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한 뿌리 두 태권도…南北 태권도 차이는?

입력 2017.07.01 (08:08) 수정 2017.07.01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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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얼마 전 무주 세계 태권도 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북한 태권도 시범단의 공연 보셨습니까?

다소 투박하면서도 실제 싸움을 연상시키는 야성미가 인상적이었는데요.

한 뿌리에서 시작한 남과 북의 태권도가 어떻게 이렇게 좀 다른 모습을 갖게 된 걸까요?

<클로즈업 북한> 이번 주에는 북한 태권도의 발전사와 남북한 태권도의 차이를 비교해봤습니다.

<리포트>

2017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막식. 힘찬 기합소리와 함께 우리 태권도 시범단의 공연이 시작됐다.

화려한 조명과 형형색색의 도복, 웅장한 음악까지 한편의 공연 같은 태권도 시범에 관중들의 박수 갈채가 이어졌다.

뒤이어 무대에 오른 팀은 북한의 태권도 시범단이었다.

유연한 몸놀림과 박력 있고 날카로운 동작으로 송판을 잇따라 격파했다.

여러장의 기왓장을 단번에 부수는 시범은 단연 인기였다.

<녹취> 北 태권도 시범단 관계자 : "다음은 호신술을 보시겠습니다. 이 종목에서는 평범한 여성들도 태권도를 부단히 수련하면 얼마든지 강한 상대들도 제압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가장 뜨거운 호응을 얻은 것은 호신술 시범.

자그마한 체구의 여자 선수가 건장한 남성들을 순식간에 제압하는가 하면, 혼자서 상대 여럿을 물리치고 여성을 보호하는 모습까지.

10년 만에 한국을 찾은 북한 태권도 시범단은 친숙하면서도 조금은 낯선 모습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렇듯 같으면서도 달라 보이는 남북한 태권도는 어떻게 시작했고 변화해 왔을까.

현대적 의미의 ‘태권도’를 정립하고 그 기반을 다지는 데는 육군 소장 출신 최홍희의 역할이 컸다고 전해진다.

최홍희는 1966년 창설된 국제태권도연맹, ITF의 초대 총재를 맡아 태권도의 국제적인 보급에 나섰다.

그러나, 당시 정권과의 갈등으로 1972년 캐나다로 망명한다.

이듬해인 1973년, 국내에서는 김운용의 주도로 새로운 국제 태권도 기구인 세계태권도연맹, WTF가 출범한다.

종주국 한국을 중심으로 WTF가 세력을 확장해 나갈 무렵, 1980년 최홍희는 15명의 ITF 사범단을 이끌고 북한으로 건너가 태권도를 보급하기 시작한다.

<녹취> 北기록영화 ‘민족대단결의 위대한 구성’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최홍희 선생이 국제 태권도연맹 총재로서 세계 각지로 태권도 무대를 넓혀가며 민족의 기백을 떨치도록 보살펴 주시였습니다."

이후 북한은 1992년 ITF 세계태권도선수권 대회를 개최하는 등 최홍희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ITF 태권도를 주도하게 된다.

<인터뷰> 양대승(가천대 체육학부 태권도 전공 교수) : "주도하는 국가가 대한민국이고 또 북한이다 보니까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WTF는 대한민국 태권도 그다음에 ITF는 북한 태권도 이렇게 생각들을 일반인들이 많이 하고 있습니다. 태권도는 북한에 있든 우리나라에 있든 우리 민족 고유의 어떤 무술적으로 출발을 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라고.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이거를 굳이 뭐 대한민국 태권도다, 뭐 북한 태권도다 그렇게 구분하지 말고 큰 틀에서 그냥 우리 민족 고유의 하나의 태권도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수십년간 다른 길을 걸어 온 만큼 차이점도 생겨났다.

<인터뷰> 유승희(국제태권도연맹(ITF) 대한민국협회 사무총장) : "우선은 기본적으로 스포츠와 무도라는 개념의 차이가 있고요. 외형적으로는 이제 도복 그리고 품새, 발차기, 스파링 등 모든 외형적인 어떤 기술적인 부분에 큰 차이가 있어요."

우리나라가 주도하는 WTF 태권도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며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 과정에서 스포츠적 측면이 강해졌다면, 북한이 주도하는 ITF 태권도는 수련과 실전을 중시하는 무도로서의 측면이 강하다는 평가다.

우리의 ‘품새'를 ‘틀'이라 하고 ‘겨루기'를 ‘맞서기'라고 하는 등 용어도 다르고, 기본동작 역시 비슷하면서도 차이를 보인다.

WTF 품새 ‘태극1장’의 동작이다.

다음은 ITF의 ‘천지틀’ 동작. ‘품새’는 직선적이라면 ‘틀’은 상대적으로 위아래로 곡선적인 움직임이 더해진다.

앞차기 기본동작을 보면 주로 발등으로, 올려차는 WTF에 비해 ITF는 발 앞축으로 꽂아 차는 방식이다.

돌려차기 기술에서도 각도와 힘의 방향이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인터뷰> 유승희(국제태권도연맹(ITF) 대한민국협회 사무총장) : "WTF 돌려차기는 우선은 무릎의 방향이 앞으로 나가요. 앞으로 나가서 돌려서 이렇게 발등으로... ITF 같은 경우에는 각도가 우선 다르고 이 상태에서 45도 방향에 있는 상대방의 급소라인을 압축으로 꽂아 차요."

착용하는 보호대도 다르다.

WTF 태권도는 머리와 몸통에 보호대를 착용하는 반면, ITF 태권도는 가격을 하는 손과 발에 글러브를 착용하고 머리보호대 대신 마우스피스만 사용한다.

WTF가 발기술 위주로 펼치는 데 비해, ITF는 글러브를 낀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하는 것도 중요한 기술로 사용되고 있다.

이종격투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요소다.

그러나 ITF 회원국 북한 선수들의 모습은 올림픽에선 볼 수 없다.

<인터뷰> 양대승(가천대 체육학부 태권도전공 교수) :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WTF 경기방식을 따라야 되는 거거든요. 세계 태권도 연맹이라든지 국기원에서 발행하는 국기원 단증이 없으면 출전할 수가 없거든요."

북한은 군대를 중심으로 일종의 전투무술인 ‘격술’을 보급하다,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태권도를 ‘국기’로 삼아 널리 보급시켰다.

<녹취> 北 영화 ‘민족과 운명’ 9부(1992년) : "제군들, 나는 태권도를 통해 힘을 키우고, 우리 민족의 대단합을 이루어 보자고 했소."

최홍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까지 제작됐고, 한 해 수백명의 태권도 사범들을 해외로 파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태권도를 김일성 부자의 업적으로 선전하며 태권도 종주국을 자처하기 시작한다.

<녹취> 조선중앙TV(2016년 4월) : "1980년대 초였습니다. 그때로 말하면 역사의 이끼 속에 희미해져가던 우리의 태권도가 장군님의 극진한 관심과 보살피심 속에 세상에 자기의 존재를 뚜렷이 드러내고 있던 그러한 시기였습니다."

<인터뷰> 채성민(前 북한 태권도 선수/2010년 탈북) : "북한에서는 일단 태권도도 김일성 김정일이 다 한 거죠. 그냥. 그 사람들이 다 만든 거고 그 사람들 때문에 된 거라고 그렇게 배웠는데. 내용상은 다 알고 있는 거죠. 1980년대 그 최홍희 선생이 북한에 처음 방문하면서 사실은 시작된 걸로 알고 있거든요 저희도. 그렇게 기본적인 내용들은 알고 있는 거죠."

최홍희 사망 이후 ITF 국제태권도연맹은 북한이 주도하는 기구와 한국도 포함된 캐나다본부가 주도하는 기구 등으로 나뉘어진다.

가장 큰 차이는‘품새’에 해당하는 ‘틀’ 가운데 이른바 ‘주체’틀이 추가된 것이었다.

<녹취> 조선중앙TV (제11차 청소년 및 제6차 로장태권도세계선수권대회/2014년) : "지금 수행하고 있는 ‘주체틀’은 높은 기술동작을 요구하는 틀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주체틀’은 모두 45개 동작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인터뷰> 유승희(국제태권도연맹(ITF) 대한민국협회 사무총장) : "어느 순간에 주체 틀을 넣었어요. 전 세계에 사범을 보급해서 주체사상을 널리 퍼뜨리려고 틀에다가 주체 틀을 넣은 거죠. 그런데 저희는 주체틀을 안쓰고 고당틀을 써요."

1990년대 김정일은 본격적으로 태권도를 전문화·대중화한다.

<녹취> 조선중앙TV(‘태권도는 우리 민족의 기상이라 하시며’/2016년 4월) : "우리가 다른 건물은 한두 채쯤 짓지 못 하더라도 태권도관을 꼭 지어야 한다시며 형성도안과 함께 그 부지 설정으로부터 설계와 시공에 이르는 건설공사 전반을 몸소 지도해주신 위대한 장군님..."

대규모 태권도 전용시설인 ‘태권도 전당’이 들어섰고, 태권도 과외학교를 도별로 설치해 선수와 지도원을 양성했다. 북한의 집단체조 아리랑에도 태권도를 추가할 것을 지시한다.

<녹취> 조선중앙TV(‘태권도는 우리 민족의 기상이라 하시며’/2016년 4월) : "어느 해인가는 집단체조 창작 대본을 친히 보아주시다가 태권도장이 왜 없는가, 태권도장이 있어야 집단체조가 힘 있고 기백 있게 안겨온다고 하시며 급속히 보급되고 있는 우리나라 태권도의 모습을 온 세상이 다 알도록 내세워 주시였습니다."

건강 태권도, 노인 태권도 등도 만들어 주민 모두가 태권도를 접하도록 했다.

김정은 집권 후에도 태권도 시리즈를 TV로 방송하고, 태권도를 군중시위에 활용하는 등 집단주의 체제 유지에 적극 활용하는 모습이다.

<녹취> 조선중앙TV(‘민족의 전통무도 태권도’) : "우리 모두 태권도를 통해 몸과 마음을 굳게 다져 강성국가 건설에 힘차게 이바지해 나갑시다."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됐지만 남북한이 40년 넘게 각자의 길을 걸어온 태권도, 10년 만에 북한 시범단이 방문한 데 이어 9월 평양에서 열리는 ITF 세계태권도선수권 대회에 한국 시범단의 방문이 추진되면서 교류와 통합의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인터뷰> 양대승(가천대 체육학부 태권도 전공 교수) : "두 개가 결합된다면 아마 태권도는 한번 더 도약의 기회를 갖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기관이 서로 신뢰를 갖고 서로 교류하면서 아, 내가 이런 건 부족한 부분들은 너희들이 채워줄 수 있냐, 너희들 이런 부족한 부분들은 내가 좀 채워줄게. 그러면서 협력하다보면 아마 새로운 태권도가 다시 재조명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교류의 필요성은 2002년 우리 태권도 시범단의 방북 때 북한 선수들도 실감했다고 태권도 선수 출신 탈북민은 전한다.

<인터뷰> 채성민(前 북한 태권도 선수/2010년 탈북) : "좀 처음에는 좀 놀랐죠. 충격이었죠. 발기술이 너무 현란해가지고 (우리도) 저렇게 할 수 있겠나 해가지고.... 사실 북한 태권도는 박력이 힘은 있는데 조금 발차기는 조금 늦거든요. 발기술이 약하거든요. 좀 속도가 떨어지거든요. 그런데 그때 보고. 실제로 (북한)선수단 선수들도 (훈련방법이) 바뀌는 선수도 많았거든요. 그런 경험도 있었죠."

9일간 머물며 4차례 공연을 펼친 북한의 태권도 시범단.

투박한 듯 박진감 넘치는 시범에 많이 관중들이 박수를 보냈다.

올림픽에서의 위상 제고 등을 위해 양대 태권도 기구의 통합 논의도 조심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하나의 뿌리에서 갈라진 남북의 태권도... 또 하나의 통일, 태권도 통합의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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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 북한] 한 뿌리 두 태권도…南北 태권도 차이는?
    • 입력 2017-07-01 08:22:10
    • 수정2017-07-01 08:4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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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얼마 전 무주 세계 태권도 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북한 태권도 시범단의 공연 보셨습니까?

다소 투박하면서도 실제 싸움을 연상시키는 야성미가 인상적이었는데요.

한 뿌리에서 시작한 남과 북의 태권도가 어떻게 이렇게 좀 다른 모습을 갖게 된 걸까요?

<클로즈업 북한> 이번 주에는 북한 태권도의 발전사와 남북한 태권도의 차이를 비교해봤습니다.

<리포트>

2017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막식. 힘찬 기합소리와 함께 우리 태권도 시범단의 공연이 시작됐다.

화려한 조명과 형형색색의 도복, 웅장한 음악까지 한편의 공연 같은 태권도 시범에 관중들의 박수 갈채가 이어졌다.

뒤이어 무대에 오른 팀은 북한의 태권도 시범단이었다.

유연한 몸놀림과 박력 있고 날카로운 동작으로 송판을 잇따라 격파했다.

여러장의 기왓장을 단번에 부수는 시범은 단연 인기였다.

<녹취> 北 태권도 시범단 관계자 : "다음은 호신술을 보시겠습니다. 이 종목에서는 평범한 여성들도 태권도를 부단히 수련하면 얼마든지 강한 상대들도 제압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가장 뜨거운 호응을 얻은 것은 호신술 시범.

자그마한 체구의 여자 선수가 건장한 남성들을 순식간에 제압하는가 하면, 혼자서 상대 여럿을 물리치고 여성을 보호하는 모습까지.

10년 만에 한국을 찾은 북한 태권도 시범단은 친숙하면서도 조금은 낯선 모습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렇듯 같으면서도 달라 보이는 남북한 태권도는 어떻게 시작했고 변화해 왔을까.

현대적 의미의 ‘태권도’를 정립하고 그 기반을 다지는 데는 육군 소장 출신 최홍희의 역할이 컸다고 전해진다.

최홍희는 1966년 창설된 국제태권도연맹, ITF의 초대 총재를 맡아 태권도의 국제적인 보급에 나섰다.

그러나, 당시 정권과의 갈등으로 1972년 캐나다로 망명한다.

이듬해인 1973년, 국내에서는 김운용의 주도로 새로운 국제 태권도 기구인 세계태권도연맹, WTF가 출범한다.

종주국 한국을 중심으로 WTF가 세력을 확장해 나갈 무렵, 1980년 최홍희는 15명의 ITF 사범단을 이끌고 북한으로 건너가 태권도를 보급하기 시작한다.

<녹취> 北기록영화 ‘민족대단결의 위대한 구성’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최홍희 선생이 국제 태권도연맹 총재로서 세계 각지로 태권도 무대를 넓혀가며 민족의 기백을 떨치도록 보살펴 주시였습니다."

이후 북한은 1992년 ITF 세계태권도선수권 대회를 개최하는 등 최홍희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ITF 태권도를 주도하게 된다.

<인터뷰> 양대승(가천대 체육학부 태권도 전공 교수) : "주도하는 국가가 대한민국이고 또 북한이다 보니까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WTF는 대한민국 태권도 그다음에 ITF는 북한 태권도 이렇게 생각들을 일반인들이 많이 하고 있습니다. 태권도는 북한에 있든 우리나라에 있든 우리 민족 고유의 어떤 무술적으로 출발을 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라고.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이거를 굳이 뭐 대한민국 태권도다, 뭐 북한 태권도다 그렇게 구분하지 말고 큰 틀에서 그냥 우리 민족 고유의 하나의 태권도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수십년간 다른 길을 걸어 온 만큼 차이점도 생겨났다.

<인터뷰> 유승희(국제태권도연맹(ITF) 대한민국협회 사무총장) : "우선은 기본적으로 스포츠와 무도라는 개념의 차이가 있고요. 외형적으로는 이제 도복 그리고 품새, 발차기, 스파링 등 모든 외형적인 어떤 기술적인 부분에 큰 차이가 있어요."

우리나라가 주도하는 WTF 태권도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며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 과정에서 스포츠적 측면이 강해졌다면, 북한이 주도하는 ITF 태권도는 수련과 실전을 중시하는 무도로서의 측면이 강하다는 평가다.

우리의 ‘품새'를 ‘틀'이라 하고 ‘겨루기'를 ‘맞서기'라고 하는 등 용어도 다르고, 기본동작 역시 비슷하면서도 차이를 보인다.

WTF 품새 ‘태극1장’의 동작이다.

다음은 ITF의 ‘천지틀’ 동작. ‘품새’는 직선적이라면 ‘틀’은 상대적으로 위아래로 곡선적인 움직임이 더해진다.

앞차기 기본동작을 보면 주로 발등으로, 올려차는 WTF에 비해 ITF는 발 앞축으로 꽂아 차는 방식이다.

돌려차기 기술에서도 각도와 힘의 방향이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인터뷰> 유승희(국제태권도연맹(ITF) 대한민국협회 사무총장) : "WTF 돌려차기는 우선은 무릎의 방향이 앞으로 나가요. 앞으로 나가서 돌려서 이렇게 발등으로... ITF 같은 경우에는 각도가 우선 다르고 이 상태에서 45도 방향에 있는 상대방의 급소라인을 압축으로 꽂아 차요."

착용하는 보호대도 다르다.

WTF 태권도는 머리와 몸통에 보호대를 착용하는 반면, ITF 태권도는 가격을 하는 손과 발에 글러브를 착용하고 머리보호대 대신 마우스피스만 사용한다.

WTF가 발기술 위주로 펼치는 데 비해, ITF는 글러브를 낀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하는 것도 중요한 기술로 사용되고 있다.

이종격투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요소다.

그러나 ITF 회원국 북한 선수들의 모습은 올림픽에선 볼 수 없다.

<인터뷰> 양대승(가천대 체육학부 태권도전공 교수) :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WTF 경기방식을 따라야 되는 거거든요. 세계 태권도 연맹이라든지 국기원에서 발행하는 국기원 단증이 없으면 출전할 수가 없거든요."

북한은 군대를 중심으로 일종의 전투무술인 ‘격술’을 보급하다,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태권도를 ‘국기’로 삼아 널리 보급시켰다.

<녹취> 北 영화 ‘민족과 운명’ 9부(1992년) : "제군들, 나는 태권도를 통해 힘을 키우고, 우리 민족의 대단합을 이루어 보자고 했소."

최홍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까지 제작됐고, 한 해 수백명의 태권도 사범들을 해외로 파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태권도를 김일성 부자의 업적으로 선전하며 태권도 종주국을 자처하기 시작한다.

<녹취> 조선중앙TV(2016년 4월) : "1980년대 초였습니다. 그때로 말하면 역사의 이끼 속에 희미해져가던 우리의 태권도가 장군님의 극진한 관심과 보살피심 속에 세상에 자기의 존재를 뚜렷이 드러내고 있던 그러한 시기였습니다."

<인터뷰> 채성민(前 북한 태권도 선수/2010년 탈북) : "북한에서는 일단 태권도도 김일성 김정일이 다 한 거죠. 그냥. 그 사람들이 다 만든 거고 그 사람들 때문에 된 거라고 그렇게 배웠는데. 내용상은 다 알고 있는 거죠. 1980년대 그 최홍희 선생이 북한에 처음 방문하면서 사실은 시작된 걸로 알고 있거든요 저희도. 그렇게 기본적인 내용들은 알고 있는 거죠."

최홍희 사망 이후 ITF 국제태권도연맹은 북한이 주도하는 기구와 한국도 포함된 캐나다본부가 주도하는 기구 등으로 나뉘어진다.

가장 큰 차이는‘품새’에 해당하는 ‘틀’ 가운데 이른바 ‘주체’틀이 추가된 것이었다.

<녹취> 조선중앙TV (제11차 청소년 및 제6차 로장태권도세계선수권대회/2014년) : "지금 수행하고 있는 ‘주체틀’은 높은 기술동작을 요구하는 틀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주체틀’은 모두 45개 동작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인터뷰> 유승희(국제태권도연맹(ITF) 대한민국협회 사무총장) : "어느 순간에 주체 틀을 넣었어요. 전 세계에 사범을 보급해서 주체사상을 널리 퍼뜨리려고 틀에다가 주체 틀을 넣은 거죠. 그런데 저희는 주체틀을 안쓰고 고당틀을 써요."

1990년대 김정일은 본격적으로 태권도를 전문화·대중화한다.

<녹취> 조선중앙TV(‘태권도는 우리 민족의 기상이라 하시며’/2016년 4월) : "우리가 다른 건물은 한두 채쯤 짓지 못 하더라도 태권도관을 꼭 지어야 한다시며 형성도안과 함께 그 부지 설정으로부터 설계와 시공에 이르는 건설공사 전반을 몸소 지도해주신 위대한 장군님..."

대규모 태권도 전용시설인 ‘태권도 전당’이 들어섰고, 태권도 과외학교를 도별로 설치해 선수와 지도원을 양성했다. 북한의 집단체조 아리랑에도 태권도를 추가할 것을 지시한다.

<녹취> 조선중앙TV(‘태권도는 우리 민족의 기상이라 하시며’/2016년 4월) : "어느 해인가는 집단체조 창작 대본을 친히 보아주시다가 태권도장이 왜 없는가, 태권도장이 있어야 집단체조가 힘 있고 기백 있게 안겨온다고 하시며 급속히 보급되고 있는 우리나라 태권도의 모습을 온 세상이 다 알도록 내세워 주시였습니다."

건강 태권도, 노인 태권도 등도 만들어 주민 모두가 태권도를 접하도록 했다.

김정은 집권 후에도 태권도 시리즈를 TV로 방송하고, 태권도를 군중시위에 활용하는 등 집단주의 체제 유지에 적극 활용하는 모습이다.

<녹취> 조선중앙TV(‘민족의 전통무도 태권도’) : "우리 모두 태권도를 통해 몸과 마음을 굳게 다져 강성국가 건설에 힘차게 이바지해 나갑시다."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됐지만 남북한이 40년 넘게 각자의 길을 걸어온 태권도, 10년 만에 북한 시범단이 방문한 데 이어 9월 평양에서 열리는 ITF 세계태권도선수권 대회에 한국 시범단의 방문이 추진되면서 교류와 통합의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인터뷰> 양대승(가천대 체육학부 태권도 전공 교수) : "두 개가 결합된다면 아마 태권도는 한번 더 도약의 기회를 갖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기관이 서로 신뢰를 갖고 서로 교류하면서 아, 내가 이런 건 부족한 부분들은 너희들이 채워줄 수 있냐, 너희들 이런 부족한 부분들은 내가 좀 채워줄게. 그러면서 협력하다보면 아마 새로운 태권도가 다시 재조명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교류의 필요성은 2002년 우리 태권도 시범단의 방북 때 북한 선수들도 실감했다고 태권도 선수 출신 탈북민은 전한다.

<인터뷰> 채성민(前 북한 태권도 선수/2010년 탈북) : "좀 처음에는 좀 놀랐죠. 충격이었죠. 발기술이 너무 현란해가지고 (우리도) 저렇게 할 수 있겠나 해가지고.... 사실 북한 태권도는 박력이 힘은 있는데 조금 발차기는 조금 늦거든요. 발기술이 약하거든요. 좀 속도가 떨어지거든요. 그런데 그때 보고. 실제로 (북한)선수단 선수들도 (훈련방법이) 바뀌는 선수도 많았거든요. 그런 경험도 있었죠."

9일간 머물며 4차례 공연을 펼친 북한의 태권도 시범단.

투박한 듯 박진감 넘치는 시범에 많이 관중들이 박수를 보냈다.

올림픽에서의 위상 제고 등을 위해 양대 태권도 기구의 통합 논의도 조심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하나의 뿌리에서 갈라진 남북의 태권도... 또 하나의 통일, 태권도 통합의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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