위를 조절하고 언어 선택에 더 신경을 쓴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지난 7일 서울 국방부에서 커티스 스카파로티 한미연합사령관이 한미 긴급 대책회의를 하기에 앞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조심스런 사드 언급은 한국과 조율된 것” 더욱 중요한 사실관계가 하나 더 있다. 미국 정부가 사드 협상 권한을 커티스 스카파로티 주한미군 사령관에게 일임했다는 점이다. 밖으로 공표하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오바마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미국 정부의 결정사항이다. 그래서 사드를 둘러싼 협상도 한미양국의 국방부가 하지 않고 한국은 국방부가, 미국은 주한미군사령부가 연합사의 모자를 쓰고 진행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사드와 관련해서는 스카파로티 사령관의 결심과 언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카파로티 사령관은 지난 24일 미 하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양국의 공동실무단이 앞으로 1주일 안에 첫 회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 제재 결의안의 채택 등에 영향받아 며칠 늦춰질 수는 있지만 한미공동실무단의 발족과 협의 개시는 기정사실화된 것으로 봐야 한다. 태평양 사령관도 한반도 문제에 관여하지만 사드 문제에 대한 우선적인 결정권은 스카파로티 사령관에게 주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발언이 그 어떤 언급보다 중요하다. 사드 재고 없고 중국 변수 있어 배치해도 늦어질듯 이처럼 ‘사드 배치가 미국과 중국의 타협으로 물건너 갔다’는 일각의 관측은 사실과 다르지만 몇 가지 변수는 남아 있다. 우선 배치 시기에 대한 결정이다. 당초 미군 일각에서는 사드의 즉각 배치를 위한 물밑 준비 움직임도 보였다. 텍사스 포트 블리스(Fort Bliss)에 배치된 사드 포대를 올여름 이전에 들여오겠다는 계획 아래 준비가 진행된 것이다. 이는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속담처럼 ‘한국 정부가 달아올랐을 때 실행하자’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주부터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다. 중고 사드를 서둘러 배치할 긴급성도 없을뿐더러 시간 조절을 통해 중국 정부의 입장을 배려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의견이 힘을 받은 것이다. ‘조급해하지 않는다', '결정에 시간이 걸린다’는 캐리 장관 등의 발언은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사드는 현재 재고가 없고 빨라도 내년이나 돼야 7번 포대가 공장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만큼 이렇게 될 경우 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합의가 이뤄진다 해도 시기는 한참 늦어질 수도 있다. 만일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 'KN08'을 시험발사하고 실전 배치하는 등 미국을 자극할 정도로 한반도 상황이 급박해진다면 사드를 ‘배치가 아닌 긴급전개’ 형식으로 한달 안에라도 한반도에 급파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 거론되고 있는 사드의 한반도 영구 배치가 이뤄지려면 물리적으로도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배치하기로 결정이 이뤄지면 배치 지역을 공표하고 필요한 공사를 해야 하며 미군당국 차원에서는 사드 포대를 준비하고 포대원에 대한 훈련과 인사발령을 내야 한다. 한국 내에서는 배치 지역 주민에 대한 설득 작업도 필요하다. 이래저래 서둘러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드 배치가 한미동맹 명운 문제로 비화 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는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루비콘 강을 건넌 사안이다. 이미 '올인 배팅'을 했다. 한미가 사드 배치 문제를 협의하겠다고 공동으로 발표함으로써 미국도 돌아설 수 없는 길에 들어섰다. 사드 배치 문제는 한미동맹의 명운과 미래를 좌우하는 사안으로 커져 버렸다. 한미 군 당국이 공동 발표까지 한 상황에서 유야무야할 경우 한미동맹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될 형국에 처했다. 더군다나 중국의 반대 때문에 한미 양국이 사드를 포기할 경우 6·25 전쟁 이후 한미군사동맹을 중국이 좌절시키는 첫 사례로 기록되게 된다. 이렇게 될 경우 미국 같은 대국이야 별 탈이 없겠지만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국가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한국 정부는 큰 타격을 피할 수 없다. 사드보다는 선제공격용 한국형 '미사일방어(MD:Missile Defence)'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 시급하고 중국을 자극해야 북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사드 무용론자의 입장에서도 사드 배치론의 다른 측면을 고려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됐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개막식에 참석한, 버락 오바마(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함께 앉아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드 배치 여부 결정권 한국 정부가 행사해야 한 가지 더 우려되는 것은 오바마 대통령의 의사 결정 스타일이다. 지난 3년간 백악관을 드나들며 가까이서 관찰해 본 오바마 대통령의 의사 결정 방식은 합리적 실용주의다. 사드와 관련해서도 중국의 안보 이익을 침해한다는 입장을 반박할 수 없게 되면 타협점을 모색할 수 있는 스타일이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 등 미국 정치권의 일반적인 정서와는 달리 중국과의 대결보다는 타협을 통한 상생을 우선시하고 있다. 한국 정부나 미군 당국의 입장을 고려해서 오바마 대통령이 당장 다른 소리를 하지는 못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다음 달 미국에서 열릴 핵안보정상회의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오게 하려면 선물 보따리가 있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 입장에서 남중국해는 양보할 수 없는 현안이지만 사드는 긴박한 현안은 아닌 상황이다. 만일 미·중 정상이 둘이 나서서 사드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게 되면 한국 정부의 위신은 크게 실추된다. 사드를 배치하든 연기하든 또는 포기하든 결정을 미국 정부가 주도할 수 있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 한국의 외교당국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사드 결정권을 한국 정부가 행사할 수 있도록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사드를 포기하는 출구전략을 마련해도 한국 정부가 만들어야 한다. 사드 문제는 자위권(自衛權)이 아니라 자주권(自主權)의 문제로 성격이 변전(變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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