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한반도] 북미정상회담 취소…이유와 파장은?

입력 2018.05.26 (07:49) 수정 2018.05.26 (09:1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 12일로 예정됐던 북미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했습니다.

회담 준비 과정에서 북한이 보여준 위협과 불신 등을 이유로 들었는데요.

북한은 예고한 대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한 데 이어 미국과 문제를 풀 용의가 있다는 내용의 담화를 내놓는 등 서둘러 사태 봉합에 나서는 모양새입니다.

특히 북미 양측 모두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어 회담이 재개될 여지도 남아 있습니다.

오늘 이슈앤한반도에서는 북미정상회담 취소 소식과 의미, 파장 등을 짚어봅니다.

이다솔 리포터입니다.

[리포트]

우리시각 24일 밤 10시 50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 앞으로 쓴 한 통의 공개서한을 발표했습니다.

다음달 12일로 예정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트럼프/미국 대통령 : "북한의 최근 성명에 기초해서 6월 12일로 예정됐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종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공개 석상에서도 북미 정상회담 취소 사실을 알렸습니다.

회담이 무산된 건 세계와 북한 모두에 큰 좌절이라며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 주민을 위해 올바른 일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비핵화의 길을 따르고 국제사회에 동참할 때 가난과 압제에서 벗어날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트럼프/미국 대통령 : "밝고 아름다운 미래는 핵무기 위협이 제거될 때에만 가능합니다. 다른 방식으로는 절대 가능하지 않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미국은 북한의 위협에 어느 때보다 준비돼 있다며 최대 압박을 계속할 것이란 경고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이 건설적인 대화와 행동을 선택하기를 기다리고 있다며 회담 재개 가능성도 열어뒀습니다.

[트럼프/미국 대통령 : "추진해왔던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있고, 추후에 회담이 열릴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잘 해야 합니다."]

역사적인 비핵화 담판으로 주목받았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무산되면서 한반도 정세는 또다시 고비를 맞게 됐습니다.

백악관은 북미 정상회담이 재개될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회담이 취소된 이유로 북한의 태도를 꼽았는데요.

미국이 주장하는 북한의 태도, 과연 어떤 부분일까요?

트럼프 대통령이 우선적으로 꼽은 회담 취소 사유는 북한의 적대적 태도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개서한에서 북한이 최근에 보인 엄청난 분노와 적대감 때문에 지금 회담을 여는 건 부적절하다고 밝혔습니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과 최선희 부상이 미국을 비난하는 담화를 연이어 내놓은 걸 문제 삼은 걸로 보입니다.

미국은 특히 최선희 외무상 부상이 펜스 미국 부통령을 ‘아둔한 얼뜨기’라고 비난한 데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백악관의 한 관계자는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펜스 부통령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인내의 한계였다며 회담을 취소하게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폼페이오/미국 국무장관 : "최근 며칠 동안, 김정은 위원장과 합의한 대로 정상회담 준비팀을 가동해 회담 준비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북측에 연락을 시도했지만 북측으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습니다."]

미국이 두 번째로 꼽은 회담 취소 사유는 북한에 대한 거듭된 불신입니다.

지난 9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두 번째 평양 방문.

당시 북한과 미국은 5월 셋째 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을 갖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이른바 바람을 맞히고 연락도 받지 않았다는 게 미국의 주장입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의문이 여전한 상황에서 북한이 시간 약속까지 파기하면서 불신의 정도가 더욱 커진 겁니다.

이러면서 북미 사이에 회담 진행 방식 등에 대한 실무적 의견 접근조차 이루지 못한 것도 회담 무산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취소를 발표한 지 불과 8시간 반 뒤.

북한 당국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 형식으로 첫 번째 공식 입장을 내놨습니다.

서둘러 사태를 수습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개인 담화라는 유연한 형식을 취하면서도 위임에 따른 담화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정은 위원장의 뜻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과거 2차례 담화와 달리 표현도 차분하고 부드러웠습니다.

북한 당국은 담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을 취소한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거론한 커다란 분노와 노골적인 적대감은 미국 측의 일방적 핵 폐기 압박에 대한 반발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준비 사업이 마감 단계에서 추진되고 있다며 북측이 협상에 응하지 않았다는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도 우회적으로 반박했습니다.

북한은 또 열린 마음으로 미국 측에 시간과 기회를 주겠다며 회담 재개 의사를 내비치며 공을 미국에 다시 넘겼습니다.

그러면서도 첫술에 배부를 리는 없겠지만 한 가지씩이라도 단계별로 해결한다면 지금보다 관계가 좋아질 것이라며 '단계적 해결'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뜻도 내비쳤습니다.

[이관세/전 통일부 차관 : "시간과 기회를 미국에게 주겠다, 그런 것은 의연하게 회담에 미국이 호응해 올 수 있는 것을 기다리겠다는 단계적으로 하나하나 문제를 풀어간다면 미국이나 북한에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한 것은 역시 북한은 단계적인 문제 해결 접근 방식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는 것..."]

미국이 북미정상회담 취소 소식을 발표한 뒤 청와대는 긴급 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취소 배경을 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중점 논의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이 취소된 데 대해 당혹스럽고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습니다.

청와대는 또 북미정상회담 취소에 대한 북한 입장이 나온 뒤에도 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북미 정상 간의 소통을 위해 필요한 노력을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윤영찬/청와대 홍보수석 : "판문점 선언에 따라 남북 관계 개선 노력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며 이러한 노력이 북미 관계 개선 및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계기를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 하였습니다."]

청와대는 그러나 백악관이 북미정상회담 취소 사실을 발표와 거의 동시에 주미 한국대사에게 알려왔다며 사전에 회담 무산을 알지 못했다는 점을 사실상 시인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결정은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공개적으로 폐기한 직후 발표됐습니다.

북한은 핵실험이 진행되지 않은 갱도와 지상 시설물까지 함께 폭파시키며 핵실험장을 완전히 폐기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는데요.

우리 측 기자들도 우여곡절 끝에 해외 기자들과 함께 핵실험장 폐기 현장을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굉음과 함께 갱도 입구가 무너져 내리고 흙먼지가 산자락을 뒤덮습니다.

먼지가 걷히자 건물 잔해와 함께 돌무더기에 파묻힌 갱도 입구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지난 24일 북한은 예고한 대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진행했습니다.

오전 11시. 북한은 과거 5차례 핵실험이 이뤄진 2번 갱도와 핵실험 관측소를 폭파하며 폐기 절차를 시작했습니다.

오후 2시 17분에는 아직 핵실험이 이뤄지지 않은 4번 갱도와 금속을 가공하는 단야장을 폭파했고, 30분 뒤에는 생활동과 본부 등 5개 건물을 연속적으로 폭파했습니다.

이어 오후 4시 들어 나머지 3번 갱도와 군 경비병력이 거주하는 막사 2개동을 폭파시킴으로써 풍계리 폐기 행사는 마무리됐습니다.

[강경호/북한 핵무기연구소 부소장 : "해당 성원들이 철수하는 데에 따라 핵시험장 주변을 완전 폐쇄하게 된다."]

북한은 특히 3, 4번 갱도의 경우 언제든 핵실험이 가능한 상태임을 기자단도 확인했다며 이번 폐기가 비핵화를 위한 실효성 있는 조치임을 다시 한 번 주장했습니다.

전문가들 역시 북한이 미래의 핵개발을 포기하겠다는 뜻을 선제적으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김용현/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전체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서를 100으로 놓는다면 한 10에서 15% 정도를 먼저 북한이 선제적으로 미국의 요구가 있기 전에 우선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함으로서 미국에게도 충분히 적극적으로 비핵화에 대해서 행동하게 만드는 이런 차원의 북한의 선제적 행동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대단히 크다고 봐야 됩니다."]

하지만 갱도의 핵심시설인 기폭실 폭파 여부가 불분명해, 이번 폐기의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또 미국과 협상이 결렬돼 북한이 핵실험을 재개하기로 마음먹으면 시간은 걸리겠지만 갱도를 복구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에도 미국이 북미회담을 전격 취소한 데에는 북미 간 비핵화 방식과 보상 문제 등에서 최종 접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단계적 조치도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시사하기도 했지만, 일괄타결을 원하는 미국과 행동 대 행동의 단계적 비핵화를 원했던 북한 사이에는 근본적인 간극은 여전한 상황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취소 결정을 내린 건 이런 상황에서 회담을 할 경우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란 결론을 내렸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김용현/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본질적으로는 CVID에 대한 북미 간에 입장차가 커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싱가포르에서 만났을 때 바로 성과가 나오기 어렵다. 또 성과가 나오더라도 상당히 김정은 위원장에게 끌려가는 그런 정상회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에 대한 우려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에 판 자체를 완전히 뒤집는 선택을 했다고 봐야될 것 같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전임 정권들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 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핵화 목표치를 지나치게 훼손하면서까지 북미 회담을 예정대로 진행하기엔 상당한 부담을 느꼈을 거란 분석입니다.

[김현욱/국립외교원 교수 : "미국이 대화의 목적으로 삼았던 CVID를 이루지 못할 거라는 그러한 판단 하에 결국 전임 미국정권과 차별화를 보일 수 없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고 아마 이것은 북미정상회담 들어가기 이전에 조기에 발을 빼야 된다는 그러한 판단을 트럼프 대통령으로 하게끔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럼에도 미국과 북한 양측 모두 회담 재개 가능성을 완전히 닫진 않은 점은 주목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한에서 친애하는 김정은 위원장이란 표현을 쓰며 억류 미국인 석방에 감사를 표하고 마음이 바뀌면 주저 말고 전화나 편지를 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트럼프/미국 대통령 : "혹시라도 김정은이 건설적인 대화와 행동에 나설지, 또 언제 그렇게 할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북한도 김계관 제1부상 담화에서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 앉아 문제를 풀 용의가 있다며 대화 의지를 적극 표명했습니다.

정상회담을 결정한 트럼프 대통령의 용단을 높이 평가해 왔다고 추켜세웠고, ‘트럼프 방식’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현명한 방안이 되기를 은근 기대했다는 속내도 드러냈습니다.

이처럼 북미 모두가 서로를 자극하지 않은 만큼 어느 정도 소강국면을 거친 뒤 대화를 모색할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레 나옵니다.

[김용현/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북미정상회담을 할 수 있는 그런 연결고리를 만들어 놨다. 이런 점에서는 의미가 분명히 있는 것이고 또 그것을 계기로 해서 북미정상 회담의 가능성들이 살아있다. 또 앞으로도 시점이 바로 나올 수는 없지만 6월 12일 이후 언제나 또 가능하다는 그런 점에서는 의미 있는 그런 담화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기적 핵 담판이라는 격랑 속에서 길을 잃은 북한과 미국.

두 당사자를 회담 테이블로 이끌어야 하는 우리 정부 역할이 또다시 중요해졌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이슈&한반도] 북미정상회담 취소…이유와 파장은?
    • 입력 2018-05-26 08:49:20
    • 수정2018-05-26 09:12:29
    남북의 창
[앵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 12일로 예정됐던 북미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했습니다.

회담 준비 과정에서 북한이 보여준 위협과 불신 등을 이유로 들었는데요.

북한은 예고한 대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한 데 이어 미국과 문제를 풀 용의가 있다는 내용의 담화를 내놓는 등 서둘러 사태 봉합에 나서는 모양새입니다.

특히 북미 양측 모두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어 회담이 재개될 여지도 남아 있습니다.

오늘 이슈앤한반도에서는 북미정상회담 취소 소식과 의미, 파장 등을 짚어봅니다.

이다솔 리포터입니다.

[리포트]

우리시각 24일 밤 10시 50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 앞으로 쓴 한 통의 공개서한을 발표했습니다.

다음달 12일로 예정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트럼프/미국 대통령 : "북한의 최근 성명에 기초해서 6월 12일로 예정됐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종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공개 석상에서도 북미 정상회담 취소 사실을 알렸습니다.

회담이 무산된 건 세계와 북한 모두에 큰 좌절이라며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 주민을 위해 올바른 일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비핵화의 길을 따르고 국제사회에 동참할 때 가난과 압제에서 벗어날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트럼프/미국 대통령 : "밝고 아름다운 미래는 핵무기 위협이 제거될 때에만 가능합니다. 다른 방식으로는 절대 가능하지 않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미국은 북한의 위협에 어느 때보다 준비돼 있다며 최대 압박을 계속할 것이란 경고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이 건설적인 대화와 행동을 선택하기를 기다리고 있다며 회담 재개 가능성도 열어뒀습니다.

[트럼프/미국 대통령 : "추진해왔던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있고, 추후에 회담이 열릴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잘 해야 합니다."]

역사적인 비핵화 담판으로 주목받았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무산되면서 한반도 정세는 또다시 고비를 맞게 됐습니다.

백악관은 북미 정상회담이 재개될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회담이 취소된 이유로 북한의 태도를 꼽았는데요.

미국이 주장하는 북한의 태도, 과연 어떤 부분일까요?

트럼프 대통령이 우선적으로 꼽은 회담 취소 사유는 북한의 적대적 태도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개서한에서 북한이 최근에 보인 엄청난 분노와 적대감 때문에 지금 회담을 여는 건 부적절하다고 밝혔습니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과 최선희 부상이 미국을 비난하는 담화를 연이어 내놓은 걸 문제 삼은 걸로 보입니다.

미국은 특히 최선희 외무상 부상이 펜스 미국 부통령을 ‘아둔한 얼뜨기’라고 비난한 데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백악관의 한 관계자는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펜스 부통령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인내의 한계였다며 회담을 취소하게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폼페이오/미국 국무장관 : "최근 며칠 동안, 김정은 위원장과 합의한 대로 정상회담 준비팀을 가동해 회담 준비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북측에 연락을 시도했지만 북측으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습니다."]

미국이 두 번째로 꼽은 회담 취소 사유는 북한에 대한 거듭된 불신입니다.

지난 9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두 번째 평양 방문.

당시 북한과 미국은 5월 셋째 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을 갖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이른바 바람을 맞히고 연락도 받지 않았다는 게 미국의 주장입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의문이 여전한 상황에서 북한이 시간 약속까지 파기하면서 불신의 정도가 더욱 커진 겁니다.

이러면서 북미 사이에 회담 진행 방식 등에 대한 실무적 의견 접근조차 이루지 못한 것도 회담 무산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취소를 발표한 지 불과 8시간 반 뒤.

북한 당국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 형식으로 첫 번째 공식 입장을 내놨습니다.

서둘러 사태를 수습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개인 담화라는 유연한 형식을 취하면서도 위임에 따른 담화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정은 위원장의 뜻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과거 2차례 담화와 달리 표현도 차분하고 부드러웠습니다.

북한 당국은 담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을 취소한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거론한 커다란 분노와 노골적인 적대감은 미국 측의 일방적 핵 폐기 압박에 대한 반발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준비 사업이 마감 단계에서 추진되고 있다며 북측이 협상에 응하지 않았다는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도 우회적으로 반박했습니다.

북한은 또 열린 마음으로 미국 측에 시간과 기회를 주겠다며 회담 재개 의사를 내비치며 공을 미국에 다시 넘겼습니다.

그러면서도 첫술에 배부를 리는 없겠지만 한 가지씩이라도 단계별로 해결한다면 지금보다 관계가 좋아질 것이라며 '단계적 해결'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뜻도 내비쳤습니다.

[이관세/전 통일부 차관 : "시간과 기회를 미국에게 주겠다, 그런 것은 의연하게 회담에 미국이 호응해 올 수 있는 것을 기다리겠다는 단계적으로 하나하나 문제를 풀어간다면 미국이나 북한에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한 것은 역시 북한은 단계적인 문제 해결 접근 방식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는 것..."]

미국이 북미정상회담 취소 소식을 발표한 뒤 청와대는 긴급 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취소 배경을 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중점 논의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이 취소된 데 대해 당혹스럽고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습니다.

청와대는 또 북미정상회담 취소에 대한 북한 입장이 나온 뒤에도 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북미 정상 간의 소통을 위해 필요한 노력을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윤영찬/청와대 홍보수석 : "판문점 선언에 따라 남북 관계 개선 노력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며 이러한 노력이 북미 관계 개선 및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계기를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 하였습니다."]

청와대는 그러나 백악관이 북미정상회담 취소 사실을 발표와 거의 동시에 주미 한국대사에게 알려왔다며 사전에 회담 무산을 알지 못했다는 점을 사실상 시인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결정은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공개적으로 폐기한 직후 발표됐습니다.

북한은 핵실험이 진행되지 않은 갱도와 지상 시설물까지 함께 폭파시키며 핵실험장을 완전히 폐기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는데요.

우리 측 기자들도 우여곡절 끝에 해외 기자들과 함께 핵실험장 폐기 현장을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굉음과 함께 갱도 입구가 무너져 내리고 흙먼지가 산자락을 뒤덮습니다.

먼지가 걷히자 건물 잔해와 함께 돌무더기에 파묻힌 갱도 입구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지난 24일 북한은 예고한 대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진행했습니다.

오전 11시. 북한은 과거 5차례 핵실험이 이뤄진 2번 갱도와 핵실험 관측소를 폭파하며 폐기 절차를 시작했습니다.

오후 2시 17분에는 아직 핵실험이 이뤄지지 않은 4번 갱도와 금속을 가공하는 단야장을 폭파했고, 30분 뒤에는 생활동과 본부 등 5개 건물을 연속적으로 폭파했습니다.

이어 오후 4시 들어 나머지 3번 갱도와 군 경비병력이 거주하는 막사 2개동을 폭파시킴으로써 풍계리 폐기 행사는 마무리됐습니다.

[강경호/북한 핵무기연구소 부소장 : "해당 성원들이 철수하는 데에 따라 핵시험장 주변을 완전 폐쇄하게 된다."]

북한은 특히 3, 4번 갱도의 경우 언제든 핵실험이 가능한 상태임을 기자단도 확인했다며 이번 폐기가 비핵화를 위한 실효성 있는 조치임을 다시 한 번 주장했습니다.

전문가들 역시 북한이 미래의 핵개발을 포기하겠다는 뜻을 선제적으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김용현/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전체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서를 100으로 놓는다면 한 10에서 15% 정도를 먼저 북한이 선제적으로 미국의 요구가 있기 전에 우선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함으로서 미국에게도 충분히 적극적으로 비핵화에 대해서 행동하게 만드는 이런 차원의 북한의 선제적 행동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대단히 크다고 봐야 됩니다."]

하지만 갱도의 핵심시설인 기폭실 폭파 여부가 불분명해, 이번 폐기의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또 미국과 협상이 결렬돼 북한이 핵실험을 재개하기로 마음먹으면 시간은 걸리겠지만 갱도를 복구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에도 미국이 북미회담을 전격 취소한 데에는 북미 간 비핵화 방식과 보상 문제 등에서 최종 접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단계적 조치도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시사하기도 했지만, 일괄타결을 원하는 미국과 행동 대 행동의 단계적 비핵화를 원했던 북한 사이에는 근본적인 간극은 여전한 상황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취소 결정을 내린 건 이런 상황에서 회담을 할 경우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란 결론을 내렸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김용현/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본질적으로는 CVID에 대한 북미 간에 입장차가 커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싱가포르에서 만났을 때 바로 성과가 나오기 어렵다. 또 성과가 나오더라도 상당히 김정은 위원장에게 끌려가는 그런 정상회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에 대한 우려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에 판 자체를 완전히 뒤집는 선택을 했다고 봐야될 것 같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전임 정권들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 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핵화 목표치를 지나치게 훼손하면서까지 북미 회담을 예정대로 진행하기엔 상당한 부담을 느꼈을 거란 분석입니다.

[김현욱/국립외교원 교수 : "미국이 대화의 목적으로 삼았던 CVID를 이루지 못할 거라는 그러한 판단 하에 결국 전임 미국정권과 차별화를 보일 수 없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고 아마 이것은 북미정상회담 들어가기 이전에 조기에 발을 빼야 된다는 그러한 판단을 트럼프 대통령으로 하게끔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럼에도 미국과 북한 양측 모두 회담 재개 가능성을 완전히 닫진 않은 점은 주목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한에서 친애하는 김정은 위원장이란 표현을 쓰며 억류 미국인 석방에 감사를 표하고 마음이 바뀌면 주저 말고 전화나 편지를 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트럼프/미국 대통령 : "혹시라도 김정은이 건설적인 대화와 행동에 나설지, 또 언제 그렇게 할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북한도 김계관 제1부상 담화에서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 앉아 문제를 풀 용의가 있다며 대화 의지를 적극 표명했습니다.

정상회담을 결정한 트럼프 대통령의 용단을 높이 평가해 왔다고 추켜세웠고, ‘트럼프 방식’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현명한 방안이 되기를 은근 기대했다는 속내도 드러냈습니다.

이처럼 북미 모두가 서로를 자극하지 않은 만큼 어느 정도 소강국면을 거친 뒤 대화를 모색할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레 나옵니다.

[김용현/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북미정상회담을 할 수 있는 그런 연결고리를 만들어 놨다. 이런 점에서는 의미가 분명히 있는 것이고 또 그것을 계기로 해서 북미정상 회담의 가능성들이 살아있다. 또 앞으로도 시점이 바로 나올 수는 없지만 6월 12일 이후 언제나 또 가능하다는 그런 점에서는 의미 있는 그런 담화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기적 핵 담판이라는 격랑 속에서 길을 잃은 북한과 미국.

두 당사자를 회담 테이블로 이끌어야 하는 우리 정부 역할이 또다시 중요해졌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