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연기장병 특채 그 후, 세심한 배려 아쉬운 SK·롯데

입력 2016.03.06 (20:02) 수정 2016.03.0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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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한반도에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 때 나라를 지키겠다는 '애국심'과 '열정'으로 전역연기를 선택한 장병들이 있었다. 롯데와 SK는 당시 해당 장병들을 대상으로 특별채용을 진행하겠다고 나섰다. 두 대기업은 "이들의 열정과 책임감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연관 기사] ☞ “남다른 책임감 높이 평가” 전역 연기 장병 채용

'전역 연기 장병 특채'는 지상파 뉴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매체에서 주요 뉴스로 보도하는 등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역연기장병들을 직접 격려하기도 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전역연기자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8월 28일 경기도 포천에서 열린 통합화력훈련을 관람하고 나서 전역연기 장병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8월 28일 경기도 포천에서 열린 통합화력훈련을 관람하고 나서 전역연기 장병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특별채용 대상 전역연기자 62명 현황 조사

SK와 롯데의 특별채용 대상이었던 1차 전역연기자 87명 가운데 62명에게 연락이 닿았다. 취재 결과 특별채용 진행 당시 두 기업에 입사하겠다는 뜻을 밝힌 사람은 38명이었고 그중 26명은 현재 SK와 롯데 계열사와 자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다른 10명은 회사를 나왔고, 2명은 채용과정에서 탈락(1명은 지원서 제출 단계에서 탈락, 다른 1명은 실무테스트 단계에서 탈락)했다고 답했다. 33명은 복학이나 진로 문제 등의 이유로 입사를 선택하지 않았다.

SK와 롯데의 특별채용을 통해 입사했던 37명(현재 근무 26명, 퇴사 10명, 중간 탈락 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이 발령받았던 직무 기준으로 유통판매 10명, 관리직 9명, 제조 6명, 영업이 5명, 콜센터 상담 4명, 자동차 정비 2명, 화학 1명이었다.


[다운받기] 전역연기장병현황 [PDF]

전역연기장병 '판매·영업·콜센터' 업무에 대거 배치

두 대기업에 입사했던 37명 가운데 판매, 영업, 콜센터 업무에 발령받은 전역연기자들은 20명으로 절반이 넘는다. 이 직종은 원래 고되고 단순 반복적이라는 등의 이유로 퇴사율이 높다. 특히 콜센터에 발령받은 전역연기자 4명은 모두 퇴사했다.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는 직무에 두 번 연속 배치받고 결국 특별채용을 포기한 전역연기자도 있다. 서상룡(25, 육군 65사단 전역) 씨는 SK 특별채용 설명회에서 면담을 통해 생산직 또는 기술직을 희망한다고 채용담당자에게 적성을 밝혔다. 반도체 관련 기술을 다룰 수 있는 SK 하이닉스를 1지망으로 썼다. 그러나 그가 처음 배정받은 곳은 SK 자회사 E&S의 도시가스 콜센터(전화상담업무)였다.

그는 콜센터에서 1주일간 실무테스트를 받은 뒤 불합격했다. 성격상 서비스직을 피하길 바랐던 만큼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SK 측이 서 씨에게 전화해 "떨어졌으니 다시 알아봐주겠다"고 하고 다시 연결해준 곳 역시 다른 자회사 콜센터였다.

서 씨는 SK측으로부터 "정원이 찼다는 이유를 대며 생산직이나 기술직은 배정해주기 힘들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적성과 다르게 연거푸 콜센터로 배정되자 SK 특별채용 기회를 포기했다. 그는 "대부분 전역연기자들이 발령받은 곳은 SK 주요 계열사가 아닌 아웃소싱된 자회사였다"고 밝혔다.



박진성(24, 육군 28사단 전역) 씨는 SK 자회사인 E&S 도시가스 전화 상담실 실무 테스트를 받고 떨어졌다가 보안업체인 SK NSOK로 발령받았다. 그는 "롯데에 간 친구들도 마트 같은 곳에서 일한다"며 "마트는 일반 채용사이트를 통해서도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면서 "특별채용의 장점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검정고시라고 대놓고 무시"

별채용이라는 '뜻밖의 행운'이 '학력차별의 쓰라림'으로 귀결된 경험을 가진 전역장병도 있다. 김지수(22, 육군 7시단 전역) 씨는 전역연기 특별채용 대상자에 해당돼 자기소개서 제출과 면접을 거쳐 롯데제과에 입사했다.

지난 해 9월 입사를 했지만 한달을 채 견디지 못했다. 지사장(경기도 00지사)의 막말 때문이었다. 김 씨는 자신의 이력서를 본 지사장이 '검정고시 출신'이라고 대놓고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다른 가족들의 학벌까지 들먹이는 지사장의 태도에 실망해 스스로 퇴사를 결정했다. 이에 대해 해당 지사장은 "모르는 일이다"라며 "오히려 평소 직원들에게 학력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고 부인했다.

김지수 씨는 전역 연기 장병으로 롯데에 특별채용됐지만 한 달 만에 퇴사했다.김지수 씨는 전역 연기 장병으로 롯데에 특별채용됐지만 한 달 만에 퇴사했다.


SK·롯데 "좋은 취지였다"...세심한 관리는 아쉬워

SK와 롯데 측은 모두 "좋은 취지에서 진행한 채용"이라고 밝혔다. SK 그룹 홍보실은 두 번 연속 콜센터에 배치 받은 전역연기자에 대해 "채용을 위해 면담과 업무 교육을 진행했다"며 "업무 배치도 상담을 통해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학력과 자격증 등 경력사항을 고려했을 때 모두를 원하는 부서에 배치할 수 없었던 점은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롯데그룹 홍보실 역시 "박사 공채도 20~30%가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 한다"며 "그 정도 비율이 퇴사하는 게 특별한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좌),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우)SK그룹 최태원 회장(좌),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우)


특채 진행 당시 최태원 SK 회장은 "전역을 연기한 장병이 보여 준 강한 열정과 패기는 대한민국의 미래와 경제 발전에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며 "우리 사회와 기업은 이런 정신을 평가해야한다"고 말했다. 롯데 측도 당시 "급박한 상황에서 보여준 국가관과 동료애라면 롯데 어디에서도 충분히 역할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특별채용의 이유를 밝혔다. 전역 연기 장병들의 학력이나 배경 등을 떠나 그들의 열정을 높이 샀다는 말이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지금, 특별채용한 전역 연기 장병 가운데 상당수는 "특별채용이 일반채용과 다른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다. SK와 롯데가 전역 연기장병 특별채용을 이벤트성이나 홍보용으로 활용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열정과 패기를 진정으로 높이 산 것인지 아쉬움이 남는다.

KBS 디지털뉴스 인턴 김은경 kimeunkyungkb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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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한반도에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 때 나라를 지키겠다는 '애국심'과 '열정'으로 전역연기를 선택한 장병들이 있었다. 롯데와 SK는 당시 해당 장병들을 대상으로 특별채용을 진행하겠다고 나섰다. 두 대기업은 "이들의 열정과 책임감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연관 기사] ☞ “남다른 책임감 높이 평가” 전역 연기 장병 채용

'전역 연기 장병 특채'는 지상파 뉴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매체에서 주요 뉴스로 보도하는 등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역연기장병들을 직접 격려하기도 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전역연기자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8월 28일 경기도 포천에서 열린 통합화력훈련을 관람하고 나서 전역연기 장병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특별채용 대상 전역연기자 62명 현황 조사

SK와 롯데의 특별채용 대상이었던 1차 전역연기자 87명 가운데 62명에게 연락이 닿았다. 취재 결과 특별채용 진행 당시 두 기업에 입사하겠다는 뜻을 밝힌 사람은 38명이었고 그중 26명은 현재 SK와 롯데 계열사와 자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다른 10명은 회사를 나왔고, 2명은 채용과정에서 탈락(1명은 지원서 제출 단계에서 탈락, 다른 1명은 실무테스트 단계에서 탈락)했다고 답했다. 33명은 복학이나 진로 문제 등의 이유로 입사를 선택하지 않았다.

SK와 롯데의 특별채용을 통해 입사했던 37명(현재 근무 26명, 퇴사 10명, 중간 탈락 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이 발령받았던 직무 기준으로 유통판매 10명, 관리직 9명, 제조 6명, 영업이 5명, 콜센터 상담 4명, 자동차 정비 2명, 화학 1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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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연기장병 '판매·영업·콜센터' 업무에 대거 배치

두 대기업에 입사했던 37명 가운데 판매, 영업, 콜센터 업무에 발령받은 전역연기자들은 20명으로 절반이 넘는다. 이 직종은 원래 고되고 단순 반복적이라는 등의 이유로 퇴사율이 높다. 특히 콜센터에 발령받은 전역연기자 4명은 모두 퇴사했다.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는 직무에 두 번 연속 배치받고 결국 특별채용을 포기한 전역연기자도 있다. 서상룡(25, 육군 65사단 전역) 씨는 SK 특별채용 설명회에서 면담을 통해 생산직 또는 기술직을 희망한다고 채용담당자에게 적성을 밝혔다. 반도체 관련 기술을 다룰 수 있는 SK 하이닉스를 1지망으로 썼다. 그러나 그가 처음 배정받은 곳은 SK 자회사 E&S의 도시가스 콜센터(전화상담업무)였다.

그는 콜센터에서 1주일간 실무테스트를 받은 뒤 불합격했다. 성격상 서비스직을 피하길 바랐던 만큼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SK 측이 서 씨에게 전화해 "떨어졌으니 다시 알아봐주겠다"고 하고 다시 연결해준 곳 역시 다른 자회사 콜센터였다.

서 씨는 SK측으로부터 "정원이 찼다는 이유를 대며 생산직이나 기술직은 배정해주기 힘들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적성과 다르게 연거푸 콜센터로 배정되자 SK 특별채용 기회를 포기했다. 그는 "대부분 전역연기자들이 발령받은 곳은 SK 주요 계열사가 아닌 아웃소싱된 자회사였다"고 밝혔다.



박진성(24, 육군 28사단 전역) 씨는 SK 자회사인 E&S 도시가스 전화 상담실 실무 테스트를 받고 떨어졌다가 보안업체인 SK NSOK로 발령받았다. 그는 "롯데에 간 친구들도 마트 같은 곳에서 일한다"며 "마트는 일반 채용사이트를 통해서도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면서 "특별채용의 장점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검정고시라고 대놓고 무시"

별채용이라는 '뜻밖의 행운'이 '학력차별의 쓰라림'으로 귀결된 경험을 가진 전역장병도 있다. 김지수(22, 육군 7시단 전역) 씨는 전역연기 특별채용 대상자에 해당돼 자기소개서 제출과 면접을 거쳐 롯데제과에 입사했다.

지난 해 9월 입사를 했지만 한달을 채 견디지 못했다. 지사장(경기도 00지사)의 막말 때문이었다. 김 씨는 자신의 이력서를 본 지사장이 '검정고시 출신'이라고 대놓고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다른 가족들의 학벌까지 들먹이는 지사장의 태도에 실망해 스스로 퇴사를 결정했다. 이에 대해 해당 지사장은 "모르는 일이다"라며 "오히려 평소 직원들에게 학력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고 부인했다.

김지수 씨는 전역 연기 장병으로 롯데에 특별채용됐지만 한 달 만에 퇴사했다.

SK·롯데 "좋은 취지였다"...세심한 관리는 아쉬워

SK와 롯데 측은 모두 "좋은 취지에서 진행한 채용"이라고 밝혔다. SK 그룹 홍보실은 두 번 연속 콜센터에 배치 받은 전역연기자에 대해 "채용을 위해 면담과 업무 교육을 진행했다"며 "업무 배치도 상담을 통해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학력과 자격증 등 경력사항을 고려했을 때 모두를 원하는 부서에 배치할 수 없었던 점은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롯데그룹 홍보실 역시 "박사 공채도 20~30%가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 한다"며 "그 정도 비율이 퇴사하는 게 특별한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좌),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우)

특채 진행 당시 최태원 SK 회장은 "전역을 연기한 장병이 보여 준 강한 열정과 패기는 대한민국의 미래와 경제 발전에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며 "우리 사회와 기업은 이런 정신을 평가해야한다"고 말했다. 롯데 측도 당시 "급박한 상황에서 보여준 국가관과 동료애라면 롯데 어디에서도 충분히 역할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특별채용의 이유를 밝혔다. 전역 연기 장병들의 학력이나 배경 등을 떠나 그들의 열정을 높이 샀다는 말이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지금, 특별채용한 전역 연기 장병 가운데 상당수는 "특별채용이 일반채용과 다른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다. SK와 롯데가 전역 연기장병 특별채용을 이벤트성이나 홍보용으로 활용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열정과 패기를 진정으로 높이 산 것인지 아쉬움이 남는다.

KBS 디지털뉴스 인턴 김은경 kimeunkyungkb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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