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In] ② 신명나게 ‘현실’을 비판한 작가, 오윤

입력 2016.06.21 (16:46) 수정 2016.06.2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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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뼈 튀어나온 얼굴, 죽 찢어진 두 눈...

화가 오윤(1946~86)은 맹수 마냥 두 눈 부릅뜨고 현실을 거슬러 올라갔다. 반공 이데올로기와 군사 독재에 맞서 현실 비판에 나섰고 우리 것을 찾아 전통 연희와 풍속을 목판에 새겼다.

도깨비(1985, 광목에 채색, 판화)도깨비(1985, 광목에 채색, 판화)


오윤의 작품은 1980년대를 살아온 이들에게는 매우 친숙하다. 단순하면서도 힘이 있는 선, 오방색으로 만들어 내는 토속적인 형상들. 이들이 서로 부딪히고 어우러지면서 뿜어내는 활기찬 기운은 민족적 감수성을 자극한다.

가족 2(1982, 캔버스에 유채)가족 2(1982, 캔버스에 유채)


초기에는 민족 정서를 바탕으로 한 목판화가 주를 이루다가 1980년대에 들어서서는 고통받거나 소외받는 평범한 민중의 이야기를 주제로 삼기 시작했다.

김지하 시인은 오윤의 목판이 "민초들의 생명력 있는 기를 반영한 것"이라고 말한다. 오윤은 풍자와 해학으로 시대의 아픔을 풀어냈다. 삶의 고통과 한 맺힘을 신명 한 판으로 풀어내는 그의 작품은 보는 이의 마음을 시나브로 끌어당겼다.

호랑이(1973-1976, 종이에 먹선, 채색)호랑이(1973-1976, 종이에 먹선, 채색)


오윤은 팬이 은근히 많다. 다른 이들이 직설적인 화법으로 현실을 비판했던 것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호랑이와 도깨비가 등장하는 설화와 민담 그리고 칼춤과 같은 전통 무속을 접목해 시대상을 뒤틀어 표현했다. 대중적이면서도 전통적인 도상을 통해 미술과 사회의 소통을 꾀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칼노래(연도미상, 광목에 목판화, 채색)칼노래(연도미상, 광목에 목판화, 채색)


현재 우리나라에는 판화 시장이 활성화 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윤의 경우만은 예외적이다.

지난해 12월에 열린 서울옥션 경매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그의 판화 '칼노래'가 추정가의 3배가 넘는 4,800만 원에 낙찰된 것이다. 오윤의 인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

목판화 작업을 하고 있는 오윤목판화 작업을 하고 있는 오윤


민중미술의 대표 주자였던 오윤은 1986년, 마흔 살의 나이로 요절했다. 시대 저항적인 판화와 벽화 등을 제작하며 예술혼을 불태우다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소설 '갯마을'을 쓴 작가 오영수의 장남이기도 한 오윤은 토속적인 색채로 사회상을 비판적으로 그려냈다. 1969년 진보적 미술단체인 '현실 동인'에 참여했고, 1979년 민중미술의 중심인 '현실과 발언'의 창립 작가로 활동했다.

통일대원도(1985, 캔버스에 유채)통일대원도(1985, 캔버스에 유채)


'오윤 30주기 회고전'이 24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다. 고인의 목판화와 드로잉, 유화, 조소 등 유작 250여 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여기에는 지인들이 소장하다 내놓은 미공개 드로잉 100여 점도 포함돼 있다.

미공개 드로잉은 그가 20대 후반이었던 1970~75년에 그린 것으로, 모색기의 작품이다. 색연필과 크레파스, 먹 등을 사용해 굵직하면서도 빠르게 인물, 불상 등을 그렸다.

춤추는 남자(1970-1975, 종이에 먹선, 채색)춤추는 남자(1970-1975, 종이에 먹선, 채색)


미술평론가 윤범모 씨는 "드로잉은 오윤 예술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는 장르"라며 "독자적 예술 세계로 가기 위한 모색 과정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8월 7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회는 민족의 한(恨)과 흥(興)을 담아 미술과 사회를 소통시기려 했던 그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문화人·In]
☞ ① “서화에 생명 불어넣은 50년,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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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人·In] ② 신명나게 ‘현실’을 비판한 작가, 오윤
    • 입력 2016-06-21 16:46:02
    • 수정2016-06-21 16:59:08
    취재K
광대뼈 튀어나온 얼굴, 죽 찢어진 두 눈...

화가 오윤(1946~86)은 맹수 마냥 두 눈 부릅뜨고 현실을 거슬러 올라갔다. 반공 이데올로기와 군사 독재에 맞서 현실 비판에 나섰고 우리 것을 찾아 전통 연희와 풍속을 목판에 새겼다.

도깨비(1985, 광목에 채색, 판화)

오윤의 작품은 1980년대를 살아온 이들에게는 매우 친숙하다. 단순하면서도 힘이 있는 선, 오방색으로 만들어 내는 토속적인 형상들. 이들이 서로 부딪히고 어우러지면서 뿜어내는 활기찬 기운은 민족적 감수성을 자극한다.

가족 2(1982, 캔버스에 유채)

초기에는 민족 정서를 바탕으로 한 목판화가 주를 이루다가 1980년대에 들어서서는 고통받거나 소외받는 평범한 민중의 이야기를 주제로 삼기 시작했다.

김지하 시인은 오윤의 목판이 "민초들의 생명력 있는 기를 반영한 것"이라고 말한다. 오윤은 풍자와 해학으로 시대의 아픔을 풀어냈다. 삶의 고통과 한 맺힘을 신명 한 판으로 풀어내는 그의 작품은 보는 이의 마음을 시나브로 끌어당겼다.

호랑이(1973-1976, 종이에 먹선, 채색)

오윤은 팬이 은근히 많다. 다른 이들이 직설적인 화법으로 현실을 비판했던 것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호랑이와 도깨비가 등장하는 설화와 민담 그리고 칼춤과 같은 전통 무속을 접목해 시대상을 뒤틀어 표현했다. 대중적이면서도 전통적인 도상을 통해 미술과 사회의 소통을 꾀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칼노래(연도미상, 광목에 목판화, 채색)

현재 우리나라에는 판화 시장이 활성화 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윤의 경우만은 예외적이다.

지난해 12월에 열린 서울옥션 경매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그의 판화 '칼노래'가 추정가의 3배가 넘는 4,800만 원에 낙찰된 것이다. 오윤의 인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

목판화 작업을 하고 있는 오윤

민중미술의 대표 주자였던 오윤은 1986년, 마흔 살의 나이로 요절했다. 시대 저항적인 판화와 벽화 등을 제작하며 예술혼을 불태우다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소설 '갯마을'을 쓴 작가 오영수의 장남이기도 한 오윤은 토속적인 색채로 사회상을 비판적으로 그려냈다. 1969년 진보적 미술단체인 '현실 동인'에 참여했고, 1979년 민중미술의 중심인 '현실과 발언'의 창립 작가로 활동했다.

통일대원도(1985, 캔버스에 유채)

'오윤 30주기 회고전'이 24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다. 고인의 목판화와 드로잉, 유화, 조소 등 유작 250여 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여기에는 지인들이 소장하다 내놓은 미공개 드로잉 100여 점도 포함돼 있다.

미공개 드로잉은 그가 20대 후반이었던 1970~75년에 그린 것으로, 모색기의 작품이다. 색연필과 크레파스, 먹 등을 사용해 굵직하면서도 빠르게 인물, 불상 등을 그렸다.

춤추는 남자(1970-1975, 종이에 먹선, 채색)

미술평론가 윤범모 씨는 "드로잉은 오윤 예술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는 장르"라며 "독자적 예술 세계로 가기 위한 모색 과정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8월 7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회는 민족의 한(恨)과 흥(興)을 담아 미술과 사회를 소통시기려 했던 그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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