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난 문화재…흔적을 감추다

입력 2017.01.22 (22:52) 수정 2017.01.22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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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으로 역병이 돌던 조선 중기,

민가에 보급하기 위해 허준이 쓴 의학서, 동의보감입니다.

외과와 내과, 잡병, 침 놓는 법, 탕약 등 5가지 분야에 총 25권으로 저술됐습니다.

<녹취> 최동원(경기 포천시청 학예사) : "탕액 편에 재료들이라든가 이런 부분들은 한글을 써서 일반 백성들도 좀 사용하고 보기 쉽게 한 것이 특징(입니다.)"

국보로 지정됐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된 동의보감 초간본의 동일판본이 20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도난당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 귀중한 문화 유산은 지금껏 어디에 숨겨져 있었던 걸까요?

3만 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국내 도난 문화재의 실태를 추적합니다.

댐 수몰지에 있던 고택들을 옮겨놓은 경북 안동의 군자마을.

마을 입구에 전통 부엌이 잘 보존돼 있는 한옥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요리책인 '수운잡방'의 저자, 김유 선생의 종택입니다.

이 곳에서 지난 2002년, 고서적 140여 권이 한꺼번에 사라졌습니다.

<인터뷰> 종택 관리인 : "밤에 막 태풍 루사 불었을 때야. 약간 내가 밤에 덜그럭 소리를 들었는데 바람 소리인가보다 나는 이랬지. 우리뿐 아니라 그날 몇집이 안동에서 했어(당했대요.)"

고서들은 당시 대문 옆 사랑방에 보관돼 있었습니다.

<녹취> "이 문고리를 그거 뚫고 벗기고 들어온 거지. 그러니까 대문도 잠긴 채로 있었고."

<녹취> "안방에서 나오면 여기로 들어올 수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여기를 이렇게 잠가서 끈으로 묶어놨더라고. (집 구조를) 너무 잘 아는 사람이지."

도난 당한 고서 중에는 퇴계선생 매화시첩을 비롯해 희귀 서적도 여러 권 있었습니다.

전국의 골동품 시장을 뒤졌지만 잃어버린 서적들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인터뷰> 종택 관리인 : "찾을 수가 없대. 왜 그러냐 하면 지하(밀거래 시장)로 다 가버리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안나온대요. 그러니까 포기하는 게 좋을 거라고..."

안동 군자마을에서 50km쯤 떨어진 경북 예천의 한 종택.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 목판 6백여 장이 보관돼 있습니다.

지난 1986년 보물로 지정됐습니다.

<인터뷰> 이재완(경북 예천군청 학예사) : "단군에서부터 명종 이전까지의 역사와 인물, 사회, 문학을 총망라하는 최초의 백과사전으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보물 지정 4년 뒤 목판 677장 가운데 100여 장을 도난 당했습니다.

수소문 끝에 잃어버린 목판 일부의 소재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목판은 한 대학 박물관에 있었습니다.

<인터뷰> 권영기(종손) : "도둑이 훔쳐가지고 그걸 팔아 먹었지 대학 박물관에.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뭐냐면 대한민국에 소위 학자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는 거야."

도난당한 지 석 달 만에 되찾아오긴 했지만 목판은 이미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녹취> "(금박질 해서 문집을 다 뭉개 버리고.) 어느 집에서 나왔는지 모르게끔 하려고. 퇴계 선생님 문집 이렇게 돼 있으면 퇴계 선생 집에서 관련된 집에서 나왔다는 걸 알 수가 있는데요. 여기에 누구 문집이라는 게없어져버리면 이 목판의 출처를 전혀 알 수가 없는 거죠."

그리고 끝내 찾지 못한 56장은 27년이 지난 지금도 행방이 묘연합니다.

경찰은 지난 2010년 도난 문화재 29점에 대해 사상 첫 국제수배를 내렸는데 여기에 조선시대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 목판도 포함됐습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문화재들은 어떻게, 또 누구의 손에 들어간 걸까?

취재진은 어렵게 한 문화재 불법 매매업자를 만났습니다.

이 업자는 거래되는 문화재 대부분이 훔친 물건, 이른바 '장물'이라고 털어놨습니다.

<인터뷰> 문화재 매매업자(음성변조) : "정상적인 물건이 없잖아 이게 도난품으로만 지금껏 깔아오던 업계니까. 내가 2008년인가 그 책(고서적)을 샀어요. 200만 원 주고 샀는데, 그 양반이(판매자가) 하는 얘기가 '도난품 비슷한 이러한 물건을 취득을 했는데 이것이 정상적인 물건이 아니다.'"

장물은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보관하다 매매 시장에 내놓는 수법을 씁니다.

처벌을 피하기 위해섭니다.

<인터뷰> 문화재 매매업자(음성변조) "이걸 바로 팔지 말고 몇 년 갖고 있다가 공소시효가 지난 다음에 이걸 처분을 해라' 해서 내가 몇 년을 갖고 있었던 거예요."

절도 대상은 주로 고택의 친인척이나 주변 사람들을 통해 물색한다고 합니다.

<인터뷰> 문화재 매매업자(음성변조) : "우리 아저씨네 집에 가니까 어디 귀퉁머리방에 문은 잠겨 있는데, 고서적과 옛날 물건이 많이 쌓여 있더라 그러면 가서 갖고(훔쳐) 올 수도 있는 거고..."

훔친 물건은 소유자나 출처를 알 수 없게 훼손 과정을 거쳐 불법 거래됩니다.

<인터뷰> 문화재 매매업자(음성변조) "어느 집안 책이다. 거기에 도장이 이름이 있고 그러니까 옛날엔 그 도장을 칼로 다 오려냈어요. 책을 오려내서 다른 종이를 딱 붙여가지고 유통을 시켰어요."

지난해 말, 경찰이 회수한 이 동의보감 초간본도 장물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책의 출처와 연원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지워진 점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인터뷰> 최동원(포천시청 학예사) : "책에 앞쪽에 보시면 언제 임금이 누구한테 내렸다는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정식적으로 소장을 하게 된다면 또 유물의 가치를 더하는 것이기 때문에 훼손을 할 순 없게 되겠죠. 하지만 이 동의보감 같은 경우는 출처를 좀 지움으로써 어느 정도 감추고 싶은 것들이 있지 않았나..."

이 동의보감 초간본은 지난 1999년 장물업자가 절도범에게서 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리고 2년 뒤 한 사찰에 2천만 원을 받고 되판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장물 시장을 떠돌던 귀중한 문화 유산이 지난 15년간 공개되지 않은 채 이 사찰에 있었던 겁니다.

<인터뷰> 김창배(경기북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경감) : "시간이 지나면 소장 가치도 있고 가격도 올라갈 수도 있고 동의보감이나 이런 것도 그 전에는 보물이었다가 지금은 국보로 지정되면 가격이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대로 뛰어버리니까."

도난 문화재가 박물관에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경찰이 한 사설박물관에서 압수한 이 고서적은 대명률이라 불리는 조선 형법의 근간이 됐던 중국 명나라 법률 서적입니다.

<인터뷰> 이용석(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 : "중국에서 현존하고 있는 대명률보다 판본이 더 오래된 가장 오래된 자료로 확인이 되고 있고요."

사설 박물관 측이 5년 전, 취재진이 만났던 문화재 매매업자로부터 장물을 사들인 겁니다.

<녹취> 문화재 매매업자(음성변조) : "갖고 있은 지 한 5-6년 만에 내가 그 책을 내왔어요. (사설 박물관 측에)매매를 할 때 1500만 원만 지금 주고 나머지 1000만 원은 보물 지정한 다음에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이 대명률은 지난해 문화재당국으로부터 보물로 지정됐습니다.

<인터뷰> 문화재 매매업자(음성변조) : "그 책이 내가 취득 했을 때 앞장하고 뒷장이 떨어져 나가 있었어요. 그래서 누가 이 책을 만든 사람도 안 나왔고 언제 이 책을 찍었다는 간기도 없었고 그래서 이게 책이 훼손된 책이에요. (사설 박물관 측이)자신의 선친한테 물려받은 물건이라고 조작을 해서 신청을 했어요. 그래서 그게 보물로 지정이 됐어요."

전국의 사찰에서 도난 당했던 보물급 불교 문화재들도 한 사설 박물관에서 무더기로 나왔습니다.

최근 3년 사이 경찰이 이 박물관에서 회수한 도난 문화재만 60점 가량 됩니다.

<인터뷰> 황평우(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 : "공개적으로 구입하지 않은 채 박물관 안에 들어갔던 문화재 중에서는 많은 부분들이 도난, 도굴되었던 문화재들을 산 거예요. 박물관에 유물을 보관하는 게 도난도굴에 의한 도피처 이런 걸로 되면 그거는 곤란하죠."

이처럼 문화재 범죄 수법은 점점 더 교묘해 지고 있지만 처벌은 쉽지 않습니다.

현재 문화재 은닉 혐의를 받고 있는 사찰과 사설 박물관은 장물인 줄 몰랐다거나 집안 대대로 물려반은 유산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창배(경기북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경감) : "훔쳐가지고 장물인 걸 분명히 알고 사놓고 몰랐다고 진술하고 누가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까 그래서 (절도죄) 공소시효가 지난 다음에 꺼내면 처벌을 안 받는 거죠. 그러니까 이게 법의 맹점이 좀 있는 거죠."

더구나 은닉죄의 경우 공소시효가 폐지되긴 했지만 혐의를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기존 판례를 보면 '문화재 은닉'의 개념을 지하 깊은 곳에 매몰하거나 깊은 물 속에 가라앉게 하는 행위라고 한정적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문화재 매매업자(음성변조) : "땅속에다 넣고 바닷속에 물에다 수장할 정도의 물건이면 서책 종류는 안되는 거 아냐, 철물도 바닷속에 들어가면 녹이 슬어서 삭아버리잖아."

신라와 백제가 맞닿은 땅에 축조된 삼년산성.

15년 전 이 산성의 고분에서 삼국시대 도기와 고려 청자 등 수백 점이 도굴됐습니다.

산성에 고분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았는데도 도굴이 시작된 겁니다.

<인터뷰> 정상혁(충북 보은군수) : "주변에 고분이 있다는 거는 어느 학자도 쓴 적도 없고 말한 적도 없어요. 근데 2009년도에 우연히 보은에서 어떤 노인을 만났는데 저한테 그 얘기를 하는 거예요. 뒷산에 가면 고분이 전부 파헤쳐져 있다."

이렇게 사라진 문화재는 지난 30년간 2만 8천여 점.

이 가운데 제자리로 돌아온 문화재는 17%에 불과합니다.

<인터뷰> 황평우(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 : "문화유산들이 도난 도굴이나 부정한 방식으로 희생되고 있는 건 사실 우리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거나 다름 없고요./그럼 결국에는 나의 호적이 없어지는 거예요, 나의 역사가 없어지는 거고."

현재 문화재 절도범 공소시효는 일반 절도와 같은 10년.

절도 후 공소시효만 지나면 큰 돈을 벌수 있기 때문에 문화재 절도는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문화재 절도 공소시효를 대폭 늘려 문화재 밀거래 시장을 틀어막는게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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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난 문화재…흔적을 감추다
    • 입력 2017-01-22 22:56:56
    • 수정2017-01-22 23:23:31
    취재파일K
임진왜란으로 역병이 돌던 조선 중기,

민가에 보급하기 위해 허준이 쓴 의학서, 동의보감입니다.

외과와 내과, 잡병, 침 놓는 법, 탕약 등 5가지 분야에 총 25권으로 저술됐습니다.

<녹취> 최동원(경기 포천시청 학예사) : "탕액 편에 재료들이라든가 이런 부분들은 한글을 써서 일반 백성들도 좀 사용하고 보기 쉽게 한 것이 특징(입니다.)"

국보로 지정됐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된 동의보감 초간본의 동일판본이 20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도난당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 귀중한 문화 유산은 지금껏 어디에 숨겨져 있었던 걸까요?

3만 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국내 도난 문화재의 실태를 추적합니다.

댐 수몰지에 있던 고택들을 옮겨놓은 경북 안동의 군자마을.

마을 입구에 전통 부엌이 잘 보존돼 있는 한옥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요리책인 '수운잡방'의 저자, 김유 선생의 종택입니다.

이 곳에서 지난 2002년, 고서적 140여 권이 한꺼번에 사라졌습니다.

<인터뷰> 종택 관리인 : "밤에 막 태풍 루사 불었을 때야. 약간 내가 밤에 덜그럭 소리를 들었는데 바람 소리인가보다 나는 이랬지. 우리뿐 아니라 그날 몇집이 안동에서 했어(당했대요.)"

고서들은 당시 대문 옆 사랑방에 보관돼 있었습니다.

<녹취> "이 문고리를 그거 뚫고 벗기고 들어온 거지. 그러니까 대문도 잠긴 채로 있었고."

<녹취> "안방에서 나오면 여기로 들어올 수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여기를 이렇게 잠가서 끈으로 묶어놨더라고. (집 구조를) 너무 잘 아는 사람이지."

도난 당한 고서 중에는 퇴계선생 매화시첩을 비롯해 희귀 서적도 여러 권 있었습니다.

전국의 골동품 시장을 뒤졌지만 잃어버린 서적들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인터뷰> 종택 관리인 : "찾을 수가 없대. 왜 그러냐 하면 지하(밀거래 시장)로 다 가버리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안나온대요. 그러니까 포기하는 게 좋을 거라고..."

안동 군자마을에서 50km쯤 떨어진 경북 예천의 한 종택.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 목판 6백여 장이 보관돼 있습니다.

지난 1986년 보물로 지정됐습니다.

<인터뷰> 이재완(경북 예천군청 학예사) : "단군에서부터 명종 이전까지의 역사와 인물, 사회, 문학을 총망라하는 최초의 백과사전으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보물 지정 4년 뒤 목판 677장 가운데 100여 장을 도난 당했습니다.

수소문 끝에 잃어버린 목판 일부의 소재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목판은 한 대학 박물관에 있었습니다.

<인터뷰> 권영기(종손) : "도둑이 훔쳐가지고 그걸 팔아 먹었지 대학 박물관에.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뭐냐면 대한민국에 소위 학자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는 거야."

도난당한 지 석 달 만에 되찾아오긴 했지만 목판은 이미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녹취> "(금박질 해서 문집을 다 뭉개 버리고.) 어느 집에서 나왔는지 모르게끔 하려고. 퇴계 선생님 문집 이렇게 돼 있으면 퇴계 선생 집에서 관련된 집에서 나왔다는 걸 알 수가 있는데요. 여기에 누구 문집이라는 게없어져버리면 이 목판의 출처를 전혀 알 수가 없는 거죠."

그리고 끝내 찾지 못한 56장은 27년이 지난 지금도 행방이 묘연합니다.

경찰은 지난 2010년 도난 문화재 29점에 대해 사상 첫 국제수배를 내렸는데 여기에 조선시대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 목판도 포함됐습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문화재들은 어떻게, 또 누구의 손에 들어간 걸까?

취재진은 어렵게 한 문화재 불법 매매업자를 만났습니다.

이 업자는 거래되는 문화재 대부분이 훔친 물건, 이른바 '장물'이라고 털어놨습니다.

<인터뷰> 문화재 매매업자(음성변조) : "정상적인 물건이 없잖아 이게 도난품으로만 지금껏 깔아오던 업계니까. 내가 2008년인가 그 책(고서적)을 샀어요. 200만 원 주고 샀는데, 그 양반이(판매자가) 하는 얘기가 '도난품 비슷한 이러한 물건을 취득을 했는데 이것이 정상적인 물건이 아니다.'"

장물은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보관하다 매매 시장에 내놓는 수법을 씁니다.

처벌을 피하기 위해섭니다.

<인터뷰> 문화재 매매업자(음성변조) "이걸 바로 팔지 말고 몇 년 갖고 있다가 공소시효가 지난 다음에 이걸 처분을 해라' 해서 내가 몇 년을 갖고 있었던 거예요."

절도 대상은 주로 고택의 친인척이나 주변 사람들을 통해 물색한다고 합니다.

<인터뷰> 문화재 매매업자(음성변조) : "우리 아저씨네 집에 가니까 어디 귀퉁머리방에 문은 잠겨 있는데, 고서적과 옛날 물건이 많이 쌓여 있더라 그러면 가서 갖고(훔쳐) 올 수도 있는 거고..."

훔친 물건은 소유자나 출처를 알 수 없게 훼손 과정을 거쳐 불법 거래됩니다.

<인터뷰> 문화재 매매업자(음성변조) "어느 집안 책이다. 거기에 도장이 이름이 있고 그러니까 옛날엔 그 도장을 칼로 다 오려냈어요. 책을 오려내서 다른 종이를 딱 붙여가지고 유통을 시켰어요."

지난해 말, 경찰이 회수한 이 동의보감 초간본도 장물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책의 출처와 연원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지워진 점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인터뷰> 최동원(포천시청 학예사) : "책에 앞쪽에 보시면 언제 임금이 누구한테 내렸다는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정식적으로 소장을 하게 된다면 또 유물의 가치를 더하는 것이기 때문에 훼손을 할 순 없게 되겠죠. 하지만 이 동의보감 같은 경우는 출처를 좀 지움으로써 어느 정도 감추고 싶은 것들이 있지 않았나..."

이 동의보감 초간본은 지난 1999년 장물업자가 절도범에게서 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리고 2년 뒤 한 사찰에 2천만 원을 받고 되판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장물 시장을 떠돌던 귀중한 문화 유산이 지난 15년간 공개되지 않은 채 이 사찰에 있었던 겁니다.

<인터뷰> 김창배(경기북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경감) : "시간이 지나면 소장 가치도 있고 가격도 올라갈 수도 있고 동의보감이나 이런 것도 그 전에는 보물이었다가 지금은 국보로 지정되면 가격이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대로 뛰어버리니까."

도난 문화재가 박물관에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경찰이 한 사설박물관에서 압수한 이 고서적은 대명률이라 불리는 조선 형법의 근간이 됐던 중국 명나라 법률 서적입니다.

<인터뷰> 이용석(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 : "중국에서 현존하고 있는 대명률보다 판본이 더 오래된 가장 오래된 자료로 확인이 되고 있고요."

사설 박물관 측이 5년 전, 취재진이 만났던 문화재 매매업자로부터 장물을 사들인 겁니다.

<녹취> 문화재 매매업자(음성변조) : "갖고 있은 지 한 5-6년 만에 내가 그 책을 내왔어요. (사설 박물관 측에)매매를 할 때 1500만 원만 지금 주고 나머지 1000만 원은 보물 지정한 다음에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이 대명률은 지난해 문화재당국으로부터 보물로 지정됐습니다.

<인터뷰> 문화재 매매업자(음성변조) : "그 책이 내가 취득 했을 때 앞장하고 뒷장이 떨어져 나가 있었어요. 그래서 누가 이 책을 만든 사람도 안 나왔고 언제 이 책을 찍었다는 간기도 없었고 그래서 이게 책이 훼손된 책이에요. (사설 박물관 측이)자신의 선친한테 물려받은 물건이라고 조작을 해서 신청을 했어요. 그래서 그게 보물로 지정이 됐어요."

전국의 사찰에서 도난 당했던 보물급 불교 문화재들도 한 사설 박물관에서 무더기로 나왔습니다.

최근 3년 사이 경찰이 이 박물관에서 회수한 도난 문화재만 60점 가량 됩니다.

<인터뷰> 황평우(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 : "공개적으로 구입하지 않은 채 박물관 안에 들어갔던 문화재 중에서는 많은 부분들이 도난, 도굴되었던 문화재들을 산 거예요. 박물관에 유물을 보관하는 게 도난도굴에 의한 도피처 이런 걸로 되면 그거는 곤란하죠."

이처럼 문화재 범죄 수법은 점점 더 교묘해 지고 있지만 처벌은 쉽지 않습니다.

현재 문화재 은닉 혐의를 받고 있는 사찰과 사설 박물관은 장물인 줄 몰랐다거나 집안 대대로 물려반은 유산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창배(경기북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경감) : "훔쳐가지고 장물인 걸 분명히 알고 사놓고 몰랐다고 진술하고 누가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까 그래서 (절도죄) 공소시효가 지난 다음에 꺼내면 처벌을 안 받는 거죠. 그러니까 이게 법의 맹점이 좀 있는 거죠."

더구나 은닉죄의 경우 공소시효가 폐지되긴 했지만 혐의를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기존 판례를 보면 '문화재 은닉'의 개념을 지하 깊은 곳에 매몰하거나 깊은 물 속에 가라앉게 하는 행위라고 한정적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문화재 매매업자(음성변조) : "땅속에다 넣고 바닷속에 물에다 수장할 정도의 물건이면 서책 종류는 안되는 거 아냐, 철물도 바닷속에 들어가면 녹이 슬어서 삭아버리잖아."

신라와 백제가 맞닿은 땅에 축조된 삼년산성.

15년 전 이 산성의 고분에서 삼국시대 도기와 고려 청자 등 수백 점이 도굴됐습니다.

산성에 고분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았는데도 도굴이 시작된 겁니다.

<인터뷰> 정상혁(충북 보은군수) : "주변에 고분이 있다는 거는 어느 학자도 쓴 적도 없고 말한 적도 없어요. 근데 2009년도에 우연히 보은에서 어떤 노인을 만났는데 저한테 그 얘기를 하는 거예요. 뒷산에 가면 고분이 전부 파헤쳐져 있다."

이렇게 사라진 문화재는 지난 30년간 2만 8천여 점.

이 가운데 제자리로 돌아온 문화재는 17%에 불과합니다.

<인터뷰> 황평우(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 : "문화유산들이 도난 도굴이나 부정한 방식으로 희생되고 있는 건 사실 우리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거나 다름 없고요./그럼 결국에는 나의 호적이 없어지는 거예요, 나의 역사가 없어지는 거고."

현재 문화재 절도범 공소시효는 일반 절도와 같은 10년.

절도 후 공소시효만 지나면 큰 돈을 벌수 있기 때문에 문화재 절도는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문화재 절도 공소시효를 대폭 늘려 문화재 밀거래 시장을 틀어막는게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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