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그래서 경윳값이 올라간다고요?”

입력 2016.05.27 (09:22) 수정 2016.05.27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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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 기사]☞ [뉴스9] ‘미세먼지 주범’ 경유차 해법은? (2016.5.25)

■ 경윳값을 올리겠다고?

미세먼지를 줄이는 방안의 하나로 환경부가 경윳값 인상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제 마음은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6년 차 경유 승용차 운전자이기 때문입니다. 경유차를 운전하며 가장 만족스러웠던 '저렴한 연료비'를 포기해야 할 처지가 된 겁니다.

충격을 받은 건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관련 기사마다 길고 긴 댓글이 달렸습니다. 대부분 경윳값 인상에 반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환경부의 입장에 대해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경제 관련 부처들은 즉각 반대 입장을 내놨습니다. 신중치 못한 접근이다, 증세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 경유를 쓰는 산업체가 위축되면서 경기가 가라앉을 수 있다 등이 이유였습니다.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려서일까요. 지난 25일 국무조정실 주재로 열릴 예정이었던 관계부처 차관회의는 급작스레 무기한 연기됐습니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미세먼지 저감과 관련해 굉장히 많은 대책이 논의 중이고 경윳값 인상안도 그 가운데 하나인 것 같다. 그러나 논란이 커서 최종안에 포함될지는 미지수이다."라고 귀띔했습니다.

부처 간 엇박자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세먼지 대책안이 어떤 내용을 담을지, 언제 발표될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 소비자는 무슨 죄인가요?

처음 자동차를 고를 때를 떠올려봤습니다. 당시의 화두는 '고유가'와 '지구온난화(온실가스)'였습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가던 시절입니다. 서울 시내 휘발유 가격은 1ℓ에 2,000원을 돌파하기도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경유에 눈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경유차는 휘발유차보다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25% 정도 덜 배출했습니다. 이름하여 클린 디젤. 경제성에 환경까지 생각하는 똑똑한 소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역시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해외(주로 독일) 자동차 회사들과 국산 자동차 회사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유 승용차를 출시했습니다. 말 그대로 "대박"이었습니다. 인기에 힘입어 우리나라의 경유 차량은 지난 5년 동안 33%나 늘어났습니다.

현재 국내 경유차는 총 878만여 대에 이릅니다. 열대 중 넉 대가 경유차입니다. 경유차 운전자 가운데 어느 누구도 '미세먼지를 뿜어내기 위해 경유차를 사겠다.'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똑똑한 소비자는 하루아침에 미세먼지의 주범이 됐습니다. 억울한 노릇입니다.

■ 어떻게 줄여야 할까요

경유차에서 나오는 미세먼지는 외국에서도 큰 문제입니다. 경유차 유행을 선도했던 유럽을 중심으로 경유차 퇴출 움직임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는 2020년부터 경유차의 시내 진입을 막기로 했습니다. 영국 런던은 2018년부터 명물 택시인 '블랙캡'의 택시면허를 경유차에는 주지 않기로 했습니다. 독일도 경유차 관련 세금을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진행된 이런 정책 덕분일까요. 영국과 독일 등 유럽 15개국에서 팔린 승용차 가운데 경유차의 비율은 2011년 56.1%에서 2015년 52.1%로 줄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세계적인 흐름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미세먼지로 인한 국내 조기 사망자가 2만 명에 이르고 사회적 손실은 12조 원 이상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경윳값을 올리는 게 능사일까요?

■ 경유차만 미워하지 마세요

정부는 그동안 서민 생계 등을 이유로 경윳값을 휘발윳값 보다 낮게 유지해왔습니다. 사업용 차량 등을 배려하겠다는 겁니다. 2001년 휘발유 가격 대비 50% 수준이었던 경유 가격은 2004년 67%, 2006년 80%, 2007년부터는 85%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경윳값은 올라갔지만 말씀드린 대로 경유차는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경윳값을 올리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방증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경유차를 줄일 수 있을까요. 당장 이 땅의 모든 경유차를 멈춰 세울 수는 없습니다. 자동차만 경유를 쓰는 것도 아닙니다.

이제부터 치열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장기적이고 단계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에너지 가격 조정을 비롯해 환경개선부담금 부과 등 여러 가지 방안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는 여러 의견을 새겨듣고 신중히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하늘을 뿌옇게 하는 것은 미세먼지뿐만이 아니란 것도 인식해야 합니다. 중국발 황사, 중국발 미세먼지, 오존 등을 종합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경유차만 줄인다고 대기 질이 확 좋아질 것이란 건 큰 착각입니다. 종합적인 대기관리 정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부의 오해처럼 언론들이 경윳값을 올리자는 주장에 동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도 시청자 여러분들과 함께 고민하겠습니다. 미세먼지를 줄이고 쾌적한 공기를 되찾을 수 있는 다양한 의견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언제든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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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그래서 경윳값이 올라간다고요?”
    • 입력 2016-05-27 09:22:48
    • 수정2016-05-27 09:23:17
    취재후·사건후
[연관 기사]☞ [뉴스9] ‘미세먼지 주범’ 경유차 해법은? (2016.5.25) ■ 경윳값을 올리겠다고? 미세먼지를 줄이는 방안의 하나로 환경부가 경윳값 인상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제 마음은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6년 차 경유 승용차 운전자이기 때문입니다. 경유차를 운전하며 가장 만족스러웠던 '저렴한 연료비'를 포기해야 할 처지가 된 겁니다. 충격을 받은 건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관련 기사마다 길고 긴 댓글이 달렸습니다. 대부분 경윳값 인상에 반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환경부의 입장에 대해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경제 관련 부처들은 즉각 반대 입장을 내놨습니다. 신중치 못한 접근이다, 증세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 경유를 쓰는 산업체가 위축되면서 경기가 가라앉을 수 있다 등이 이유였습니다.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려서일까요. 지난 25일 국무조정실 주재로 열릴 예정이었던 관계부처 차관회의는 급작스레 무기한 연기됐습니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미세먼지 저감과 관련해 굉장히 많은 대책이 논의 중이고 경윳값 인상안도 그 가운데 하나인 것 같다. 그러나 논란이 커서 최종안에 포함될지는 미지수이다."라고 귀띔했습니다. 부처 간 엇박자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세먼지 대책안이 어떤 내용을 담을지, 언제 발표될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 소비자는 무슨 죄인가요? 처음 자동차를 고를 때를 떠올려봤습니다. 당시의 화두는 '고유가'와 '지구온난화(온실가스)'였습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가던 시절입니다. 서울 시내 휘발유 가격은 1ℓ에 2,000원을 돌파하기도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경유에 눈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경유차는 휘발유차보다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25% 정도 덜 배출했습니다. 이름하여 클린 디젤. 경제성에 환경까지 생각하는 똑똑한 소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역시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해외(주로 독일) 자동차 회사들과 국산 자동차 회사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유 승용차를 출시했습니다. 말 그대로 "대박"이었습니다. 인기에 힘입어 우리나라의 경유 차량은 지난 5년 동안 33%나 늘어났습니다. 현재 국내 경유차는 총 878만여 대에 이릅니다. 열대 중 넉 대가 경유차입니다. 경유차 운전자 가운데 어느 누구도 '미세먼지를 뿜어내기 위해 경유차를 사겠다.'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똑똑한 소비자는 하루아침에 미세먼지의 주범이 됐습니다. 억울한 노릇입니다. ■ 어떻게 줄여야 할까요 경유차에서 나오는 미세먼지는 외국에서도 큰 문제입니다. 경유차 유행을 선도했던 유럽을 중심으로 경유차 퇴출 움직임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는 2020년부터 경유차의 시내 진입을 막기로 했습니다. 영국 런던은 2018년부터 명물 택시인 '블랙캡'의 택시면허를 경유차에는 주지 않기로 했습니다. 독일도 경유차 관련 세금을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진행된 이런 정책 덕분일까요. 영국과 독일 등 유럽 15개국에서 팔린 승용차 가운데 경유차의 비율은 2011년 56.1%에서 2015년 52.1%로 줄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세계적인 흐름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미세먼지로 인한 국내 조기 사망자가 2만 명에 이르고 사회적 손실은 12조 원 이상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경윳값을 올리는 게 능사일까요? ■ 경유차만 미워하지 마세요 정부는 그동안 서민 생계 등을 이유로 경윳값을 휘발윳값 보다 낮게 유지해왔습니다. 사업용 차량 등을 배려하겠다는 겁니다. 2001년 휘발유 가격 대비 50% 수준이었던 경유 가격은 2004년 67%, 2006년 80%, 2007년부터는 85%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경윳값은 올라갔지만 말씀드린 대로 경유차는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경윳값을 올리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방증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경유차를 줄일 수 있을까요. 당장 이 땅의 모든 경유차를 멈춰 세울 수는 없습니다. 자동차만 경유를 쓰는 것도 아닙니다. 이제부터 치열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장기적이고 단계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에너지 가격 조정을 비롯해 환경개선부담금 부과 등 여러 가지 방안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는 여러 의견을 새겨듣고 신중히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하늘을 뿌옇게 하는 것은 미세먼지뿐만이 아니란 것도 인식해야 합니다. 중국발 황사, 중국발 미세먼지, 오존 등을 종합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경유차만 줄인다고 대기 질이 확 좋아질 것이란 건 큰 착각입니다. 종합적인 대기관리 정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부의 오해처럼 언론들이 경윳값을 올리자는 주장에 동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도 시청자 여러분들과 함께 고민하겠습니다. 미세먼지를 줄이고 쾌적한 공기를 되찾을 수 있는 다양한 의견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언제든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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