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KBS 보도로 생리대 업계 노심초사”…식약처의 과도한 ‘기업’ 걱정

입력 2018.05.28 (07:02) 수정 2018.05.2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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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세계 월경의 날'이다. 독일의 비영리 재단인 '워시유나이티드'(WASH United)의 제안으로 월경에 대한 사회적 침묵과 터부를 깨고 전 세계 여성의 권리를 존중하기 위해 2014년 만들어졌다. 날짜가 5월 28일인 이유는 평균적으로 여성이 한 달에 5일 동안, 28일을 주기로 월경을 하기 때문이다.

■생리대 보도에 식약처 정정 요청..."기업 피해 우려된다"

월경의 날을 맞아 안심하고 쓸 수 있는 생리대를 만들어달라는 요구는 끊이질 않고 있다. KBS는 지난해 식약처가 진행한 생리대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 실험에 문제가 있었고 독성물질이 합쳐지는 '칵테일 효과'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연속 보도를 내보냈다.

[연관기사][뉴스9] 생리대 속 유해 화학물질, 섞이면 독성 ‘증폭’

식약처는 KBS 생리대 보도 이후 피해가 발생했다며 정정보도를 요청했다. 제출한 근거의 첫번째 조항에는 "2017년 불거진 생리대 유해성 논란으로 많은 국민들은 불안에 떨어야했고, 생리대 산업은 위축(16년 생산 2979억→17년 2608억)되었으며 특정 업체는 경영 위기에 처했습니다"라고 적혀있었다.

생리대 유해성 문제를 '논란' 구도로 몰아가고 생리대 산업과 기업 걱정에 나선 것이다. 바로 아래에는 분명 식약처가 '식품과 의약품의 안전을 책임지는 규제 기관'이라고 명시돼있다. 국민의 입장에서 안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는 식약처에서 왜 경영 위기에 처한 특정 업체를 언급하며 정정보도를 요구하는 걸까?

식약처는 네번째 조항에서 KBS의 보도가 "생리대 업계 또한 노심초사하게 만들고 있습니다."라면서 다시 한 번 기업의 피해를 우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리해보자면 아무 문제 없는 생리대에 대한 보도로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기업을 망하게 할 수 있으니 정정보도를 하라는 것이다.

■식약처 '기업 봐주기'?...안전 입증 책임은 기업에게

생리대는 유해물질의 흡수가 빠른 여성 생식기에 직접 접촉하는데도 불구하고 제품 내 잔류물질에 대한 통합적인 관리가 없었다. 정부가 생리대를 생산하는 기업들에게 안전을 입증할 책임을 지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품의 성분을 표시할 의무도 없었다. 과도한 규제라느니 기업이 살아야 국가가 산다는 '기업 봐주기' 프레임의 일종일 수 있는데, 식약처의 정정보도 요청 이유를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지난해 식약처는 시중에 유통되는 모든 생리대(666품목)를 대상으로 "부족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많은 직원들의 희생"으로 실험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제품을 시장에 내놓기 전에 안전을 검증할 책임은 기업에게 있는데 국민의 혈세를 들여 왜 식약처가 나서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식약처는 국제적으로 생리대에 들어있는 VOCs 시험법이 없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을 동원해 분석을 시행했다고 했다. 그러나 생리대의 사용 특성상 피부 접촉에 대한 독성 평가법을 마련하고 안전을 입증해야하는 일은 기업의 몫이다. 영업 비밀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 화학 성분이 많은 데다가 유해성을 가장 잘 아는 주체는 개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연관기사][뉴스9] ‘경구 투여’로 생리대 독성 판단?…“피부가 더 취약”


■가습기 살균제부터 생리대까지...'케모포비아' 원인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호흡기에 대한 영향이 확인되지 않은 물질을 사용하면서 벌어진 비극이었다. 1994년 살균제(PHMG, CMIT 등) 성분을 개발한 SK케미칼은 피부 접촉과 경구 투여만으로 독성 자료를 제공했다. 제품 판매사인 옥시 등 기업들은 호흡 독성 정보가 없어서 그렇게 유독한 물질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2011년 질병관리본부가 원인미상의 폐 손상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임을 밝혀냈지만 옥시 측의 조작된 실험 보고서 제출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결국 같은 해 판매 중지됐다. 피해자는 대부분 산모와 아이들에 집중됐고 사망자가 1300명을 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연관기사] "국민 30% 가습기 살균제 노출"...유전자 변형도 우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겪으며 "독성 정보 없이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사전주의 원칙을 전면 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모든 화학물질은 독성과 용도를 등록한 뒤 사용할 수 있는데, 호흡기로 유입되는 스프레이형 제품에 호흡 독성 정보가 없다면 판매할 수 없다는 얘기다.

출처:연합뉴스출처:연합뉴스

생리대도 마찬가지다. 미량의 독성물질이라도 수십 년간 누적 노출되는 점을 고려하면 최대한 보수적인 기준으로 여성 생식기 피부 흡수를 가정한 위해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피부 독성 정보가 없는 화학물질은 사용하지 못하도록 못박아야 한다. 또 기업이 피해자에게 유해성을 증명해보라며 큰소리 치는 게 아니라 정부와 소비자가 기업에게 안전을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와 살충제 계란, 생리대에 최근 라돈 침대 사건까지 계속되며 '케모포비아'(chemophobia)라는 말이 등장했다.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증을 의미하는데 과연 대중이 두려워하는 것이 화학 물질뿐일까? 오히려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 기업과 정부에 대한 불신이 쌓이면서 케모포비아를 만들어낸 게 아닌지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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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KBS 보도로 생리대 업계 노심초사”…식약처의 과도한 ‘기업’ 걱정
    • 입력 2018-05-28 07:02:04
    • 수정2018-05-29 11:01:10
    취재후·사건후
오늘은 '세계 월경의 날'이다. 독일의 비영리 재단인 '워시유나이티드'(WASH United)의 제안으로 월경에 대한 사회적 침묵과 터부를 깨고 전 세계 여성의 권리를 존중하기 위해 2014년 만들어졌다. 날짜가 5월 28일인 이유는 평균적으로 여성이 한 달에 5일 동안, 28일을 주기로 월경을 하기 때문이다.

■생리대 보도에 식약처 정정 요청..."기업 피해 우려된다"

월경의 날을 맞아 안심하고 쓸 수 있는 생리대를 만들어달라는 요구는 끊이질 않고 있다. KBS는 지난해 식약처가 진행한 생리대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 실험에 문제가 있었고 독성물질이 합쳐지는 '칵테일 효과'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연속 보도를 내보냈다.

[연관기사][뉴스9] 생리대 속 유해 화학물질, 섞이면 독성 ‘증폭’

식약처는 KBS 생리대 보도 이후 피해가 발생했다며 정정보도를 요청했다. 제출한 근거의 첫번째 조항에는 "2017년 불거진 생리대 유해성 논란으로 많은 국민들은 불안에 떨어야했고, 생리대 산업은 위축(16년 생산 2979억→17년 2608억)되었으며 특정 업체는 경영 위기에 처했습니다"라고 적혀있었다.

생리대 유해성 문제를 '논란' 구도로 몰아가고 생리대 산업과 기업 걱정에 나선 것이다. 바로 아래에는 분명 식약처가 '식품과 의약품의 안전을 책임지는 규제 기관'이라고 명시돼있다. 국민의 입장에서 안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는 식약처에서 왜 경영 위기에 처한 특정 업체를 언급하며 정정보도를 요구하는 걸까?

식약처는 네번째 조항에서 KBS의 보도가 "생리대 업계 또한 노심초사하게 만들고 있습니다."라면서 다시 한 번 기업의 피해를 우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리해보자면 아무 문제 없는 생리대에 대한 보도로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기업을 망하게 할 수 있으니 정정보도를 하라는 것이다.

■식약처 '기업 봐주기'?...안전 입증 책임은 기업에게

생리대는 유해물질의 흡수가 빠른 여성 생식기에 직접 접촉하는데도 불구하고 제품 내 잔류물질에 대한 통합적인 관리가 없었다. 정부가 생리대를 생산하는 기업들에게 안전을 입증할 책임을 지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품의 성분을 표시할 의무도 없었다. 과도한 규제라느니 기업이 살아야 국가가 산다는 '기업 봐주기' 프레임의 일종일 수 있는데, 식약처의 정정보도 요청 이유를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지난해 식약처는 시중에 유통되는 모든 생리대(666품목)를 대상으로 "부족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많은 직원들의 희생"으로 실험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제품을 시장에 내놓기 전에 안전을 검증할 책임은 기업에게 있는데 국민의 혈세를 들여 왜 식약처가 나서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식약처는 국제적으로 생리대에 들어있는 VOCs 시험법이 없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을 동원해 분석을 시행했다고 했다. 그러나 생리대의 사용 특성상 피부 접촉에 대한 독성 평가법을 마련하고 안전을 입증해야하는 일은 기업의 몫이다. 영업 비밀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 화학 성분이 많은 데다가 유해성을 가장 잘 아는 주체는 개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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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부터 생리대까지...'케모포비아' 원인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호흡기에 대한 영향이 확인되지 않은 물질을 사용하면서 벌어진 비극이었다. 1994년 살균제(PHMG, CMIT 등) 성분을 개발한 SK케미칼은 피부 접촉과 경구 투여만으로 독성 자료를 제공했다. 제품 판매사인 옥시 등 기업들은 호흡 독성 정보가 없어서 그렇게 유독한 물질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2011년 질병관리본부가 원인미상의 폐 손상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임을 밝혀냈지만 옥시 측의 조작된 실험 보고서 제출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결국 같은 해 판매 중지됐다. 피해자는 대부분 산모와 아이들에 집중됐고 사망자가 1300명을 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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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겪으며 "독성 정보 없이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사전주의 원칙을 전면 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모든 화학물질은 독성과 용도를 등록한 뒤 사용할 수 있는데, 호흡기로 유입되는 스프레이형 제품에 호흡 독성 정보가 없다면 판매할 수 없다는 얘기다.

출처:연합뉴스
생리대도 마찬가지다. 미량의 독성물질이라도 수십 년간 누적 노출되는 점을 고려하면 최대한 보수적인 기준으로 여성 생식기 피부 흡수를 가정한 위해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피부 독성 정보가 없는 화학물질은 사용하지 못하도록 못박아야 한다. 또 기업이 피해자에게 유해성을 증명해보라며 큰소리 치는 게 아니라 정부와 소비자가 기업에게 안전을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와 살충제 계란, 생리대에 최근 라돈 침대 사건까지 계속되며 '케모포비아'(chemophobia)라는 말이 등장했다.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증을 의미하는데 과연 대중이 두려워하는 것이 화학 물질뿐일까? 오히려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 기업과 정부에 대한 불신이 쌓이면서 케모포비아를 만들어낸 게 아닌지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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