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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설 선물’로 불티나게 팔린 이것…게르마늄 열풍의 실체는?
입력 2018.02.26 (07:00) 수정 2018.02.26 (10:19) 취재후
[취재후] ‘설 선물’로 불티나게 팔린 이것…게르마늄 열풍의 실체는?
시작은 '설 선물' 고민이었다. 부모님께 설에 드릴만 한 선물이 없을까. 어르신들 사이에 게르마늄 팔찌가 유행이란다. 친구분들이 하나둘 팔찌를 차고 다니신단다. 선물로 결정하고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홈쇼핑에서도 요즘 날개 돋친 듯 팔린다고 하니 저렴하고 질 좋은 걸로 사야지.

하지만 '혈액 순환이 잘되고 면역력도 키워준다, 통증을 완화해준다'는 광고를 본 순간 선물 고르기는 '취재'로 바뀌었다. 이런 만병통치약이 있을까. 모 업체의 홍보물에는 암세포 발생을 막아주고 노화를 지연시키고 치매까지 억제해준다고 돼 있다. 또 다른 업체는 세계 유명 학술지에 게르마늄의 효능이 입증됐다며 대대적인 광고를 한다.

모두 사실이라면 인류 최대의 의학적 발견이 아닌가. 검증을 위해 전문가들을 찾았다. 많은 분들이 애용(?)하시는 만큼 진심으로 효과가 있길 바랐다. 팔찌를 하면 건강해진다는 뉴스가 되길 원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문제점을 속속히 밝혀내는 '현장추적' 형식이 됐다.


순도 99.9% 강력한 효능? ... 의학적 검증 안 돼

취재진은 게르마늄 팔찌와 목걸이를 파는 매장들을 부지런히 돌았다. 판매원들의 말은 교육이나 받은 것처럼 비슷했다. '다들 너무 좋다고 하신다, 결리고 쑤시고 아픈 곳들이 괜찮아진다'로 시작했다. 통증이 사라진다는 말은 취재진이 찾은 거의 모든 매장에서 공통적으로 게르마늄의 효과라고 내세웠다. 하지만 이에 대해 통증 전문 의사는 검증된 의학적 효과가 없다고 못 박았다.


만약 통증이 다소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 이른바 '위약효과'일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도 나왔다.


또 하나 공통적으로 자사 게르마늄에 대한 자랑도 빠지지 않았다. 순도 99.99...%, 타이완 모 기관의 인증을 받은 순수한 게르마늄이기 때문에 효능이 강력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순도 99.9% 인증서를 준다는 건 그냥 순수한 게르마늄이라는 의미이다. 게르마늄은 광물이다. 다른 물질이 섞이지 않았다는 뜻이지 치료 효과를 보장한다는 뜻은 아니다.

"논문으로 검증, 유명 외국 기업이 본사"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업체의 제품은 유명 학술지의 논문을 근거로 내세웠다. 게르마늄의 효능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는 이 업체의 이야기를 일부 언론이 그대로 받아쓰면서 더 확산됐다.

취재진 확인 결과 업체가 내세운 유명 학술 저널은 인도의 인터넷 잡지였다. 게다가 홈페이지에서 주장하는 해당 호(Ejbps. Vol 4, issue 3, 2017)에는 업체명도, 저자 루카스도 등장하지 않았다. 저자의 이름, 소속 병원도 명확한 실체를 찾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논문에는 철자나 문법이 틀린 구절이 보여 더 진위를 의심케 했다. 특정 업체명이 논문 서두부터 등장했고 논문의 결론은 "OO 제품이 가장 좋다"였다.


화학과 교수는 한눈에도 엉터리인 '가짜 논문'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업체가 등재 예정이라고 한 또 다른 논문은 '게르마늄 수소수 제조장치'에 관한 것으로 팔찌나 목걸이, 인체의 영향 같은 주제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지적했다.


업체는 논문에 언급된 기업이 '독일 본사'라며 1955년 베를린에서 창립한 회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들이 제공하는 본사 홈페이지에는 회사 주소나 전화번호, 이메일 그 어떤 정보도 없었다. 고객 센터에 수차례 문의해봤지만, 메일이 전달되지도 않았다. 독일 현지에서 확인에 들어갔지만, 독일 기업 정보에 등록조차 돼 있지 않았다.

천안에 있다는 업체를 찾아 나섰다. 홈페이지 주소는 사무실들이 모여있는 한 건물이었지만 해당 업체는 없었다. 건물 관리인도 그런 업체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얘기했다.

식약처 "게르마늄 의료기기 허가 전혀 없어"

의료기기 허가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내준다. 팔찌나 목걸이는 의료기기가 될 수 없는 걸까? 그건 아니다. 의료용 자기 발생기라는 품목이 있다. 자기장, 즉 자석을 이용해 통증 완화 등을 도와주는 의료 기기다. 총 4등급의 의료기기 가운데 의료용 자기 발생기는 2등급으로 관리되고 있다. 팔찌든 목걸이든 일정 수준의 자석밀도를 보인다면 의료기기 허가를 받을 수 있다.

만약 팔찌나 목걸이로 통증 완화 효과를 느꼈다면 게르마늄이 아니라 자석을 이용한 제품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당연히, 자석이 포함된 제품이더라도 자기장의 수준을 확인받고 식약처의 허가를 받아야만 의료기기로 판매할 수 있다. 게르마늄이 의료기기로 허가받은 것은 단 한 건도 없다.


식약처는 최근 열풍처럼 번지고 있는 홈쇼핑, 온라인의 게르마늄 제품 판매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했다. 홈쇼핑의 경우 방송이라는 특성상 병을 고친다고는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어르신에게 좋다', '집안일 하는 주부들에게 좋다' 며 화면을 이용해 마치 아픈 증상들이 없어지는 듯한 느낌을 보여준다. 온라인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체험 댓글(?) 등을 이용한 광고도 모니터링 대상에서 빠질 수 없다.


방송이 나간 후 많은 분들이 속았다며 분개하셨다. 효능은 '검증되지 않았을 뿐', 난 효과 봤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계신다. 물건을 사는 건 개인의 자유다. 개인이 예쁜 액세서리를,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사 만족스럽다면 그것도 좋다.

하지만 엉터리 학술 논문에, 있지도 않은 치료 효과까지 들먹여가며 물건을 파는 건 다르다. 부디 사람의 '건강'으로 장난치는 제품들이 더는 생기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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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설 선물’로 불티나게 팔린 이것…게르마늄 열풍의 실체는?
    • 입력 2018.02.26 (07:00)
    • 수정 2018.02.26 (10:19)
    취재후
[취재후] ‘설 선물’로 불티나게 팔린 이것…게르마늄 열풍의 실체는?
시작은 '설 선물' 고민이었다. 부모님께 설에 드릴만 한 선물이 없을까. 어르신들 사이에 게르마늄 팔찌가 유행이란다. 친구분들이 하나둘 팔찌를 차고 다니신단다. 선물로 결정하고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홈쇼핑에서도 요즘 날개 돋친 듯 팔린다고 하니 저렴하고 질 좋은 걸로 사야지.

하지만 '혈액 순환이 잘되고 면역력도 키워준다, 통증을 완화해준다'는 광고를 본 순간 선물 고르기는 '취재'로 바뀌었다. 이런 만병통치약이 있을까. 모 업체의 홍보물에는 암세포 발생을 막아주고 노화를 지연시키고 치매까지 억제해준다고 돼 있다. 또 다른 업체는 세계 유명 학술지에 게르마늄의 효능이 입증됐다며 대대적인 광고를 한다.

모두 사실이라면 인류 최대의 의학적 발견이 아닌가. 검증을 위해 전문가들을 찾았다. 많은 분들이 애용(?)하시는 만큼 진심으로 효과가 있길 바랐다. 팔찌를 하면 건강해진다는 뉴스가 되길 원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문제점을 속속히 밝혀내는 '현장추적' 형식이 됐다.


순도 99.9% 강력한 효능? ... 의학적 검증 안 돼

취재진은 게르마늄 팔찌와 목걸이를 파는 매장들을 부지런히 돌았다. 판매원들의 말은 교육이나 받은 것처럼 비슷했다. '다들 너무 좋다고 하신다, 결리고 쑤시고 아픈 곳들이 괜찮아진다'로 시작했다. 통증이 사라진다는 말은 취재진이 찾은 거의 모든 매장에서 공통적으로 게르마늄의 효과라고 내세웠다. 하지만 이에 대해 통증 전문 의사는 검증된 의학적 효과가 없다고 못 박았다.


만약 통증이 다소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 이른바 '위약효과'일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도 나왔다.


또 하나 공통적으로 자사 게르마늄에 대한 자랑도 빠지지 않았다. 순도 99.99...%, 타이완 모 기관의 인증을 받은 순수한 게르마늄이기 때문에 효능이 강력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순도 99.9% 인증서를 준다는 건 그냥 순수한 게르마늄이라는 의미이다. 게르마늄은 광물이다. 다른 물질이 섞이지 않았다는 뜻이지 치료 효과를 보장한다는 뜻은 아니다.

"논문으로 검증, 유명 외국 기업이 본사"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업체의 제품은 유명 학술지의 논문을 근거로 내세웠다. 게르마늄의 효능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는 이 업체의 이야기를 일부 언론이 그대로 받아쓰면서 더 확산됐다.

취재진 확인 결과 업체가 내세운 유명 학술 저널은 인도의 인터넷 잡지였다. 게다가 홈페이지에서 주장하는 해당 호(Ejbps. Vol 4, issue 3, 2017)에는 업체명도, 저자 루카스도 등장하지 않았다. 저자의 이름, 소속 병원도 명확한 실체를 찾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논문에는 철자나 문법이 틀린 구절이 보여 더 진위를 의심케 했다. 특정 업체명이 논문 서두부터 등장했고 논문의 결론은 "OO 제품이 가장 좋다"였다.


화학과 교수는 한눈에도 엉터리인 '가짜 논문'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업체가 등재 예정이라고 한 또 다른 논문은 '게르마늄 수소수 제조장치'에 관한 것으로 팔찌나 목걸이, 인체의 영향 같은 주제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지적했다.


업체는 논문에 언급된 기업이 '독일 본사'라며 1955년 베를린에서 창립한 회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들이 제공하는 본사 홈페이지에는 회사 주소나 전화번호, 이메일 그 어떤 정보도 없었다. 고객 센터에 수차례 문의해봤지만, 메일이 전달되지도 않았다. 독일 현지에서 확인에 들어갔지만, 독일 기업 정보에 등록조차 돼 있지 않았다.

천안에 있다는 업체를 찾아 나섰다. 홈페이지 주소는 사무실들이 모여있는 한 건물이었지만 해당 업체는 없었다. 건물 관리인도 그런 업체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얘기했다.

식약처 "게르마늄 의료기기 허가 전혀 없어"

의료기기 허가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내준다. 팔찌나 목걸이는 의료기기가 될 수 없는 걸까? 그건 아니다. 의료용 자기 발생기라는 품목이 있다. 자기장, 즉 자석을 이용해 통증 완화 등을 도와주는 의료 기기다. 총 4등급의 의료기기 가운데 의료용 자기 발생기는 2등급으로 관리되고 있다. 팔찌든 목걸이든 일정 수준의 자석밀도를 보인다면 의료기기 허가를 받을 수 있다.

만약 팔찌나 목걸이로 통증 완화 효과를 느꼈다면 게르마늄이 아니라 자석을 이용한 제품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당연히, 자석이 포함된 제품이더라도 자기장의 수준을 확인받고 식약처의 허가를 받아야만 의료기기로 판매할 수 있다. 게르마늄이 의료기기로 허가받은 것은 단 한 건도 없다.


식약처는 최근 열풍처럼 번지고 있는 홈쇼핑, 온라인의 게르마늄 제품 판매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했다. 홈쇼핑의 경우 방송이라는 특성상 병을 고친다고는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어르신에게 좋다', '집안일 하는 주부들에게 좋다' 며 화면을 이용해 마치 아픈 증상들이 없어지는 듯한 느낌을 보여준다. 온라인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체험 댓글(?) 등을 이용한 광고도 모니터링 대상에서 빠질 수 없다.


방송이 나간 후 많은 분들이 속았다며 분개하셨다. 효능은 '검증되지 않았을 뿐', 난 효과 봤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계신다. 물건을 사는 건 개인의 자유다. 개인이 예쁜 액세서리를,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사 만족스럽다면 그것도 좋다.

하지만 엉터리 학술 논문에, 있지도 않은 치료 효과까지 들먹여가며 물건을 파는 건 다르다. 부디 사람의 '건강'으로 장난치는 제품들이 더는 생기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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