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에 손을…” 반복되는 스포츠 성추행

입력 2016.09.15 (16:08) 수정 2016.09.16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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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님이 엉덩이에 손을 대고 계속 '더 내려라, 올려라' ... 엉덩이에서 손을 떼지를 않아요."

광주의 한 고등학교 여자배구팀 선수들에게 악몽이 시작된 건 지난 4월. 여자배구팀 코치 A씨가 부임하면서부터였다. A 코치는 학교 훈련 시간 동안 선수들을 상대로 노골적인 성추행과 성희롱을 해왔다.

[연관기사] 고교 배구팀 코치, 학생들 '지속적 성추행'


해당 학교 여자배구팀 일부 학생들은 A 코치가 학생들의 허벅지와 엉덩이를 만지고 생리와 관련된 질문을 하는 등 학생들을 상대로 지속적인 성추행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조사 결과 A씨가 학생들의 대퇴부를 만져 근육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신체적 접촉이 생겼고, 훈련 후 샤워를 하지 않고 있던 한 학생에게 이유를 묻는 과정에서 생리 관련 이야기가 오고 간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학생이 "생리 중이어서 샤워를 안 하고 있다"고 말하자 A씨는 "우리 딸은 생리 중이어도 생리대를 착용하고 샤워할 수 있다더라"는 등의 이야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속팀 13명의 학생 중 3명이 이 같은 주장을 하며 A 코치에 대한 엄정한 조치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A씨는 학생들의 주장이 사실임을 일부만 인정했다. 그는 "애들한테도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것은 내가 잘못했다'고... 다음에 이런 일이 있다면 아무 이유 없이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성추행보다 '전국체전'

더 큰 문제는 학교 측의 대응이었다. 대한체육회 규정에 따르면 성추행과 성희롱은 극히 경미한 경우라도 자격정지를 받는 사안이다. 하지만 학교장은 성추행 사실을 알고도 처벌은커녕 외부에 알려질 것을 우려하며 입단속만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학교장 B씨는 "실제로 다른 상황에서 기분 나빴다면 성추행이다. 그런데 훈련 상황들이었다면 이것을 성추행이라고 하기가 애매하다"고 말했다.

KBS 보도가 나간 후 논란이 일자 학교 측은 그제서야 시교육청과 대책회의를 열어 논의한 후 성폭력 상담 및 지원을 담당하는 해바라기센터에 신고서를 제출하고 진상파악을 의뢰했다. 또 해당 코치와 문제를 제기한 학생들과는 접촉할 수 없도록 격리조치를 내렸다. 성추행이 맞다는 결과가 나올 경우 A 코치를 해임 조치할 방침이다.

교장 B씨는 "학부형들과도 협의를 했는데 전국체전을 앞두고 걱정들이 많아 전국체전 이후 조치하려 했었다"고 조치가 늦어진 것에 대해 해명했다.

집단 성추행 사건…근본 원인은?

해당 학교 훈련장 2층엔 학생들의 휴식을 위한 간이시설이 마련돼 있다. 시합을 앞두고 합숙 장소로 쓰이기도 하는 공간이지만 외부와 차단된 구조로 설계돼 있어 관리 사각지대나 다름없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학교 측은 CCTV를 설치하지 않았다. 또한 실질적인 관리자는 남자 감독과 코치, 단 2 명에 불과했다. 한 피해학생은 "체육관에 불이 꺼져 있는데 코치님이 진로 얘기한다고 불러 놓고서는 갑자기 허벅지 안쪽으로 손을 확 들이밀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지속적인 성추행에 시달렸지만 폐쇄된 환경 탓에 외부로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연관기사] 여자배구팀 집단 성추행 사건…근본 원인은?

위계질서가 강조되는 학원 스포츠의 현실도 피해자들을 침묵시킨 원인이었다. 또 다른 피해 학생은 "계속 얼굴을 봐야 되고, 계속 날 가르칠 사람인데 나에게 불이익이 올지도 모르고, 일 크게 됐다가 다 안 좋게 될까봐 그냥 참고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선수에게 지도자는 '신'과 다름없는 존재다. 지도자가 선수 기용과 팀 운영 등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도자의 눈 밖에 날 경우 운동을 계속하기 어렵다. 지도자가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하더라도 선수가 쉽게 저항하기 어려운 이유다.

언제쯤 스포츠 후진국 벗어날까

대한배구협회는 해당 코치에게 자격 정지 처분을 내리고, 조만간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협회는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광주 지역에서 벌어진 성추행 보도내용에 대해 매우 무겁게 인식하고 있다"면서 "긴급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했고, 현지에 조사원을 파견해 사실 여부를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향후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협회 산하 모든 구성원에게 협회차원의 윤리교육을 매년 의무적으로 실시할 것"이라면서 "사실의 진위와 경위를 떠나 배구지도자가 성추행 사건에 연루되어 보도된 점에 대해 배구를 사랑하는 팬과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대책이 발표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관행처럼 행해지는 학교 성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한 스포츠 후진국을 벗어날 수 없다.

반면 선진국의 예방책은 깐깐하다. 미국은 아예 성폭력이 발생할 환경을 만들지 못하도록 한다. 미국고등학교체육연맹(NFHS)은 과도한 사적대화 금지, 신체·외모 언급 금지, 둘만의 차량 동승 금지, 학교 밖 1대1 만남 금지 등 '학교운동부 성폭력 예방 10계명'을 만들었다.

스코틀랜드는 정부 주도로 ‘아이들을 위한 안전한 스포츠환경을 만들자’는 캠페인을 통해 학생선수의 인권을 보호한다. 호주는 체육회가 인권 논의를 주도해 관련 정책 및 보고서를 만든다.

이제 우리도 강력한 처벌과 함께 지도자의 자질 검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나치게 엄격한 위계질서를 깨트리고, 인권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등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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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엉덩이에 손을…” 반복되는 스포츠 성추행
    • 입력 2016-09-15 16:08:58
    • 수정2016-09-16 00:50:52
    취재K
"코치님이 엉덩이에 손을 대고 계속 '더 내려라, 올려라' ... 엉덩이에서 손을 떼지를 않아요." 광주의 한 고등학교 여자배구팀 선수들에게 악몽이 시작된 건 지난 4월. 여자배구팀 코치 A씨가 부임하면서부터였다. A 코치는 학교 훈련 시간 동안 선수들을 상대로 노골적인 성추행과 성희롱을 해왔다. [연관기사] 고교 배구팀 코치, 학생들 '지속적 성추행' 해당 학교 여자배구팀 일부 학생들은 A 코치가 학생들의 허벅지와 엉덩이를 만지고 생리와 관련된 질문을 하는 등 학생들을 상대로 지속적인 성추행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조사 결과 A씨가 학생들의 대퇴부를 만져 근육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신체적 접촉이 생겼고, 훈련 후 샤워를 하지 않고 있던 한 학생에게 이유를 묻는 과정에서 생리 관련 이야기가 오고 간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학생이 "생리 중이어서 샤워를 안 하고 있다"고 말하자 A씨는 "우리 딸은 생리 중이어도 생리대를 착용하고 샤워할 수 있다더라"는 등의 이야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속팀 13명의 학생 중 3명이 이 같은 주장을 하며 A 코치에 대한 엄정한 조치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A씨는 학생들의 주장이 사실임을 일부만 인정했다. 그는 "애들한테도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것은 내가 잘못했다'고... 다음에 이런 일이 있다면 아무 이유 없이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성추행보다 '전국체전' 더 큰 문제는 학교 측의 대응이었다. 대한체육회 규정에 따르면 성추행과 성희롱은 극히 경미한 경우라도 자격정지를 받는 사안이다. 하지만 학교장은 성추행 사실을 알고도 처벌은커녕 외부에 알려질 것을 우려하며 입단속만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학교장 B씨는 "실제로 다른 상황에서 기분 나빴다면 성추행이다. 그런데 훈련 상황들이었다면 이것을 성추행이라고 하기가 애매하다"고 말했다. KBS 보도가 나간 후 논란이 일자 학교 측은 그제서야 시교육청과 대책회의를 열어 논의한 후 성폭력 상담 및 지원을 담당하는 해바라기센터에 신고서를 제출하고 진상파악을 의뢰했다. 또 해당 코치와 문제를 제기한 학생들과는 접촉할 수 없도록 격리조치를 내렸다. 성추행이 맞다는 결과가 나올 경우 A 코치를 해임 조치할 방침이다. 교장 B씨는 "학부형들과도 협의를 했는데 전국체전을 앞두고 걱정들이 많아 전국체전 이후 조치하려 했었다"고 조치가 늦어진 것에 대해 해명했다. 집단 성추행 사건…근본 원인은? 해당 학교 훈련장 2층엔 학생들의 휴식을 위한 간이시설이 마련돼 있다. 시합을 앞두고 합숙 장소로 쓰이기도 하는 공간이지만 외부와 차단된 구조로 설계돼 있어 관리 사각지대나 다름없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학교 측은 CCTV를 설치하지 않았다. 또한 실질적인 관리자는 남자 감독과 코치, 단 2 명에 불과했다. 한 피해학생은 "체육관에 불이 꺼져 있는데 코치님이 진로 얘기한다고 불러 놓고서는 갑자기 허벅지 안쪽으로 손을 확 들이밀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지속적인 성추행에 시달렸지만 폐쇄된 환경 탓에 외부로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연관기사] 여자배구팀 집단 성추행 사건…근본 원인은? 위계질서가 강조되는 학원 스포츠의 현실도 피해자들을 침묵시킨 원인이었다. 또 다른 피해 학생은 "계속 얼굴을 봐야 되고, 계속 날 가르칠 사람인데 나에게 불이익이 올지도 모르고, 일 크게 됐다가 다 안 좋게 될까봐 그냥 참고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선수에게 지도자는 '신'과 다름없는 존재다. 지도자가 선수 기용과 팀 운영 등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도자의 눈 밖에 날 경우 운동을 계속하기 어렵다. 지도자가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하더라도 선수가 쉽게 저항하기 어려운 이유다. 언제쯤 스포츠 후진국 벗어날까 대한배구협회는 해당 코치에게 자격 정지 처분을 내리고, 조만간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협회는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광주 지역에서 벌어진 성추행 보도내용에 대해 매우 무겁게 인식하고 있다"면서 "긴급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했고, 현지에 조사원을 파견해 사실 여부를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향후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협회 산하 모든 구성원에게 협회차원의 윤리교육을 매년 의무적으로 실시할 것"이라면서 "사실의 진위와 경위를 떠나 배구지도자가 성추행 사건에 연루되어 보도된 점에 대해 배구를 사랑하는 팬과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대책이 발표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관행처럼 행해지는 학교 성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한 스포츠 후진국을 벗어날 수 없다. 반면 선진국의 예방책은 깐깐하다. 미국은 아예 성폭력이 발생할 환경을 만들지 못하도록 한다. 미국고등학교체육연맹(NFHS)은 과도한 사적대화 금지, 신체·외모 언급 금지, 둘만의 차량 동승 금지, 학교 밖 1대1 만남 금지 등 '학교운동부 성폭력 예방 10계명'을 만들었다. 스코틀랜드는 정부 주도로 ‘아이들을 위한 안전한 스포츠환경을 만들자’는 캠페인을 통해 학생선수의 인권을 보호한다. 호주는 체육회가 인권 논의를 주도해 관련 정책 및 보고서를 만든다. 이제 우리도 강력한 처벌과 함께 지도자의 자질 검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나치게 엄격한 위계질서를 깨트리고, 인권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등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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