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복 대신 ‘앞치마’ 두른 신부님

입력 2017.12.19 (11:30) 수정 2017.12.19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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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의 무료 급식소인 '안나의 집'에서는 매일 오후 4시가 되면 "사랑합니다. 맛있게 드세요!"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사제복 대신 앞치마 차림을 한 빈첸시오 보르도(61) 신부의 목소리다.

[연관 기사] 파란 눈의 신부, 앞치마를 두른 사연


푸른 눈의 신부는 매일 500여 명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한다. 2년 전 귀화한 후부터 '하느님의 종'이라는 뜻의 한국 이름 김하종으로 살고 있다. 올해는 그가 한국에 온 지 27년, 안나의 집을 운영한 지 19년째다.

KBS '인간극장'(18일(월)~22일(금) 오전 7시 50분, 1TV)이 인생에서 잠시 길을 잃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반기는 김하종 신부를 찾았다.



“한국인 김하종 신부입니다”

이탈리아에서 농부의 아들로 자란 김하종 신부는 어린 시절 심한 난독증(難讀症)을 겪었다. 난독증이 학습장애로 이어진 탓에 열등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자신의 아픔을 통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알게 됐다. 그가 봉사의 길로 들어선 계기다.


결국 사제의 길을 택한 그는 1987년 이탈리아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3년 후 한국에 왔다. 한국에 오기 전,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하면서 자체적으로 종교를 수용한 한국 천주교 역사와 김대건 신부에 반해 한국행을 결심했다.


김하종 신부는 한국에 오자마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정착한 곳이 성남이었다. 초창기에는 공부방에서 일하며 가난한 아이들을 도왔다.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급식소도 차렸다. 그러던 중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실직자와 노숙인이 급격히 늘면서 우리나라 최초로 실내 무료급식소인 '안나의 집'을 만들게 됐다.

봉사홀릭, 24시간이 모자라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김하종 신부의 하루는 누구보다 바쁘게 흘러간다. 매일같이 새벽 미사를 하고 나면 청소년과 노숙인의 쉼터를 돌아본다. 이윽고 안나의 집으로 출근해 앞치마를 두르고 500인분이 넘는 분량의 급식을 봉사자들과 함께 준비한다.


안나의 집에서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면서 신경 쓸 것이 많지만 급식 메뉴 선정부터 재료 손질, 요리, 청소 등 수고로운 일도 마다치 않는다. 하루 한 끼가 전부인 가난한 사람들에게 밥 한 끼 대접할 수 있음이 감사할 따름이다.

안나의 집에서 저녁 배식을 끝내면 그는 또 다른 곳으로 향한다. 이동 청소년 상담소인 '아.지.트'(아이들을 지켜주는 트럭)다. 이곳에서 그는 거리를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위로와 평안을 나눈다.

한국에서 맞이한 가족

27년간 꾸준히 봉사를 실천한 그에겐 특별한 가족이 있다. 그중 한 명이 안나의 집을 총괄하는 봉사자 요한 씨다. 19년 전만 해도 요한 씨는 안나의 집에 급식을 먹으러 온 노숙인이었다.


요한 씨는 다른 노숙인과 달랐다. 밥을 먹은 후 곧장 떠나는 노숙인과 달리 그는 안나의 집 주변을 청소한 후에야 거리로 돌아갔다. 그런 요한 씨의 모습을 본 김하종 신부가 그에게 안나의 집에서 일할 것을 부탁했다. 이후 정식 직원이 된 요한 씨는 19년을 신부와 함께하며 남을 위해 봉사하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미혼부 재우 아빠, 노숙인 미혼모 미자 씨도 김하종 신부의 오랜 인연이다. 그가 돌봤던 사람들이 아이를 낳아 다시 그의 품으로 깃들었다. 오늘도 온정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 나서며 김하종 신부는 말한다. "행복은 가지려는 것이 아니라 나누면서 얻는 것"이라고.

[프로덕션2] 박성희 kbs.ps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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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7-12-19 11: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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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의 무료 급식소인 '안나의 집'에서는 매일 오후 4시가 되면 "사랑합니다. 맛있게 드세요!"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사제복 대신 앞치마 차림을 한 빈첸시오 보르도(61) 신부의 목소리다.

[연관 기사] 파란 눈의 신부, 앞치마를 두른 사연


푸른 눈의 신부는 매일 500여 명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한다. 2년 전 귀화한 후부터 '하느님의 종'이라는 뜻의 한국 이름 김하종으로 살고 있다. 올해는 그가 한국에 온 지 27년, 안나의 집을 운영한 지 19년째다.

KBS '인간극장'(18일(월)~22일(금) 오전 7시 50분, 1TV)이 인생에서 잠시 길을 잃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반기는 김하종 신부를 찾았다.



“한국인 김하종 신부입니다”

이탈리아에서 농부의 아들로 자란 김하종 신부는 어린 시절 심한 난독증(難讀症)을 겪었다. 난독증이 학습장애로 이어진 탓에 열등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자신의 아픔을 통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알게 됐다. 그가 봉사의 길로 들어선 계기다.


결국 사제의 길을 택한 그는 1987년 이탈리아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3년 후 한국에 왔다. 한국에 오기 전,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하면서 자체적으로 종교를 수용한 한국 천주교 역사와 김대건 신부에 반해 한국행을 결심했다.


김하종 신부는 한국에 오자마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정착한 곳이 성남이었다. 초창기에는 공부방에서 일하며 가난한 아이들을 도왔다.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급식소도 차렸다. 그러던 중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실직자와 노숙인이 급격히 늘면서 우리나라 최초로 실내 무료급식소인 '안나의 집'을 만들게 됐다.

봉사홀릭, 24시간이 모자라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김하종 신부의 하루는 누구보다 바쁘게 흘러간다. 매일같이 새벽 미사를 하고 나면 청소년과 노숙인의 쉼터를 돌아본다. 이윽고 안나의 집으로 출근해 앞치마를 두르고 500인분이 넘는 분량의 급식을 봉사자들과 함께 준비한다.


안나의 집에서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면서 신경 쓸 것이 많지만 급식 메뉴 선정부터 재료 손질, 요리, 청소 등 수고로운 일도 마다치 않는다. 하루 한 끼가 전부인 가난한 사람들에게 밥 한 끼 대접할 수 있음이 감사할 따름이다.

안나의 집에서 저녁 배식을 끝내면 그는 또 다른 곳으로 향한다. 이동 청소년 상담소인 '아.지.트'(아이들을 지켜주는 트럭)다. 이곳에서 그는 거리를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위로와 평안을 나눈다.

한국에서 맞이한 가족

27년간 꾸준히 봉사를 실천한 그에겐 특별한 가족이 있다. 그중 한 명이 안나의 집을 총괄하는 봉사자 요한 씨다. 19년 전만 해도 요한 씨는 안나의 집에 급식을 먹으러 온 노숙인이었다.


요한 씨는 다른 노숙인과 달랐다. 밥을 먹은 후 곧장 떠나는 노숙인과 달리 그는 안나의 집 주변을 청소한 후에야 거리로 돌아갔다. 그런 요한 씨의 모습을 본 김하종 신부가 그에게 안나의 집에서 일할 것을 부탁했다. 이후 정식 직원이 된 요한 씨는 19년을 신부와 함께하며 남을 위해 봉사하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미혼부 재우 아빠, 노숙인 미혼모 미자 씨도 김하종 신부의 오랜 인연이다. 그가 돌봤던 사람들이 아이를 낳아 다시 그의 품으로 깃들었다. 오늘도 온정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 나서며 김하종 신부는 말한다. "행복은 가지려는 것이 아니라 나누면서 얻는 것"이라고.

[프로덕션2] 박성희 kbs.ps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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