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67년째 지키지 못한 약속…3일의 약속 전우회

입력 2017.06.24 (08:21) 수정 2017.06.24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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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북한이 6.25전쟁을 어떻게 왜곡하고 이용하는지 보셨는데요,

67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죠?

특히 북한에 고향을 둔 분들은 망향의 아픔까지 겪고 있는데요,

며칠 만 피난을 가려고 집을 나섰다가 영영 가족과 헤어진 분이 많으시다죠?

그 가운데서도 오늘은 학도병으로 국군에 입대해 싸웠던 함경북도 출신 어르신들의 특별한 사연을 준비했습니다.

이분들의 가슴 아픈 사연은 드라마로도 만들어졌었는데요.

홍은지 리포터와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휴전선과 맞닿아 있는 강원도 철원군.

이른 아침, 먼 길을 달려 온 버스 한 대가 군부대에 들어섭니다.

버스에서 하나 둘 내리는 군복 차림의 어르신들.

팔순을 훌쩍 넘긴 이 분들은 6.25 전쟁 전우들입니다.

6.25 전쟁 당시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노병들이 다시 모였습니다.

먼저 간 전우들을 기리기 위해서, 그리고 지키지 못한 약속에 대한 한을 함께 달래기 위해서라는데요.

어떤 사연일까요?

육군 3사단 백골부대의 창설 기념식.

백골부대는 6.25 전쟁 당시 낙동강까지 후퇴했던 국군이 반격을 하며 처음으로 38선을 돌파했을 때 가장 선봉에 섰던 부대입니다.

정부는 그 날을 기념해국군의 날을 10월 1일로 정했습니다.

<인터뷰> 유형진(육군 3사단 백골부대 병장) : "저희가 명예롭고 전통있는 부대에서 복무하고 있는데, 항상 힘들 때마다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시 뺏고 뺏기는 접전을 벌이며 목숨을 걸고 이곳을 지켜낸 용사들.

이젠 백발이 되어 후배들 앞에 섰습니다.

<인터뷰> 방덕수(‘3일의 약속 전우회’ 회원) : "낮과 밤이 따로 없는 전쟁터에서 종횡무진으로 전투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녹취> "순직 학도병 영령들을 모두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추모하며..."

까마득한 후배 장병들과 함께 동료들의 추모비 앞에 머리를 숙이는 이송연 할아버지.

아득한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인터뷰> 이송연(‘3일의 약속 전우회’ 회장) : "그때 집에서 떠날 때 어머니한테 3일 만에 다시 돌아오겠노라 이렇게 약속을 하고 떠난 것이 오늘 이렇게 67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래서 이들 모임의 이름은 <3일의 약속 전우회>입니다.

회원들은 모두 함경북도 출신으로, 1950년 12월 9일 함북 성진항에서 중공군과 북한군에 밀려 퇴각하는 국군 수송선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입대해 이곳 백골부대에 배치됐는데요.

이때 함께 온 함경북도 출신 학도병의 수는 모두 156명이었습니다.

이들은 정식 훈련 한 번 받지 못하고 전장에 뛰어들어 가칠봉, 오대산, 662고지(육육이 고지) 등 격전지들에서 활약했는데요.

3일 뒤를 기약하고 떠나온 가족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조국은 다시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갈라졌고, 생존자는 겨우 이십 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인터뷰> 방덕수(‘3일의 약속 전우회’ 회원) : "온 몸이 지금 여기에 파편도 들어 있고 아직도 있어요. 밤에도 간혹 꿈에 생각날 때가 있어요. 그때 막 낮에 나 혼자 울어요. 그거는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같이 밥 먹다가 산에 올라가가지고 싸우다가 죽었다... 그때는 참 막 화가 나지. 그 죽은 거 보면 여기까지 와서 고향도 못가고 여기서 죽다니..."

1991년에는 생존자 중 한 명의 수기를 바탕으로 KBS 드라마가 제작되면서 이들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는데요.

<녹취> "못 가겠어. (저기가 부두예요. 배 못 타면 죽습니다.)"

이를 계기로 생존자들도 하나 둘 모여 전우회를 결성하고 전우들을 기리는 추모비도 세웠습니다.

<인터뷰> 안충준(이북5도 위원회 함경북도지사) : "아... 참 너무나 가슴 벅차죠. 그리고 우리가 영원히 이런 영웅들을,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되겠죠. 우리 함북의 혼을 계속 계승했으면 좋겠습니다. "

올해로 열 네 번 째를 맞은 추모회...해마다 참석 회원 수가 줄고 있습니다.

하나 둘 세상을 떠나거나 병환이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바쳐 평화를 지켜낸 전우들.

아흔을 눈앞에 둔 노병들은 그들의 고귀한 희생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했다는데요.

얼마 전, 그분들을 함께 기리겠다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어르신들을 고향에 계신 할아버지, 아버지로 여기고 ‘3일의 약속 전공비’의 의미를 기억하겠다는 이들은 같은 함경북도 출신의 탈북민들입니다.

<인터뷰> 한동혁(함경북도 출신 탈북민) : "북한에 고향을 두고 남한에 와서 생활하는 똑같은 실향민이다... 6.25 전쟁에서 흘린 피를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그 정신을 이어받으려고..."

시기는 다르지만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그리고 통일이 되어야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동병상련의 아픔이 어르신들과 젊은이들을 하나로 묶어 줍니다.

<인터뷰> 심수연(탈북민) : "사실 북한에서는 백골부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악질부대라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래서 백골부대 하게 되면 지주 자본가의 자식들만 가는 곳이다, 이렇게 저희들이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또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녹취> "아버지, 어머니... 3일이면 꼭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고향 후배들이 마련한 위문 공연, 고향에 온 듯 오랜만에 흥겨운 마음으로 즐겨봅니다.

<인터뷰> 방덕수(‘3일의 약속 전우회’ 회원) : "오늘 참 좋았어요. 지금까지 내가 몇 번 와도, 해마다 오는데 오늘같이 기분 좋은 날 없더라고요."

어르신들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며 고향 후배들은 보람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낍니다.

<녹취> 추도시 '남은 자의 노래' 中 : "그날은 성진부두로 가는 길에 눈이 내렸다. 3일 안으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믿지 못하는 어머니는 동구 밖에 홀로 서서 울고 계시고, 총성 멎은 산하에는 세월만 흐르는가..."

백골부대 동산에 세워진 추모비가 전하는 이산과 실향의 아픔, 그리고 6.25 전쟁의 참혹함은 6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데요.

이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자유와 평화를 북녘 고향에 남아있는 사람들도 함께 누리는 그 날이 어서 오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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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67년째 지키지 못한 약속…3일의 약속 전우회
    • 입력 2017-06-24 08:10:08
    • 수정2017-06-24 08: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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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북한이 6.25전쟁을 어떻게 왜곡하고 이용하는지 보셨는데요,

67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죠?

특히 북한에 고향을 둔 분들은 망향의 아픔까지 겪고 있는데요,

며칠 만 피난을 가려고 집을 나섰다가 영영 가족과 헤어진 분이 많으시다죠?

그 가운데서도 오늘은 학도병으로 국군에 입대해 싸웠던 함경북도 출신 어르신들의 특별한 사연을 준비했습니다.

이분들의 가슴 아픈 사연은 드라마로도 만들어졌었는데요.

홍은지 리포터와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휴전선과 맞닿아 있는 강원도 철원군.

이른 아침, 먼 길을 달려 온 버스 한 대가 군부대에 들어섭니다.

버스에서 하나 둘 내리는 군복 차림의 어르신들.

팔순을 훌쩍 넘긴 이 분들은 6.25 전쟁 전우들입니다.

6.25 전쟁 당시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노병들이 다시 모였습니다.

먼저 간 전우들을 기리기 위해서, 그리고 지키지 못한 약속에 대한 한을 함께 달래기 위해서라는데요.

어떤 사연일까요?

육군 3사단 백골부대의 창설 기념식.

백골부대는 6.25 전쟁 당시 낙동강까지 후퇴했던 국군이 반격을 하며 처음으로 38선을 돌파했을 때 가장 선봉에 섰던 부대입니다.

정부는 그 날을 기념해국군의 날을 10월 1일로 정했습니다.

<인터뷰> 유형진(육군 3사단 백골부대 병장) : "저희가 명예롭고 전통있는 부대에서 복무하고 있는데, 항상 힘들 때마다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시 뺏고 뺏기는 접전을 벌이며 목숨을 걸고 이곳을 지켜낸 용사들.

이젠 백발이 되어 후배들 앞에 섰습니다.

<인터뷰> 방덕수(‘3일의 약속 전우회’ 회원) : "낮과 밤이 따로 없는 전쟁터에서 종횡무진으로 전투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녹취> "순직 학도병 영령들을 모두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추모하며..."

까마득한 후배 장병들과 함께 동료들의 추모비 앞에 머리를 숙이는 이송연 할아버지.

아득한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인터뷰> 이송연(‘3일의 약속 전우회’ 회장) : "그때 집에서 떠날 때 어머니한테 3일 만에 다시 돌아오겠노라 이렇게 약속을 하고 떠난 것이 오늘 이렇게 67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래서 이들 모임의 이름은 <3일의 약속 전우회>입니다.

회원들은 모두 함경북도 출신으로, 1950년 12월 9일 함북 성진항에서 중공군과 북한군에 밀려 퇴각하는 국군 수송선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입대해 이곳 백골부대에 배치됐는데요.

이때 함께 온 함경북도 출신 학도병의 수는 모두 156명이었습니다.

이들은 정식 훈련 한 번 받지 못하고 전장에 뛰어들어 가칠봉, 오대산, 662고지(육육이 고지) 등 격전지들에서 활약했는데요.

3일 뒤를 기약하고 떠나온 가족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조국은 다시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갈라졌고, 생존자는 겨우 이십 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인터뷰> 방덕수(‘3일의 약속 전우회’ 회원) : "온 몸이 지금 여기에 파편도 들어 있고 아직도 있어요. 밤에도 간혹 꿈에 생각날 때가 있어요. 그때 막 낮에 나 혼자 울어요. 그거는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같이 밥 먹다가 산에 올라가가지고 싸우다가 죽었다... 그때는 참 막 화가 나지. 그 죽은 거 보면 여기까지 와서 고향도 못가고 여기서 죽다니..."

1991년에는 생존자 중 한 명의 수기를 바탕으로 KBS 드라마가 제작되면서 이들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는데요.

<녹취> "못 가겠어. (저기가 부두예요. 배 못 타면 죽습니다.)"

이를 계기로 생존자들도 하나 둘 모여 전우회를 결성하고 전우들을 기리는 추모비도 세웠습니다.

<인터뷰> 안충준(이북5도 위원회 함경북도지사) : "아... 참 너무나 가슴 벅차죠. 그리고 우리가 영원히 이런 영웅들을,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되겠죠. 우리 함북의 혼을 계속 계승했으면 좋겠습니다. "

올해로 열 네 번 째를 맞은 추모회...해마다 참석 회원 수가 줄고 있습니다.

하나 둘 세상을 떠나거나 병환이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바쳐 평화를 지켜낸 전우들.

아흔을 눈앞에 둔 노병들은 그들의 고귀한 희생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했다는데요.

얼마 전, 그분들을 함께 기리겠다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어르신들을 고향에 계신 할아버지, 아버지로 여기고 ‘3일의 약속 전공비’의 의미를 기억하겠다는 이들은 같은 함경북도 출신의 탈북민들입니다.

<인터뷰> 한동혁(함경북도 출신 탈북민) : "북한에 고향을 두고 남한에 와서 생활하는 똑같은 실향민이다... 6.25 전쟁에서 흘린 피를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그 정신을 이어받으려고..."

시기는 다르지만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그리고 통일이 되어야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동병상련의 아픔이 어르신들과 젊은이들을 하나로 묶어 줍니다.

<인터뷰> 심수연(탈북민) : "사실 북한에서는 백골부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악질부대라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래서 백골부대 하게 되면 지주 자본가의 자식들만 가는 곳이다, 이렇게 저희들이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또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녹취> "아버지, 어머니... 3일이면 꼭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고향 후배들이 마련한 위문 공연, 고향에 온 듯 오랜만에 흥겨운 마음으로 즐겨봅니다.

<인터뷰> 방덕수(‘3일의 약속 전우회’ 회원) : "오늘 참 좋았어요. 지금까지 내가 몇 번 와도, 해마다 오는데 오늘같이 기분 좋은 날 없더라고요."

어르신들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며 고향 후배들은 보람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낍니다.

<녹취> 추도시 '남은 자의 노래' 中 : "그날은 성진부두로 가는 길에 눈이 내렸다. 3일 안으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믿지 못하는 어머니는 동구 밖에 홀로 서서 울고 계시고, 총성 멎은 산하에는 세월만 흐르는가..."

백골부대 동산에 세워진 추모비가 전하는 이산과 실향의 아픔, 그리고 6.25 전쟁의 참혹함은 6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데요.

이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자유와 평화를 북녘 고향에 남아있는 사람들도 함께 누리는 그 날이 어서 오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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