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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③ 밥벌이, 그 숭고한 비루함
입력 2016.06.08 (16:31) 수정 2016.07.01 (09:46) 임병걸의 시로 보는 경제
밥벌

성선경


밥벌이는 밥의 罰이다.
내 저 향기로운 냄새를 탐닉한 죄
내 저 풍요로운 포만감을 누린 죄
내 새끼에게 한 젓가락이라도 더 먹이겠다고
내 밥상에 한 접시의 찬이라도 더 올려놓겠다고
눈알을 부릅뜨고 새벽같이 일어나
사랑과 평화보다도 꿈과 이상보다도
몸뚱아리를 위해 더 종종거린 죄
몸뚱아리를 위해 더 싹싹 꼬리 친 죄
내 밥에 대한 저 엄중한 추궁

밥벌이는 내 밥의 罰이다.


■밥은 하늘이다(食以爲天)

食以爲天! 사마천이 쓴 중국의 역사서 '사기' 에 나오는 말입니다.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는 말이지요 저는 성선경 시인의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사마천의 말이 떠오릅니다. 먹거리보다 중요한 것이 서민들에게 무엇이 있을 수 있을까? 지금이야 눈부신 농업기술의 발전과 생산력의 증가로 먹거리가 풍부해지면서 굶어 죽는 사람이 거의 사라졌지만,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서민들을 위협하는 가장 큰 공포 가운데 하나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것이었으니까요

유럽의 풍운아 나폴레옹이 험준한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를 정복하러 갈 때도 " 저 산 너머는 맛있는 고기와 새로 구운 빵이 넘치는 곳이다 " 라며 병사들을 독려했다고 하지요. 그런데 시인은 <밥벌이>라는 인간의 가장 큰 숙제이기도 하고 숙명이기도 한 행위가밥을 탐하는 데 따른 罰 (punishment)라고 냉소를 짓습니다. 기발한 상상력과 재치있는 언어유희라고 웃어 넘기려다가 곰곰 생각해보니 슬프기도 하고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배고플 때 코 끝으로 스며드는 불고기 냄새나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는 냄새에 사지가 녹아내리고 입속에 군침이 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실컷 배를 채우고 난 후 밀려오는 포만감에 세상 다 얻은 듯 행복이 밀려온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홀로 살아가는 사람도 그런데 하물며 병아리 같은 새끼들을 짊어지느라 늘 어깨가 뻐근한 부모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밥 한술, 반찬 하나 더 걷어 먹이려고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필사적입니다. 궂은 일, 험한 일, 때로 모욕을 감수하는 일, 눈꺼풀이 감기는 일, 남들과 눈을 부라리는 일, 남의 고통을 짐짓 외면하는 일도 불사합니다.
돌아가신 저의 아버님도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일은 밥을 굶는 것이라 늘 말씀하셨습니다. 본인의 배가 곯는 것도 서러운데 금쪽 같은 아이들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면 눈이 뒤집히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을지요?

하여 한국 시 세계에서 산맥으로 우뚝 서 계신 고은 시인은 이렇게 썼습니다.

아이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
극락이구나
- 고은 / 아버지

자식 입으로 밥 들어가는 것을 보는 아버지의 눈길, 그 길이 극락이 아니면 무엇일지요?

고은 시인은 '밥'이 곧 사랑이라고도 썼습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흔하디 흔한 것
동시에 최고의 것
가로되 사랑이어라
- 고은 / 밥

사랑이 뭐 거창하거나 고상한 것 같지만, 사실은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일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것이겠지요. 가장 고귀한 것은 어쩌면 가장 평범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밥벌이의 고달픔, 밥벌이의 죄

밥벌이는 극소수의 금수저 계층을 빼고는 누가 뭐래도 인간이 땀흘려 일하는 가장 큰 목표입니다. 그런데 왜 이 신성한 밥벌이가 죄 값을 치른다는 의미의 벌이 되어야 할까요?
대부분의 밥벌이가 그렇듯, 동이 트는 새벽부터 별이 뜨는 밤까지 부지런히 몸뚱이를 놀리다보면 함박눈이 내리는 것 같은데 언제 비가 되어 쏟아지는지, 언제 매화가 피고 지고, 매실과 밤송이가 여물고 단풍이 물드는지 도무지 알 턱이 없습니다. 또 식탁 너머 이웃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우리 사회는 어떤 문제로 사람들이 분노하고 외치고 또 무엇을 갈구하는지 알 바가 아닙니다. 그러니 사랑, 평화, 정의, 영원과 같은 형이상학적 단어들은 그야말로 뜬구름처럼 아득하기만 합니다.

그뿐입니까? 밥을 벌기 위해 인간은 고상하고 가치 있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죽어도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 합니다. 좀 쉬고 싶어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극단적으로는 남에게 큰 해악을 끼치는 일까지 해야 합니다. 물건을 훔치기도 하고, 사람을 때리기도 하고, 사기치거나 눙치기도 하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오히려 악용하기도 하는 비정한 인간이 되기도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시인은 오직 입에 밥을 넣기 위해 애면글면 매달리는 우리들의 삶을 罰(벌)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몸뚱아리를 위해 종종거리고, 꼬리 치고" 다녀야 하는 罰(벌)말입니다.



최근 언론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전쟁 통에 글도 배우지 못한 칠순을 훌쩍 넘긴 노인이 시장에서 칼을 갈아주면서 생계를 이어갔는데, 수입은 하루 5만원 남짓, 그 돈으로 90대 노모까지 모시고 살았다지요 그런데 6년 전부터 60대 할머니가 칼을 가는 경쟁자로 나타나면서 노인의 수입은 줄어들었고, 홧김에 노인은 술을 마시고 경쟁자 할머니에게 칼을 휘둘렀다지요. 1년 6개월의 실형을 받았지만 이 노인의 딱한 사정을 아는 주변 사람들의 탄원으로 간신히 실형을 면했다고 합니다.

어디 이 노인 뿐일까요? 배가 고파 도둑질이나 강도짓을 하는 이른바 '생계형 범죄'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고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경찰청의 통계를 보면, 2014년에 전체 범죄건수는 178만 건 정도로 2013년보다 4% 정도 줄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절도는 16.3%에서 24.6%로 크게 늘었습니다. 범죄로 인한 재산 피해액이 10만원 미만인 경우도 19.6%에서 20.8%로 늘었습니다. 배가 고파서 저지르는 생계형 범죄가 늘어났음을 추론해볼 수 있는 통계입니다. 좀도둑질을 하는 청소년이나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걸 보면 취약계층의 밥벌이는 더욱 절박합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처럼 빵 한조각, 아이 분유 한통, 양말 한켤레, 감자 한봉지를 훔치다 걸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기사가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수두룩합니다.

■ 밥벌이는 공자와 노자 사상보다 심오하다

그 자신이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려 본 경험이 있는 소설가 김훈은 <라면을 끓이며>라는 에세이에서 보통 사람들의 삶을 "먹고살기의 지옥을 헤매고 있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밥이야말로 삶 그 자체이고 인륜의 기초이며 사유의 토대라고 잘라 말합니다. "생의 외경은 밥법이를 통해 실현된다"고 말하는 그는 밥이 유교나 노장사상보다, 유물론이나 유심론 같은 철학보다 심오하다고 말합니다.

"밥은 끼니때마다 온 식구들이 둘러앉아 함께 먹는 것이다.
밥이란 쌀을 삶은 것인데, 그 의미 내용은 심오하다.
그것은 孔孟老莊보다 심오하다.
밥에 비할진대, 유물론이나 유심론은 코흘리개 장난만도 못한 짓거리다.
다 큰 사내들은 이걸 혼돈해서는 안 된다.
밥은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윤기 흐르는 낟알들이 입속에서 개별로 씹히면서도
전체로서 조화를 이룬다.
이게 목구멍을 넘어갈 때 느껴지는 그 비릿하고도 매끄러운 촉감,
이것이 바로 삶인 것이다.
이것이 人倫基礎이며 思惟 土臺이다."

- 김훈 /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밥벌이는 소설가 김훈의 표현처럼 가장 심오하고 숭고한 행위이니 그 자체로야 부끄러운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밥벌이에 몸도 마음도 올인하다보니 그보다 가치 있는 다른 것들을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 부끄러움이고 문제라고 정끝별 시인도 말합니다.우리가 섣불리 청년들에게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존재들이라거나, 부조리한 사회현실에 대해 왜 저항하고 행동하지 못하느냐고 윽박지르는 것은 그들의 절박함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홍보 일을 하는 조현정씨도 자신의 일을 평생 천직으로 삼고 보람을 느끼는 운명이란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낭만일 뿐이며, 일이란 웬만해서는 밥벌이의 처연한 숭고함, 그 한계를 뛰어넘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 밥벌이의 허들을 뛰어넘자

그렇지만 아무리 밥벌이가 소중하다 해도 가끔은 머릿속에서 밥 생각을 싹 지우고 밥 아닌 다른 것을 채워넣는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억지로라도 힘껏 두발을 펄쩍 뛰어 밥벌이라는 허들을 넘어야겠습니다. 퇴근 길이어도 좋고, 모처럼 쉬는 주말이어도 좋습니다.정처없이 푸른 숲을 거닐며 역시 밥벌이를 위해 휴일도 없이 부지런히 일해야 하는 풀과 나무들과 꽃들과 대화도 해보고, 밤 하늘의 별과 구름과 붉은 노을도 물끄러미 바라봐야겠습니다. 아니면, 동네 도서관을 찾던지, 책장 한 켠에서 먼지만 쌓여가는 책을 꺼내 지금 여기 밥의 문제를 떠나 먼 옛날과 아득한 미래, 여기가 아닌 저기, 밥의 문제보다 한결 윗길인 사랑, 진리, 자유, 역사, 영원..... 이런 테마에 푹 빠져봐야겠습니다. 꼼꼼히 둘러보면 얼마나 많은 음악회와 연극과 영화, 전람회와 강연이 열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시나브로 우리 사회에도 365일 인문과 예술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따스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 노인과 어린이도 부지기숩니다. 밥만 늘 같이 먹고 말았던 가족과 함께, 아니면 카톡이나 전화로만 안부를 물었던 친구와 함께, 그것도 아니면 홀로 그 향연이나 봉사에 동참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평생을 종교적 경건함 안에서, 그리고 강과 숲 나무와 노을 같은 자연을 사랑하면서 자연처럼 살다 가신 구상 시인의 구도자와 같은 다짐에 한번 귀를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비록 밥벌이의 비루함에서 영원히 벗어나지는 못하는 우리들이지만, 가끔은 '밥 먹는 짐승'에서 벗어날 용기를 내야 하지 않을까요?


아침 강에 / 안개가 / 자욱 끼어 있다.
피안(彼岸)을 저어 가듯
태백(太白)의 허공속을 / 나룻배가 간다.
기슭, 백양목(白楊木) 가지에
까치가 한 마리 / 요란을 떨며 날은다.
물밑의 모래가 / 여인네의 속살처럼 / 맑아 온다.
잔 고기떼들이 / 생래(生來)의 즐거움으로 / 노닌다.
황금(黃金)의 햇발이 부서지며 / 꿈결의 꽃밭을 이룬다.
나도 이 속에선 / 밥 먹는 짐승이 아니다.

구상 시인 / 그리스도 폴의 강1

[시로 읽는 경제 이야기]
① 시 속의 경제, 경제 속의 시
② 한 방에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
  • [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③ 밥벌이, 그 숭고한 비루함
    • 입력 2016-06-08 16:31:05
    • 수정2016-07-01 09:46:06
    임병걸의 시로 보는 경제
밥벌

성선경


밥벌이는 밥의 罰이다.
내 저 향기로운 냄새를 탐닉한 죄
내 저 풍요로운 포만감을 누린 죄
내 새끼에게 한 젓가락이라도 더 먹이겠다고
내 밥상에 한 접시의 찬이라도 더 올려놓겠다고
눈알을 부릅뜨고 새벽같이 일어나
사랑과 평화보다도 꿈과 이상보다도
몸뚱아리를 위해 더 종종거린 죄
몸뚱아리를 위해 더 싹싹 꼬리 친 죄
내 밥에 대한 저 엄중한 추궁

밥벌이는 내 밥의 罰이다.


■밥은 하늘이다(食以爲天)

食以爲天! 사마천이 쓴 중국의 역사서 '사기' 에 나오는 말입니다.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는 말이지요 저는 성선경 시인의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사마천의 말이 떠오릅니다. 먹거리보다 중요한 것이 서민들에게 무엇이 있을 수 있을까? 지금이야 눈부신 농업기술의 발전과 생산력의 증가로 먹거리가 풍부해지면서 굶어 죽는 사람이 거의 사라졌지만,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서민들을 위협하는 가장 큰 공포 가운데 하나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것이었으니까요

유럽의 풍운아 나폴레옹이 험준한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를 정복하러 갈 때도 " 저 산 너머는 맛있는 고기와 새로 구운 빵이 넘치는 곳이다 " 라며 병사들을 독려했다고 하지요. 그런데 시인은 <밥벌이>라는 인간의 가장 큰 숙제이기도 하고 숙명이기도 한 행위가밥을 탐하는 데 따른 罰 (punishment)라고 냉소를 짓습니다. 기발한 상상력과 재치있는 언어유희라고 웃어 넘기려다가 곰곰 생각해보니 슬프기도 하고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배고플 때 코 끝으로 스며드는 불고기 냄새나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는 냄새에 사지가 녹아내리고 입속에 군침이 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실컷 배를 채우고 난 후 밀려오는 포만감에 세상 다 얻은 듯 행복이 밀려온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홀로 살아가는 사람도 그런데 하물며 병아리 같은 새끼들을 짊어지느라 늘 어깨가 뻐근한 부모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밥 한술, 반찬 하나 더 걷어 먹이려고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필사적입니다. 궂은 일, 험한 일, 때로 모욕을 감수하는 일, 눈꺼풀이 감기는 일, 남들과 눈을 부라리는 일, 남의 고통을 짐짓 외면하는 일도 불사합니다.
돌아가신 저의 아버님도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일은 밥을 굶는 것이라 늘 말씀하셨습니다. 본인의 배가 곯는 것도 서러운데 금쪽 같은 아이들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면 눈이 뒤집히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을지요?

하여 한국 시 세계에서 산맥으로 우뚝 서 계신 고은 시인은 이렇게 썼습니다.

아이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
극락이구나
- 고은 / 아버지

자식 입으로 밥 들어가는 것을 보는 아버지의 눈길, 그 길이 극락이 아니면 무엇일지요?

고은 시인은 '밥'이 곧 사랑이라고도 썼습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흔하디 흔한 것
동시에 최고의 것
가로되 사랑이어라
- 고은 / 밥

사랑이 뭐 거창하거나 고상한 것 같지만, 사실은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일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것이겠지요. 가장 고귀한 것은 어쩌면 가장 평범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밥벌이의 고달픔, 밥벌이의 죄

밥벌이는 극소수의 금수저 계층을 빼고는 누가 뭐래도 인간이 땀흘려 일하는 가장 큰 목표입니다. 그런데 왜 이 신성한 밥벌이가 죄 값을 치른다는 의미의 벌이 되어야 할까요?
대부분의 밥벌이가 그렇듯, 동이 트는 새벽부터 별이 뜨는 밤까지 부지런히 몸뚱이를 놀리다보면 함박눈이 내리는 것 같은데 언제 비가 되어 쏟아지는지, 언제 매화가 피고 지고, 매실과 밤송이가 여물고 단풍이 물드는지 도무지 알 턱이 없습니다. 또 식탁 너머 이웃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우리 사회는 어떤 문제로 사람들이 분노하고 외치고 또 무엇을 갈구하는지 알 바가 아닙니다. 그러니 사랑, 평화, 정의, 영원과 같은 형이상학적 단어들은 그야말로 뜬구름처럼 아득하기만 합니다.

그뿐입니까? 밥을 벌기 위해 인간은 고상하고 가치 있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죽어도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 합니다. 좀 쉬고 싶어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극단적으로는 남에게 큰 해악을 끼치는 일까지 해야 합니다. 물건을 훔치기도 하고, 사람을 때리기도 하고, 사기치거나 눙치기도 하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오히려 악용하기도 하는 비정한 인간이 되기도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시인은 오직 입에 밥을 넣기 위해 애면글면 매달리는 우리들의 삶을 罰(벌)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몸뚱아리를 위해 종종거리고, 꼬리 치고" 다녀야 하는 罰(벌)말입니다.



최근 언론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전쟁 통에 글도 배우지 못한 칠순을 훌쩍 넘긴 노인이 시장에서 칼을 갈아주면서 생계를 이어갔는데, 수입은 하루 5만원 남짓, 그 돈으로 90대 노모까지 모시고 살았다지요 그런데 6년 전부터 60대 할머니가 칼을 가는 경쟁자로 나타나면서 노인의 수입은 줄어들었고, 홧김에 노인은 술을 마시고 경쟁자 할머니에게 칼을 휘둘렀다지요. 1년 6개월의 실형을 받았지만 이 노인의 딱한 사정을 아는 주변 사람들의 탄원으로 간신히 실형을 면했다고 합니다.

어디 이 노인 뿐일까요? 배가 고파 도둑질이나 강도짓을 하는 이른바 '생계형 범죄'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고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경찰청의 통계를 보면, 2014년에 전체 범죄건수는 178만 건 정도로 2013년보다 4% 정도 줄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절도는 16.3%에서 24.6%로 크게 늘었습니다. 범죄로 인한 재산 피해액이 10만원 미만인 경우도 19.6%에서 20.8%로 늘었습니다. 배가 고파서 저지르는 생계형 범죄가 늘어났음을 추론해볼 수 있는 통계입니다. 좀도둑질을 하는 청소년이나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걸 보면 취약계층의 밥벌이는 더욱 절박합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처럼 빵 한조각, 아이 분유 한통, 양말 한켤레, 감자 한봉지를 훔치다 걸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기사가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수두룩합니다.

■ 밥벌이는 공자와 노자 사상보다 심오하다

그 자신이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려 본 경험이 있는 소설가 김훈은 <라면을 끓이며>라는 에세이에서 보통 사람들의 삶을 "먹고살기의 지옥을 헤매고 있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밥이야말로 삶 그 자체이고 인륜의 기초이며 사유의 토대라고 잘라 말합니다. "생의 외경은 밥법이를 통해 실현된다"고 말하는 그는 밥이 유교나 노장사상보다, 유물론이나 유심론 같은 철학보다 심오하다고 말합니다.

"밥은 끼니때마다 온 식구들이 둘러앉아 함께 먹는 것이다.
밥이란 쌀을 삶은 것인데, 그 의미 내용은 심오하다.
그것은 孔孟老莊보다 심오하다.
밥에 비할진대, 유물론이나 유심론은 코흘리개 장난만도 못한 짓거리다.
다 큰 사내들은 이걸 혼돈해서는 안 된다.
밥은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윤기 흐르는 낟알들이 입속에서 개별로 씹히면서도
전체로서 조화를 이룬다.
이게 목구멍을 넘어갈 때 느껴지는 그 비릿하고도 매끄러운 촉감,
이것이 바로 삶인 것이다.
이것이 人倫基礎이며 思惟 土臺이다."

- 김훈 /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밥벌이는 소설가 김훈의 표현처럼 가장 심오하고 숭고한 행위이니 그 자체로야 부끄러운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밥벌이에 몸도 마음도 올인하다보니 그보다 가치 있는 다른 것들을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 부끄러움이고 문제라고 정끝별 시인도 말합니다.우리가 섣불리 청년들에게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존재들이라거나, 부조리한 사회현실에 대해 왜 저항하고 행동하지 못하느냐고 윽박지르는 것은 그들의 절박함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홍보 일을 하는 조현정씨도 자신의 일을 평생 천직으로 삼고 보람을 느끼는 운명이란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낭만일 뿐이며, 일이란 웬만해서는 밥벌이의 처연한 숭고함, 그 한계를 뛰어넘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 밥벌이의 허들을 뛰어넘자

그렇지만 아무리 밥벌이가 소중하다 해도 가끔은 머릿속에서 밥 생각을 싹 지우고 밥 아닌 다른 것을 채워넣는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억지로라도 힘껏 두발을 펄쩍 뛰어 밥벌이라는 허들을 넘어야겠습니다. 퇴근 길이어도 좋고, 모처럼 쉬는 주말이어도 좋습니다.정처없이 푸른 숲을 거닐며 역시 밥벌이를 위해 휴일도 없이 부지런히 일해야 하는 풀과 나무들과 꽃들과 대화도 해보고, 밤 하늘의 별과 구름과 붉은 노을도 물끄러미 바라봐야겠습니다. 아니면, 동네 도서관을 찾던지, 책장 한 켠에서 먼지만 쌓여가는 책을 꺼내 지금 여기 밥의 문제를 떠나 먼 옛날과 아득한 미래, 여기가 아닌 저기, 밥의 문제보다 한결 윗길인 사랑, 진리, 자유, 역사, 영원..... 이런 테마에 푹 빠져봐야겠습니다. 꼼꼼히 둘러보면 얼마나 많은 음악회와 연극과 영화, 전람회와 강연이 열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시나브로 우리 사회에도 365일 인문과 예술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따스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 노인과 어린이도 부지기숩니다. 밥만 늘 같이 먹고 말았던 가족과 함께, 아니면 카톡이나 전화로만 안부를 물었던 친구와 함께, 그것도 아니면 홀로 그 향연이나 봉사에 동참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평생을 종교적 경건함 안에서, 그리고 강과 숲 나무와 노을 같은 자연을 사랑하면서 자연처럼 살다 가신 구상 시인의 구도자와 같은 다짐에 한번 귀를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비록 밥벌이의 비루함에서 영원히 벗어나지는 못하는 우리들이지만, 가끔은 '밥 먹는 짐승'에서 벗어날 용기를 내야 하지 않을까요?


아침 강에 / 안개가 / 자욱 끼어 있다.
피안(彼岸)을 저어 가듯
태백(太白)의 허공속을 / 나룻배가 간다.
기슭, 백양목(白楊木) 가지에
까치가 한 마리 / 요란을 떨며 날은다.
물밑의 모래가 / 여인네의 속살처럼 / 맑아 온다.
잔 고기떼들이 / 생래(生來)의 즐거움으로 / 노닌다.
황금(黃金)의 햇발이 부서지며 / 꿈결의 꽃밭을 이룬다.
나도 이 속에선 / 밥 먹는 짐승이 아니다.

구상 시인 / 그리스도 폴의 강1

[시로 읽는 경제 이야기]
① 시 속의 경제, 경제 속의 시
② 한 방에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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