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현장] 월드컵 예선 한·중전…반한 감정 고조

입력 2017.03.25 (21:52) 수정 2017.03.25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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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 23일, 중국 창사시에서 열린 러시아 월드컵 예선 한·중전 결과에 실망하신 분들 많으실 텐데요.

경기를 전후해 현장의 분위기는 험악했습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없었지만 사드 갈등으로 불거진 중국 내 반한감정이 폭발하면서 현지 분위기는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김태욱 특파원이 그 현장을 밀착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작은 섬 위에 거대한 높이의 돌석상이 뭍을 바라봅니다.

젊은 시절 마오쩌둥의 모습입니다.

'건국의 영웅'인 마오쩌둥이 태어나고 자란 곳, 바로 후난성입니다.

<인터뷰> 샤오진린(주민) : "조직 활동에 참여해서 여기 공산당 교육의 성지도 가보고 그럽니다."

이 후난성의 성도 창사는 축구의 도시로도 유명합니다.

중국 축구팬들에겐 이곳 창사는 '약속의 땅'이라 불립니다.

지난 12년 동안 창사에서 중국 대표팀의 전적은 4승 4무, 무패 행진을 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축구팬들의 응원도 열정적이고 과격하기로 유명합니다.

중화민족의 자부심과 축구에 대한 열정.

이곳 창사가 새삼 '스포츠 애국주의'에 휩싸였습니다.

눈앞에 다가온 월드컵 최종예선 한-중전.

비가 내리는 쌀쌀한 날씨 속에 한국 축구 대표팀이 마무리 훈련에 돌입했습니다.

훈련장 곳곳엔 수십 명의 중국 공안이 배치돼 주변을 감시합니다.

<녹취> 중국 공안 : "거기 3명 내려와요! 밖으로 나가주세요."

사드 갈등으로 반한감정 고조된 상황에서 열리는 양국간 축구경기.

경기장엔 사나흘 전부터 무장경찰 장갑차까지 배치돼 삼엄한 경계를 펼칩니다.

경기장 상점들은 영업을 잠정 중단했습니다.

중국 매체들조차 사상 최강의 보안조치라고 전할 정돕니다.

<녹취> 자오(중국 축구팬) : "이번에 보안이 엄격해진 것 같은데, 한중 관계 때문인가요? "아마 그것 때문인 것 같아요."

창사 교민사회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축구의 열기가 자칫 반한감정을 더욱 부추겨 한국인에 대한 폭력사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고연재(한인회장) : "여러 곳에서 전화가 옵니다. 정말 심각하다고.. 혼자 밖에 나가지 말고 축구장 근처는 얼씬도 하지 마라..."

드디어 결전의 날, 오후 들어서자마자 관중들이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지역 공안과 경찰에는 총동원령이 내려졌습니다.

축구장 주변은 이미 응원의 열기가 가득합니다.

<녹취> "중국팀 일어나라! 일어나라!"

<녹취> "중국 필승! 중국 필승!"

<인터뷰> 장전싱(후베이축구팬협회) : "중국팀이 잘하든 못하든 중국은 우리 조국이기 때문에 우리는 중국팀을 변함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사드 반대'를 외치는 정치적 구호도 어김없이 등장했습니다.

<녹취> "사드 저지! 중국 필승!"

<인터뷰> 황쑤캉(푸젠성 시민) : "우리가 오늘 이렇게 구호를 외치는 건 이번 경기를 빌어 모두에게 최근의 사드 문제에 대한 생각을 전하려는 겁니다."

이제 경기 시작까지 약 한 1시간 정도가 남았는데요,

보시는 것처럼 경기장 주변은 벌써 뜨거운 열기에 휩싸여 있습니다.

중국의 축구열성팬, 즉 치우미들이 구름처럼 끊임없이 몰려들고 있고요,

곳곳에서 나팔을 불고 오성홍기를 흔들면서 전의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경기시작을 앞두고 붉은악마 응원단도 창사에 도착했습니다.

이들을 처음 맞이한 건 중국공안의 철통같은 보안 검색입니다.

<녹취> 중국 공안 : "배터리 안돼요. 아니 됩니다."

<녹취> 한국응원단 : "배터리만 빼주세요. 제가 배터리가 없어서..."

긴 여정의 피로와 중국 측의 냉대를 뒤로 하고 한국응원단은 대표팀을 위해 화이팅을 외칩니다.

<인터뷰> 최현경(한국응원단) : "중국하고 상황은 별로 좋지 않지만 모든 선수분들 힘을 내서 꼭 이겨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화이팅!"

4만 석의 경기장은 순식간에 빈 자리를 찾을 수 없이 빼곡히 들어찼습니다.

거대한 함성과 붉은 물결이 상대편을 압도합니다.

애국가가 울려퍼지자 관중석에서 야유가 쏟아집니다.

이에 맞선 한국응원단은 불과 170여 명.

치우미의 함성에 묻혀도 소리 높여 '대한민국'을 외칩니다.

만일의 충돌에 대비해 무려 2천여 명의 공안이 한국응원단을 겹겹이 둘러쌌습니다.

그야말로 '인의 장벽'입니다.

중국 치우미들의 일방적이고 거친 응원 속에 공방을 거듭하던 전반 35분.

중국팀이 앞서가자 치우미들의 함성은 더욱 커집니다.

관람석 전체가 마치 거대한 용광로처럼 붉게 끓어오릅니다.

공한증을 깨고 중국의 염원이 이뤄지는 순간.

치우미들은 다시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듭니다.

승리의 기쁨에 치우미들은 도로 한복판까지 쏟아져 나왔습니다.

거대한 국기를 앞세워 거리를 행진하며 소리 높여 승리를 자축합니다.

흥분한 치우미들을 피해 한국응원단과 교민들은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나옵니다.

공안의 인간벽을 따라 황급히 이동합니다.

치우미와 맞닥뜨리면 어떤 불상사가 발생할 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친 몸을 싣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

한국응원단에게는 아쉬움을 달랠 마음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녹취> 김남승(외교부 경찰청협력관) : "가실 때까지 개별 행동 하시는 걸 자제해 주셔서 안전하게 귀국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최악의 한중관계 속에 치러진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

누군가는 이기고 그래서 또 누군가는 지지만, 그래도 축구는 전쟁이 아닌 스포츠입니다.

<인터뷰> 정은지(한국응원단) : "스포츠는 스포츠이고 정치 문제는 정치 문제니까, 저희가 이제 중국팀 이긴 거 축하해주고 한국이 져서 아쉽지만 다음 경기때 열심히 응원하려고요."

그러나 한국교민에게 창사의 축구경기는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사드 갈등 이후 중국 공안조차 한국인의 안전 문제를 우려할 만큼 호전적으로 돌변한 중국의 스포츠애국주의.

중국이 극복해야 할 건 비단 '축구 공한증'만이 아닙니다.

중국 창사에서 김태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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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현장] 월드컵 예선 한·중전…반한 감정 고조
    • 입력 2017-03-25 22:14:09
    • 수정2017-03-25 22:4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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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 23일, 중국 창사시에서 열린 러시아 월드컵 예선 한·중전 결과에 실망하신 분들 많으실 텐데요.

경기를 전후해 현장의 분위기는 험악했습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없었지만 사드 갈등으로 불거진 중국 내 반한감정이 폭발하면서 현지 분위기는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김태욱 특파원이 그 현장을 밀착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작은 섬 위에 거대한 높이의 돌석상이 뭍을 바라봅니다.

젊은 시절 마오쩌둥의 모습입니다.

'건국의 영웅'인 마오쩌둥이 태어나고 자란 곳, 바로 후난성입니다.

<인터뷰> 샤오진린(주민) : "조직 활동에 참여해서 여기 공산당 교육의 성지도 가보고 그럽니다."

이 후난성의 성도 창사는 축구의 도시로도 유명합니다.

중국 축구팬들에겐 이곳 창사는 '약속의 땅'이라 불립니다.

지난 12년 동안 창사에서 중국 대표팀의 전적은 4승 4무, 무패 행진을 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축구팬들의 응원도 열정적이고 과격하기로 유명합니다.

중화민족의 자부심과 축구에 대한 열정.

이곳 창사가 새삼 '스포츠 애국주의'에 휩싸였습니다.

눈앞에 다가온 월드컵 최종예선 한-중전.

비가 내리는 쌀쌀한 날씨 속에 한국 축구 대표팀이 마무리 훈련에 돌입했습니다.

훈련장 곳곳엔 수십 명의 중국 공안이 배치돼 주변을 감시합니다.

<녹취> 중국 공안 : "거기 3명 내려와요! 밖으로 나가주세요."

사드 갈등으로 반한감정 고조된 상황에서 열리는 양국간 축구경기.

경기장엔 사나흘 전부터 무장경찰 장갑차까지 배치돼 삼엄한 경계를 펼칩니다.

경기장 상점들은 영업을 잠정 중단했습니다.

중국 매체들조차 사상 최강의 보안조치라고 전할 정돕니다.

<녹취> 자오(중국 축구팬) : "이번에 보안이 엄격해진 것 같은데, 한중 관계 때문인가요? "아마 그것 때문인 것 같아요."

창사 교민사회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축구의 열기가 자칫 반한감정을 더욱 부추겨 한국인에 대한 폭력사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고연재(한인회장) : "여러 곳에서 전화가 옵니다. 정말 심각하다고.. 혼자 밖에 나가지 말고 축구장 근처는 얼씬도 하지 마라..."

드디어 결전의 날, 오후 들어서자마자 관중들이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지역 공안과 경찰에는 총동원령이 내려졌습니다.

축구장 주변은 이미 응원의 열기가 가득합니다.

<녹취> "중국팀 일어나라! 일어나라!"

<녹취> "중국 필승! 중국 필승!"

<인터뷰> 장전싱(후베이축구팬협회) : "중국팀이 잘하든 못하든 중국은 우리 조국이기 때문에 우리는 중국팀을 변함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사드 반대'를 외치는 정치적 구호도 어김없이 등장했습니다.

<녹취> "사드 저지! 중국 필승!"

<인터뷰> 황쑤캉(푸젠성 시민) : "우리가 오늘 이렇게 구호를 외치는 건 이번 경기를 빌어 모두에게 최근의 사드 문제에 대한 생각을 전하려는 겁니다."

이제 경기 시작까지 약 한 1시간 정도가 남았는데요,

보시는 것처럼 경기장 주변은 벌써 뜨거운 열기에 휩싸여 있습니다.

중국의 축구열성팬, 즉 치우미들이 구름처럼 끊임없이 몰려들고 있고요,

곳곳에서 나팔을 불고 오성홍기를 흔들면서 전의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경기시작을 앞두고 붉은악마 응원단도 창사에 도착했습니다.

이들을 처음 맞이한 건 중국공안의 철통같은 보안 검색입니다.

<녹취> 중국 공안 : "배터리 안돼요. 아니 됩니다."

<녹취> 한국응원단 : "배터리만 빼주세요. 제가 배터리가 없어서..."

긴 여정의 피로와 중국 측의 냉대를 뒤로 하고 한국응원단은 대표팀을 위해 화이팅을 외칩니다.

<인터뷰> 최현경(한국응원단) : "중국하고 상황은 별로 좋지 않지만 모든 선수분들 힘을 내서 꼭 이겨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화이팅!"

4만 석의 경기장은 순식간에 빈 자리를 찾을 수 없이 빼곡히 들어찼습니다.

거대한 함성과 붉은 물결이 상대편을 압도합니다.

애국가가 울려퍼지자 관중석에서 야유가 쏟아집니다.

이에 맞선 한국응원단은 불과 170여 명.

치우미의 함성에 묻혀도 소리 높여 '대한민국'을 외칩니다.

만일의 충돌에 대비해 무려 2천여 명의 공안이 한국응원단을 겹겹이 둘러쌌습니다.

그야말로 '인의 장벽'입니다.

중국 치우미들의 일방적이고 거친 응원 속에 공방을 거듭하던 전반 35분.

중국팀이 앞서가자 치우미들의 함성은 더욱 커집니다.

관람석 전체가 마치 거대한 용광로처럼 붉게 끓어오릅니다.

공한증을 깨고 중국의 염원이 이뤄지는 순간.

치우미들은 다시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듭니다.

승리의 기쁨에 치우미들은 도로 한복판까지 쏟아져 나왔습니다.

거대한 국기를 앞세워 거리를 행진하며 소리 높여 승리를 자축합니다.

흥분한 치우미들을 피해 한국응원단과 교민들은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나옵니다.

공안의 인간벽을 따라 황급히 이동합니다.

치우미와 맞닥뜨리면 어떤 불상사가 발생할 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친 몸을 싣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

한국응원단에게는 아쉬움을 달랠 마음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녹취> 김남승(외교부 경찰청협력관) : "가실 때까지 개별 행동 하시는 걸 자제해 주셔서 안전하게 귀국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최악의 한중관계 속에 치러진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

누군가는 이기고 그래서 또 누군가는 지지만, 그래도 축구는 전쟁이 아닌 스포츠입니다.

<인터뷰> 정은지(한국응원단) : "스포츠는 스포츠이고 정치 문제는 정치 문제니까, 저희가 이제 중국팀 이긴 거 축하해주고 한국이 져서 아쉽지만 다음 경기때 열심히 응원하려고요."

그러나 한국교민에게 창사의 축구경기는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사드 갈등 이후 중국 공안조차 한국인의 안전 문제를 우려할 만큼 호전적으로 돌변한 중국의 스포츠애국주의.

중국이 극복해야 할 건 비단 '축구 공한증'만이 아닙니다.

중국 창사에서 김태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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