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특강] ‘미스 사이공’ 숨겨진 이야기

입력 2017.02.01 (08:49) 수정 2017.02.0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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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원종원입니다.

요즘 문화산업의 생산물들을 보면 ‘비틀기’의 매력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익숙하게 잘 알고 있는 내용을 이리저리 변형시키고 반대로 설정해서 오히려 새롭게 느끼게 되는 재미를 더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잘 알고 있지만 다시 새로운 매력은 보는 이들의 흥미를 자아내게 마련입니다.

영화 ‘방자전’을 보면 춘향이의 진짜 연인은 이몽룡이 아닌 방자였다거나, TV 드라마 속에선 화가 ‘신윤복’이 여자였다는 가상의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거꾸로 보고 뒤집어 보는 매력의 재미가 담긴 콘텐츠들입니다.

뮤지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빅4의 막내라 불리는 ‘미스 사이공’입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베트남 전쟁입니다.

전쟁 통에 부모와 가족을 모두 잃은 베트남 여인 킴은 살기위해 미군을 상대로 하는 술집에서 일하게 되죠.

그곳에서 미군 병사 크리스를 만납니다.

전쟁의 의미를 알 수 없어 방황하던 크리스는 순수한 영혼의 킴을 만나 사랑하게 되고 그녀를 전쟁의 아픔이 없는 미국으로 데려가겠다 약속하죠.

그러나, 미국의 급작스런 철수로 두 사람은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것은 킴이 크리스의 아들을 낳았다는 극 전개 때문인데요,

결국 어린 아들 탐을 위해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끊게 된다는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게 됩니다.

이 뮤지컬도 원작이 따로 있습니다.

바로 푸치니가 쓴 오페라 ‘나비 부인’입니다.

미군 사관 핑커튼과 일본 게이샤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뮤지컬은 단순한 ‘나비부인’의 뮤지컬화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인류 근대사의 문제적 사건이었던 베트남 전쟁에 맞춰 ‘이야기 비틀기’의 매력을 더했기 때문입니다.

오페라의 내용을 알고 있어도 다시 새롭고, 오페라를 모르고 있어도 흥미로운 작품으로 환생된 셈입니다.

작품의 모티브가 된 사연은 또 하나 있습니다.

비극적 운명의 베트남 여인에 관한 흑백 사진과 사연이었죠.

베트남 전쟁 당시 한 베트남 여인이 미군 파일럿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근무를 마치자 남자는 미국으로 돌아갔고, 여인은 임신을 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전쟁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도저히 베트남에서 살 수 없다고 생각한 여인은 딸과 함께 아이 아빠가 있는 미국으로 망명가기로 결심합니다.

수소문 끝에 어렵게 미국의 아이 아빠를 찾았는데요,

이 남자는 이미 다른 미국여인과 결혼을 한 상태였습니다.

전쟁 때문에 미국 비자를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였습니다.

딸 아이는 미국 비자를 받을 수 있었지만 부부관계가 아니었던 엄마에게는 비자가 발급되지 않았습니다.

고민 끝에 엄마는 결심을 합니다.

“딸아, 너만이라도 이 아비규환같은 전쟁을 벗어나 살아남아다오” 결국 모녀는 생이별을 경험하게 됩니다.

흑백 사진 속 풍경은 베트남 사이공 국제공항의 모녀의 생이별 장면이었습니다.

공항이 온통 울음바다가 됐다고 합니다.

모녀의 처지가 불쌍하고, 자신들의 상황이 가슴 아픈 베트남 사람들의 눈물이었습니다.

‘레 미제라블’의 작사 · 작곡가였던 프랑스 예술가 알랑 부브리와 끌로드 미쉘 쉔버그는 우연히 한 잡지에서 이 사진과 사연을 읽고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부모니까 보여줄 수 있는 궁극의 희생이고 전쟁이 낳은 비극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로 뮤지컬을 만들면 세계인의 심금을 울릴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고 그래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뮤지컬 ‘미스 사이공’입니다.

뮤지컬에서는 극이 끝나면 출연자들이 모두 나와 인사를 합니다.

무대 용어로는 ‘ 커튼 콜’이라고 부르는데요, 주인공은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 뮤지컬의 주인공은 그러나 킴이 아닙니다.

무대에서 맨 마지막에 나오는 인물은 킴도, 그녀가 사랑했던 미군 병사 크리스도 아닌 미국을 가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기회주의자인 술집 주인 엔지니어와 킴과 크리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탐입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전쟁 혼혈아들이라는 것인데요,

이 뮤지컬의 주제가 바로 이들, 인류 근대사의 비극을 감출 수 없이 얼굴에 담고 사는 인물들이라는 점을 곱씹어 생각하게 만듭니다.

지금도 이 뮤지컬은 막이 올릴 때마다 수익금의 일부를 그들 전쟁 혼혈아들을 돕는 재단으로 기부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 편의 예술작품으로 인류 근대사의 아픔도 치유해보겠다는 고귀한 정신을 느끼게 합니다.

뮤지컬 ‘미스 사이공’은 25주년을 맞아 최근 공연을 기록한 영상물이 제작돼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 영상물 안에는 주요 조역인 베트남 장교 튜이 역으로 우리나라 뮤지컬 배우 홍광호가 등장합니다.

실제로 영국에서 올려진 공연에 발탁돼 한국 뮤지컬 배우의 실력이 세계적인 수준임을 보여줬는데요,

날이 갈수록 성장하는 우리 뮤지컬 산업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뿌듯한 마음도 갖게 됩니다.

‘알고 봐야 더 재미있는 뮤지컬 이야기’ 원종원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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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01 08:51:10
    • 수정2017-02-01 10:5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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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문화산업의 생산물들을 보면 ‘비틀기’의 매력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익숙하게 잘 알고 있는 내용을 이리저리 변형시키고 반대로 설정해서 오히려 새롭게 느끼게 되는 재미를 더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잘 알고 있지만 다시 새로운 매력은 보는 이들의 흥미를 자아내게 마련입니다.

영화 ‘방자전’을 보면 춘향이의 진짜 연인은 이몽룡이 아닌 방자였다거나, TV 드라마 속에선 화가 ‘신윤복’이 여자였다는 가상의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거꾸로 보고 뒤집어 보는 매력의 재미가 담긴 콘텐츠들입니다.

뮤지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빅4의 막내라 불리는 ‘미스 사이공’입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베트남 전쟁입니다.

전쟁 통에 부모와 가족을 모두 잃은 베트남 여인 킴은 살기위해 미군을 상대로 하는 술집에서 일하게 되죠.

그곳에서 미군 병사 크리스를 만납니다.

전쟁의 의미를 알 수 없어 방황하던 크리스는 순수한 영혼의 킴을 만나 사랑하게 되고 그녀를 전쟁의 아픔이 없는 미국으로 데려가겠다 약속하죠.

그러나, 미국의 급작스런 철수로 두 사람은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것은 킴이 크리스의 아들을 낳았다는 극 전개 때문인데요,

결국 어린 아들 탐을 위해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끊게 된다는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게 됩니다.

이 뮤지컬도 원작이 따로 있습니다.

바로 푸치니가 쓴 오페라 ‘나비 부인’입니다.

미군 사관 핑커튼과 일본 게이샤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뮤지컬은 단순한 ‘나비부인’의 뮤지컬화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인류 근대사의 문제적 사건이었던 베트남 전쟁에 맞춰 ‘이야기 비틀기’의 매력을 더했기 때문입니다.

오페라의 내용을 알고 있어도 다시 새롭고, 오페라를 모르고 있어도 흥미로운 작품으로 환생된 셈입니다.

작품의 모티브가 된 사연은 또 하나 있습니다.

비극적 운명의 베트남 여인에 관한 흑백 사진과 사연이었죠.

베트남 전쟁 당시 한 베트남 여인이 미군 파일럿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근무를 마치자 남자는 미국으로 돌아갔고, 여인은 임신을 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전쟁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도저히 베트남에서 살 수 없다고 생각한 여인은 딸과 함께 아이 아빠가 있는 미국으로 망명가기로 결심합니다.

수소문 끝에 어렵게 미국의 아이 아빠를 찾았는데요,

이 남자는 이미 다른 미국여인과 결혼을 한 상태였습니다.

전쟁 때문에 미국 비자를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였습니다.

딸 아이는 미국 비자를 받을 수 있었지만 부부관계가 아니었던 엄마에게는 비자가 발급되지 않았습니다.

고민 끝에 엄마는 결심을 합니다.

“딸아, 너만이라도 이 아비규환같은 전쟁을 벗어나 살아남아다오” 결국 모녀는 생이별을 경험하게 됩니다.

흑백 사진 속 풍경은 베트남 사이공 국제공항의 모녀의 생이별 장면이었습니다.

공항이 온통 울음바다가 됐다고 합니다.

모녀의 처지가 불쌍하고, 자신들의 상황이 가슴 아픈 베트남 사람들의 눈물이었습니다.

‘레 미제라블’의 작사 · 작곡가였던 프랑스 예술가 알랑 부브리와 끌로드 미쉘 쉔버그는 우연히 한 잡지에서 이 사진과 사연을 읽고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부모니까 보여줄 수 있는 궁극의 희생이고 전쟁이 낳은 비극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로 뮤지컬을 만들면 세계인의 심금을 울릴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고 그래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뮤지컬 ‘미스 사이공’입니다.

뮤지컬에서는 극이 끝나면 출연자들이 모두 나와 인사를 합니다.

무대 용어로는 ‘ 커튼 콜’이라고 부르는데요, 주인공은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 뮤지컬의 주인공은 그러나 킴이 아닙니다.

무대에서 맨 마지막에 나오는 인물은 킴도, 그녀가 사랑했던 미군 병사 크리스도 아닌 미국을 가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기회주의자인 술집 주인 엔지니어와 킴과 크리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탐입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전쟁 혼혈아들이라는 것인데요,

이 뮤지컬의 주제가 바로 이들, 인류 근대사의 비극을 감출 수 없이 얼굴에 담고 사는 인물들이라는 점을 곱씹어 생각하게 만듭니다.

지금도 이 뮤지컬은 막이 올릴 때마다 수익금의 일부를 그들 전쟁 혼혈아들을 돕는 재단으로 기부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 편의 예술작품으로 인류 근대사의 아픔도 치유해보겠다는 고귀한 정신을 느끼게 합니다.

뮤지컬 ‘미스 사이공’은 25주년을 맞아 최근 공연을 기록한 영상물이 제작돼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 영상물 안에는 주요 조역인 베트남 장교 튜이 역으로 우리나라 뮤지컬 배우 홍광호가 등장합니다.

실제로 영국에서 올려진 공연에 발탁돼 한국 뮤지컬 배우의 실력이 세계적인 수준임을 보여줬는데요,

날이 갈수록 성장하는 우리 뮤지컬 산업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뿌듯한 마음도 갖게 됩니다.

‘알고 봐야 더 재미있는 뮤지컬 이야기’ 원종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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