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집권당이 보호한 ‘부패’ 대통령 그리고 경제위기

입력 2017.04.04 (09:39) 수정 2017.04.0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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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한 곳인 S&P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국가 신용도를 BB+로 평가했다. 기존 BBB-에서 한 단계 떨어졌다. BB+부터는 해당 국가 채권을 투기성 또는 투자 부적합 등급으로 분류한다. 남아공이 차후 해외 자본을 도입할 때 치러야 할 이자율이 급증한다는 뜻이다.

국가 신용도 하락은 대통령 제이컵 주마(Jacob Zuma) 정부의 개각 직후 이뤄졌다. 이 조치로 재무장관 프래빈 고단(Pravin Gordhan)이 교체됐다. 국내외적 신임을 받던 고단 전 장관의 실각에는 정당한 사유가 없었다. 여론뿐 아니라 집권 여당에서조차 반발이 거세다.

S&P는 이번 재무장관 실각으로 남아공이 정치적 대격변을 치를 것으로 내다봤다. 국가 전력 기관인 에스콤(Eskom)의 빚을 갚기 위해 투입돼야 할 막대한 예산과 급락하는 국내 통화 가치도 신용도 하락을 이끌었다. 남아공 랜드(Rand)화는 재무장관의 급작스런 실각 후 하루 동안에만 4% 급락했다.

왜 개각을 단행했나?

집권 8년째인 주마 대통령은 이해할 수 없는 재무장관 교체로 여론의 비난을 받고 있다. 집권 8년째인 주마 대통령은 이해할 수 없는 재무장관 교체로 여론의 비난을 받고 있다.

주마 대통령은 개각으로 장관 9명과 차관 6명을 갈아치웠다. 현지 언론들은 이번 조치를 '학살'로까지 표현하고 있다.

고단 전 재무장관이 유독 주목받는 이유는 그가 대통령과 줄곧 대립각을 세워왔기 때문이다. 에스콤이 빚을 떠안은 채 새 원자력 발전소를 짓지 못하도록 하고, 부실 공기업에 대한 재정 지출을 최소화했다. 갈등 과정에서 주마 대통령의 실정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지지율도 떨어졌다. 대통령에게 재무장관은 '눈엣가시'였다.

고단은 2015년 12월 재무장관이 됐다. 전임자는 고작 4일간 장관직을 수행한 뒤 해임된 데스 반 루옌(Des Van Rooyen)으로, 주마 대통령의 측근이었다. 고단은 주마 대통령이 '코드 인사'로 역풍을 맞은 뒤 억지로 임명한 재무장관이었다.

갈수록 떨어지는 지지율과 좁아지는 당내 기반, 이 같은 상황을 반전하기 위한 주마 대통령의 개각은 측근 인사로 귀결됐다. 이번에도 역풍이 만만치 않다. 부통령부터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며 각을 세웠고, 집권당 아프리카민족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에서도 반대하고 나섰다. 당 주도권 다툼이 이번 갈등으로 표면화됐다는 평가다.

1994년 아프리카민족회의를 이끌던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가 남아공을 흑인을 탄압하던 인종 분리주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백인 정권에서 해방한 이래, 집권당은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부패권력 퇴출 실패, 뒤이은 경제 위기

남아공 국회는 지난해 4월과 11월 주마 대통령 퇴진을 시도했지만, 집권당 반대로 모두 무산됐다.남아공 국회는 지난해 4월과 11월 주마 대통령 퇴진을 시도했지만, 집권당 반대로 모두 무산됐다.

주마 대통령은 위기를 자초하는 정치인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지난해 4월에는 대통령 사저에 2억 4,600만 랜드, 한화로 212억 원의 예산을 불법으로 집행한 것이 드러나 궁지에 몰렸다. 11월에는 '비선 실세'인 대기업 굽타 일가가 장관 인사를 주무른 인사 전횡이 드러났다.

야당들은 비리가 드러날 때마다 대통령 퇴진을 추진했다. '사저 비리' 때는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을 의결했다. 하지만 집권당의 무더기 반대표로 부결됐다. '비선 실세 논란' 때 국회는 내각 불신임안을 상정했다. 이때는 집권당 반대로 표결 절차에 착수조차 못 했다. 국회 의석 62%를 차지한 집권당의 비호로 대통령은 퇴출 위기에서 기사회생했다.

대통령은 2017년 4월 '불통 인사'로 화답했다. 여당도 아닌 개인의 권력 기반을 지키는 데에만 급급했다는 평가다. 이해할 수 없는 개각은 가뜩이나 안 좋은 경제를 추락시키고 있다. S&P의 국가 신용도 하락 결정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남은 3대 신용평가사 2곳 역시 신용도를 낮출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이 공언했던 일자리 확보와 경제 발전은 더욱 멀어지게 됐다. 주마 퇴진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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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집권당이 보호한 ‘부패’ 대통령 그리고 경제위기
    • 입력 2017-04-04 09:39:00
    • 수정2017-04-04 09:48:37
    특파원 리포트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한 곳인 S&P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국가 신용도를 BB+로 평가했다. 기존 BBB-에서 한 단계 떨어졌다. BB+부터는 해당 국가 채권을 투기성 또는 투자 부적합 등급으로 분류한다. 남아공이 차후 해외 자본을 도입할 때 치러야 할 이자율이 급증한다는 뜻이다.

국가 신용도 하락은 대통령 제이컵 주마(Jacob Zuma) 정부의 개각 직후 이뤄졌다. 이 조치로 재무장관 프래빈 고단(Pravin Gordhan)이 교체됐다. 국내외적 신임을 받던 고단 전 장관의 실각에는 정당한 사유가 없었다. 여론뿐 아니라 집권 여당에서조차 반발이 거세다.

S&P는 이번 재무장관 실각으로 남아공이 정치적 대격변을 치를 것으로 내다봤다. 국가 전력 기관인 에스콤(Eskom)의 빚을 갚기 위해 투입돼야 할 막대한 예산과 급락하는 국내 통화 가치도 신용도 하락을 이끌었다. 남아공 랜드(Rand)화는 재무장관의 급작스런 실각 후 하루 동안에만 4% 급락했다.

왜 개각을 단행했나?

집권 8년째인 주마 대통령은 이해할 수 없는 재무장관 교체로 여론의 비난을 받고 있다.
주마 대통령은 개각으로 장관 9명과 차관 6명을 갈아치웠다. 현지 언론들은 이번 조치를 '학살'로까지 표현하고 있다.

고단 전 재무장관이 유독 주목받는 이유는 그가 대통령과 줄곧 대립각을 세워왔기 때문이다. 에스콤이 빚을 떠안은 채 새 원자력 발전소를 짓지 못하도록 하고, 부실 공기업에 대한 재정 지출을 최소화했다. 갈등 과정에서 주마 대통령의 실정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지지율도 떨어졌다. 대통령에게 재무장관은 '눈엣가시'였다.

고단은 2015년 12월 재무장관이 됐다. 전임자는 고작 4일간 장관직을 수행한 뒤 해임된 데스 반 루옌(Des Van Rooyen)으로, 주마 대통령의 측근이었다. 고단은 주마 대통령이 '코드 인사'로 역풍을 맞은 뒤 억지로 임명한 재무장관이었다.

갈수록 떨어지는 지지율과 좁아지는 당내 기반, 이 같은 상황을 반전하기 위한 주마 대통령의 개각은 측근 인사로 귀결됐다. 이번에도 역풍이 만만치 않다. 부통령부터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며 각을 세웠고, 집권당 아프리카민족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에서도 반대하고 나섰다. 당 주도권 다툼이 이번 갈등으로 표면화됐다는 평가다.

1994년 아프리카민족회의를 이끌던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가 남아공을 흑인을 탄압하던 인종 분리주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백인 정권에서 해방한 이래, 집권당은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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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국회는 지난해 4월과 11월 주마 대통령 퇴진을 시도했지만, 집권당 반대로 모두 무산됐다.
주마 대통령은 위기를 자초하는 정치인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지난해 4월에는 대통령 사저에 2억 4,600만 랜드, 한화로 212억 원의 예산을 불법으로 집행한 것이 드러나 궁지에 몰렸다. 11월에는 '비선 실세'인 대기업 굽타 일가가 장관 인사를 주무른 인사 전횡이 드러났다.

야당들은 비리가 드러날 때마다 대통령 퇴진을 추진했다. '사저 비리' 때는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을 의결했다. 하지만 집권당의 무더기 반대표로 부결됐다. '비선 실세 논란' 때 국회는 내각 불신임안을 상정했다. 이때는 집권당 반대로 표결 절차에 착수조차 못 했다. 국회 의석 62%를 차지한 집권당의 비호로 대통령은 퇴출 위기에서 기사회생했다.

대통령은 2017년 4월 '불통 인사'로 화답했다. 여당도 아닌 개인의 권력 기반을 지키는 데에만 급급했다는 평가다. 이해할 수 없는 개각은 가뜩이나 안 좋은 경제를 추락시키고 있다. S&P의 국가 신용도 하락 결정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남은 3대 신용평가사 2곳 역시 신용도를 낮출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이 공언했던 일자리 확보와 경제 발전은 더욱 멀어지게 됐다. 주마 퇴진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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