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된 만월대 공동 발굴, 남북교류 재개 신호탄될까?

입력 2017.08.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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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된 만월대 공동 발굴, 남북교류 재개 신호탄될까?

중단된 만월대 공동 발굴, 남북교류 재개 신호탄될까?

개성은 고려의 수도이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는 개성의 궁궐터인 '만월대'에 대한 발굴을 7차례 진행했다. 적지 않은 유물이 발굴돼 서울과 개성에서 동시에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2013년에는 만월대를 포함한 '개성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2015년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만월대 발굴사업도 중단됐다.

만월대는 북한의 국보유적 제122호로 지정됐다. 개성 송악산 남쪽 구릉지에 위치한 고려 궁궐터로 1361년 공민왕 때 홍건적의 침입으로 불에 타 폐허로 변했다.

남북의 역사학자들의 공동 발굴은 중단됐지만 북한은 독자적으로 발굴사업에 나서 성과를 내고 있다. 북한은 "고려 숙종 왕릉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北 "고려 15대 숙종 왕릉 발굴"

새로 발굴된 고려 15대왕 숙종의 왕릉 전경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고고학회에서는 발굴현장에서 이 유적이 고려 15대왕 숙종의 무덤임을 고증하였다. 고려 15대 숙종 왕릉은 민족의 첫 통일국가인 고려의 발전된 문화를 새롭게 해명하는데서 커다란 의의를 가진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새로 발굴된 고려 15대왕 숙종의 왕릉 전경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고고학회에서는 발굴현장에서 이 유적이 고려 15대왕 숙종의 무덤임을 고증하였다. 고려 15대 숙종 왕릉은 민족의 첫 통일국가인 고려의 발전된 문화를 새롭게 해명하는데서 커다란 의의를 가진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조선에서 고려 제15대왕의 무덤 새로 발굴'이라는 기사에서 지난 5월과 6월 20여 일에 걸쳐 발굴을 진행해 숙종의 왕릉을 찾아냈다고 전했다. (8월 19일)

숙종 왕릉은 개성시 선적리로부터 서쪽으로 3km 떨어진 나지막한 산경사면 중턱에 자리하고 있고, 규모는 남북 길이 29m, 동서 너비 13m로 동서방향으로 놓인 4개의 축대에 의해 3개의 구획으로 구분돼 있다고 한다.

북쪽의 1구획에서는 무덤 칸과 봉분 기단시설, 무덤 봉분둘레에 둘러놓은 담장 시설이 확인됐다. 2구획과 3구획에는 문관상과 무관상들이 각각 2쌍씩 동서 6m의 간격을 두고 대칭으로 마주서 있음이 확인됐다.

또 무덤 칸은 잘 다듬어진 화강석 통돌을 2단으로 쌓았고, 남북길이 3m, 동서너비 1.2m, 높이 1.6m의 반지하식 구조로 밝혀졌다.

금박을 입힌 목관껍질 조각들과 고려시대의 청동숟가락꼭지, 용무늬암기와 막새와 봉황새무늬수기와 막새, 용머리모양 잡상(지붕장식기와의 일종)조각 유물이 출토됐다. 발굴단은 출토 유물에 대해 "왕릉으로서의 성격과 시기적 특징을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

고려 15대왕 숙종(재위 1095년~1105년)은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했다. 북방 여진족의 세력은 날로 커져가고, 인주이씨를 중심으로 한 외척과 문벌귀족의 위세가 대단했다.

숙종은 이자의 일파를 제거하고 왕위에 올라 개혁정치를 펼쳤다. 우리 역사상 최초로 화폐를 발행했다. 또 여진족과의 전쟁에서 패한 것은 '기병' 때문이라는 윤관의 의견을 받아들여 '별무반'(신기군:기병, 신보군:보병, 항마군:승군)을 창설해 동북 9성을 복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남북 역사학자 만월대 7차례 발굴 성과

2015년 남북 학자들이 만월대를 함께 발굴하고 있는 모습이다. 7차 공동 발굴로 2015년 6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180일 동안 진행됐다.2015년 남북 학자들이 만월대를 함께 발굴하고 있는 모습이다. 7차 공동 발굴로 2015년 6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180일 동안 진행됐다.

남과 북이 '개성만월대공동조사사업'을 시작한 것은 2007년이다. 2006년 남측의 남북역사학자협의회와 북측의 민족화해협의회가 공동발굴을 합의해 이뤄졌다.

2007년부터 2015년까지 7차례에 걸쳐 만월대 발굴사업이 이뤄졌다.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돼 2011년부터 3년 동안 발굴조사가 중단되기도 했으나 2014년 발굴사업이 재개됐다.


만월대에서는 용머리 장식과 청자뚜껑, 연화무늬 수막새 등 3천여 점의 다양한 유물이 수습됐다.

광복 70년을 맞아 남북이 공동으로 개성 만월대에서 발굴한 유물을 소개하는 전시회가 서울과 개성에서 동시에 열렸다.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2015년 10월 14일부터 11월 6일까지, 개성 고려박물관에서는 10월 15일부터 11월 15일까지 전시됐다. 개성에서는 발굴된 유물의 실물이 전시됐으나 서울에서는 CG를 이용한 이미지만 볼 수 있었다. 당시 남북 간의 접촉에서 서울에서도 실물 전시를 요청했지만 북측이 “유물 반출은 불가하다”며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복 70년을 맞아 남북이 공동으로 개성 만월대에서 발굴한 유물을 소개하는 전시회가 서울과 개성에서 동시에 열렸다.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2015년 10월 14일부터 11월 6일까지, 개성 고려박물관에서는 10월 15일부터 11월 15일까지 전시됐다. 개성에서는 발굴된 유물의 실물이 전시됐으나 서울에서는 CG를 이용한 이미지만 볼 수 있었다. 당시 남북 간의 접촉에서 서울에서도 실물 전시를 요청했지만 북측이 “유물 반출은 불가하다”며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관기사] [통일로 미래로] 서울·개성 ‘만월대 공동 전시’

北, 만월대 독자 발굴 '금속활자' 수습

2016년 4월 개성 만월대에서 발굴된 금속활자 4점(자)이다. 북한은 이 금속활자가 12~13세기에 주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남과 북이 가지고 있는 고려 금속활자는 모두 7점(자)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을 마지막으로 개성 만월대 공동발굴은 중단됐다. 하지만 북측은 만월대에 대해 독자적으로 발굴 작업을 해 성과를 올렸다.  2016년 4월 개성 만월대에서 발굴된 금속활자 4점(자)이다. 북한은 이 금속활자가 12~13세기에 주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남과 북이 가지고 있는 고려 금속활자는 모두 7점(자)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을 마지막으로 개성 만월대 공동발굴은 중단됐다. 하지만 북측은 만월대에 대해 독자적으로 발굴 작업을 해 성과를 올렸다.

2015년을 마지막으로 개성 만월대 공동발굴은 중단됐다. 하지만 북측은 만월대에 대해 독자적으로 발굴 작업을 해 성과를 올렸다.

북한 노동신문은 평양에서 열린 '개성 만월대에서 발굴된 고려금속활자와 그 문화사적 의의에 관한 사회과학부문 토론회' 소식을 보도했다. (2016년 5월 20일)

토론자들은 금속활자의 생김새와 크기, 재질, 그리고 만월대에 약 7백 년 동안 다른 건축물이 들어서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고려시대 것으로 결론 내렸다.

또 서체의 특징으로 미뤄 주조 시기는 12세기 전반에서 13세기 전반으로 추정했으며, 이 시기에 고려가 국가적인 사업으로 금속활자를 주조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고려시대 금속활자 사용은 13세기에 활발히 진행됐으며, 12세기 초 글자를 새긴 금속화폐사용과 '동국이상국집', '남명천화상송증도가' 등의 기록을 근거로 삼았다.

만월대 공동 발굴 재개 가능할까?

개성관광은 2007년 12월 5일 본격 시작됐다. 고려박물관과 왕건릉, 박연폭포, 선죽교 등 개성시내 관광지를 두루 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채 1년도 안된 2008년 12월 전면 중단됐다. (상 : 왕건릉, 중 : 박연폭포, 하 : 선죽교)개성관광은 2007년 12월 5일 본격 시작됐다. 고려박물관과 왕건릉, 박연폭포, 선죽교 등 개성시내 관광지를 두루 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채 1년도 안된 2008년 12월 전면 중단됐다. (상 : 왕건릉, 중 : 박연폭포, 하 : 선죽교)

도라산 전망대에서 보면 개성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올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개성은 고려의 수도이자 남북경협의 마지막 보루였다. 하지만 개성관광이 중단되고 개성공단 가동이 멈춘 지 오래다.

만월대 공동 발굴도 2015년 11월 이후 중단됐다. 남북이 발굴하기로 합의한 만월대 서쪽 건물 군에 대한 발굴도 50% 정도 진행되다 중단된 상태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는 지난 6월 5일 통일부로부터 대북 접촉승인을 받았다. 그동안 중단됐던 개성 만월대 공동발굴조사 재개와 평양 고분군 공동조사, 남북 공동학술대회 개최 등을 추진하고 있다. 새 정부 들어 속도가 붙는듯하다.

하지만 북한 핵과 미사일 국면으로 진척이 더디다. 지난 21일부터 시작된 한미연합훈련 UFG에 대해 북한은 "군사적 도발" 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당분간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만월대 발굴재개 등 남북 간의 교류는 준비되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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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단된 만월대 공동 발굴, 남북교류 재개 신호탄될까?
    • 입력 2017-08-24 06:00:43
    취재K
개성은 고려의 수도이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는 개성의 궁궐터인 '만월대'에 대한 발굴을 7차례 진행했다. 적지 않은 유물이 발굴돼 서울과 개성에서 동시에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2013년에는 만월대를 포함한 '개성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2015년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만월대 발굴사업도 중단됐다.

만월대는 북한의 국보유적 제122호로 지정됐다. 개성 송악산 남쪽 구릉지에 위치한 고려 궁궐터로 1361년 공민왕 때 홍건적의 침입으로 불에 타 폐허로 변했다.

남북의 역사학자들의 공동 발굴은 중단됐지만 북한은 독자적으로 발굴사업에 나서 성과를 내고 있다. 북한은 "고려 숙종 왕릉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北 "고려 15대 숙종 왕릉 발굴"

새로 발굴된 고려 15대왕 숙종의 왕릉 전경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고고학회에서는 발굴현장에서 이 유적이 고려 15대왕 숙종의 무덤임을 고증하였다. 고려 15대 숙종 왕릉은 민족의 첫 통일국가인 고려의 발전된 문화를 새롭게 해명하는데서 커다란 의의를 가진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조선에서 고려 제15대왕의 무덤 새로 발굴'이라는 기사에서 지난 5월과 6월 20여 일에 걸쳐 발굴을 진행해 숙종의 왕릉을 찾아냈다고 전했다. (8월 19일)

숙종 왕릉은 개성시 선적리로부터 서쪽으로 3km 떨어진 나지막한 산경사면 중턱에 자리하고 있고, 규모는 남북 길이 29m, 동서 너비 13m로 동서방향으로 놓인 4개의 축대에 의해 3개의 구획으로 구분돼 있다고 한다.

북쪽의 1구획에서는 무덤 칸과 봉분 기단시설, 무덤 봉분둘레에 둘러놓은 담장 시설이 확인됐다. 2구획과 3구획에는 문관상과 무관상들이 각각 2쌍씩 동서 6m의 간격을 두고 대칭으로 마주서 있음이 확인됐다.

또 무덤 칸은 잘 다듬어진 화강석 통돌을 2단으로 쌓았고, 남북길이 3m, 동서너비 1.2m, 높이 1.6m의 반지하식 구조로 밝혀졌다.

금박을 입힌 목관껍질 조각들과 고려시대의 청동숟가락꼭지, 용무늬암기와 막새와 봉황새무늬수기와 막새, 용머리모양 잡상(지붕장식기와의 일종)조각 유물이 출토됐다. 발굴단은 출토 유물에 대해 "왕릉으로서의 성격과 시기적 특징을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

고려 15대왕 숙종(재위 1095년~1105년)은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했다. 북방 여진족의 세력은 날로 커져가고, 인주이씨를 중심으로 한 외척과 문벌귀족의 위세가 대단했다.

숙종은 이자의 일파를 제거하고 왕위에 올라 개혁정치를 펼쳤다. 우리 역사상 최초로 화폐를 발행했다. 또 여진족과의 전쟁에서 패한 것은 '기병' 때문이라는 윤관의 의견을 받아들여 '별무반'(신기군:기병, 신보군:보병, 항마군:승군)을 창설해 동북 9성을 복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남북 역사학자 만월대 7차례 발굴 성과

2015년 남북 학자들이 만월대를 함께 발굴하고 있는 모습이다. 7차 공동 발굴로 2015년 6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180일 동안 진행됐다.
남과 북이 '개성만월대공동조사사업'을 시작한 것은 2007년이다. 2006년 남측의 남북역사학자협의회와 북측의 민족화해협의회가 공동발굴을 합의해 이뤄졌다.

2007년부터 2015년까지 7차례에 걸쳐 만월대 발굴사업이 이뤄졌다.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돼 2011년부터 3년 동안 발굴조사가 중단되기도 했으나 2014년 발굴사업이 재개됐다.


만월대에서는 용머리 장식과 청자뚜껑, 연화무늬 수막새 등 3천여 점의 다양한 유물이 수습됐다.

광복 70년을 맞아 남북이 공동으로 개성 만월대에서 발굴한 유물을 소개하는 전시회가 서울과 개성에서 동시에 열렸다.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2015년 10월 14일부터 11월 6일까지, 개성 고려박물관에서는 10월 15일부터 11월 15일까지 전시됐다. 개성에서는 발굴된 유물의 실물이 전시됐으나 서울에서는 CG를 이용한 이미지만 볼 수 있었다. 당시 남북 간의 접촉에서 서울에서도 실물 전시를 요청했지만 북측이 “유물 반출은 불가하다”며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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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만월대 독자 발굴 '금속활자' 수습

2016년 4월 개성 만월대에서 발굴된 금속활자 4점(자)이다. 북한은 이 금속활자가 12~13세기에 주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남과 북이 가지고 있는 고려 금속활자는 모두 7점(자)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을 마지막으로 개성 만월대 공동발굴은 중단됐다. 하지만 북측은 만월대에 대해 독자적으로 발굴 작업을 해 성과를 올렸다.
2015년을 마지막으로 개성 만월대 공동발굴은 중단됐다. 하지만 북측은 만월대에 대해 독자적으로 발굴 작업을 해 성과를 올렸다.

북한 노동신문은 평양에서 열린 '개성 만월대에서 발굴된 고려금속활자와 그 문화사적 의의에 관한 사회과학부문 토론회' 소식을 보도했다. (2016년 5월 20일)

토론자들은 금속활자의 생김새와 크기, 재질, 그리고 만월대에 약 7백 년 동안 다른 건축물이 들어서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고려시대 것으로 결론 내렸다.

또 서체의 특징으로 미뤄 주조 시기는 12세기 전반에서 13세기 전반으로 추정했으며, 이 시기에 고려가 국가적인 사업으로 금속활자를 주조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고려시대 금속활자 사용은 13세기에 활발히 진행됐으며, 12세기 초 글자를 새긴 금속화폐사용과 '동국이상국집', '남명천화상송증도가' 등의 기록을 근거로 삼았다.

만월대 공동 발굴 재개 가능할까?

개성관광은 2007년 12월 5일 본격 시작됐다. 고려박물관과 왕건릉, 박연폭포, 선죽교 등 개성시내 관광지를 두루 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채 1년도 안된 2008년 12월 전면 중단됐다. (상 : 왕건릉, 중 : 박연폭포, 하 : 선죽교)
도라산 전망대에서 보면 개성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올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개성은 고려의 수도이자 남북경협의 마지막 보루였다. 하지만 개성관광이 중단되고 개성공단 가동이 멈춘 지 오래다.

만월대 공동 발굴도 2015년 11월 이후 중단됐다. 남북이 발굴하기로 합의한 만월대 서쪽 건물 군에 대한 발굴도 50% 정도 진행되다 중단된 상태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는 지난 6월 5일 통일부로부터 대북 접촉승인을 받았다. 그동안 중단됐던 개성 만월대 공동발굴조사 재개와 평양 고분군 공동조사, 남북 공동학술대회 개최 등을 추진하고 있다. 새 정부 들어 속도가 붙는듯하다.

하지만 북한 핵과 미사일 국면으로 진척이 더디다. 지난 21일부터 시작된 한미연합훈련 UFG에 대해 북한은 "군사적 도발" 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당분간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만월대 발굴재개 등 남북 간의 교류는 준비되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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