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예산 100억 원으로 600억 여객선 현대화?

입력 2016.04.19 (09:02) 수정 2016.04.1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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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사진은 해당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 2주기에 관련된 취재를 위해 며칠 전 제주를 오가는 여객선에 탑승했습니다. 시속 60km가 넘는 속도로 달리는 빠른 쾌속선이었습니다. 겉모습은 물론 내부도 깔끔했고, 조타실에 있는 장비들도 좋아 보였습니다. 전에 해군의 최신 함정에 타본 경험이 있는데, 그런 함정과 비교해도 결코 손색이 없는 배였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랐습니다. 승무원에게 물어보니 이 배가 90년대 초반에 해외에서 만들어진 선령 20년 이상의 중고 여객선이라는 겁니다.

■ 큰 여객선일수록 오래된 배

그래서 연안여객선 현황에 대한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가장 최근 자료는 지난해에 집계된 자료였습니다. 여객선 168척의 톤 수와 여객 정원, 속력과 진수 연도, 운항 항로 등이 적혀 있었습니다. 일부 여객선은 운항이 중단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가장 최신 자료였습니다.

이 자료에서 가장 눈에 띈 건 규모가 큰 여객선일수록 선령이 오래됐다는 점이었습니다. 168척 가운데 1,000톤 이상의 중대형 여객선이 12척이었는데,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배의 선령이 17년, 가장 오래된 배의 선령은 29년이었습니다.



평균을 내보니 23년이 나왔습니다. 대부분이 중고로 도입된 여객선이었고, 선령 제한 25년을 눈앞에 두거나 넘긴 상황이었습니다. 궁금했습니다. 조선 강국 대한민국이 왜 중대형 여객선은 거의 외국에서 들여온 중고일까?

여객선 업체 몇 곳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습니다. 대답은 역시 '돈 문제'였습니다. 세월호 크기인 6천 톤급 배를 새로 만들기 위해서는 600억 원에서 800억 원이 필요한데, 영세한 업체들에는 너무 큰 돈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200억 원 정도의 중고 여객선을 주로 일본에서 수입해서 운영하다가 선령 제한이 다가오면 다시 제3국에 중고로 판다는 겁니다.

■ 애매한 크기 6천 톤급

이번에는 조선업체에 전화를 걸어 물어봤습니다. 우리나라가 조선 강국인데, 여객선 정도는 싼 가격에 우수한 품질로 만들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문의했습니다. 그랬더니 수지가 안 맞는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형 조선소는 주로 초대형 탱크선이나 원양어선, 크루즈선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을 제조하는데, 그런 배를 만들기 위한 초대형 도크에 여객선을 올려놓아서는 적자라는 겁니다.



물론 2천 톤 이하의 중소형 여객선은 우리나라의 중소 조선사들이 많이 만들고 있었지만, 6천 톤급정도의 여객선은 소형 조선사가 만들기에는 너무 크고, 대형 조선사가 만들기에는 너무 작다는 얘기였습니다. 게다가 카페리호나 초쾌속선 같은 경우 표준 선형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초기 제작 비용이 너무 크다는 설명도 나왔습니다.

선령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유지 보수를 잘하면 30년 선령 정도의 배도 운항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세월호 역시 불법 증축과 화물 미고박, 평형수 제거 등이 사고 원인이었을 뿐 배의 노후화 때문에 참사가 일어난 건 아니지 않느냐는 반문이었습니다.

■ 세월호 2주기...합의는 어디에?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사회적 합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낙후된 여객선을 현대화해 제2의 사고를 미리 막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고, 정부 역시 참사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여객선 현대화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지난해 연안 여객에 새로 투입된 배 4척 가운데 3척이 역시 외국에서 들어온 중고 선박이었습니다. 만 5천 톤급 3척이 모두 90년대 초반에 건조된 중고 여객선이었고, 2,100톤급의 비교적 작은 카페리호만 국내에서 새로 만들어진 배였습니다. '사회적 합의'가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올해 들어서는 이른바 '연안여객선 현대화 펀드'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여객선 건조 비용의 절반을 정부가 출자하고, 나머지 35% 정도를 금융기관에서 저리로 융자하면, 여객선 업체는 15% 정도의 초기 비용으로 배를 새로 만들 수 있다는 계획입니다. 여객선도 현대화하고, 조선 산업 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다는 1석2조의 정책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출자하는 금액 50%도 무이자라고는 하지만 15년 후에는 결국 갚아야 할 돈입니다. 금융기관의 대출 역시 금리가 3에서 4%로 싸다고 하지만, 대출 원금이 200억 원에서 300억 원 정도 되면 이자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돈이 없어서 중고 여객선을 들여오는 영세한 여객선 업체가 과연 15년 후를 예상하고 큰 금액을 빌릴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인천에서 제주를 오가는 노선의 여객선이 모두 중단되고 현재는 화물선만 왕래하고 있는데, 이 노선의 여객선 사업을 수협중앙회가 검토하다가 수익성이 없어 포기했다는 말도 들릴 정도니 여객선 업체의 열악한 수익 구조를 짐작할 만합니다.



■ 배 값은 600억 원인데 정부 예산은 100억 원

게다가 이 연안여객선 현대화 펀드 사업에 책정된 정부의 올해 예산이 100억 원이라고 합니다. 금융기관이 절반을 대서 200억 원을 만든다고 해도 6천 톤급 여객선 건조 비용 600억 원에 한참 부족한 액수입니다.

2019년까지 정부 출자금을 1,000억 원으로 늘린다고 하는데, 과연 첫해 예산 100억 원에 그런 의지가 담겨 있는지 의문입니다. 2020년까지 노후 여객선 63척을 새 여객선으로 바꾸겠다는 정부 계획의 현실성이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제주도와 울릉도, 독도 등 섬지역은 경제는 물론 안보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는 도서 지역 여객선 공영제를 검토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실상 백지화 상태입니다. 연안 여객선의 진정한 현대화를 위한 우리 사회의 합의와 의지가 다시 필요한 시점입니다.

[연관 기사] ☞ [뉴스9] 멀고 먼 ‘여객선 현대화’…중고 선박 ‘여전’ (201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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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예산 100억 원으로 600억 여객선 현대화?
    • 입력 2016-04-19 09:02:37
    • 수정2016-04-19 17:33:34
    취재후·사건후
▲ 위 사진은 해당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 2주기에 관련된 취재를 위해 며칠 전 제주를 오가는 여객선에 탑승했습니다. 시속 60km가 넘는 속도로 달리는 빠른 쾌속선이었습니다. 겉모습은 물론 내부도 깔끔했고, 조타실에 있는 장비들도 좋아 보였습니다. 전에 해군의 최신 함정에 타본 경험이 있는데, 그런 함정과 비교해도 결코 손색이 없는 배였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랐습니다. 승무원에게 물어보니 이 배가 90년대 초반에 해외에서 만들어진 선령 20년 이상의 중고 여객선이라는 겁니다.

■ 큰 여객선일수록 오래된 배

그래서 연안여객선 현황에 대한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가장 최근 자료는 지난해에 집계된 자료였습니다. 여객선 168척의 톤 수와 여객 정원, 속력과 진수 연도, 운항 항로 등이 적혀 있었습니다. 일부 여객선은 운항이 중단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가장 최신 자료였습니다.

이 자료에서 가장 눈에 띈 건 규모가 큰 여객선일수록 선령이 오래됐다는 점이었습니다. 168척 가운데 1,000톤 이상의 중대형 여객선이 12척이었는데,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배의 선령이 17년, 가장 오래된 배의 선령은 29년이었습니다.



평균을 내보니 23년이 나왔습니다. 대부분이 중고로 도입된 여객선이었고, 선령 제한 25년을 눈앞에 두거나 넘긴 상황이었습니다. 궁금했습니다. 조선 강국 대한민국이 왜 중대형 여객선은 거의 외국에서 들여온 중고일까?

여객선 업체 몇 곳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습니다. 대답은 역시 '돈 문제'였습니다. 세월호 크기인 6천 톤급 배를 새로 만들기 위해서는 600억 원에서 800억 원이 필요한데, 영세한 업체들에는 너무 큰 돈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200억 원 정도의 중고 여객선을 주로 일본에서 수입해서 운영하다가 선령 제한이 다가오면 다시 제3국에 중고로 판다는 겁니다.

■ 애매한 크기 6천 톤급

이번에는 조선업체에 전화를 걸어 물어봤습니다. 우리나라가 조선 강국인데, 여객선 정도는 싼 가격에 우수한 품질로 만들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문의했습니다. 그랬더니 수지가 안 맞는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형 조선소는 주로 초대형 탱크선이나 원양어선, 크루즈선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을 제조하는데, 그런 배를 만들기 위한 초대형 도크에 여객선을 올려놓아서는 적자라는 겁니다.



물론 2천 톤 이하의 중소형 여객선은 우리나라의 중소 조선사들이 많이 만들고 있었지만, 6천 톤급정도의 여객선은 소형 조선사가 만들기에는 너무 크고, 대형 조선사가 만들기에는 너무 작다는 얘기였습니다. 게다가 카페리호나 초쾌속선 같은 경우 표준 선형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초기 제작 비용이 너무 크다는 설명도 나왔습니다.

선령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유지 보수를 잘하면 30년 선령 정도의 배도 운항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세월호 역시 불법 증축과 화물 미고박, 평형수 제거 등이 사고 원인이었을 뿐 배의 노후화 때문에 참사가 일어난 건 아니지 않느냐는 반문이었습니다.

■ 세월호 2주기...합의는 어디에?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사회적 합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낙후된 여객선을 현대화해 제2의 사고를 미리 막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고, 정부 역시 참사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여객선 현대화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지난해 연안 여객에 새로 투입된 배 4척 가운데 3척이 역시 외국에서 들어온 중고 선박이었습니다. 만 5천 톤급 3척이 모두 90년대 초반에 건조된 중고 여객선이었고, 2,100톤급의 비교적 작은 카페리호만 국내에서 새로 만들어진 배였습니다. '사회적 합의'가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올해 들어서는 이른바 '연안여객선 현대화 펀드'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여객선 건조 비용의 절반을 정부가 출자하고, 나머지 35% 정도를 금융기관에서 저리로 융자하면, 여객선 업체는 15% 정도의 초기 비용으로 배를 새로 만들 수 있다는 계획입니다. 여객선도 현대화하고, 조선 산업 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다는 1석2조의 정책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출자하는 금액 50%도 무이자라고는 하지만 15년 후에는 결국 갚아야 할 돈입니다. 금융기관의 대출 역시 금리가 3에서 4%로 싸다고 하지만, 대출 원금이 200억 원에서 300억 원 정도 되면 이자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돈이 없어서 중고 여객선을 들여오는 영세한 여객선 업체가 과연 15년 후를 예상하고 큰 금액을 빌릴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인천에서 제주를 오가는 노선의 여객선이 모두 중단되고 현재는 화물선만 왕래하고 있는데, 이 노선의 여객선 사업을 수협중앙회가 검토하다가 수익성이 없어 포기했다는 말도 들릴 정도니 여객선 업체의 열악한 수익 구조를 짐작할 만합니다.



■ 배 값은 600억 원인데 정부 예산은 100억 원

게다가 이 연안여객선 현대화 펀드 사업에 책정된 정부의 올해 예산이 100억 원이라고 합니다. 금융기관이 절반을 대서 200억 원을 만든다고 해도 6천 톤급 여객선 건조 비용 600억 원에 한참 부족한 액수입니다.

2019년까지 정부 출자금을 1,000억 원으로 늘린다고 하는데, 과연 첫해 예산 100억 원에 그런 의지가 담겨 있는지 의문입니다. 2020년까지 노후 여객선 63척을 새 여객선으로 바꾸겠다는 정부 계획의 현실성이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제주도와 울릉도, 독도 등 섬지역은 경제는 물론 안보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는 도서 지역 여객선 공영제를 검토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실상 백지화 상태입니다. 연안 여객선의 진정한 현대화를 위한 우리 사회의 합의와 의지가 다시 필요한 시점입니다.

[연관 기사] ☞ [뉴스9] 멀고 먼 ‘여객선 현대화’…중고 선박 ‘여전’ (201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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