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포비아’와 대통령이 되기 힘든 10가지 근거

입력 2016.07.31 (16:14) 수정 2016.08.0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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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때문에 한국이 걱정이다"
"나는 미국이 더 걱정이다. 트럼프 때문에"

미국을 걱정하는 말은 최근 한국을 방문했던 한미관계 전문가 빅터 차 교수가 KBS 양영은 앵커와의 대담에서 주저 없이 답변한 내용이다.

미국 대선 이후 한미관계를 전망하던 중에 나온 위트 섞인 즉흥적 답변이지만 미국 내 지식인들의 심중을 드러내는 의미심장한 한마디라고 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이야기보다는 이제는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많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 시대가 실현될 경우 닥칠 위험을 강조하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 위대한 나라의 약속을 여전히 믿고 있음을 세계에 보여주기 위해 이번 선거에 동참할 것을 요청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7월 28일 민주당 전당대회 발언 가운데 한 대목이다.


현직 대통령이 자신이 속한 특정 정당 민주당의 전당대회에 직접 참석해서 지원 연설을 한 것은 트럼프의 기세가 현실적인 위협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결속할 것을 당부하는 것이다.


[연관기사] ☞ “클린턴 대통령감”…오바마 12년 만에 찬조 연설

트럼프의 존재감은 이제 한국에서도 뜨거운 화제로 등장한다. 나름대로 이런저런 선거판을 두루 경험해봤다는 언론사 간부들이나 정치권 인사들 가운데 상당수가 트럼프의 낙승을 호언장담하기도 한다. 미국 사회에 '바꿔보자는 거대한 흐름이 형성됐고 공세적 이슈를 선점하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가 이긴다'는 것이다. 특히 TV 토론이 진행되면 대중에게 오랫동안 노출돼 온 힐러리의 식상한 논리가 단도직입적이고 공격적인 트럼프의 언변을 당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뒤따른다.

빠르게 번지고 있는 '트럼프포비아'

이곳저곳에 일종의 '트럼프포비아'가 빠르게 번지고 있다. '트럼프가 될 것 같아' '유배지를 탈출한 나폴레옹이 파리를 향해 쾌속 진군하는 모양새야' '트럼프가 되면 많이 바뀔 것 같은데 어쩌지' 이런 포비아가 미국 안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에서까지 큰 화제가 되고 있는 글로벌한 현상임을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대통령 후보를 확정하는 전당대회를 치른 후 트럼프 후보와 클린턴 후보의 지지율까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일반인들의 '트럼프포비아'는 쉽게 진정되지 않는 양상이다.


그럼 정말 트럼프 대통령 시대가 실현되는가?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강한 회의감을 갖고 있다.

선거는 과학이다. 겉으로 보이는 현상만을 따라가다 보면 실제 표심의 흐름을 자칫 놓치고 틀린 예측으로 이어지기 쉽지만 선거판을 관통하는 데이터들을 잘 골라내 제대로 분석하면 정확한 예측도 가능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트럼프 대세론에 회의감을 갖게 하는 반박 논거는 다음과 같다.


선거판을 쉽쓰는 큰바람이 없다

우선 선거는 흔히들 말하듯 바람과 구도다. 바람을 타고 유리한 구도를 형성하면 백전백승이다. 트럼프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하지만 자세히 보면 부분적인 돌풍에 불과하다.

미국 대통령이 바뀔 때 나타났던 '전쟁 반대'라든지 '경제파탄 우려' 같은 전국 단위의 큰바람이 없다. 선거 승패를 좌우하는 말 없는 중간층의 가슴을 흔들만한 현 정권의 일방적인 실정을 찾기 힘든 것이다.

쇄락하는 미국을 탓하는 목소리는 공화당 지지층에서 거셀 뿐이지 일반화되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 언론의 논조와 여론이 공화당의 비난 공세에 가세하지 않고 있다. 이번 미국 대선은 어느 때보다도 선거판을 휩쓰는 큰바람이 없는 선거다.

선거 구도는 오히려 트럼프에게 불리하다. 먼저 후보군의 경우 과거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궁지에 몰아넣었던 랄프 레이더 같은 진보 성향 후보는 보이지 않고 그나마 조금이라도 표를 얻을 군소 후보는 자유당의 게리존슨 등 보수 성향이다.

만일 공화당원이면서도 진보적 중도 성향으로 평가 받는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같은 인사가 출마했다면 트럼프에게 유리했겠지만 그는 오히려 힐러리를 지지하고 나섰다. 공화당이 결집하지 못하고 조직이 이완된 상황에서 기존 지지층 가운데 일부가 일탈할 수 있는 여지만 커진 것이다.


줄어드는 백인 유권자들의 비율

트럼프 후보에게 가장 큰 난관은 미국의 인구 구성(Demography)이다. 자신의 지지 기반이 돼야 하는 백인 유권자들의 비율이 줄어들고 있다. 미국 유권자 가운데 대략 백인의 비율이 70%, 흑인과 히스패닉, 아시안 등 비 백인의 비율이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백인 비율이 줄어드는 것과 함께 비(非) 백인들의 투표 참가를 위한 등록 비율이 늘고 있다.

트럼프의 지지율이 정점을 달리던 7월 25일 공화당 전당대회 직후 여론조사에서(CNN보도) 트럼프의 지지율은 클린턴보다 3% 포인트 정도 앞섰지만 가장 적극적 지지층인 백인 노동자 계층에서 66%를 얻었고, 힐러리는 29%를 기록했다. 트럼프가 백인 유권자의 70%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승리를 거머쥐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이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고 미국 주요 언론과 선거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흑인과 히스패닉 등 비백인들의 표는 오바마 대통령 당선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힐러리 클린턴에게 쏠릴 분위기여서 인구 구성은 힐러리에게 훨씬 유리하다.

선거의 승패는 지지층을 결집해서 투표장으로 더 많이 끌어내는 쪽이 이긴다는 건 동서고금의 진리로 받아들여진다. 지지층 결집도에서 트럼프는 힐러리 후보에게 뒤진다. 이번 공화당과 민주당의 전당대회는 양당의 결집도 차이를 공개적으로 보여줬다.

혹자는 공화당의 지도자급 인사들이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 것이 일반 당원들의 표심과는 다를 수 있다는 얘기도 하고 있지만 반감을 표시하는 지도자급 인사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들이 맡아온 역할과 비중이 너무 크다. 더군다나 이번 11월에 열리는 선거는 대통령뿐만 아니라 435명의 하원 의원 전원과 상원의원 3분의 1, 상당수 주지사와 지역 의원들까지 함께 뽑는 총선거여서 반감을 가진 지도부의 의사는 그대로 지지자들에게로 연결된다.

'양심에 따라 투표하라'는 크루즈 상원의원의 언급처럼 쉽게 말해 '트럼프에게 투표할 필요 없다'는 트럼프 반대 캠페인이 일부 공화당 지지세력 안에서도 적극 표출되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는 대선 향배를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첫 단초다. 대통령 후보의 됨됨이와 추진할 정책을 살펴볼 기회일 뿐만 아니라 대통령을 도울 팀워크를 볼 수 있는 기회다.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혼자 결정하는 독불장군이 아니라 팀의 리더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백악관과 부처의 보좌를 받아 의회 지도자들과 어떻게 팀을 꾸리고 협력해나갈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시험 무대인 전당대회는 민주당의 완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선에서 드러난 후보 간 갈등을 전당대회를 통해 극복하는 모양새에서도 양당은 차이를 보여줬고 유권자에게 호소하는 전략에서도 현직 대통령 부부까지 동원하며 인종, 성별, 세대를 치밀하게 나눠서 접근한 민주당이 앞섰다. 흔히 말하는 전당대회 효과(Convention Effect)를 공화당은 크게 누리지 못했고 이는 대회 직후 나타난 지지도 조사 결과로 나타났다.

[연관기사] ☞ 美대선 100일 앞두고 힐러리, 트럼프에 6%포인트 앞서

트럼프의 약점은 또 있다. 너무 일찍 유명세를 타면서 투표일에 다가갈수록 기대감과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오바마 대통령을 직설적으로 공격하고 미국의 이익만을 우선시하겠다는 단도직입적인 언급들이 몇 번 들을 때는 괜찮았지만 자꾸 반복되면 일반 유권자들의 감동으로 이어지기는 힘들다. 열렬한 자기 지지층만 환호하기 쉽다. 참신함의 장점은 사그라들고 식상하기는 힐러리나 트럼프나 엇비슷한 처지가 됐다.

트럼프의 대중 인지도 관련 그래프는 이미 꼭짓점을 돌았다. 이는 4년 전 공화당 후보로 나섰던 미트 롬니 후보와도 비교된다. 롬니 후보는 공화당 예선과정에서는 일반 유권자들의 주목을 크게 끌지 못했지만 전당대회 이후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려나갔다. 전당대회 후보 수락 연설에서 달변가로 돌변한 후 이어진 TV토론에서 정책 사안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력과 화려한 언변을 과시했다. 롬니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달라지고 지지도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면서 투표 100일 전 상황은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국면으로 전개됐다.


TV토론이 기회가 될 수 있을까

혹자는 그렇기 때문에 말 잘하는 트럼프에게도 이제부터 더 좋은 기회가 온다고 얘기한다. 앞으로 있을 세 번의 TV토론에서 힐러리를 압도하고 대세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건 다른 얘기다. TV토론이 진행될수록 그가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많을 것이다.

말 잘하는 트럼프로 얻었던 득점은 이미 유권자들의 점수표에 합산돼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추가 득점이 될 수 없다. 단순 명쾌한 논리, 공격적 언사는 오바마 정부를 악으로 보는 공화당 지지자들로부터는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지만 일반 유권자들의 일반적인 정서는 아니다. 오히려 충실한 내용, 실질적 근거가 뒷받침되지 않은 모순된 주장, 거친 언변들이 트럼프에게 부메랑이 돼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힐러리가 공격받아온 이메일이나 뱅가지 문제도 논란거리는 계속 되겠지만 그녀가 기소되지 않은 이상 선거의 대세를 좌우할 변수는 더 이상 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의 말은 더욱 거칠어질 수 있지만 미국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TV토론에서 거친 언사를 쓰며 공격만 한다고 점수를 따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역대 선거를 곰곰이 되짚어 보면 알 수 있다.

트럼프, 선거 자금 확보에서도 밀려

선거 판세에 영향을 미치는 지원 요소들도 트럼프에게 유리하지 않다. 선거는 조직과 돈이라고 하는 데 특히 미국 선거에서 돈의 역할은 투표일에 다가갈수록 커진다. 조직의 견고함도 떨어지는 트럼프는 선거 자금 확보에서도 힐러리에게 뒤진다. 4년 전 대선 당시 아낌없이 롬니 공화당 후보를 지원했던 코크 형제 등 큰 손들이 뒷짐을 지고 있다. 앞으로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이 투여될 방송 광고 등에서 실탄을 많이 확보한 힐러리 후보와 지지그룹(super pac)은 대대적인 물량공세에 나설 탄탄한 준비가 돼 있다. (2012년 대선에공중파와 케이블 TV 지출 규모는 38억 달러, 2016년에는 44억 달러(약 5조2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미국 언론들은 전망하고 있고 올해에는 디지털 광고 비용도 10억 달러 이상이 될 것으로 미국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부통령 후보도 공화당의 펜스 후보보다는 민주당 케인 후보가 득점을 하고 있다. 케인 후보는 백인이면서도 능숙한 스페인어 구사로 히스패닉 유권자들에게 다가가고 있고 '나를 형편없는 뉴저지주 주지사라고 비난한 트럼프 말에 상처 받았어요. 나는 버지니아 주지사였는데...' 라는 재치있는 언변 등으로 트럼프와 맞서는 주공격수로 포지셔닝해가고 있다. 그동안 선거판을 좌지우지 하다시피 해온 미국 주요 언론도 물론 트럼프에게 유리하지 않다.

대통령은 어렵지만 돌발 변수는 있다

정치는 생물이다. 선거공학적으로 살펴본 트럼프의 한계는 한꺼풀만 들춰보면 이처럼 명백하지만 승부는 장갑을 벗을 때까지 단언할 수 없다는 말이 이번 선거에도 적용된다.


요즘 들어 한창 위기의식을 강조하고 있는 민주당이나 힐러리 후보 측이 판세의 호전에 들떠서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선거 운동의 이완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힐러리의 집권은 오바마 정권의 연장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투표일 전에 큰 정책의 실패가 부각되면 트럼프에게는 호기가 된다. 가령 미국 본토에서 IS의 테러 같은 것이 있게 되고 큰 피해가 발생하게 되면 선거판을 뒤흔들릴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는 어렵다는 것이 선거공학적 결론이지만 마지막 변수마저 없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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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포비아’와 대통령이 되기 힘든 10가지 근거
    • 입력 2016-07-31 16:14:23
    • 수정2016-08-01 09:5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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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때문에 한국이 걱정이다" "나는 미국이 더 걱정이다. 트럼프 때문에" 미국을 걱정하는 말은 최근 한국을 방문했던 한미관계 전문가 빅터 차 교수가 KBS 양영은 앵커와의 대담에서 주저 없이 답변한 내용이다. 미국 대선 이후 한미관계를 전망하던 중에 나온 위트 섞인 즉흥적 답변이지만 미국 내 지식인들의 심중을 드러내는 의미심장한 한마디라고 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이야기보다는 이제는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많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 시대가 실현될 경우 닥칠 위험을 강조하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 위대한 나라의 약속을 여전히 믿고 있음을 세계에 보여주기 위해 이번 선거에 동참할 것을 요청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7월 28일 민주당 전당대회 발언 가운데 한 대목이다. 현직 대통령이 자신이 속한 특정 정당 민주당의 전당대회에 직접 참석해서 지원 연설을 한 것은 트럼프의 기세가 현실적인 위협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결속할 것을 당부하는 것이다. [연관기사] ☞ “클린턴 대통령감”…오바마 12년 만에 찬조 연설 트럼프의 존재감은 이제 한국에서도 뜨거운 화제로 등장한다. 나름대로 이런저런 선거판을 두루 경험해봤다는 언론사 간부들이나 정치권 인사들 가운데 상당수가 트럼프의 낙승을 호언장담하기도 한다. 미국 사회에 '바꿔보자는 거대한 흐름이 형성됐고 공세적 이슈를 선점하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가 이긴다'는 것이다. 특히 TV 토론이 진행되면 대중에게 오랫동안 노출돼 온 힐러리의 식상한 논리가 단도직입적이고 공격적인 트럼프의 언변을 당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뒤따른다. 빠르게 번지고 있는 '트럼프포비아' 이곳저곳에 일종의 '트럼프포비아'가 빠르게 번지고 있다. '트럼프가 될 것 같아' '유배지를 탈출한 나폴레옹이 파리를 향해 쾌속 진군하는 모양새야' '트럼프가 되면 많이 바뀔 것 같은데 어쩌지' 이런 포비아가 미국 안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에서까지 큰 화제가 되고 있는 글로벌한 현상임을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대통령 후보를 확정하는 전당대회를 치른 후 트럼프 후보와 클린턴 후보의 지지율까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일반인들의 '트럼프포비아'는 쉽게 진정되지 않는 양상이다. 그럼 정말 트럼프 대통령 시대가 실현되는가?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강한 회의감을 갖고 있다. 선거는 과학이다. 겉으로 보이는 현상만을 따라가다 보면 실제 표심의 흐름을 자칫 놓치고 틀린 예측으로 이어지기 쉽지만 선거판을 관통하는 데이터들을 잘 골라내 제대로 분석하면 정확한 예측도 가능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트럼프 대세론에 회의감을 갖게 하는 반박 논거는 다음과 같다. 선거판을 쉽쓰는 큰바람이 없다 우선 선거는 흔히들 말하듯 바람과 구도다. 바람을 타고 유리한 구도를 형성하면 백전백승이다. 트럼프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하지만 자세히 보면 부분적인 돌풍에 불과하다. 미국 대통령이 바뀔 때 나타났던 '전쟁 반대'라든지 '경제파탄 우려' 같은 전국 단위의 큰바람이 없다. 선거 승패를 좌우하는 말 없는 중간층의 가슴을 흔들만한 현 정권의 일방적인 실정을 찾기 힘든 것이다. 쇄락하는 미국을 탓하는 목소리는 공화당 지지층에서 거셀 뿐이지 일반화되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 언론의 논조와 여론이 공화당의 비난 공세에 가세하지 않고 있다. 이번 미국 대선은 어느 때보다도 선거판을 휩쓰는 큰바람이 없는 선거다. 선거 구도는 오히려 트럼프에게 불리하다. 먼저 후보군의 경우 과거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궁지에 몰아넣었던 랄프 레이더 같은 진보 성향 후보는 보이지 않고 그나마 조금이라도 표를 얻을 군소 후보는 자유당의 게리존슨 등 보수 성향이다. 만일 공화당원이면서도 진보적 중도 성향으로 평가 받는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같은 인사가 출마했다면 트럼프에게 유리했겠지만 그는 오히려 힐러리를 지지하고 나섰다. 공화당이 결집하지 못하고 조직이 이완된 상황에서 기존 지지층 가운데 일부가 일탈할 수 있는 여지만 커진 것이다. 줄어드는 백인 유권자들의 비율 트럼프 후보에게 가장 큰 난관은 미국의 인구 구성(Demography)이다. 자신의 지지 기반이 돼야 하는 백인 유권자들의 비율이 줄어들고 있다. 미국 유권자 가운데 대략 백인의 비율이 70%, 흑인과 히스패닉, 아시안 등 비 백인의 비율이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백인 비율이 줄어드는 것과 함께 비(非) 백인들의 투표 참가를 위한 등록 비율이 늘고 있다. 트럼프의 지지율이 정점을 달리던 7월 25일 공화당 전당대회 직후 여론조사에서(CNN보도) 트럼프의 지지율은 클린턴보다 3% 포인트 정도 앞섰지만 가장 적극적 지지층인 백인 노동자 계층에서 66%를 얻었고, 힐러리는 29%를 기록했다. 트럼프가 백인 유권자의 70%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승리를 거머쥐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이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고 미국 주요 언론과 선거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흑인과 히스패닉 등 비백인들의 표는 오바마 대통령 당선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힐러리 클린턴에게 쏠릴 분위기여서 인구 구성은 힐러리에게 훨씬 유리하다. 선거의 승패는 지지층을 결집해서 투표장으로 더 많이 끌어내는 쪽이 이긴다는 건 동서고금의 진리로 받아들여진다. 지지층 결집도에서 트럼프는 힐러리 후보에게 뒤진다. 이번 공화당과 민주당의 전당대회는 양당의 결집도 차이를 공개적으로 보여줬다. 혹자는 공화당의 지도자급 인사들이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 것이 일반 당원들의 표심과는 다를 수 있다는 얘기도 하고 있지만 반감을 표시하는 지도자급 인사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들이 맡아온 역할과 비중이 너무 크다. 더군다나 이번 11월에 열리는 선거는 대통령뿐만 아니라 435명의 하원 의원 전원과 상원의원 3분의 1, 상당수 주지사와 지역 의원들까지 함께 뽑는 총선거여서 반감을 가진 지도부의 의사는 그대로 지지자들에게로 연결된다. '양심에 따라 투표하라'는 크루즈 상원의원의 언급처럼 쉽게 말해 '트럼프에게 투표할 필요 없다'는 트럼프 반대 캠페인이 일부 공화당 지지세력 안에서도 적극 표출되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는 대선 향배를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첫 단초다. 대통령 후보의 됨됨이와 추진할 정책을 살펴볼 기회일 뿐만 아니라 대통령을 도울 팀워크를 볼 수 있는 기회다.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혼자 결정하는 독불장군이 아니라 팀의 리더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백악관과 부처의 보좌를 받아 의회 지도자들과 어떻게 팀을 꾸리고 협력해나갈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시험 무대인 전당대회는 민주당의 완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선에서 드러난 후보 간 갈등을 전당대회를 통해 극복하는 모양새에서도 양당은 차이를 보여줬고 유권자에게 호소하는 전략에서도 현직 대통령 부부까지 동원하며 인종, 성별, 세대를 치밀하게 나눠서 접근한 민주당이 앞섰다. 흔히 말하는 전당대회 효과(Convention Effect)를 공화당은 크게 누리지 못했고 이는 대회 직후 나타난 지지도 조사 결과로 나타났다. [연관기사] ☞ 美대선 100일 앞두고 힐러리, 트럼프에 6%포인트 앞서 트럼프의 약점은 또 있다. 너무 일찍 유명세를 타면서 투표일에 다가갈수록 기대감과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오바마 대통령을 직설적으로 공격하고 미국의 이익만을 우선시하겠다는 단도직입적인 언급들이 몇 번 들을 때는 괜찮았지만 자꾸 반복되면 일반 유권자들의 감동으로 이어지기는 힘들다. 열렬한 자기 지지층만 환호하기 쉽다. 참신함의 장점은 사그라들고 식상하기는 힐러리나 트럼프나 엇비슷한 처지가 됐다. 트럼프의 대중 인지도 관련 그래프는 이미 꼭짓점을 돌았다. 이는 4년 전 공화당 후보로 나섰던 미트 롬니 후보와도 비교된다. 롬니 후보는 공화당 예선과정에서는 일반 유권자들의 주목을 크게 끌지 못했지만 전당대회 이후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려나갔다. 전당대회 후보 수락 연설에서 달변가로 돌변한 후 이어진 TV토론에서 정책 사안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력과 화려한 언변을 과시했다. 롬니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달라지고 지지도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면서 투표 100일 전 상황은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국면으로 전개됐다. TV토론이 기회가 될 수 있을까 혹자는 그렇기 때문에 말 잘하는 트럼프에게도 이제부터 더 좋은 기회가 온다고 얘기한다. 앞으로 있을 세 번의 TV토론에서 힐러리를 압도하고 대세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건 다른 얘기다. TV토론이 진행될수록 그가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많을 것이다. 말 잘하는 트럼프로 얻었던 득점은 이미 유권자들의 점수표에 합산돼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추가 득점이 될 수 없다. 단순 명쾌한 논리, 공격적 언사는 오바마 정부를 악으로 보는 공화당 지지자들로부터는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지만 일반 유권자들의 일반적인 정서는 아니다. 오히려 충실한 내용, 실질적 근거가 뒷받침되지 않은 모순된 주장, 거친 언변들이 트럼프에게 부메랑이 돼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힐러리가 공격받아온 이메일이나 뱅가지 문제도 논란거리는 계속 되겠지만 그녀가 기소되지 않은 이상 선거의 대세를 좌우할 변수는 더 이상 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의 말은 더욱 거칠어질 수 있지만 미국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TV토론에서 거친 언사를 쓰며 공격만 한다고 점수를 따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역대 선거를 곰곰이 되짚어 보면 알 수 있다. 트럼프, 선거 자금 확보에서도 밀려 선거 판세에 영향을 미치는 지원 요소들도 트럼프에게 유리하지 않다. 선거는 조직과 돈이라고 하는 데 특히 미국 선거에서 돈의 역할은 투표일에 다가갈수록 커진다. 조직의 견고함도 떨어지는 트럼프는 선거 자금 확보에서도 힐러리에게 뒤진다. 4년 전 대선 당시 아낌없이 롬니 공화당 후보를 지원했던 코크 형제 등 큰 손들이 뒷짐을 지고 있다. 앞으로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이 투여될 방송 광고 등에서 실탄을 많이 확보한 힐러리 후보와 지지그룹(super pac)은 대대적인 물량공세에 나설 탄탄한 준비가 돼 있다. (2012년 대선에공중파와 케이블 TV 지출 규모는 38억 달러, 2016년에는 44억 달러(약 5조2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미국 언론들은 전망하고 있고 올해에는 디지털 광고 비용도 10억 달러 이상이 될 것으로 미국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부통령 후보도 공화당의 펜스 후보보다는 민주당 케인 후보가 득점을 하고 있다. 케인 후보는 백인이면서도 능숙한 스페인어 구사로 히스패닉 유권자들에게 다가가고 있고 '나를 형편없는 뉴저지주 주지사라고 비난한 트럼프 말에 상처 받았어요. 나는 버지니아 주지사였는데...' 라는 재치있는 언변 등으로 트럼프와 맞서는 주공격수로 포지셔닝해가고 있다. 그동안 선거판을 좌지우지 하다시피 해온 미국 주요 언론도 물론 트럼프에게 유리하지 않다. 대통령은 어렵지만 돌발 변수는 있다 정치는 생물이다. 선거공학적으로 살펴본 트럼프의 한계는 한꺼풀만 들춰보면 이처럼 명백하지만 승부는 장갑을 벗을 때까지 단언할 수 없다는 말이 이번 선거에도 적용된다. 요즘 들어 한창 위기의식을 강조하고 있는 민주당이나 힐러리 후보 측이 판세의 호전에 들떠서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선거 운동의 이완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힐러리의 집권은 오바마 정권의 연장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투표일 전에 큰 정책의 실패가 부각되면 트럼프에게는 호기가 된다. 가령 미국 본토에서 IS의 테러 같은 것이 있게 되고 큰 피해가 발생하게 되면 선거판을 뒤흔들릴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는 어렵다는 것이 선거공학적 결론이지만 마지막 변수마저 없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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