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나라’ 부탄 이야기] ① “이런 나라가 행복하다고?”

입력 2016.05.28 (14:20) 수정 2016.05.28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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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어디일까. 2016년 UN이 발표한 '행복 리포트'만 보면 정답은 덴마크다. 예전에는 방글라데시라는 말도 있었는데 수년 전부터 그 말이 쏙 들어가고, 대신 부탄이란 나라가 급부상했다. 부탄은 중국과 인도 사이에 있는 인구 70만 명의 작은 나라다.



1인당 GDP가 한국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부탄은 어떻게 행복의 대명사가 됐을까. 훨씬 풍요롭고 자유로울 것 같은 한국에서도 '지옥같다'는 말이 나오는 요즘 말이다. 과연 사실일까. 조금은 '삐딱한' 시선으로 부탄으로 향했다.

이런 통제사회가 행복하다고?

해발 2,230미터 부탄 파로 국제공항해발 2,230미터 부탄 파로 국제공항


부탄은 해외관광객의 자유여행이 금지된 나라다. 부탄 정부가 승인한 현지 여행사를 통해야만 여행이 가능하다. 모든 일정을 국영가이드(영어 사용)와 동행한다. 관광객은 1인당 하루에 200달러(비수기)에서 250달러씩 무조건 내야 하는데 대신 호텔과 식사, 가이드, 차량, 입장료 등이 모두 포함된다. 그래서 금전적 여유가 있는 유럽의 중장년층 여행객이 많다. 젊은 배낭여행 족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게다가 취재팀은 촬영 영상에 대해 일종의 '검열'까지 받아야 한다.



한국에서 가는 방법은 2가지다. 먼저 방콕까지 간 뒤 부탄 국적기인 드룩에어나 민영 항공기인 부탄 에어라인으로 갈아 타고, 인도 콜카타(옛 캘커타)를 경유해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또 하나는 네팔 카트만두를 거쳐 가는 방법이다. 네팔을 경유하면 멋진 히말라야 봉우리들을 볼 수 있지만 대신 시간과 비용이 더 든다. 어찌됐든 부탄을 가려면 무조건 부탄 항공기만 타야 한다는 불편한 진실.

부탄은 2007년부터 담배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금연정책을 시행했다. 그렇다고 흡연이 금지된 건 아니다. 외국인들은 지정된 장소(주로 호텔 앞)에서 자유롭게 흡연할 수 있다. 그러면 현지인들은 금연을 하냐하면 그렇지도 않다. 대부분 인도에서 수입된 담배를 몰래 사서 피운다. '그러면 왜 부탄 정부는 굳이 금연 정책을?' 하는 의문이 들게 마련인데, 어쨌든 세계 최초의 금연국가가 바로 부탄이다.

부탄의 전통복장, 고(gho)와 키라(kira)부탄의 전통복장, 고(gho)와 키라(kira)


부탄 수도 팀푸에는 신도시를 중심으로 수 년 전부터 많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는데, 모든 아파트의 디자인이 거의 똑같다. 동일한 업체가 설계하기 때문이다. 부탄 정부는 아파트의 높이도 6층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 뿐인가. 길을 걷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남성 전통 복장)와 키라(여성 전통 복장)라고 불리는 부탄 고유의 옷(우리 식 한복)을 입고 있고, 매주 화요일은 술집도 영업을 할 수 없다. 이쯤되면 부탄을 통제의 아이콘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 나라, 좀 특이하다.

통제가 심한 나라 국민들은 대개 풀이 죽어 있고, 불만이 많기 마련인데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온화하고, 아이들 얼굴에는 밝은 웃음이 살아 있다. 1시간 반씩 걸어서 학교에 다니는 어린 학생들에게 물어봐도, 길거리에 앉은 촌로에게 물어도 비슷하다. 물질 못지 않게 정신적 요소가 중요하다고. 자신들은 살아있는 것과 삶 자체에 행복을 느낀다고. 그렇다면 왜.

불교 사원에서 만난 19살 다우 추름 양불교 사원에서 만난 19살 다우 추름 양


우선은 종교를 이유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부탄 시민의 약 80%는 불교 신자고, 나머지 20%는 힌두교와 기독교도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의 시작과 끝을 불교 사원에서 보내며 기도한다. 그런데 기도의 내용이 우리의 생각과는 차원이 다르다. 팀푸의 사원에서 만난 19살 소녀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고난을 겪지 않기를 기도한다"고 말했고, 파로에서 만난 70대 노인은 "동물과 자연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했다. 불교는 행복의 밑바탕인 듯 했다.



그래서 부탄 사람들은 모기도 안 잡는다. 심지어 저녁에는 혹시 밟아 죽었을지 모를 개미를 위해 기도한다고 했다. 농약 사용이 금지되다 보니, 부탄에서 생산한 농산물은 100% 유기농이다. 게다가 도축장이 한 곳도 없고 대부분의 고기는 인도에서 수입한다. 국영가이드인 카르까(30)는 부탄 소들이 '늙어서 죽는다'고 했다. 만약 부탄에서 소가 죽으면, 죽은 소를 인도에 수출해 도축한 뒤 고기를 다시 수입해 먹는 방식이다. 불편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영리하지 않냐"는 반문이 돌아왔다.

축제에 참여한 부탄 사람들축제에 참여한 부탄 사람들


부탄은 약 20개 지역에 교도소가 있다. 정확한 통계가 공개돼 있진 않지만, 국영가이드는 나라 전체에 수감된 인원이 50명을 넘은 적이 없다고 한다. 범죄 혐의도 '절도'나 '공공기물 파손'이 대부분이고 강력 범죄는 거의 없다. 그래서 부탄 감옥은 쥐와 바퀴벌레만 있을 뿐 텅 비어 있다는 말이 있다고 했다. 빈곤과 소외, 우울증 등 갖가지 이유로 하루가 멀다하고 자살 소식을 듣는 우리 사회와 달리, 부탄에서 자살은 서너 달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대형 뉴스다.

왕자를 위한 10만 8천 그루의 나무 ‘녹색미래’왕자를 위한 10만 8천 그루의 나무 ‘녹색미래’


현 5대 국왕인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는 2008년 즉위한 뒤 스스로 왕권을 내려 놓았다. 이후 헌법을 제정하고 입헌군주제를 선언했지만, 여전히 왕은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다. 지난 2월 현 국왕 부부가 첫 아이를 낳자 부탄의 시민들은 산으로 올라가 10만 8천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불교의 108배를 떠올리면 된다) 떠들썩한 잔치보다 미래로 이어질 '영원한 선물'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탄 사람들은 3대 국왕을 '모던(Modern) 부탄의 시작' 4대 왕을 '부탄의 비전(Vision)을 제시한 왕' 5대 왕을 '민주주의 속의 왕'이라고 부르며 존경한다.

부탄에는 해마다 첫 눈이 오는 날, 공휴일이 선포된다.부탄에는 해마다 첫 눈이 오는 날, 공휴일이 선포된다.


사람들이 조급하지 않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국영가이드는 아침마다 10분~20분씩 항상 늦었다. 그리고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가 묵는 호텔에서 식사까지 한다. 그런데도 밉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정중하면서도 사려 깊은 태도 때문이었다. 변화가 느리게 진행되는 사회여서일까. 부탄 사람들은 매사에 치열하게 경쟁하기 보다는 서로 배려하는 자세가 몸에 배어 있다. 부탄은 첫눈이 내리면 그 날을 공휴일로 정한다. 첫눈이 풍요를 상징해서다.

국영 가이드인 카르까는 "우리는 지킬 수 있는 만큼만 발전해 간다"고 말했다. 변화와 성장보다는 전통 문화와 종교, 그들만의 공동체를 지켜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부탄 사람들의 삶에 대한 만족감과 행복이 종교나 심성, 문화 때문만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있다.

[연관 기사]☞ [‘행복의 나라’ 부탄 이야기] ② 그들이 행복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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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의 나라’ 부탄 이야기] ① “이런 나라가 행복하다고?”
    • 입력 2016-05-28 14:20:20
    • 수정2016-05-28 22:59:02
    취재K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어디일까. 2016년 UN이 발표한 '행복 리포트'만 보면 정답은 덴마크다. 예전에는 방글라데시라는 말도 있었는데 수년 전부터 그 말이 쏙 들어가고, 대신 부탄이란 나라가 급부상했다. 부탄은 중국과 인도 사이에 있는 인구 70만 명의 작은 나라다.



1인당 GDP가 한국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부탄은 어떻게 행복의 대명사가 됐을까. 훨씬 풍요롭고 자유로울 것 같은 한국에서도 '지옥같다'는 말이 나오는 요즘 말이다. 과연 사실일까. 조금은 '삐딱한' 시선으로 부탄으로 향했다.

이런 통제사회가 행복하다고?

해발 2,230미터 부탄 파로 국제공항

부탄은 해외관광객의 자유여행이 금지된 나라다. 부탄 정부가 승인한 현지 여행사를 통해야만 여행이 가능하다. 모든 일정을 국영가이드(영어 사용)와 동행한다. 관광객은 1인당 하루에 200달러(비수기)에서 250달러씩 무조건 내야 하는데 대신 호텔과 식사, 가이드, 차량, 입장료 등이 모두 포함된다. 그래서 금전적 여유가 있는 유럽의 중장년층 여행객이 많다. 젊은 배낭여행 족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게다가 취재팀은 촬영 영상에 대해 일종의 '검열'까지 받아야 한다.



한국에서 가는 방법은 2가지다. 먼저 방콕까지 간 뒤 부탄 국적기인 드룩에어나 민영 항공기인 부탄 에어라인으로 갈아 타고, 인도 콜카타(옛 캘커타)를 경유해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또 하나는 네팔 카트만두를 거쳐 가는 방법이다. 네팔을 경유하면 멋진 히말라야 봉우리들을 볼 수 있지만 대신 시간과 비용이 더 든다. 어찌됐든 부탄을 가려면 무조건 부탄 항공기만 타야 한다는 불편한 진실.

부탄은 2007년부터 담배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금연정책을 시행했다. 그렇다고 흡연이 금지된 건 아니다. 외국인들은 지정된 장소(주로 호텔 앞)에서 자유롭게 흡연할 수 있다. 그러면 현지인들은 금연을 하냐하면 그렇지도 않다. 대부분 인도에서 수입된 담배를 몰래 사서 피운다. '그러면 왜 부탄 정부는 굳이 금연 정책을?' 하는 의문이 들게 마련인데, 어쨌든 세계 최초의 금연국가가 바로 부탄이다.

부탄의 전통복장, 고(gho)와 키라(kira)

부탄 수도 팀푸에는 신도시를 중심으로 수 년 전부터 많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는데, 모든 아파트의 디자인이 거의 똑같다. 동일한 업체가 설계하기 때문이다. 부탄 정부는 아파트의 높이도 6층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 뿐인가. 길을 걷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남성 전통 복장)와 키라(여성 전통 복장)라고 불리는 부탄 고유의 옷(우리 식 한복)을 입고 있고, 매주 화요일은 술집도 영업을 할 수 없다. 이쯤되면 부탄을 통제의 아이콘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 나라, 좀 특이하다.

통제가 심한 나라 국민들은 대개 풀이 죽어 있고, 불만이 많기 마련인데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온화하고, 아이들 얼굴에는 밝은 웃음이 살아 있다. 1시간 반씩 걸어서 학교에 다니는 어린 학생들에게 물어봐도, 길거리에 앉은 촌로에게 물어도 비슷하다. 물질 못지 않게 정신적 요소가 중요하다고. 자신들은 살아있는 것과 삶 자체에 행복을 느낀다고. 그렇다면 왜.

불교 사원에서 만난 19살 다우 추름 양

우선은 종교를 이유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부탄 시민의 약 80%는 불교 신자고, 나머지 20%는 힌두교와 기독교도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의 시작과 끝을 불교 사원에서 보내며 기도한다. 그런데 기도의 내용이 우리의 생각과는 차원이 다르다. 팀푸의 사원에서 만난 19살 소녀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고난을 겪지 않기를 기도한다"고 말했고, 파로에서 만난 70대 노인은 "동물과 자연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했다. 불교는 행복의 밑바탕인 듯 했다.



그래서 부탄 사람들은 모기도 안 잡는다. 심지어 저녁에는 혹시 밟아 죽었을지 모를 개미를 위해 기도한다고 했다. 농약 사용이 금지되다 보니, 부탄에서 생산한 농산물은 100% 유기농이다. 게다가 도축장이 한 곳도 없고 대부분의 고기는 인도에서 수입한다. 국영가이드인 카르까(30)는 부탄 소들이 '늙어서 죽는다'고 했다. 만약 부탄에서 소가 죽으면, 죽은 소를 인도에 수출해 도축한 뒤 고기를 다시 수입해 먹는 방식이다. 불편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영리하지 않냐"는 반문이 돌아왔다.

축제에 참여한 부탄 사람들

부탄은 약 20개 지역에 교도소가 있다. 정확한 통계가 공개돼 있진 않지만, 국영가이드는 나라 전체에 수감된 인원이 50명을 넘은 적이 없다고 한다. 범죄 혐의도 '절도'나 '공공기물 파손'이 대부분이고 강력 범죄는 거의 없다. 그래서 부탄 감옥은 쥐와 바퀴벌레만 있을 뿐 텅 비어 있다는 말이 있다고 했다. 빈곤과 소외, 우울증 등 갖가지 이유로 하루가 멀다하고 자살 소식을 듣는 우리 사회와 달리, 부탄에서 자살은 서너 달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대형 뉴스다.

왕자를 위한 10만 8천 그루의 나무 ‘녹색미래’

현 5대 국왕인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는 2008년 즉위한 뒤 스스로 왕권을 내려 놓았다. 이후 헌법을 제정하고 입헌군주제를 선언했지만, 여전히 왕은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다. 지난 2월 현 국왕 부부가 첫 아이를 낳자 부탄의 시민들은 산으로 올라가 10만 8천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불교의 108배를 떠올리면 된다) 떠들썩한 잔치보다 미래로 이어질 '영원한 선물'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탄 사람들은 3대 국왕을 '모던(Modern) 부탄의 시작' 4대 왕을 '부탄의 비전(Vision)을 제시한 왕' 5대 왕을 '민주주의 속의 왕'이라고 부르며 존경한다.

부탄에는 해마다 첫 눈이 오는 날, 공휴일이 선포된다.

사람들이 조급하지 않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국영가이드는 아침마다 10분~20분씩 항상 늦었다. 그리고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가 묵는 호텔에서 식사까지 한다. 그런데도 밉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정중하면서도 사려 깊은 태도 때문이었다. 변화가 느리게 진행되는 사회여서일까. 부탄 사람들은 매사에 치열하게 경쟁하기 보다는 서로 배려하는 자세가 몸에 배어 있다. 부탄은 첫눈이 내리면 그 날을 공휴일로 정한다. 첫눈이 풍요를 상징해서다.

국영 가이드인 카르까는 "우리는 지킬 수 있는 만큼만 발전해 간다"고 말했다. 변화와 성장보다는 전통 문화와 종교, 그들만의 공동체를 지켜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부탄 사람들의 삶에 대한 만족감과 행복이 종교나 심성, 문화 때문만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있다.

[연관 기사]☞ [‘행복의 나라’ 부탄 이야기] ② 그들이 행복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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