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프랜차이즈 입점 제한”…‘상생 경제’ 가능할까?

입력 2017.07.18 (11:41) 수정 2017.07.18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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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프랜차이즈 입점 제한”…‘상생 경제’ 가능할까?

[취재후] “프랜차이즈 입점 제한”…‘상생 경제’ 가능할까?

"인류 역사상 그걸 막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한 케이블채널 프로그램에 출연한 유시민 작가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은 낙후한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말한다. 유 작가는 자본주의 역사를 통틀어 아직 젠트리피케이션의 해답을 찾지 못했다면서 인간의 탐욕을 제거한다면 가능한 일이겠지만 불가능한 일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결국은 '공멸'

이날 해당 프로그램에선 경주 황남동을 조명했다. 이른바 '황리단길(황남동+경리단길)'이라 불리는 이곳은 1년 전 평당 10만 원대였던 부동산 가격이 1,000만 원대까지 올랐다. 이처럼 엄청난 부동산 가격 폭등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서울에선 수년 전부터 발생했던 일이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을 시작으로 이태원 '경리단길' 등이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었다. 지금은 서촌·익선동·망원동·연남동·성수동 등이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로 등장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곳들은 원래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해 예술가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동네만의 독특한 매력에 끌려 찾는 발길이 많아지면서 부동산 시세와 임대료가 급등했다.

유 작가의 말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동인구가 늘어 건물 가치가 높아진 데 대한 임대료 인상을 제지할 수 있는 수단은 마땅치 않다. 결국 높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한 기존 세입자들은 떠나게 되고 '상업자본'만 남게 되는 게 현실이다.

문제는 떠나는 사람뿐만 아니라 '남는 사람'에게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심화할수록 치솟은 임대료에 빈 점포가 늘어나게 되고 자연스레 찾아오는 발길이 줄어든다. 특색이 사라진 거리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은 '공멸'이다.


대안 찾기 나선 지자체...효과는?

'제 2의 경리단길'이라 불리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서울숲길. 다음 달부터 대기업·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들어설 수 없게 된다. 성동구가 조례를 통해 입점 제한을 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곳에 음식점, 카페, 제과점, 화장품 판매점은 원칙적으로 입점할 수 없다.

[연관 기사] 대기업 입점 제한…상생 가능할까?

1년 정도 이곳에서 카페를 운영했다는 A 씨는 '입점 제한 조치'를 반가워했다. A 씨는 "프랜차이즈 업체가 들어오면 자연스러운 동네만의 조용한 분위기가 없어진다"며 "높아진 임대료 때문에 쫓겨날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카페를 찾은 한진희 씨도 "서울숲길엔 가게마다 주인들의 취향과 개성이 묻어 있어 자주 찾아온다"며 "프랜차이즈 업체가 못 들어오도록 한 건 좋은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모두가 반가워하는 건 아니다. 이곳에서 부동산 업소를 운영하는 B 씨는 "건물주들 입장에선 불쾌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B 씨는 "재산권이라는 게 분명히 존재하고 더 높은 임대료를 받아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이라면서 "아무런 혜택도 없이 강제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성동구는 이러한 갈등이 단기적인 현상이라고 보고 있다. 강형구 성동구청 지속발전과장은 "건물주와 임차인 등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밟았다"며 "이번 조례 시행으로 양측이 서로 상생하게 되면 골목 생태계가 보호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론 공멸을 막고 동네만의 특색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성동구뿐만 아니라 각 지방자치단체도 비슷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는 종로구 혜화·명륜동의 역사성 보존과 재생을 위해 프랜차이즈 점포 입점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대로변을 제외하고는 주거지 내부에 카페나 식당 등 휴게·일반음식점의 입점을 일부 제한한 것이다. 대구광역시, 대전광역시 등에서도 임차인과 임대인의 '상생협약'을 통해 임대료 상승을 막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재산권 행사 제약"...갈등 넘어서야

유시민 작가의 말대로 정말 젠트리케이션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손쉬운 해결책은 없겠지만, 임대인과 임차인의 협의를 이끌어 낼 지자체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임대료 상승폭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보다 해당 상권의 상인과 건물주 등이 협의체를 구성해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임대료 상승을 억제하거나 자발적으로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는 건물주에게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한가지 대안이 될 수 있다.

서울시의 상가임대차 분쟁조정 접수 건수는 지난 2015년 29건에서 지난해 44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1~4월까지 22건을 기록했다. 젠트리피케이션 심화로 상가임대차 분쟁 조정 접수도 매년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중재자인 지자체의 노력이 그만큼 중요해졌다. 성동구의 상생 실험이 주목되는 이유다.

[연관 기사] [뉴스12] ‘오너리스크에 휘청’…본사 갑질 칼 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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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프랜차이즈 입점 제한”…‘상생 경제’ 가능할까?
    • 입력 2017-07-18 11:41:54
    • 수정2017-07-18 13:21:30
    취재후·사건후
"인류 역사상 그걸 막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한 케이블채널 프로그램에 출연한 유시민 작가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은 낙후한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말한다. 유 작가는 자본주의 역사를 통틀어 아직 젠트리피케이션의 해답을 찾지 못했다면서 인간의 탐욕을 제거한다면 가능한 일이겠지만 불가능한 일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결국은 '공멸'

이날 해당 프로그램에선 경주 황남동을 조명했다. 이른바 '황리단길(황남동+경리단길)'이라 불리는 이곳은 1년 전 평당 10만 원대였던 부동산 가격이 1,000만 원대까지 올랐다. 이처럼 엄청난 부동산 가격 폭등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서울에선 수년 전부터 발생했던 일이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을 시작으로 이태원 '경리단길' 등이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었다. 지금은 서촌·익선동·망원동·연남동·성수동 등이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로 등장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곳들은 원래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해 예술가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동네만의 독특한 매력에 끌려 찾는 발길이 많아지면서 부동산 시세와 임대료가 급등했다.

유 작가의 말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동인구가 늘어 건물 가치가 높아진 데 대한 임대료 인상을 제지할 수 있는 수단은 마땅치 않다. 결국 높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한 기존 세입자들은 떠나게 되고 '상업자본'만 남게 되는 게 현실이다.

문제는 떠나는 사람뿐만 아니라 '남는 사람'에게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심화할수록 치솟은 임대료에 빈 점포가 늘어나게 되고 자연스레 찾아오는 발길이 줄어든다. 특색이 사라진 거리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은 '공멸'이다.


대안 찾기 나선 지자체...효과는?

'제 2의 경리단길'이라 불리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서울숲길. 다음 달부터 대기업·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들어설 수 없게 된다. 성동구가 조례를 통해 입점 제한을 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곳에 음식점, 카페, 제과점, 화장품 판매점은 원칙적으로 입점할 수 없다.

[연관 기사] 대기업 입점 제한…상생 가능할까?

1년 정도 이곳에서 카페를 운영했다는 A 씨는 '입점 제한 조치'를 반가워했다. A 씨는 "프랜차이즈 업체가 들어오면 자연스러운 동네만의 조용한 분위기가 없어진다"며 "높아진 임대료 때문에 쫓겨날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카페를 찾은 한진희 씨도 "서울숲길엔 가게마다 주인들의 취향과 개성이 묻어 있어 자주 찾아온다"며 "프랜차이즈 업체가 못 들어오도록 한 건 좋은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모두가 반가워하는 건 아니다. 이곳에서 부동산 업소를 운영하는 B 씨는 "건물주들 입장에선 불쾌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B 씨는 "재산권이라는 게 분명히 존재하고 더 높은 임대료를 받아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이라면서 "아무런 혜택도 없이 강제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성동구는 이러한 갈등이 단기적인 현상이라고 보고 있다. 강형구 성동구청 지속발전과장은 "건물주와 임차인 등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밟았다"며 "이번 조례 시행으로 양측이 서로 상생하게 되면 골목 생태계가 보호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론 공멸을 막고 동네만의 특색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성동구뿐만 아니라 각 지방자치단체도 비슷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는 종로구 혜화·명륜동의 역사성 보존과 재생을 위해 프랜차이즈 점포 입점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대로변을 제외하고는 주거지 내부에 카페나 식당 등 휴게·일반음식점의 입점을 일부 제한한 것이다. 대구광역시, 대전광역시 등에서도 임차인과 임대인의 '상생협약'을 통해 임대료 상승을 막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재산권 행사 제약"...갈등 넘어서야

유시민 작가의 말대로 정말 젠트리케이션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손쉬운 해결책은 없겠지만, 임대인과 임차인의 협의를 이끌어 낼 지자체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임대료 상승폭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보다 해당 상권의 상인과 건물주 등이 협의체를 구성해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임대료 상승을 억제하거나 자발적으로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는 건물주에게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한가지 대안이 될 수 있다.

서울시의 상가임대차 분쟁조정 접수 건수는 지난 2015년 29건에서 지난해 44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1~4월까지 22건을 기록했다. 젠트리피케이션 심화로 상가임대차 분쟁 조정 접수도 매년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중재자인 지자체의 노력이 그만큼 중요해졌다. 성동구의 상생 실험이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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