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꼴찌’…묵묵히 밤하늘 가른 스키점프 국가대표

입력 2018.02.20 (21:17) 수정 2018.02.20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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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개봉해 누적 관객 수 820만 명을 돌파하며 인기를 끌었던 영화 ‘국가대표’의 하이라이트 장면이다.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급조된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이 불가능한 도전에 나서는 내용이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며 웃고 울었다.


영화의 실제 모델이 된 대한민국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은 지금도 국가대표로 뛰고 있다.

영화의 모델인 최흥철(37), 최서우(36), 김현기(35)와 이번에 합류한 박제언(25) 등 4명으로 구성된 스키점프 대표팀은 어제(19일) 밤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스키점프센터에서 열린 단체전 예선에 출전해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좋은 결과를 얻진 못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한 대표팀 선수들은 12개 참가국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해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김현기 선수는 경기를 마친 뒤 기자들을 만나 “6번째 출전하는 올림픽이라서 영광스럽고 자랑스럽지만, 개인적으로 목표한 걸 이루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연관기사] 천신만고 끝 ‘하늘을 날다’…스키점프팀 6번째 도전

한국 스키점프 단체전 역대 최고 성적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8위다. 2014년 소치에서는 11위를 기록했다.

인기 종목에 가려진 스키점프…묵묵히 밤하늘 가른 선수들

19일 오후엔 스피드스케이팅과 봅슬레이 등 우리 선수들이 선전하고 있는 종목에 가려져 스키점프는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이들 종목은 방송사의 생중계가 이뤄진 반면 스키점프는 생중계 화면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방송사들이 메달 가능성이 있거나 인기 있는 종목을 우선적으로 중계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김현기 선수는 이날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사실 이번 올림픽 경기 대회 동안 스키점프 경기가 라이브로 중계된 적이 거의 없었다. (경기장에) 오지 못한 가족들도 TV로 좀 지켜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안 돼서 되게 서운한 마음이 있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방송사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진 못했지만, 대표팀 선수들은 묵묵히 평창의 밤하늘을 갈랐다.

스키점프 단체전에서 김현기가 안정된 자세로 비행하고 있다.스키점프 단체전에서 김현기가 안정된 자세로 비행하고 있다.

영화 같았던 스키점프 대표팀 출전기

사실 스키점프 대표팀은 이번 올림픽에서 단체전에 출전하지 못 할 뻔했다. 단체전에는 4명의 선수가 출전하는데 경기 하루 전날까지 3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최서우와 김현기만 올림픽 커트를 통과해 개인전 출전 자격을 얻었지만 지난 16일 최응철에게 단체전 출전 자격이 주어지면서 극적으로 출전 길이 열렸다.

국제스키연맹(FIS)에서 이번 대회 단체전 출전국이 11개국으로 2014년 소치 대회(12개 국)보다 줄어든 것에 부담을 느낀 데다 대한스키협회가 개최국이 단체전에 나가면 흥행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구제를 요청한 데 따른 결과다.

나머지 한 명의 빈자리는 스키점프와 크로스컨트리를 병행하는 노르딕복합 선수인 박제언을 투입해 메웠다. 경기 하루 전에 가까스로 단체전 대표팀이 꾸려진 것이다. 박제언에겐 이번이 첫 올림픽 출전이다.

최흥철은 뒤늦은 대표팀 합류에 대해 “영화 국가대표 3편도 나와야 할 것 같다. 이번 단체전 출전이 그만큼 극적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부상 투혼도 이어졌다. 김현기는 발목부상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출전을 강행했다. 2년 전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입었지만, 수술을 하게 되면 재활 기간이 길게 소요돼 주사 치료 등 기본적인 치료만 받으면서 버텼다.

경기가 열린 알펜시아 스타디움은 김현기의 고향 집까지 차로 5분 거리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말 그대로 ‘집 앞’에서 열린 올림픽에 출전한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과거 영화 같은 도전기로 조명받았던 스키점프 선수들은 이번에도 영화처럼 극적인 상황을 겪은 셈이다.

백전노장 된 대표팀,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 스키점프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차지한 당시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 왼쪽부터 김현기, 최서우, 강칠구, 최흥철.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 스키점프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차지한 당시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 왼쪽부터 김현기, 최서우, 강칠구, 최흥철.

최흥철, 최서우, 김현기는 이번이 6번째 출전하는 올림픽이다. 이는 이규혁(빙상)이 기록한 한국 선수 올림픽 최다 출전 타이기록이다. 대표팀의 단체전 출전은 이번이 5번째다.

백전노장이 된 선수들이 계속해서 올림픽에 나오고 있지만 '젊은 피'는 좀처럼 수혈되지 않고 있다. 국내 스키점프 저변이 워낙 좁기 때문이다.

최흥철은 2022년 베이징올림픽에도 출전할 생각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스키점프가 나이가 많아도 몸 관리를 잘하면 뛸 수 있는 종목”이라면서 “7번째 올림픽에 나가게 된다면 최소한 상위 10위, 나아가 메달까지 노려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현기는 대한체육회와 가진 사전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스키점프 1세대 선수로 살아오면서 멘토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해왔다"며 "25년이 넘는 선수생활을 바탕으로 쌓아온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힘을 주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아름다운 꼴찌'를 기록한 이들의 도전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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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꼴찌’…묵묵히 밤하늘 가른 스키점프 국가대표
    • 입력 2018-02-20 21:17:24
    • 수정2018-02-20 22:48:02
    취재K
2009년 개봉해 누적 관객 수 820만 명을 돌파하며 인기를 끌었던 영화 ‘국가대표’의 하이라이트 장면이다.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급조된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이 불가능한 도전에 나서는 내용이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며 웃고 울었다.


영화의 실제 모델이 된 대한민국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은 지금도 국가대표로 뛰고 있다.

영화의 모델인 최흥철(37), 최서우(36), 김현기(35)와 이번에 합류한 박제언(25) 등 4명으로 구성된 스키점프 대표팀은 어제(19일) 밤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스키점프센터에서 열린 단체전 예선에 출전해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좋은 결과를 얻진 못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한 대표팀 선수들은 12개 참가국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해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김현기 선수는 경기를 마친 뒤 기자들을 만나 “6번째 출전하는 올림픽이라서 영광스럽고 자랑스럽지만, 개인적으로 목표한 걸 이루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연관기사] 천신만고 끝 ‘하늘을 날다’…스키점프팀 6번째 도전

한국 스키점프 단체전 역대 최고 성적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8위다. 2014년 소치에서는 11위를 기록했다.

인기 종목에 가려진 스키점프…묵묵히 밤하늘 가른 선수들

19일 오후엔 스피드스케이팅과 봅슬레이 등 우리 선수들이 선전하고 있는 종목에 가려져 스키점프는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이들 종목은 방송사의 생중계가 이뤄진 반면 스키점프는 생중계 화면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방송사들이 메달 가능성이 있거나 인기 있는 종목을 우선적으로 중계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김현기 선수는 이날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사실 이번 올림픽 경기 대회 동안 스키점프 경기가 라이브로 중계된 적이 거의 없었다. (경기장에) 오지 못한 가족들도 TV로 좀 지켜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안 돼서 되게 서운한 마음이 있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방송사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진 못했지만, 대표팀 선수들은 묵묵히 평창의 밤하늘을 갈랐다.

스키점프 단체전에서 김현기가 안정된 자세로 비행하고 있다.
영화 같았던 스키점프 대표팀 출전기

사실 스키점프 대표팀은 이번 올림픽에서 단체전에 출전하지 못 할 뻔했다. 단체전에는 4명의 선수가 출전하는데 경기 하루 전날까지 3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최서우와 김현기만 올림픽 커트를 통과해 개인전 출전 자격을 얻었지만 지난 16일 최응철에게 단체전 출전 자격이 주어지면서 극적으로 출전 길이 열렸다.

국제스키연맹(FIS)에서 이번 대회 단체전 출전국이 11개국으로 2014년 소치 대회(12개 국)보다 줄어든 것에 부담을 느낀 데다 대한스키협회가 개최국이 단체전에 나가면 흥행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구제를 요청한 데 따른 결과다.

나머지 한 명의 빈자리는 스키점프와 크로스컨트리를 병행하는 노르딕복합 선수인 박제언을 투입해 메웠다. 경기 하루 전에 가까스로 단체전 대표팀이 꾸려진 것이다. 박제언에겐 이번이 첫 올림픽 출전이다.

최흥철은 뒤늦은 대표팀 합류에 대해 “영화 국가대표 3편도 나와야 할 것 같다. 이번 단체전 출전이 그만큼 극적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부상 투혼도 이어졌다. 김현기는 발목부상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출전을 강행했다. 2년 전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입었지만, 수술을 하게 되면 재활 기간이 길게 소요돼 주사 치료 등 기본적인 치료만 받으면서 버텼다.

경기가 열린 알펜시아 스타디움은 김현기의 고향 집까지 차로 5분 거리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말 그대로 ‘집 앞’에서 열린 올림픽에 출전한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과거 영화 같은 도전기로 조명받았던 스키점프 선수들은 이번에도 영화처럼 극적인 상황을 겪은 셈이다.

백전노장 된 대표팀,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 스키점프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차지한 당시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 왼쪽부터 김현기, 최서우, 강칠구, 최흥철.
최흥철, 최서우, 김현기는 이번이 6번째 출전하는 올림픽이다. 이는 이규혁(빙상)이 기록한 한국 선수 올림픽 최다 출전 타이기록이다. 대표팀의 단체전 출전은 이번이 5번째다.

백전노장이 된 선수들이 계속해서 올림픽에 나오고 있지만 '젊은 피'는 좀처럼 수혈되지 않고 있다. 국내 스키점프 저변이 워낙 좁기 때문이다.

최흥철은 2022년 베이징올림픽에도 출전할 생각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스키점프가 나이가 많아도 몸 관리를 잘하면 뛸 수 있는 종목”이라면서 “7번째 올림픽에 나가게 된다면 최소한 상위 10위, 나아가 메달까지 노려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현기는 대한체육회와 가진 사전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스키점프 1세대 선수로 살아오면서 멘토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해왔다"며 "25년이 넘는 선수생활을 바탕으로 쌓아온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힘을 주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아름다운 꼴찌'를 기록한 이들의 도전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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