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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리포트]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기본 소득 실험
입력 2017.07.08 (21:48) 수정 2017.07.08 (22:32)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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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리포트]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기본 소득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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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올해부터 2년 간 핀란드에서는 국가에서 조건 없이 기본 생계비를 지원하는 이른바 '기본소득제' 실험이 실시되면서 그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는 이미 2008년에 기본 소득 실험을 했는데요,

10년이 지난 지금, 실험은 성공했을까요?

'기본 소득, 그 이후의 삶'을 아프리카에서 김덕훈 특파원이 했습니다.

<리포트>

나미비아 수도 빈트후크에서 동쪽으로 100km 떨어진 시골 마을 오치베로,

30년 전 주변에 댐이 지어지면서 극빈층들이 주로 모여 살고 있습니다.

물이 귀한 나미비아에서 밭에 댈 물이라도 쉽게 구할 수 있을까 싶어 모여든 겁니다.

판자촌이 즐비한 이곳에 어느 날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무상으로 돈을 주는 '기본 소득 실험'의 수혜 마을로 선정된 것입니다.

<녹취> 우후루 뎀퍼스('기본소득연합' 관계자) : "오치베로는 많은 부족이 섞여 살고 있었고요. 수도에서 가까워서 변화를 추적 관찰하기도 좋았습니다. 수혜자 숫자 역시 1천 명 미만으로 적당했어요."

주민 930명 모두가 나이나 직업에 상관없이 매달 NAD 100, 9천 원 정도를 받게 됐습니다.

2008년부터 2년 동안 지속된 기본 소득 실험, 주민들의 삶은 바뀌었을까요?

오치베로 마을 어귀,

41살 프리다 넴봐야 씨는 2008년 이곳에 빵집을 열었습니다.

10년째 빵값은 우리 돈으로 90원 정도입니다.

밀가룻값이 치솟아도 이웃들을 위해 가격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넉넉함 덕분일까요? 이제는 날마다 200명 이상이 찾는 인기 빵집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녹취> "요즘 왜 이렇게 뜸했어?"

소작농 시절 한 달에 만 5천 원도 못 벌었지만 지금은 소득이 20배 이상 높아졌습니다.

넉넉해진 살림 덕분에 10명의 자식을 건강하게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줄리아 네콰야(프리다 넴봐야 씨 딸) :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수업 도중에는 지쳐서 잤어요. 기본 소득을 받기 시작하면서 교복과 신발도 생기고 삶이 달라졌어요."

<인터뷰> 프리다 넴봐야(빵집 주인) : "성인이 된 아이 셋이 모두 수도 빈트후크에 있는 대학에 다닙니다. 최선을 다해 지원하고 있어요."

기본 소득 실험 이후, 빈곤선 이하의 최하층민 수는 실험 전 76%에서 37%까지 내려갔습니다.

5세 이하 체중 미달 어린이 비율 역시 42%에서 17%로 줄었습니다.

1인당 소득도 기본 소득을 제외하고도 1년 만에 29%가 올랐습니다.

넴봐야 씨는 이제 사업 확장을 꿈꾸고 있습니다.

허름하고 어두운 이곳을 떠나 새로 지은 청결하고 넓은 빵집에서 사업을 이어나가는 일입니다.

<인터뷰> 프리다 넴봐야(빵집 주인) : "손님들을 위해 가게를 옮기는 거죠. 오치베로 초등학교에 빵을 납품하는 계약을 성사시킬 거예요."

벽돌을 쌓아올려 만든 술집과 바로 옆 빵집은 기본 소득 실험 성공의 상징입니다.

한편 다른 쪽에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철판으로 엉기성기 지은 집에 살고 있습니다.

기본 소득은 실험 당시에는 많은 사람에게 풍요를 가져다줬습니다.

하지만 실험이 끝난 뒤 많은 사람은 빈곤했던 과거의 삶으로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재봉사 에밀리에 가리세스 씨, 변변한 재봉틀도 없이 손바느질로 옷을 만듭니다.

가리세스 씨는 기본 소득을 기술 개발이나 사업 확장에 쓰는 대신, 호구지책으로 썼습니다.

실험 당시에는 기본 소득 특수를 맞아 한 달에 10벌 넘게 옷을 팔았지만, 지금은 채 3벌 팔기도 힘에 부칩니다.

예순 살이 넘은 지금, 여전히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하루 한 끼, 옥수수 죽으로 연명하는 상황,

<인터뷰> 에밀리에 가리세스(재봉사) : "기본 소득이 있을 때는 장사가 잘됐죠. 하지만 실험이 끝난 지금 돈 있는 사람이 없잖아요. 모두가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학교 역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교실 책상 10자리 중 3~4자리는 비어있습니다.

기본 소득 실험 당시 90%까지 올랐던 출석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겁니다.

그나마 정부에서 하루 한 끼 제공하는 무료 급식과 학비 지원 덕에 가까스로 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레베카 헤이타(오치베로 초등학교 교장) : "상황은 기본 소득 이전으로 돌아갔습니다. 음식도, 교복도, 청결함 없어요."

<인터뷰> 스티븐 에이고왑(오치베로 전 촌장) : "주민 가운데 절반은 예전의 생활 수준으로 돌아갔습니다. 기본 소득 이전에 일했던 (저임금) 농장 노동을 다시 시작하기도 하고요. 일자리 구하는 게 아무래도 힘들죠."

나미비아에서는 기본 소득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문제는 예산입니다.

인구 245만 명인 나미비아에서 2009년 오치베로 수준의 기본 소득 도입에 들어가는 비용만 연간 30억 나미비안 달러(NAD), 한화로 2,700억 원입니다.

정부 예산의 5%, 국방비의 절반가량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여기에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

또,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고소득층 백인들까지 혜택을 받는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인터뷰> 윌프레드 니코 디르하르트('기본소득연합' 의장) : "기본 소득이 모두에게 골고루 나눠줘야 한다는 게 저희 기본 입장입니다. 다만 대상을 한정해야 한다면 연간 소득세 5만 나미비안 달러(약 488만 원) 이하로 정하는 걸 제안합니다. 정책을 이뤄내기 더 수월할 테니까요."

기본 소득 실험은 아프리카 케냐와 우간다 그리고 핀란드까지 다양한 국가에서 추진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마크 라이체나(기본소득 프로젝트 'GiveDirectly' 담당자) : "기본 소득을 통해 더 나은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어린 나이에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겠죠.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삶을 살 가능성이 생기게 된 거죠."

주민들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기 위한 기본 소득 실험,

아프리카 빈곤층에게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사실상 유일한 디딤돌이 되고 있다는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나미비아에서 김덕훈입니다.
  • [글로벌 리포트]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기본 소득 실험
    • 입력 2017.07.08 (21:48)
    • 수정 2017.07.08 (22:32)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글로벌 리포트]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기본 소득 실험
<앵커 멘트>

올해부터 2년 간 핀란드에서는 국가에서 조건 없이 기본 생계비를 지원하는 이른바 '기본소득제' 실험이 실시되면서 그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는 이미 2008년에 기본 소득 실험을 했는데요,

10년이 지난 지금, 실험은 성공했을까요?

'기본 소득, 그 이후의 삶'을 아프리카에서 김덕훈 특파원이 했습니다.

<리포트>

나미비아 수도 빈트후크에서 동쪽으로 100km 떨어진 시골 마을 오치베로,

30년 전 주변에 댐이 지어지면서 극빈층들이 주로 모여 살고 있습니다.

물이 귀한 나미비아에서 밭에 댈 물이라도 쉽게 구할 수 있을까 싶어 모여든 겁니다.

판자촌이 즐비한 이곳에 어느 날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무상으로 돈을 주는 '기본 소득 실험'의 수혜 마을로 선정된 것입니다.

<녹취> 우후루 뎀퍼스('기본소득연합' 관계자) : "오치베로는 많은 부족이 섞여 살고 있었고요. 수도에서 가까워서 변화를 추적 관찰하기도 좋았습니다. 수혜자 숫자 역시 1천 명 미만으로 적당했어요."

주민 930명 모두가 나이나 직업에 상관없이 매달 NAD 100, 9천 원 정도를 받게 됐습니다.

2008년부터 2년 동안 지속된 기본 소득 실험, 주민들의 삶은 바뀌었을까요?

오치베로 마을 어귀,

41살 프리다 넴봐야 씨는 2008년 이곳에 빵집을 열었습니다.

10년째 빵값은 우리 돈으로 90원 정도입니다.

밀가룻값이 치솟아도 이웃들을 위해 가격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넉넉함 덕분일까요? 이제는 날마다 200명 이상이 찾는 인기 빵집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녹취> "요즘 왜 이렇게 뜸했어?"

소작농 시절 한 달에 만 5천 원도 못 벌었지만 지금은 소득이 20배 이상 높아졌습니다.

넉넉해진 살림 덕분에 10명의 자식을 건강하게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줄리아 네콰야(프리다 넴봐야 씨 딸) :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수업 도중에는 지쳐서 잤어요. 기본 소득을 받기 시작하면서 교복과 신발도 생기고 삶이 달라졌어요."

<인터뷰> 프리다 넴봐야(빵집 주인) : "성인이 된 아이 셋이 모두 수도 빈트후크에 있는 대학에 다닙니다. 최선을 다해 지원하고 있어요."

기본 소득 실험 이후, 빈곤선 이하의 최하층민 수는 실험 전 76%에서 37%까지 내려갔습니다.

5세 이하 체중 미달 어린이 비율 역시 42%에서 17%로 줄었습니다.

1인당 소득도 기본 소득을 제외하고도 1년 만에 29%가 올랐습니다.

넴봐야 씨는 이제 사업 확장을 꿈꾸고 있습니다.

허름하고 어두운 이곳을 떠나 새로 지은 청결하고 넓은 빵집에서 사업을 이어나가는 일입니다.

<인터뷰> 프리다 넴봐야(빵집 주인) : "손님들을 위해 가게를 옮기는 거죠. 오치베로 초등학교에 빵을 납품하는 계약을 성사시킬 거예요."

벽돌을 쌓아올려 만든 술집과 바로 옆 빵집은 기본 소득 실험 성공의 상징입니다.

한편 다른 쪽에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철판으로 엉기성기 지은 집에 살고 있습니다.

기본 소득은 실험 당시에는 많은 사람에게 풍요를 가져다줬습니다.

하지만 실험이 끝난 뒤 많은 사람은 빈곤했던 과거의 삶으로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재봉사 에밀리에 가리세스 씨, 변변한 재봉틀도 없이 손바느질로 옷을 만듭니다.

가리세스 씨는 기본 소득을 기술 개발이나 사업 확장에 쓰는 대신, 호구지책으로 썼습니다.

실험 당시에는 기본 소득 특수를 맞아 한 달에 10벌 넘게 옷을 팔았지만, 지금은 채 3벌 팔기도 힘에 부칩니다.

예순 살이 넘은 지금, 여전히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하루 한 끼, 옥수수 죽으로 연명하는 상황,

<인터뷰> 에밀리에 가리세스(재봉사) : "기본 소득이 있을 때는 장사가 잘됐죠. 하지만 실험이 끝난 지금 돈 있는 사람이 없잖아요. 모두가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학교 역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교실 책상 10자리 중 3~4자리는 비어있습니다.

기본 소득 실험 당시 90%까지 올랐던 출석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겁니다.

그나마 정부에서 하루 한 끼 제공하는 무료 급식과 학비 지원 덕에 가까스로 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레베카 헤이타(오치베로 초등학교 교장) : "상황은 기본 소득 이전으로 돌아갔습니다. 음식도, 교복도, 청결함 없어요."

<인터뷰> 스티븐 에이고왑(오치베로 전 촌장) : "주민 가운데 절반은 예전의 생활 수준으로 돌아갔습니다. 기본 소득 이전에 일했던 (저임금) 농장 노동을 다시 시작하기도 하고요. 일자리 구하는 게 아무래도 힘들죠."

나미비아에서는 기본 소득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문제는 예산입니다.

인구 245만 명인 나미비아에서 2009년 오치베로 수준의 기본 소득 도입에 들어가는 비용만 연간 30억 나미비안 달러(NAD), 한화로 2,700억 원입니다.

정부 예산의 5%, 국방비의 절반가량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여기에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

또,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고소득층 백인들까지 혜택을 받는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인터뷰> 윌프레드 니코 디르하르트('기본소득연합' 의장) : "기본 소득이 모두에게 골고루 나눠줘야 한다는 게 저희 기본 입장입니다. 다만 대상을 한정해야 한다면 연간 소득세 5만 나미비안 달러(약 488만 원) 이하로 정하는 걸 제안합니다. 정책을 이뤄내기 더 수월할 테니까요."

기본 소득 실험은 아프리카 케냐와 우간다 그리고 핀란드까지 다양한 국가에서 추진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마크 라이체나(기본소득 프로젝트 'GiveDirectly' 담당자) : "기본 소득을 통해 더 나은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어린 나이에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겠죠.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삶을 살 가능성이 생기게 된 거죠."

주민들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기 위한 기본 소득 실험,

아프리카 빈곤층에게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사실상 유일한 디딤돌이 되고 있다는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나미비아에서 김덕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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