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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나의 알아보자] 2007년 북한인권결의 기권 배경은
입력 2016.10.19 (18:57) | 수정 2016.10.27 (16:51) 김나나의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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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나의 알아보자] 2007년 북한인권결의 기권 배경은 저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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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에서 외교정책 수장을 지낸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이 정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송민순 전 장관은 2005년 1월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은 데 이어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정책실장을 거쳤고, 2006년 12월부터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노무현 정부와 임기를 같이 했다.

송 전 장관은 최근 출간한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에서 '한반도 분단과 북한 핵'을 주제로 노무현 정부의 외교정책 결정 과정을 풀어놓았다. 쟁점이 된 내용은 2007년 UN 북한인권결의에서 한국 정부가 기권하기로 결정한 과정을 서술한 대목이다.

2015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2015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이란

유엔 북한인권결의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 공동 대응의 핵심이다. 북한 내 강제구금과 공개처형, 해외 강제노역, 탈북자 송환, 납치 등 북한 인권 상황을 점검하고 북한에 개선노력을 촉구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다.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은 2003년 유럽연합의 주도로 미국, 일본 등 38개국이 유엔인권위원회(현재 유엔인권이사회)에 처음 발의했고, 찬성 28, 반대 10, 기권 14의 결과로 채택됐다. 2005년부터는 유엔 총회도 북한인권결의를 매년 채택하고 있다.

남북관계 따라 변화한 한국 입장


북한인권결의에 대한 한국 입장은 남북 관계에 따라 변화했다. 첫 발의된 2003년 당시 노무현 정부는 불참을 결정했다. 남북관계 개선을 이유로 들었지만, 국내 북한인권단체들은 북한 동포에 대한 인권 침해를 외면했다고 반발했다. 노무현 정부는 북한인권결의가 안건으로 오른 2004년과 2005년 유엔인권위원회, 2005년 유엔총회에서는 회의에 참석했으나 연달아 기권했다.

[연관기사] ☞ [뉴스9] UN, 대북결의안 첫 채택 (2003.4.17)

북한인권결의를 회피하던 한국의 입장이 바뀐 것은 2006년이었다. 그해 7월 북한이 대포동 2호 미사일을 발사했고, 10월 1차 핵실험을 벌이는 등 군사위협이 현실화됐다. 또 10월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 UN 사무총장에 당선되면서 국제무대에서 한국 정부의 책임감이 높아졌다. 다음달 17일 열린 유엔총회 제3위원회 표결에서 한국 정부는 북한인권결의에 처음 찬성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2008년부터 북한인권결의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은 다른 사안과 분리해 인권문제 그 자체로 다뤄야 한다는 이유다. 한국 정부는 2008년부터 가장 최근인 2015년까지 공동제안국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연관기사] ☞ [뉴스9] 정부,‘북한인권결의안’공동 제안 (2008.11.5)

2007년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결정 배경은

유엔 북한인권결의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은 북한의 군사위협이 현실화되고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갈수록 강경해졌다. 이런 흐름에서 돌연 벗어난 해가 2007년이다. 북한인권결의가 제안된 2003년 이래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해였다.

그해 10월 2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성사됐다. 다음달인 11월 14~16일에는 실무협의를 위한 남북총리회담이 서울에서 열렸다. 유엔 북한인권결의 표결(11월 20일) 직전,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로 인해 북한인권결의에 대한 입장 결정을 두고 외교안보라인에서 갈등이 빚어졌다. 송민순 회고록(448~449쪽)에 따르면, 15일 안보정책 조정회의에서 이재정 통일부 장관, 김만복 국정원장, 백종천 안보실장은 "어렵게 물꼬를 튼 남북관계 발전에 지장을 초래한다", "북한의 체제에 대한 내정간섭이 될 수 있다", "실제 북한 인권이 개선된다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없다"는 이유를 들어 기권을 주장했다.

송민순 전 장관은 "결의안이 이미 우리의 요구를 반영해서 크게 완화되었다", "우리가 북한의 인권 상태를 중시한다는 입장을 취해야 국제사회도 우리의 대북정책에 신뢰를 보이고 지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민순 전 장관의 회고록에서 2007년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결정 과정을 서술한 12장 451쪽. 송민순 전 장관의 회고록에서 2007년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결정 과정을 서술한 12장 451쪽.

남북총리회담과 유엔 표결 사이, 외교안보 정책결정자들과 문재인 비서실장은 16일, 18일, 20일 세 차례 회의했다. 그리고 기권을 결정한 시기와 북한에 기권결정을 전달한 행위의 성격을 두고 관련자들의 진술이 엇갈리면서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 [김나나의 알아보자] 2007년 북한인권결의 기권 배경은
    • 입력 2016.10.19 (18:57)
    • 수정 2016.10.27 (16:51)
    김나나의 알아보자
[김나나의 알아보자] 2007년 북한인권결의 기권 배경은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정책 수장을 지낸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이 정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송민순 전 장관은 2005년 1월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은 데 이어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정책실장을 거쳤고, 2006년 12월부터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노무현 정부와 임기를 같이 했다.

송 전 장관은 최근 출간한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에서 '한반도 분단과 북한 핵'을 주제로 노무현 정부의 외교정책 결정 과정을 풀어놓았다. 쟁점이 된 내용은 2007년 UN 북한인권결의에서 한국 정부가 기권하기로 결정한 과정을 서술한 대목이다.

2015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2015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이란

유엔 북한인권결의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 공동 대응의 핵심이다. 북한 내 강제구금과 공개처형, 해외 강제노역, 탈북자 송환, 납치 등 북한 인권 상황을 점검하고 북한에 개선노력을 촉구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다.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은 2003년 유럽연합의 주도로 미국, 일본 등 38개국이 유엔인권위원회(현재 유엔인권이사회)에 처음 발의했고, 찬성 28, 반대 10, 기권 14의 결과로 채택됐다. 2005년부터는 유엔 총회도 북한인권결의를 매년 채택하고 있다.

남북관계 따라 변화한 한국 입장


북한인권결의에 대한 한국 입장은 남북 관계에 따라 변화했다. 첫 발의된 2003년 당시 노무현 정부는 불참을 결정했다. 남북관계 개선을 이유로 들었지만, 국내 북한인권단체들은 북한 동포에 대한 인권 침해를 외면했다고 반발했다. 노무현 정부는 북한인권결의가 안건으로 오른 2004년과 2005년 유엔인권위원회, 2005년 유엔총회에서는 회의에 참석했으나 연달아 기권했다.

[연관기사] ☞ [뉴스9] UN, 대북결의안 첫 채택 (2003.4.17)

북한인권결의를 회피하던 한국의 입장이 바뀐 것은 2006년이었다. 그해 7월 북한이 대포동 2호 미사일을 발사했고, 10월 1차 핵실험을 벌이는 등 군사위협이 현실화됐다. 또 10월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 UN 사무총장에 당선되면서 국제무대에서 한국 정부의 책임감이 높아졌다. 다음달 17일 열린 유엔총회 제3위원회 표결에서 한국 정부는 북한인권결의에 처음 찬성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2008년부터 북한인권결의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은 다른 사안과 분리해 인권문제 그 자체로 다뤄야 한다는 이유다. 한국 정부는 2008년부터 가장 최근인 2015년까지 공동제안국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연관기사] ☞ [뉴스9] 정부,‘북한인권결의안’공동 제안 (2008.11.5)

2007년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결정 배경은

유엔 북한인권결의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은 북한의 군사위협이 현실화되고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갈수록 강경해졌다. 이런 흐름에서 돌연 벗어난 해가 2007년이다. 북한인권결의가 제안된 2003년 이래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해였다.

그해 10월 2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성사됐다. 다음달인 11월 14~16일에는 실무협의를 위한 남북총리회담이 서울에서 열렸다. 유엔 북한인권결의 표결(11월 20일) 직전,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로 인해 북한인권결의에 대한 입장 결정을 두고 외교안보라인에서 갈등이 빚어졌다. 송민순 회고록(448~449쪽)에 따르면, 15일 안보정책 조정회의에서 이재정 통일부 장관, 김만복 국정원장, 백종천 안보실장은 "어렵게 물꼬를 튼 남북관계 발전에 지장을 초래한다", "북한의 체제에 대한 내정간섭이 될 수 있다", "실제 북한 인권이 개선된다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없다"는 이유를 들어 기권을 주장했다.

송민순 전 장관은 "결의안이 이미 우리의 요구를 반영해서 크게 완화되었다", "우리가 북한의 인권 상태를 중시한다는 입장을 취해야 국제사회도 우리의 대북정책에 신뢰를 보이고 지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민순 전 장관의 회고록에서 2007년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결정 과정을 서술한 12장 451쪽. 송민순 전 장관의 회고록에서 2007년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결정 과정을 서술한 12장 451쪽.

남북총리회담과 유엔 표결 사이, 외교안보 정책결정자들과 문재인 비서실장은 16일, 18일, 20일 세 차례 회의했다. 그리고 기권을 결정한 시기와 북한에 기권결정을 전달한 행위의 성격을 두고 관련자들의 진술이 엇갈리면서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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