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킴’ 덕에 행복했던 11일…‘카리스마’ 김은정도 눈물

입력 2018.02.25 (11:52) 수정 2018.02.25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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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킴’ 덕에 행복했던 11일…값진 은메달로 마무리

‘팀킴’ 덕에 행복했던 11일…값진 은메달로 마무리

출발부터 세계랭킹 1위 캐나다를 물리쳤다. 영국과 스위스 등 강호를 잇따라 격파했다. 4강에서는 예선전에서 1패를 당했던 일본을 다시 만나 멋지게 설욕했다. 아시아 팀으로는 최초로 결승에 올랐다. 이미 대단한 성과를 얻었지만 금메달을 향한 욕심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불꽃 카리스마'를 내뿜던 김은정은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한국 컬링 역사상 첫 메달이다. 관중들은 기립박수로 위대한 도전의 마지막을 축하했다. 캐나다를 상대했던 지난 15일부터 열하루 동안 이른바 '비인기종목' 컬링은 평창의 주인공이었다.

25일 강원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올림픽 컬링 여자 결승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한국 대표팀이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고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은정, 김경애, 김선영, 김영미, 김초희. [사진출처:연합뉴스]25일 강원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올림픽 컬링 여자 결승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한국 대표팀이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고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은정, 김경애, 김선영, 김영미, 김초희. [사진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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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들에겐 이 열기가 조금 늦게 전달됐다. 결승전을 마친 뒤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국민 영미' 김영미는 "아직 감독님에게서 휴대전화를 돌려받지 못했다"면서 "자원봉사자나 관중들께서 호응과 응원을 해주셔서 컬링이 알려졌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다"고 말했다. 주장 김은정도 "휴대전화를 받지 못해 아는 것이 없다. 얼마나 유명해졌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컬링에 이만큼 관심을 두고 지켜봐 주시는 분들이 많이 생긴 것 자체가 저희에게는 큰 행복이고 감사할 일"이라면서 "빨리 인터넷을 켜봐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이 자리에서 김은정은 올림픽 대표가 되고 난 이후 과정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김은정은 "여태 노력해 선발전까지 마치고 '꽃길'만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더 힘들어졌다"면서 "이렇게 흔들리는 게 꽃을 피우기 위해서라며 서로 다독였고, 이끌어주신 분들도 격려해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마음 놓고 컬링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면 좋겠다"면서 "선수들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어서 힘들었는데, 인기와 관심이 많아지면 안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민정 감독도 "정작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고 과정들이 힘들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며 "팀 내에서 자구책으로 많은 것을 해결했다. 선수들이 잘 따라주고, 같이 뭉쳐서 이겨냈다"고 말했다. 또 "이번엔 최고의 자리에 오르진 못했지만, 또 도전할 계기가 됐기 때문에 늘 도전자의 자세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25일 강원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올림픽 여자 컬링 결승전 대한민국과 스웨덴의 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한국의 김은정이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연합뉴스]25일 강원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올림픽 여자 컬링 결승전 대한민국과 스웨덴의 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한국의 김은정이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여자컬링팀이 결성된 과정은 마치 영화와 같다. 이야기는 인구 5만의 작은 도시 경북 의성군에서 시작한다. 의성여고 1학년 시절의 김은정은 체육 시간에 '체험 활동'으로 컬링을 처음 접했다. 김은정은 방과 후 활동 수업 중 하나로 컬링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은정은 주저 없이 컬링팀에 들어갔다. 이후 김은정은 친구 김영미에게 함께 컬링을 하자고 권유했다. 김영미는 김은정을 따라 컬링을 시작했다. 김영미 세 살 터울 동생 김경애는 언니를 따라 컬링에 입문했다.

모두 평범한 소녀들이었다. 틈이 나면 가족이 하는 복숭아, 자두, 마늘 농장에서 일손을 보태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대가족 속에서 어른을 공경하며 사는 착한 딸이자 손녀였다. 김영미, 김경애는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의 빈자리를 스스로 채우는 어려움도 극복했다. 김영미는 이모 같은 리더십, 김경애는 여장부 같은 리더십을 키워나가며 어린 나이에 가장 역할을 했다.

이들은 2006년 문을 연 한국 최초·유일의 컬링 전용 경기장인 의성컬링훈련원에 모였다. 의성컬링훈련원은 당시 정부의 스포츠클럽 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지역 학교의 도움을 받아 컬링을 배울 학생을 모집했다. 여러 학생이 컬링에 관심을 보였지만, 김은정, 김영미, 김경애, 김선영은 방과 후가 아닌 졸업 후에도 끝까지 컬링을 놓지 않았고, 지역 실업팀인 경북체육회에 들어가 전문 선수가 됐다.

김은정은 국가대표 여자컬링 대표팀의 주장인 스킵이 됐고, 김영미는 가장 먼저 스톤을 던지는 리드가 됐다. 오랜 친구인 만큼 김영미는 "영미∼", "영미!!", "영미, 영미!" 등 김은정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의 톤으로 스위핑 지시를 알아듣는 찰떡궁합을 자랑한다. 김경애는 팀의 살림꾼인 바이스스킵 겸 서드를 맡았고, 김선영은 작전 수행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세컨드가 됐다. 이들은 방 세 개짜리 아파트에서 합숙하며 올림픽 메달의 꿈을 키웠다.

여자컬링 대표팀 김선영, 김영미, 김경애, 김은정이 학생 시절인 지난 2010년 경북 의성컬링훈련원에서 컬링 훈련을 하고 있다.여자컬링 대표팀 김선영, 김영미, 김경애, 김은정이 학생 시절인 지난 2010년 경북 의성컬링훈련원에서 컬링 훈련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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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소치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는 마지막 경기에서 패해 태극마크를 놓쳤지만, 이들은 절치부심 2018 평창동계올림픽만을 기다렸다. 새 식구도 맞았다. 고교 최고 유망주인 경기도 송현고 출신 김초희가 경북체육회에 새로 입단했다. 김초희는 비록 고향이 의성은 아니지만, 똑같이 합숙 생활을 하고 분위기 메이커 역할도 도맡아 하면서 팀의 미래로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다섯 선수와 김민정 감독까지 모두 성이 김 씨여서 '팀 킴'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하나로 뭉쳤다.

이렇게 불모지 한국에서 '풀뿌리 스포츠'의 성공신화를 만들었다. 한국 컬링의 성공은 척박한 환경에서 꽃을 피워냈다는 점에서 기적에 가깝다. 컬링대표팀 선수들은 많은 지원을 받지 못했고, 팬들의 응원도 없었다. 텅 빈 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르기 일쑤였다.

선수들은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겪었지만, 자신의 손에 컬링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사명감으로 스톤을 굴렸다. 여자대표팀 김민정 감독은 여자 컬링 결승전을 앞두고 "우리는 컬링 역사를 써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 그 책임감을 느끼고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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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 킴’ 덕에 행복했던 11일…‘카리스마’ 김은정도 눈물
    • 입력 2018-02-25 11:52:06
    • 수정2018-02-25 14:2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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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부터 세계랭킹 1위 캐나다를 물리쳤다. 영국과 스위스 등 강호를 잇따라 격파했다. 4강에서는 예선전에서 1패를 당했던 일본을 다시 만나 멋지게 설욕했다. 아시아 팀으로는 최초로 결승에 올랐다. 이미 대단한 성과를 얻었지만 금메달을 향한 욕심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불꽃 카리스마'를 내뿜던 김은정은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한국 컬링 역사상 첫 메달이다. 관중들은 기립박수로 위대한 도전의 마지막을 축하했다. 캐나다를 상대했던 지난 15일부터 열하루 동안 이른바 '비인기종목' 컬링은 평창의 주인공이었다.

25일 강원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올림픽 컬링 여자 결승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한국 대표팀이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고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은정, 김경애, 김선영, 김영미, 김초희. [사진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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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들에겐 이 열기가 조금 늦게 전달됐다. 결승전을 마친 뒤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국민 영미' 김영미는 "아직 감독님에게서 휴대전화를 돌려받지 못했다"면서 "자원봉사자나 관중들께서 호응과 응원을 해주셔서 컬링이 알려졌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다"고 말했다. 주장 김은정도 "휴대전화를 받지 못해 아는 것이 없다. 얼마나 유명해졌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컬링에 이만큼 관심을 두고 지켜봐 주시는 분들이 많이 생긴 것 자체가 저희에게는 큰 행복이고 감사할 일"이라면서 "빨리 인터넷을 켜봐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이 자리에서 김은정은 올림픽 대표가 되고 난 이후 과정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김은정은 "여태 노력해 선발전까지 마치고 '꽃길'만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더 힘들어졌다"면서 "이렇게 흔들리는 게 꽃을 피우기 위해서라며 서로 다독였고, 이끌어주신 분들도 격려해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마음 놓고 컬링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면 좋겠다"면서 "선수들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어서 힘들었는데, 인기와 관심이 많아지면 안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민정 감독도 "정작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고 과정들이 힘들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며 "팀 내에서 자구책으로 많은 것을 해결했다. 선수들이 잘 따라주고, 같이 뭉쳐서 이겨냈다"고 말했다. 또 "이번엔 최고의 자리에 오르진 못했지만, 또 도전할 계기가 됐기 때문에 늘 도전자의 자세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25일 강원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올림픽 여자 컬링 결승전 대한민국과 스웨덴의 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한국의 김은정이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여자컬링팀이 결성된 과정은 마치 영화와 같다. 이야기는 인구 5만의 작은 도시 경북 의성군에서 시작한다. 의성여고 1학년 시절의 김은정은 체육 시간에 '체험 활동'으로 컬링을 처음 접했다. 김은정은 방과 후 활동 수업 중 하나로 컬링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은정은 주저 없이 컬링팀에 들어갔다. 이후 김은정은 친구 김영미에게 함께 컬링을 하자고 권유했다. 김영미는 김은정을 따라 컬링을 시작했다. 김영미 세 살 터울 동생 김경애는 언니를 따라 컬링에 입문했다.

모두 평범한 소녀들이었다. 틈이 나면 가족이 하는 복숭아, 자두, 마늘 농장에서 일손을 보태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대가족 속에서 어른을 공경하며 사는 착한 딸이자 손녀였다. 김영미, 김경애는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의 빈자리를 스스로 채우는 어려움도 극복했다. 김영미는 이모 같은 리더십, 김경애는 여장부 같은 리더십을 키워나가며 어린 나이에 가장 역할을 했다.

이들은 2006년 문을 연 한국 최초·유일의 컬링 전용 경기장인 의성컬링훈련원에 모였다. 의성컬링훈련원은 당시 정부의 스포츠클럽 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지역 학교의 도움을 받아 컬링을 배울 학생을 모집했다. 여러 학생이 컬링에 관심을 보였지만, 김은정, 김영미, 김경애, 김선영은 방과 후가 아닌 졸업 후에도 끝까지 컬링을 놓지 않았고, 지역 실업팀인 경북체육회에 들어가 전문 선수가 됐다.

김은정은 국가대표 여자컬링 대표팀의 주장인 스킵이 됐고, 김영미는 가장 먼저 스톤을 던지는 리드가 됐다. 오랜 친구인 만큼 김영미는 "영미∼", "영미!!", "영미, 영미!" 등 김은정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의 톤으로 스위핑 지시를 알아듣는 찰떡궁합을 자랑한다. 김경애는 팀의 살림꾼인 바이스스킵 겸 서드를 맡았고, 김선영은 작전 수행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세컨드가 됐다. 이들은 방 세 개짜리 아파트에서 합숙하며 올림픽 메달의 꿈을 키웠다.

여자컬링 대표팀 김선영, 김영미, 김경애, 김은정이 학생 시절인 지난 2010년 경북 의성컬링훈련원에서 컬링 훈련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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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소치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는 마지막 경기에서 패해 태극마크를 놓쳤지만, 이들은 절치부심 2018 평창동계올림픽만을 기다렸다. 새 식구도 맞았다. 고교 최고 유망주인 경기도 송현고 출신 김초희가 경북체육회에 새로 입단했다. 김초희는 비록 고향이 의성은 아니지만, 똑같이 합숙 생활을 하고 분위기 메이커 역할도 도맡아 하면서 팀의 미래로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다섯 선수와 김민정 감독까지 모두 성이 김 씨여서 '팀 킴'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하나로 뭉쳤다.

이렇게 불모지 한국에서 '풀뿌리 스포츠'의 성공신화를 만들었다. 한국 컬링의 성공은 척박한 환경에서 꽃을 피워냈다는 점에서 기적에 가깝다. 컬링대표팀 선수들은 많은 지원을 받지 못했고, 팬들의 응원도 없었다. 텅 빈 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르기 일쑤였다.

선수들은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겪었지만, 자신의 손에 컬링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사명감으로 스톤을 굴렸다. 여자대표팀 김민정 감독은 여자 컬링 결승전을 앞두고 "우리는 컬링 역사를 써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 그 책임감을 느끼고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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