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탈출하라”…왜 하필 북한 대사관일까

입력 2016.06.08 (09:07) 수정 2016.06.08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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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섬뜩하면서도 나름 흥미진진한 경험이었다. 이른바 탈출 놀이방 '북한 대사관'을 몸소 체험해본, 본 기자의 솔직한 소감이다.

'탈출 놀이방'이라면, 건물 내부로 들어가서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기 전까지 방문이
열리지 않는 게임의 일종으로, 요즘 한국에서도 인기가 있는 편이다. 모스크바 시내 중심가에 '북한 대사관'이라는 이름으로 인기가 있는 탈출 놀이방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봤다.

두건 쓰고 놀이방에 입장하는 모습두건 쓰고 놀이방에 입장하는 모습


우리 일행은 모두 4명. 참가인원은 최대 5명까지이다. 퀴즈를 빨리 풀기 위해선 집단의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에 인원이 많을수록 유리한 측면이 있다.

게임 운영자가 우리 일행 앞에서 게임의 규칙을 설명한다.

"여러분은 북한 대사관에 정보를 빼내기 위해 침투했다가 정체가 발각돼 체포됐다. 북한 경비원이 상부에 보고하러 나간 사이 북한 대사관을 탈출해야 한다. 주어진 1시간 이내에 탈출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처형되고 맙니다. 여러분 주변의 스파이 도구를 잘
활용하고, 필요하면 운영자를 찾으시오. 준비됐나요?"

설명이 끝나자 우리 일행의 머리 위로 두건이 씌워졌다. 그 상태로 방문이 열리고 북한 대사관 안으로 끌려 들어가서 유치장 안에 감금됐다. 손목에는 수갑이, 발목에는 족쇄가 채워졌다. 정말 섬뜩했다.

김일성·김정일 부자 사진김일성·김정일 부자 사진


두건을 벗으니 벽면에 낯익은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김일성·김정일 부자 사진이다. 맞은편 벽에는 대형 인공기가 걸려 있다. 북한 특유의 선전선동 문구도 있고 각종 한글 게시판도 보였다. 나름 북한 대사관이라는 분위기를 한껏 만들어낸 것이다.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가만... 그런데... 수갑과 족쇄는 어떻게 푸나..??

감옥 앞에 걸려 있는 인공기감옥 앞에 걸려 있는 인공기


사실, 보통 수준의 관찰력과 추리력만 있으면, 주어진 과제를 푸는 것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다. 대체로 퀴즈를 풀 수 있는 실마리가 주변에 숨겨져 있었고, 정녕 벽에 부딪혀 답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껴질 땐, 워키토키로 운영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나름 실마리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차례차례 과제를 풀어나가면 어느덧 1시간이 흘러가고... 우리 일행도 탈출에 성공했다.

왜 하필 '북한 대사관'일까



감금 체험장 '북한 대사관'은 지난해 11월 모스크바에 문을 열었다. 이 게임 운영업체는 지난해 모스크바와 치타 지역에, 1941년 모스크바 전투·탈옥 등의 익스트림(extreme) 체험장을 개설한데 이어, 11월에는 '북한 대사관'을 신규 개설한 것이다.

'북한 대사관'은 아직 여기밖에 없다. 평일에는 하루 10회, 주말에는 하루 12회 운영된다. 문을 연 지 6개월 정도 지났는데 탈출 놀이방 사이트 인기 순위에선 제법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을 마치고 나오는 러시아 젊은이 안나에게 소감을 물어보니, 매우 재미있었단다. "우리 일행 중에는 북한 대사관이라는 분위기에 약간 겁을 먹은 친구도 있었는데 게임을 풀어나가는 수준도 제법 높았고, 아주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탈출에 성공했기 때문에 아주아주 즐거웠다."

현미경 등 문제를 풀기 위한 도구가 놓여 있는 모습현미경 등 문제를 풀기 위한 도구가 놓여 있는 모습


그런데 왜 하필 배경이 북한 대사관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이 게임의 기획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자연스레 게임 운영자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운영자 역시 게임 기획자의 의도를 알 수 없단다.

"어떻게 '북한 대사관'이란 탈출 놀이방이 만들어졌는지 나도 알 수 없다. 내 생각엔
게임 기획자가 이전에 전혀 없었던 것, 무언가 재미있고, 아주 독특한 것을 찾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이걸 만들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대체로 드라마나 어떤 동화, 또는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를 기초로 해서 탈출 놀이방을 만든다. 북한에 대해서 누가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건 아주 독특한 무엇이다. 그게 바로 손님을 끄는 요소다."

실제로 운영업체는,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의 특별한 분위기와 환경을 체험할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전시된 러시아 체험자들의 사진전시된 러시아 체험자들의 사진


러시아 사람들은 유난히 모험을 좋아하고 게임이나 퍼즐 푸는 걸 즐긴다고 한다. 아마 그런 맥락과 배경에서 '북한 대사관' 탈출 놀이방이 탄생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북한 대사관이 이 사실을 알면 외교 문제로 비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북한'이란 이미지가 '감금'·'탈출'이란 이미지와 자연스럽게 어울려 러시아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북한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러시아 사람들마저도, 북한을 갇혀있는 사회, 폐쇄된 사회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연관기사] ☞ [뉴스광장] 감금 체험…북한 대사관을 탈출하라 (2016.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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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탈출하라”…왜 하필 북한 대사관일까
    • 입력 2016-06-08 09:07:50
    • 수정2016-06-08 13:43:25
    취재후
한 마디로 섬뜩하면서도 나름 흥미진진한 경험이었다. 이른바 탈출 놀이방 '북한 대사관'을 몸소 체험해본, 본 기자의 솔직한 소감이다.

'탈출 놀이방'이라면, 건물 내부로 들어가서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기 전까지 방문이
열리지 않는 게임의 일종으로, 요즘 한국에서도 인기가 있는 편이다. 모스크바 시내 중심가에 '북한 대사관'이라는 이름으로 인기가 있는 탈출 놀이방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봤다.

두건 쓰고 놀이방에 입장하는 모습

우리 일행은 모두 4명. 참가인원은 최대 5명까지이다. 퀴즈를 빨리 풀기 위해선 집단의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에 인원이 많을수록 유리한 측면이 있다.

게임 운영자가 우리 일행 앞에서 게임의 규칙을 설명한다.

"여러분은 북한 대사관에 정보를 빼내기 위해 침투했다가 정체가 발각돼 체포됐다. 북한 경비원이 상부에 보고하러 나간 사이 북한 대사관을 탈출해야 한다. 주어진 1시간 이내에 탈출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처형되고 맙니다. 여러분 주변의 스파이 도구를 잘
활용하고, 필요하면 운영자를 찾으시오. 준비됐나요?"

설명이 끝나자 우리 일행의 머리 위로 두건이 씌워졌다. 그 상태로 방문이 열리고 북한 대사관 안으로 끌려 들어가서 유치장 안에 감금됐다. 손목에는 수갑이, 발목에는 족쇄가 채워졌다. 정말 섬뜩했다.

김일성·김정일 부자 사진

두건을 벗으니 벽면에 낯익은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김일성·김정일 부자 사진이다. 맞은편 벽에는 대형 인공기가 걸려 있다. 북한 특유의 선전선동 문구도 있고 각종 한글 게시판도 보였다. 나름 북한 대사관이라는 분위기를 한껏 만들어낸 것이다.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가만... 그런데... 수갑과 족쇄는 어떻게 푸나..??

감옥 앞에 걸려 있는 인공기

사실, 보통 수준의 관찰력과 추리력만 있으면, 주어진 과제를 푸는 것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다. 대체로 퀴즈를 풀 수 있는 실마리가 주변에 숨겨져 있었고, 정녕 벽에 부딪혀 답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껴질 땐, 워키토키로 운영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나름 실마리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차례차례 과제를 풀어나가면 어느덧 1시간이 흘러가고... 우리 일행도 탈출에 성공했다.

왜 하필 '북한 대사관'일까



감금 체험장 '북한 대사관'은 지난해 11월 모스크바에 문을 열었다. 이 게임 운영업체는 지난해 모스크바와 치타 지역에, 1941년 모스크바 전투·탈옥 등의 익스트림(extreme) 체험장을 개설한데 이어, 11월에는 '북한 대사관'을 신규 개설한 것이다.

'북한 대사관'은 아직 여기밖에 없다. 평일에는 하루 10회, 주말에는 하루 12회 운영된다. 문을 연 지 6개월 정도 지났는데 탈출 놀이방 사이트 인기 순위에선 제법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을 마치고 나오는 러시아 젊은이 안나에게 소감을 물어보니, 매우 재미있었단다. "우리 일행 중에는 북한 대사관이라는 분위기에 약간 겁을 먹은 친구도 있었는데 게임을 풀어나가는 수준도 제법 높았고, 아주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탈출에 성공했기 때문에 아주아주 즐거웠다."

현미경 등 문제를 풀기 위한 도구가 놓여 있는 모습

그런데 왜 하필 배경이 북한 대사관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이 게임의 기획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자연스레 게임 운영자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운영자 역시 게임 기획자의 의도를 알 수 없단다.

"어떻게 '북한 대사관'이란 탈출 놀이방이 만들어졌는지 나도 알 수 없다. 내 생각엔
게임 기획자가 이전에 전혀 없었던 것, 무언가 재미있고, 아주 독특한 것을 찾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이걸 만들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대체로 드라마나 어떤 동화, 또는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를 기초로 해서 탈출 놀이방을 만든다. 북한에 대해서 누가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건 아주 독특한 무엇이다. 그게 바로 손님을 끄는 요소다."

실제로 운영업체는,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의 특별한 분위기와 환경을 체험할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전시된 러시아 체험자들의 사진

러시아 사람들은 유난히 모험을 좋아하고 게임이나 퍼즐 푸는 걸 즐긴다고 한다. 아마 그런 맥락과 배경에서 '북한 대사관' 탈출 놀이방이 탄생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북한 대사관이 이 사실을 알면 외교 문제로 비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북한'이란 이미지가 '감금'·'탈출'이란 이미지와 자연스럽게 어울려 러시아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북한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러시아 사람들마저도, 북한을 갇혀있는 사회, 폐쇄된 사회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연관기사] ☞ [뉴스광장] 감금 체험…북한 대사관을 탈출하라 (2016.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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