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역사적’ 참배…한국인 위령비는 찾지 않았다

입력 2016.05.27 (19:27) 수정 2016.05.28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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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면 세계의 평화는 없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에게도 사죄해야 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2차대전 당시 피폭지였던 히로시마를 찾기 전인 오늘(27일) 오전,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은 히로시마평화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인 위령비도 별도로 참배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공원 내 위령비를 참배하고 헌화하는 것으로 일본과 한국 등 원폭 피해자 모두에 대한 대신했다. 한국인 위령비에 대한 별도의 참배는 없었다.

[연관기사] ☞ 오바마가 히로시마에 가는 이유는?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 찾지 않은 오바마

오바마 대통령이 헌화한 공원 내 '히로시마 위령비'에서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까지의 거리는 150m. 걸어서는 2분 거리에 불과해 일정에 부담을 줄 만한 위치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피해자들이 요구해온 오바마 대통령의 한국인 위령비 참배는 이뤄지지 못했다.

히로시마 방문에 어떠한 '사죄'의 의미도 부여하지 않으려 한 오바마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을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오바마 대통령은 방문에 앞서, 이번 방문이 반핵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것일 뿐 원폭 투하에 대한 사과와는 관련이 없음을 여러 차례 표해왔다. 일본 NHK와의 인터뷰에서 "사죄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에게 1945년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는 전쟁을 끝내고 미군 피해 확대를 막은 '정당한 결정'으로 인식되고 있다. 때문에, 히로시마 방문이 '사과'로 비춰칠 경우 미국 현직 대통령이 미국의 역사적 정당성을 부정하는 행위로 인식될 수도 있다. 이런 여론이 올해 11월 있을 미국 대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을 막론하고 피해자에 대한 사과로 비칠 수 있는 행위를 최대한 피하려 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지 71년 만에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히로시마를 찾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위령비에 헌화한 뒤 “핵무기가 없는 세계를 추구해야 한다”는 내용의 연설을 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 뒤로 원폭 피해를 직접적으로 입은 원폭 돔이 보인다.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지 71년 만에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히로시마를 찾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위령비에 헌화한 뒤 “핵무기가 없는 세계를 추구해야 한다”는 내용의 연설을 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 뒤로 원폭 피해를 직접적으로 입은 원폭 돔이 보인다.


미국이 이번 방문을 비핵 메시지 전파 뿐 아니라 미·일 간 동맹 강화의 징검다리로 삼고 싶어했던 점도 오바마 대통령의 한국인 위령비 참배에 제동을 건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인 위령비를 방문할 경우 일본이 입은 피폭 피해보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과 식민 지배 책임 등이 더 부각될 수 밖에 없다. 히로시마 방문이라는 민감한 외교행보까지 해가며 쌓으려는 미·일 관계 강화에 오히려 악수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아베 일본 총리가 동행한 만큼 애초에 한국인 위령비 참배는 미국이 고려하기 힘든 카드였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일본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 내에 위치한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일본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 내에 위치한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


‘역사적 화해’…한·중·일 갈등 불씨는 여전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2009년 4월, 체코 프라하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들자"고 선언했다. 이 선언으로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때문에 히로시마 방문은 오바마 대통령 개인으로서는 8년 재임기간의 큰 목표를 완성한다는 의미가 있다. 세계 최강대국이자 유일하게 전쟁에서 핵무기를 사용한 나라인 미국 정상이 피폭 국가를 찾아 반전과 반핵 메시지를 던졌다는 점에서 '역사적 화해'의 시도이기도 하다. 과거사가 복잡하게 얽힌 아시아 지역을 향해, 과거보다는 미래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태도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 내 자료관에 전시돼 있는 원자폭탄 피폭 당시 폭격으로 멈춘 시계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 내 자료관에 전시돼 있는 원자폭탄 피폭 당시 폭격으로 멈춘 시계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아무리 '사죄'의 뜻을 밝히지 않는다 해도 2차대전을 일으켜 수천 만 아시아인을 숨지게 한 일본의 책임에 '면죄부'를 주는 듯한 행보로 비춰질 수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는 남는다. 한국과 중국 등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피해를 입었던 국가들은 여전히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이 불편할 수 밖에 없다.

한국 정부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공식적으로 환영도 비판도 하지 않았지만, 한국인 원폭 희생자들을 추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미국 정부에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일본이 전쟁 피해자로 스스로를 포장하는 데 대해 공개적인 우려를 드러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일본 정부가 히로시마로 외국 정상들을 초청한 데 대해 "히로시마에 관심을 가질 만한 가치가 있지만 더욱 잊어서는 안되는 것은 (일본이 대학살을 일으킨) 난징"이라고 밝혔다. 갈수록 강화되는 미·일동맹에 대한 불편함도 섞인 표현이다.

논란을 의식한 듯 오바마 대통령은 히로시마 평화공원에서 가진 연설에서 "핵무기가 없는 세계를 추구해야 한다"며 반핵(反核) 필요성에 대해서만 역설했다. 원폭 투하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연설 도중 한국인 원폭 희생자들의 존재를 거론하기도 했다. 미국 대통령이 한국인을 특정해 원폭 피해를 거론한 것은 2차대전 종전 이후 처음이다. 원폭 피해 참상이 집약돼 있어 방문하게 되면 사과의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고 예상됐던 원폭자료관(원폭돔)은 차량 안에서만 둘러보는 것으로 갈음했다.

일본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 내에 위치한 원폭 돔. 2차대전 당시 원자폭탄에 맞아 부서진 상태로 남아있는 이 건물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차량으로만 둘러봤다.일본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 내에 위치한 원폭 돔. 2차대전 당시 원자폭탄에 맞아 부서진 상태로 남아있는 이 건물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차량으로만 둘러봤다.


다만, 오바마 대통령의 71년 만의 피폭지 방문으로 생긴 '면죄부'의 기회를 아베 총리가 어떻게 활용할지는 미지수다. 미국은 이번 방문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피폭자들과의 면담을 꺼렸지만, 일본은 평화공원에 일본 원폭피해자단체협의회 대표위원 등을 참석시켜 자연스러운 만남을 유도했다. 일본으로서는 자신들의 원폭 피해를 최대한 부각한 셈이다. 미국·일본의 일부 언론은 아베 총리가 화답 형식으로 2차대전 당시 일본이 피해를 입힌 하와이 진주만을 방문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지만 아베 총리는 "하와이 방문 계획은 없다"며 공식적으로 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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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바마의 ‘역사적’ 참배…한국인 위령비는 찾지 않았다
    • 입력 2016-05-27 19:27:25
    • 수정2016-05-28 10:41:31
    취재K
"원폭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면 세계의 평화는 없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에게도 사죄해야 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2차대전 당시 피폭지였던 히로시마를 찾기 전인 오늘(27일) 오전,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은 히로시마평화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인 위령비도 별도로 참배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공원 내 위령비를 참배하고 헌화하는 것으로 일본과 한국 등 원폭 피해자 모두에 대한 대신했다. 한국인 위령비에 대한 별도의 참배는 없었다. [연관기사] ☞ 오바마가 히로시마에 가는 이유는?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 찾지 않은 오바마 오바마 대통령이 헌화한 공원 내 '히로시마 위령비'에서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까지의 거리는 150m. 걸어서는 2분 거리에 불과해 일정에 부담을 줄 만한 위치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피해자들이 요구해온 오바마 대통령의 한국인 위령비 참배는 이뤄지지 못했다. 히로시마 방문에 어떠한 '사죄'의 의미도 부여하지 않으려 한 오바마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을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오바마 대통령은 방문에 앞서, 이번 방문이 반핵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것일 뿐 원폭 투하에 대한 사과와는 관련이 없음을 여러 차례 표해왔다. 일본 NHK와의 인터뷰에서 "사죄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에게 1945년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는 전쟁을 끝내고 미군 피해 확대를 막은 '정당한 결정'으로 인식되고 있다. 때문에, 히로시마 방문이 '사과'로 비춰칠 경우 미국 현직 대통령이 미국의 역사적 정당성을 부정하는 행위로 인식될 수도 있다. 이런 여론이 올해 11월 있을 미국 대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을 막론하고 피해자에 대한 사과로 비칠 수 있는 행위를 최대한 피하려 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지 71년 만에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히로시마를 찾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위령비에 헌화한 뒤 “핵무기가 없는 세계를 추구해야 한다”는 내용의 연설을 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 뒤로 원폭 피해를 직접적으로 입은 원폭 돔이 보인다. 미국이 이번 방문을 비핵 메시지 전파 뿐 아니라 미·일 간 동맹 강화의 징검다리로 삼고 싶어했던 점도 오바마 대통령의 한국인 위령비 참배에 제동을 건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인 위령비를 방문할 경우 일본이 입은 피폭 피해보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과 식민 지배 책임 등이 더 부각될 수 밖에 없다. 히로시마 방문이라는 민감한 외교행보까지 해가며 쌓으려는 미·일 관계 강화에 오히려 악수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아베 일본 총리가 동행한 만큼 애초에 한국인 위령비 참배는 미국이 고려하기 힘든 카드였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일본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 내에 위치한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 ‘역사적 화해’…한·중·일 갈등 불씨는 여전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2009년 4월, 체코 프라하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들자"고 선언했다. 이 선언으로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때문에 히로시마 방문은 오바마 대통령 개인으로서는 8년 재임기간의 큰 목표를 완성한다는 의미가 있다. 세계 최강대국이자 유일하게 전쟁에서 핵무기를 사용한 나라인 미국 정상이 피폭 국가를 찾아 반전과 반핵 메시지를 던졌다는 점에서 '역사적 화해'의 시도이기도 하다. 과거사가 복잡하게 얽힌 아시아 지역을 향해, 과거보다는 미래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태도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 내 자료관에 전시돼 있는 원자폭탄 피폭 당시 폭격으로 멈춘 시계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아무리 '사죄'의 뜻을 밝히지 않는다 해도 2차대전을 일으켜 수천 만 아시아인을 숨지게 한 일본의 책임에 '면죄부'를 주는 듯한 행보로 비춰질 수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는 남는다. 한국과 중국 등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피해를 입었던 국가들은 여전히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이 불편할 수 밖에 없다. 한국 정부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공식적으로 환영도 비판도 하지 않았지만, 한국인 원폭 희생자들을 추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미국 정부에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일본이 전쟁 피해자로 스스로를 포장하는 데 대해 공개적인 우려를 드러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일본 정부가 히로시마로 외국 정상들을 초청한 데 대해 "히로시마에 관심을 가질 만한 가치가 있지만 더욱 잊어서는 안되는 것은 (일본이 대학살을 일으킨) 난징"이라고 밝혔다. 갈수록 강화되는 미·일동맹에 대한 불편함도 섞인 표현이다. 논란을 의식한 듯 오바마 대통령은 히로시마 평화공원에서 가진 연설에서 "핵무기가 없는 세계를 추구해야 한다"며 반핵(反核) 필요성에 대해서만 역설했다. 원폭 투하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연설 도중 한국인 원폭 희생자들의 존재를 거론하기도 했다. 미국 대통령이 한국인을 특정해 원폭 피해를 거론한 것은 2차대전 종전 이후 처음이다. 원폭 피해 참상이 집약돼 있어 방문하게 되면 사과의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고 예상됐던 원폭자료관(원폭돔)은 차량 안에서만 둘러보는 것으로 갈음했다. 일본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 내에 위치한 원폭 돔. 2차대전 당시 원자폭탄에 맞아 부서진 상태로 남아있는 이 건물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차량으로만 둘러봤다. 다만, 오바마 대통령의 71년 만의 피폭지 방문으로 생긴 '면죄부'의 기회를 아베 총리가 어떻게 활용할지는 미지수다. 미국은 이번 방문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피폭자들과의 면담을 꺼렸지만, 일본은 평화공원에 일본 원폭피해자단체협의회 대표위원 등을 참석시켜 자연스러운 만남을 유도했다. 일본으로서는 자신들의 원폭 피해를 최대한 부각한 셈이다. 미국·일본의 일부 언론은 아베 총리가 화답 형식으로 2차대전 당시 일본이 피해를 입힌 하와이 진주만을 방문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지만 아베 총리는 "하와이 방문 계획은 없다"며 공식적으로 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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