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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대답없는 메아리”…지적 장애인 모녀의 ‘미투’
입력 2018.05.17 (17:47) 수정 2018.05.17 (17:55) 취재후
[취재후] “대답없는 메아리”…지적 장애인 모녀의 ‘미투’
지적 장애인 연희씨 모녀의 '말 못할 비밀'

대구의 한 지적 장애인 모녀가 이웃의 50대 남성으로부터 상습 성폭행을 당했다는 제보를 받은 것은 지난 달이었습니다.

심하게 어눌한 말투와 표현이었지만, 성폭행으로 인한 수치심과 고통의 감정은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연희(가명)씨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연희씨는 지적 장애 2급, 어머니는 지적 장애 3급의 장애인. 모녀가 전해 준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지난 해 7월, 50대 남성이 모녀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 나란히 눕힌 채, 한 방에서 성관계를 가졌다는 겁니다. 모녀는 이 일을 둘만의 비밀로 하기로 했습니다. 알려지기 두려웠던 겁니다.

하지만, 남성의 성폭행은 이후에도 계속됐습니다. 연희 씨 어머니가 친구에게 이 사실을 털어놨고 결국 연희 씨 아버지까지 알게 되면서 해당 남성을 성폭행 혐의로 경찰에 신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기초수급을 끊어버리겠다!"…협박과 함께 자행된 20차례의 성폭행

경찰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모녀는 지적 장애인 성범죄 피해자 조사 기관인 해바라기센터에서 성폭행 피해 사실을 진술했습니다.

남성은 처음 성폭행 이후 모녀와 함께 점심을 먹고, 술을 마신 뒤 이후 성폭행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모녀는 20차례에 걸쳐 성폭행이 이뤄졌다고 진술했습니다.

모녀는 성관계를 절대 원하지 않았다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가해 남성은 연희씨 모녀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부재중 전화만 수십 통을 걸었고, 때로는 모녀를 찾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온 동네를 뒤졌습니다.

이때부터 모녀는 남성을 오토바이 아저씨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연희씨의 아버지가 없을 때는 집에 몰래 들어와 협박하며 성폭행을 했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남성은 모녀에게 기초생활 수급을 못받게 하겠다는 협박을 일삼았습니다.

하지만, 경찰 수사 결과는 혐의없음. 경찰은 이 남성과 연희씨 모녀가 합의에 의한 성관계를 가졌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지난 2월 경찰은 가해자를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며 수사를 종결했습니다.

이후 연희씨 모녀와 가족은 매일 오토바이 아저씨를 동네에서 마주쳐야 했습니다. 끔찍한 기억을 매일 떠올리며 불안과 공포에 떨며 생활하고 있는 겁니다.

■"합의에 의한 성관계?"상식 뒤엎는 경찰의 무혐의 근거

경찰이 취재진에게 밝힌 무혐의의 근거는,

첫째, 가해자에 대한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 연희씨 모녀를 협박하지 않았다는 진술이 진실로 나왔다는 것,

둘째, 가해자의 동거녀가 세 사람이 성관계에 합의했다고 진술했다는 것,

셋째, 가해자가 기초수급을 끊겠다는 말을 했다손 치더라도, 민간인인 가해자가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고, 연희씨의 어머니도 이 사실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협박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장애인 인권 단체와 변호사 등 전문가를 상대로 경찰의 수사 종결 근거가 타당한지 물어봤습니다.

동거녀는 가해자와 특수 관계인에 속하기 때문에 가해자에게 유리한 진술을 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진술을 인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평가였습니다.

또, 장애인에 대한 협박 성립 여부는 사실 관계가 아니라 당시의 상황을 더 고려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지적 장애인들이 쉽게 겁을 먹는 경향이 있는 만큼 협박의 범위를 더 넓게 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거짓말 탐지기 조사 결과의 경우, 거짓말 탐지기는 어디까지나 수사 참고 자료로만 활용될 뿐, 직접 증거는 될 수 없다는게 일반적인 상식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말 안하면 무혐의?"…장애인 특수성 무시·재조사없이 끝난 경찰 수사

경찰 수사의 허점은 또 있었습니다.

경찰은 조사 당시 연희씨가 피해 사실을 제대로 진술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취재진은 연희씨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연희씨는 취재진에게 성폭행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줬습니다.

상습적으로 성폭행이 이뤄졌고, 거짓말로 가해자를 피해 보려 했지만, 성폭행은 계속됐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경찰과 함께 연희씨를 조사했던 해바라기센터의 진술 기록도 살펴봤습니다.

이 기록에서도 연희씨는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성폭행 사실을 진술하고 있었습니다. 성폭행이 20차례 이뤄졌고, 아버지 연배의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한 고통에 대해서도 진술했습니다. 가해자가 벌금형에 그칠까 걱정하는 등 상황을 구체적으로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해바라기 센터와 공동으로 조사한 연희씨의 진술 기록을 모두 무시하고 성폭행 피해 사실을 제대로 진술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린 겁니다.

경찰은 장애인 대상 성범죄 수사 매뉴얼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우선 피해자를 조사하고, 이어 가해자를 조사한 뒤, 가해자와 피해자의 진술이 엇갈릴 경우, 최초 피해자를 조사한 해바라기센터에서 다시 피해자를 조사해야하지만, 재조사없이 사건을 무혐의로 종결해 버린 것입니다.

장애인 인권 단체들이 이번 수사를 총체적 부실 수사로 규정하고, 전면 재조사를 촉구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해마다 증가하는 장애인 대상 성범죄 불기소율…도가니법 무색

두달 전 경남 거제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10대 지적 장애 여성이 20대 남성 둘에게 성폭행을 당했지만, 경찰은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했습니다. 관련 통계를 찾아봤습니다.

성범죄 친고죄가 폐지된 2013년부터 경찰이 장애인 대상 성범죄자를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비율은 10% 포인트 가까이 늘었습니다. 장애인 대상 성범죄 세 건 가운데 한 건은 무혐의로 끝낸다는 겁니다.

반면, 같은 기간 비장애인의 경우에는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영화 '도가니'로 유명한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장애인 대상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이른바 '도가니법'이 2011년 제정됐습니다.

하지만, 장애인 대상 성범죄 불기소율은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왜 그럴까요? 전문가들은 경찰 수사가 법 제정 취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도가니법은 장애인 대상 성범죄에 대해 최대 무기징역까지 내릴 수 있도록 양형 기준을 강화한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형량이 늘어나다보니 재판부는 더욱 엄격한 잣대로 혐의 입증 여부를 판단하고 있지만, 경찰 수사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성폭행 사건의 경우 직접 증거보다 진술 의존도가 높은 것이 특징입니다.

하지만, 지적 장애인의 경우 진술을 얻기가 매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피해자의 인지 능력과 언어 능력이 떨어지고, 조사 당시의 환경과 조사자의 능력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경찰도 수사 매뉴얼을 만드는 등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지적 장애인 수사에서는 비장애인의 기준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사 기관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장애인 이해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장애에 이어 성범죄란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는 지적 장애인들이 힘겹게 결심한 '미투'를 '대답없는 메아리'로 끝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 사회의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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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17 (17:47)
    • 수정 2018.05.17 (17:55)
    취재후
[취재후] “대답없는 메아리”…지적 장애인 모녀의 ‘미투’
지적 장애인 연희씨 모녀의 '말 못할 비밀'

대구의 한 지적 장애인 모녀가 이웃의 50대 남성으로부터 상습 성폭행을 당했다는 제보를 받은 것은 지난 달이었습니다.

심하게 어눌한 말투와 표현이었지만, 성폭행으로 인한 수치심과 고통의 감정은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연희(가명)씨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연희씨는 지적 장애 2급, 어머니는 지적 장애 3급의 장애인. 모녀가 전해 준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지난 해 7월, 50대 남성이 모녀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 나란히 눕힌 채, 한 방에서 성관계를 가졌다는 겁니다. 모녀는 이 일을 둘만의 비밀로 하기로 했습니다. 알려지기 두려웠던 겁니다.

하지만, 남성의 성폭행은 이후에도 계속됐습니다. 연희 씨 어머니가 친구에게 이 사실을 털어놨고 결국 연희 씨 아버지까지 알게 되면서 해당 남성을 성폭행 혐의로 경찰에 신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기초수급을 끊어버리겠다!"…협박과 함께 자행된 20차례의 성폭행

경찰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모녀는 지적 장애인 성범죄 피해자 조사 기관인 해바라기센터에서 성폭행 피해 사실을 진술했습니다.

남성은 처음 성폭행 이후 모녀와 함께 점심을 먹고, 술을 마신 뒤 이후 성폭행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모녀는 20차례에 걸쳐 성폭행이 이뤄졌다고 진술했습니다.

모녀는 성관계를 절대 원하지 않았다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가해 남성은 연희씨 모녀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부재중 전화만 수십 통을 걸었고, 때로는 모녀를 찾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온 동네를 뒤졌습니다.

이때부터 모녀는 남성을 오토바이 아저씨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연희씨의 아버지가 없을 때는 집에 몰래 들어와 협박하며 성폭행을 했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남성은 모녀에게 기초생활 수급을 못받게 하겠다는 협박을 일삼았습니다.

하지만, 경찰 수사 결과는 혐의없음. 경찰은 이 남성과 연희씨 모녀가 합의에 의한 성관계를 가졌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지난 2월 경찰은 가해자를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며 수사를 종결했습니다.

이후 연희씨 모녀와 가족은 매일 오토바이 아저씨를 동네에서 마주쳐야 했습니다. 끔찍한 기억을 매일 떠올리며 불안과 공포에 떨며 생활하고 있는 겁니다.

■"합의에 의한 성관계?"상식 뒤엎는 경찰의 무혐의 근거

경찰이 취재진에게 밝힌 무혐의의 근거는,

첫째, 가해자에 대한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 연희씨 모녀를 협박하지 않았다는 진술이 진실로 나왔다는 것,

둘째, 가해자의 동거녀가 세 사람이 성관계에 합의했다고 진술했다는 것,

셋째, 가해자가 기초수급을 끊겠다는 말을 했다손 치더라도, 민간인인 가해자가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고, 연희씨의 어머니도 이 사실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협박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장애인 인권 단체와 변호사 등 전문가를 상대로 경찰의 수사 종결 근거가 타당한지 물어봤습니다.

동거녀는 가해자와 특수 관계인에 속하기 때문에 가해자에게 유리한 진술을 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진술을 인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평가였습니다.

또, 장애인에 대한 협박 성립 여부는 사실 관계가 아니라 당시의 상황을 더 고려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지적 장애인들이 쉽게 겁을 먹는 경향이 있는 만큼 협박의 범위를 더 넓게 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거짓말 탐지기 조사 결과의 경우, 거짓말 탐지기는 어디까지나 수사 참고 자료로만 활용될 뿐, 직접 증거는 될 수 없다는게 일반적인 상식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말 안하면 무혐의?"…장애인 특수성 무시·재조사없이 끝난 경찰 수사

경찰 수사의 허점은 또 있었습니다.

경찰은 조사 당시 연희씨가 피해 사실을 제대로 진술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취재진은 연희씨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연희씨는 취재진에게 성폭행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줬습니다.

상습적으로 성폭행이 이뤄졌고, 거짓말로 가해자를 피해 보려 했지만, 성폭행은 계속됐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경찰과 함께 연희씨를 조사했던 해바라기센터의 진술 기록도 살펴봤습니다.

이 기록에서도 연희씨는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성폭행 사실을 진술하고 있었습니다. 성폭행이 20차례 이뤄졌고, 아버지 연배의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한 고통에 대해서도 진술했습니다. 가해자가 벌금형에 그칠까 걱정하는 등 상황을 구체적으로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해바라기 센터와 공동으로 조사한 연희씨의 진술 기록을 모두 무시하고 성폭행 피해 사실을 제대로 진술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린 겁니다.

경찰은 장애인 대상 성범죄 수사 매뉴얼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우선 피해자를 조사하고, 이어 가해자를 조사한 뒤, 가해자와 피해자의 진술이 엇갈릴 경우, 최초 피해자를 조사한 해바라기센터에서 다시 피해자를 조사해야하지만, 재조사없이 사건을 무혐의로 종결해 버린 것입니다.

장애인 인권 단체들이 이번 수사를 총체적 부실 수사로 규정하고, 전면 재조사를 촉구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해마다 증가하는 장애인 대상 성범죄 불기소율…도가니법 무색

두달 전 경남 거제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10대 지적 장애 여성이 20대 남성 둘에게 성폭행을 당했지만, 경찰은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했습니다. 관련 통계를 찾아봤습니다.

성범죄 친고죄가 폐지된 2013년부터 경찰이 장애인 대상 성범죄자를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비율은 10% 포인트 가까이 늘었습니다. 장애인 대상 성범죄 세 건 가운데 한 건은 무혐의로 끝낸다는 겁니다.

반면, 같은 기간 비장애인의 경우에는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영화 '도가니'로 유명한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장애인 대상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이른바 '도가니법'이 2011년 제정됐습니다.

하지만, 장애인 대상 성범죄 불기소율은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왜 그럴까요? 전문가들은 경찰 수사가 법 제정 취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도가니법은 장애인 대상 성범죄에 대해 최대 무기징역까지 내릴 수 있도록 양형 기준을 강화한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형량이 늘어나다보니 재판부는 더욱 엄격한 잣대로 혐의 입증 여부를 판단하고 있지만, 경찰 수사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성폭행 사건의 경우 직접 증거보다 진술 의존도가 높은 것이 특징입니다.

하지만, 지적 장애인의 경우 진술을 얻기가 매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피해자의 인지 능력과 언어 능력이 떨어지고, 조사 당시의 환경과 조사자의 능력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경찰도 수사 매뉴얼을 만드는 등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지적 장애인 수사에서는 비장애인의 기준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사 기관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장애인 이해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장애에 이어 성범죄란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는 지적 장애인들이 힘겹게 결심한 '미투'를 '대답없는 메아리'로 끝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 사회의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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