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호미로 땅굴 파고 송유관에 구멍…‘기름 도둑’

입력 2017.08.24 (08:36) 수정 2017.08.2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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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충북 옥천에서 이런 땅굴이 발견됐습니다.

얼핏보면 탄광 갱도 같기도 하고, 휴전선 부근에 북한이 팠다는 땅굴 처럼 정교해 보입니다.

길이 40미터 짜리 이 땅굴을 따라가보면 송유관이 발견됩니다.

절도범들이 송유관에 구멍을 뚫어 기름을 훔치려고 만든 땅굴이었습니다.

땅굴을 파는 데는 두 달 정도가 걸렸다고 하는데요.

굴착기 없이 삽과 호미로만 땅굴을 파 들어갔습니다.

더 황당했던 건 땅굴의 위치입니다.

땅굴 바로 위로는 경부선 철길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대형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인데요.

송유관 절도 사건의 전말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리포트>

충북 옥천의 한 창고 부지입니다.

지난 2월 한 남성이 찾아와 이 땅을 임대해 갔습니다.

<녹취> 토지주인(음성변조) : “거기에 공장을 조그마하게 지어서 천막을 제작해야겠다.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천막 공장을 짓겠다던 남성. 하지만 건물 안은 기계 하나 없이 텅 비어있었습니다.

<녹취> 대한송유관공사 관계자 : “이 (건물이) 없었던 거죠. 2월에 주인한테 임대료를 놓고 이걸 다 지은 거예요.”

지난 달 경찰이 이 곳에 들이닥쳤습니다.

창고 안에 또 다른 작은 창고가 보일 뿐. 천막 공장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작은 창고 안으로 들어가니 수상한 가림막이 보였습니다.

가림막 아래를 보니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4미터 정도 되는 깊이.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면 긴 땅굴이 발견됩니다.

<녹취> 대한송유관공사 관계자 : “4m를 내려가서, 40m를 (파) 들어간 거예요.”

마치 탄광처럼 레일까지 놓여 있는 땅굴은 40미터 가량 이어졌습니다.

땅굴의 끝에는 송유관이 있었습니다.

<녹취> 정휘철(전북 익산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장) : “땅굴을 파서 송유관에 호스를 연결해서 기름을 훔친 거죠.”

50살 이 모 씨 등 8명이 송유관에 구멍을 뚫어 기름을 훔쳐 왔습니다.

석 달 동안 37만 리터의 기름이 이렇게 빼돌려졌습니다.

시가로 4억 8천 만 원 상당입니다.

인근에 살던 주민들도 땅 밑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녹취> 동네 주민(음성변조) : “차 같은 거 왔다 갔다 하는 거 봤는데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 모르지. 옆집에서도 몰랐는데…….”

<녹취> 동네주민(음성변조) : “외딴지역이어서 거기 뭐 창고만 두어개 있고 그래서 몰랐지요.”

기름을 빼내기까지 범행 준비는 치밀했습니다.

2월 부터 두 달 동안은 땅을 파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중장비 없이 삽과 호미 등으로 일일이 흙을 파내 송유관까지 접근로를 만들었습니다.

<인터뷰> 정휘철(전북 익산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장) : “굴착기 등으로 작업을 하면 소리 때문에 발각될 거 같아서 호미나 삽으로 손수 작업을 해 절취를 한 겁니다.”

경찰을 더 깜짝 놀라게 한 건 땅굴의 위치입니다.

땅굴이 경부선 철도 아래를 가로지르고 있었던 겁니다.

땅굴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녹취> 정휘철(전북 익산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장) : “바로 그 위가 철길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잘못되면 화재 등 대형사고가 날 수도 있고, 기차가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무너져 내릴 수도 있고…….”

앞 뒤 가리지 않고 이렇게 땅굴을 파고 들어가 결국 송유관을 찾아냈습니다.

작은 구멍을 뚫고, 전문 장비를 이용해 기름을 빼냈습니다.

훔친 기름을 옮길 트럭 두 대도 불법으로 개조했습니다.

<녹취> 정휘철(전북 익산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장) : “개조한 차량이 있어요. 4.5톤 트럭에 1만 리터가 들어가는 유조통을 달아서 그늘막 같은 걸 씌워놨어요.”

범행이 들통날까봐 인적이 드문 새벽 시간대 기름을 옮겨 실었습니다.

땅굴 안팎에는 CCTV 4대를 설치 한 뒤, 접근 하는 사람이 없는지 휴대전화로 24시간 감시했습니다. .

<녹취> 정휘철(전북 익산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장) : “도유시설에서 기름을 빼서 차량으로 운반할 때도 렌터카를 타고 뒤에 따라붙어서 수사 기관에서 혹시 미행하진 않는지 그것까지 철저하게 감시했습니다.”

빼돌린 기름은 정상 가격보다 200~300원 정도 저렴하게 전북 익산과 김제의 주유소 2곳에 넘겼습니다.

이 때도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은밀하게 움직였습니다.

<녹취> 정휘철(전북 익산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장) : “주유소 업자하고 서로 전화 통화를 하고 (차량을) 운동장 같은 곳에 갖다 놓으면 주유소 쪽에서 차를 가져가서 기름을 탱크에 넣고 다시 갖다 놓는 거죠.”

하지만 몰래 기름 빼돌리기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대한송유관공사에서 송유관 기름이 빠져나다고 있다고 감지한 겁니다.

기름을 훔쳐 파는 사람이 있다는 제보도 비슷한 시기 경찰에 접수됐습니다.

경찰에 검거된 일당 8명 중에는 땅굴을 파고 송유관에 구멍을 뚫는 전문 기술을 가진 사람들까지 포함돼 있었습니다.

<녹취> 정휘철(전북 익산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장) : “용접기로 송유관에 구멍을 낼 때 굉장히 위험하거든요.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이) 전국에도 몇 명 안 된다고 알고 있는데 가명을 쓰고 자기의 신분을 철저히 위장한 거로 보입니다.”

경찰은 아직 붙잡히지 않은 기름 절도 용의자를 쫓는 한편, 대한석유공사와 협조해 다른 송유관 절도 현장이 없는지 점검을 강화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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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24 08:37:00
    • 수정2017-08-24 09: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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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에서 이런 땅굴이 발견됐습니다.

얼핏보면 탄광 갱도 같기도 하고, 휴전선 부근에 북한이 팠다는 땅굴 처럼 정교해 보입니다.

길이 40미터 짜리 이 땅굴을 따라가보면 송유관이 발견됩니다.

절도범들이 송유관에 구멍을 뚫어 기름을 훔치려고 만든 땅굴이었습니다.

땅굴을 파는 데는 두 달 정도가 걸렸다고 하는데요.

굴착기 없이 삽과 호미로만 땅굴을 파 들어갔습니다.

더 황당했던 건 땅굴의 위치입니다.

땅굴 바로 위로는 경부선 철길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대형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인데요.

송유관 절도 사건의 전말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리포트>

충북 옥천의 한 창고 부지입니다.

지난 2월 한 남성이 찾아와 이 땅을 임대해 갔습니다.

<녹취> 토지주인(음성변조) : “거기에 공장을 조그마하게 지어서 천막을 제작해야겠다.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천막 공장을 짓겠다던 남성. 하지만 건물 안은 기계 하나 없이 텅 비어있었습니다.

<녹취> 대한송유관공사 관계자 : “이 (건물이) 없었던 거죠. 2월에 주인한테 임대료를 놓고 이걸 다 지은 거예요.”

지난 달 경찰이 이 곳에 들이닥쳤습니다.

창고 안에 또 다른 작은 창고가 보일 뿐. 천막 공장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작은 창고 안으로 들어가니 수상한 가림막이 보였습니다.

가림막 아래를 보니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4미터 정도 되는 깊이.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면 긴 땅굴이 발견됩니다.

<녹취> 대한송유관공사 관계자 : “4m를 내려가서, 40m를 (파) 들어간 거예요.”

마치 탄광처럼 레일까지 놓여 있는 땅굴은 40미터 가량 이어졌습니다.

땅굴의 끝에는 송유관이 있었습니다.

<녹취> 정휘철(전북 익산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장) : “땅굴을 파서 송유관에 호스를 연결해서 기름을 훔친 거죠.”

50살 이 모 씨 등 8명이 송유관에 구멍을 뚫어 기름을 훔쳐 왔습니다.

석 달 동안 37만 리터의 기름이 이렇게 빼돌려졌습니다.

시가로 4억 8천 만 원 상당입니다.

인근에 살던 주민들도 땅 밑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녹취> 동네 주민(음성변조) : “차 같은 거 왔다 갔다 하는 거 봤는데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 모르지. 옆집에서도 몰랐는데…….”

<녹취> 동네주민(음성변조) : “외딴지역이어서 거기 뭐 창고만 두어개 있고 그래서 몰랐지요.”

기름을 빼내기까지 범행 준비는 치밀했습니다.

2월 부터 두 달 동안은 땅을 파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중장비 없이 삽과 호미 등으로 일일이 흙을 파내 송유관까지 접근로를 만들었습니다.

<인터뷰> 정휘철(전북 익산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장) : “굴착기 등으로 작업을 하면 소리 때문에 발각될 거 같아서 호미나 삽으로 손수 작업을 해 절취를 한 겁니다.”

경찰을 더 깜짝 놀라게 한 건 땅굴의 위치입니다.

땅굴이 경부선 철도 아래를 가로지르고 있었던 겁니다.

땅굴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녹취> 정휘철(전북 익산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장) : “바로 그 위가 철길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잘못되면 화재 등 대형사고가 날 수도 있고, 기차가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무너져 내릴 수도 있고…….”

앞 뒤 가리지 않고 이렇게 땅굴을 파고 들어가 결국 송유관을 찾아냈습니다.

작은 구멍을 뚫고, 전문 장비를 이용해 기름을 빼냈습니다.

훔친 기름을 옮길 트럭 두 대도 불법으로 개조했습니다.

<녹취> 정휘철(전북 익산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장) : “개조한 차량이 있어요. 4.5톤 트럭에 1만 리터가 들어가는 유조통을 달아서 그늘막 같은 걸 씌워놨어요.”

범행이 들통날까봐 인적이 드문 새벽 시간대 기름을 옮겨 실었습니다.

땅굴 안팎에는 CCTV 4대를 설치 한 뒤, 접근 하는 사람이 없는지 휴대전화로 24시간 감시했습니다. .

<녹취> 정휘철(전북 익산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장) : “도유시설에서 기름을 빼서 차량으로 운반할 때도 렌터카를 타고 뒤에 따라붙어서 수사 기관에서 혹시 미행하진 않는지 그것까지 철저하게 감시했습니다.”

빼돌린 기름은 정상 가격보다 200~300원 정도 저렴하게 전북 익산과 김제의 주유소 2곳에 넘겼습니다.

이 때도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은밀하게 움직였습니다.

<녹취> 정휘철(전북 익산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장) : “주유소 업자하고 서로 전화 통화를 하고 (차량을) 운동장 같은 곳에 갖다 놓으면 주유소 쪽에서 차를 가져가서 기름을 탱크에 넣고 다시 갖다 놓는 거죠.”

하지만 몰래 기름 빼돌리기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대한송유관공사에서 송유관 기름이 빠져나다고 있다고 감지한 겁니다.

기름을 훔쳐 파는 사람이 있다는 제보도 비슷한 시기 경찰에 접수됐습니다.

경찰에 검거된 일당 8명 중에는 땅굴을 파고 송유관에 구멍을 뚫는 전문 기술을 가진 사람들까지 포함돼 있었습니다.

<녹취> 정휘철(전북 익산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장) : “용접기로 송유관에 구멍을 낼 때 굉장히 위험하거든요.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이) 전국에도 몇 명 안 된다고 알고 있는데 가명을 쓰고 자기의 신분을 철저히 위장한 거로 보입니다.”

경찰은 아직 붙잡히지 않은 기름 절도 용의자를 쫓는 한편, 대한석유공사와 협조해 다른 송유관 절도 현장이 없는지 점검을 강화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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