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성폭행과 임신, 하지만 불기소”…반복되는 장애인 성폭행 왜?

입력 2018.06.23 (14:37) 수정 2018.06.23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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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3급 딸을 둔 아버지의 이야기

김민수(가명) 씨가 16살 딸의 임신을 안 건 이미 임신 6개월이었을 때입니다. 아이를 다그쳐 남성 2명을 특정했습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아이의 진술이 답답했던 김 씨는 딸을 동네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동네 병원은 아이의 인지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단기기억력 등이 '경도 장애 수준'으로, 발달장애가 의심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당시, 아이가 장애 등급을 받은 게 없다며 비장애인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결국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습니다. 이후 김 씨가 전문기관을 통해 다시 장애 검사를 받아보니 아이는 발달장애 3급이었습니다.

◆발달장애 2급 딸을 둔 어머니의 이야기 


딸아이가 어느 날부터 등교를 거부해 이상하다고 생각한 이민영(가명) 씨.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친구들이 만진다'며 당시 상황을 재현했습니다. 평소 아이의 표현 수준을 고려할 때 경험에 의한 것으로 생각한 이 씨는 아이의 몸에 녹음기를 달고 학교에 보냈습니다. 녹취록에서 아이들의 괴롭힘을 확인한 이 씨는 학교 측에 문제를 제기하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하지만 경찰 수사에서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다며 '혐의없음' 결론을 내렸고 결국 학교도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10명 중 4명은 재판조차 받지 못합니다. 이들의 상처는 수사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벌어지고 결국에는 상처보다도 큰 흉터를 남긴 채 살아가야 합니다. 대체 무엇 때문에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이 끝나지 않는 걸까요?

피해자의 신빙성 없는 진술 때문이 아닙니다.


제 나이보다 발달이 늦은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은 같은 상황 속에서 인지할 수 있는 범위가 다릅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발달장애인 성폭력 피해는, 피해자가 임신 후, 다시 말해 사건이 발생한 지 한참이나 후에야 다른 사람이 이를 발견하고 고소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수사과정에서는 이러한 발달장애인의 인지 수준과 시간의 경과를 이해할 수 있는 전문가가 부족합니다. 결국 '상식', '일반'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피해자들을 재판까지 가기조차 어렵게 만듭니다.


김승희 의원실에서 제공한 자료를 보면, 해마다 사건으로 접수되는 장애인 대상 성폭력은 1,100여 건에 이릅니다. 친족이나 이웃과 같이 일상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10명 중 9명인데 구속률은 2013년 21.5%에서 지난해 9.3%로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사법부가 발달장애인 성폭력 사건에 대해 '법적 다툼의 소지가 있다'고 보는 경향이 높은 겁니다.

"딸이 발달장애인 데다가 피의자 2명이 준 술을 마셨으니 아이가 기억이 없는 건데 계속 물어보면 아이도 한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보통 사람도 어려운 걸 아이가 하다가 지치니 아닌 걸 맞다고 하기도 하고 그러는 건데…."

"'언제 그랬어?'라고 물으면 '그때, 비 오는 날.' 그렇게만 표현을 해요, 몇 월 며칠이라는 거는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에요. 육하원칙이라는 걸 이해를 못 하는 아이한테 육하원칙을 끌어내려고 하는 진술 과정은 저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봤어요."


피해자의 계속된 연락 때문이 아닙니다

아직도 성폭력 피해자의 '저항' 정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법과정에서 다시 한 번 발달장애인 피해자들은 소외됩니다. 피해를 당한 후 가해자와 어떤 내용을 주고받았는지가 중요한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발달장애인들은 애초에 성폭력임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하더라도 의지할 곳이 없어 가해자와 계속 연락을 나누기도 합니다. '소외'에 더 익숙하고 건강한 사회적 관계를 맺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은 발달장애인들을 가해자들이 범행 대상으로 삼는 이유입니다. 피해 후에도 연락을 주고받은 정황이 자신보다 취약한 발달장애인들을 현혹해 피해자로 만든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가 학교에 안 가겠다는 거에요.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 같은 걸 당한 거지. 애를 봐줄 사람도 없고 그 사이에 가해자 무리하고 만나게 된 거지."

"아이가 2차 성징이 나타나니깐 너무 걱정되더라고요. 사랑이나 소속감을 느껴본 적이 거의 없으니깐 혹시 범죄의 표적이 되지는 않을까. 이 아이를 그런 데서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


당신들의 변명 때문입니다

이선경 변호사 : "모든 장애인이 장애 등록이 되어있는 게 아니고 발달장애인은 특히 외부에서 볼 때에는 티가 안 나는 경우도 많은데요. 그냥 형식적으로 등록 안 되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비장애인 보고 수사하고, 그런데 '진술 일관성 없다'면서 불기소하고 이런 식의 사례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 일이 없어 지려면 장애가 의심되면 수사를 중단하고 전문가 의뢰를 해서 장애 여부를 확인해보시라고 그렇게 요청을 하고 싶습니다."


"임신 6개월이 될 동안 스스로 뭔가 조치 취하려고 생각을 했을 텐데 이상하다고 느꼈죠. 그때까지만 해도 지적장애라는 단어를 제가 모르고 살았거든요. 제가 죄인 같죠."

그 가족들도 모두 발달장애인이면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장애 등록을 하기 어렵습니다. 때로는 발달장애를 숨기기 위해 가족들이 등록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무조건 장애인이 아니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야기를 하다 보면, 특수한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면 분명 비장애인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 때문에 이선경 발달장애인 성폭력 전문 변호사는 발달장애인 성폭력 피해를 해결하기 위한 수사라면 경찰과 검찰, 법원이 적극적으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고 관련된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가해자들도 마찬가집니다.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이들이 지닌 복지카드를 보고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보다 취약한 범행 대상을 물색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보고 '범죄를 저질러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그들의 '장애인 줄 몰랐다'는 말은 가중처벌을 피하기 위한 사악한 변명일 뿐입니다. 반복되는 발달장애인 성폭력은 나쁜 가해자보다 그 나쁜 가해자의 사악한 변명이 통하는 수사과정 때문이 아닐까요? 

[연관 기사] [뉴스9] 불기소율 40%…인정받기 어려운 ‘장애인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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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성폭행과 임신, 하지만 불기소”…반복되는 장애인 성폭행 왜?
    • 입력 2018-06-23 14:37:23
    • 수정2018-06-23 19:53:27
    취재후·사건후
◆발달장애 3급 딸을 둔 아버지의 이야기

김민수(가명) 씨가 16살 딸의 임신을 안 건 이미 임신 6개월이었을 때입니다. 아이를 다그쳐 남성 2명을 특정했습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아이의 진술이 답답했던 김 씨는 딸을 동네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동네 병원은 아이의 인지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단기기억력 등이 '경도 장애 수준'으로, 발달장애가 의심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당시, 아이가 장애 등급을 받은 게 없다며 비장애인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결국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습니다. 이후 김 씨가 전문기관을 통해 다시 장애 검사를 받아보니 아이는 발달장애 3급이었습니다.

◆발달장애 2급 딸을 둔 어머니의 이야기 


딸아이가 어느 날부터 등교를 거부해 이상하다고 생각한 이민영(가명) 씨.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친구들이 만진다'며 당시 상황을 재현했습니다. 평소 아이의 표현 수준을 고려할 때 경험에 의한 것으로 생각한 이 씨는 아이의 몸에 녹음기를 달고 학교에 보냈습니다. 녹취록에서 아이들의 괴롭힘을 확인한 이 씨는 학교 측에 문제를 제기하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하지만 경찰 수사에서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다며 '혐의없음' 결론을 내렸고 결국 학교도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10명 중 4명은 재판조차 받지 못합니다. 이들의 상처는 수사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벌어지고 결국에는 상처보다도 큰 흉터를 남긴 채 살아가야 합니다. 대체 무엇 때문에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이 끝나지 않는 걸까요?

피해자의 신빙성 없는 진술 때문이 아닙니다.


제 나이보다 발달이 늦은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은 같은 상황 속에서 인지할 수 있는 범위가 다릅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발달장애인 성폭력 피해는, 피해자가 임신 후, 다시 말해 사건이 발생한 지 한참이나 후에야 다른 사람이 이를 발견하고 고소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수사과정에서는 이러한 발달장애인의 인지 수준과 시간의 경과를 이해할 수 있는 전문가가 부족합니다. 결국 '상식', '일반'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피해자들을 재판까지 가기조차 어렵게 만듭니다.


김승희 의원실에서 제공한 자료를 보면, 해마다 사건으로 접수되는 장애인 대상 성폭력은 1,100여 건에 이릅니다. 친족이나 이웃과 같이 일상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10명 중 9명인데 구속률은 2013년 21.5%에서 지난해 9.3%로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사법부가 발달장애인 성폭력 사건에 대해 '법적 다툼의 소지가 있다'고 보는 경향이 높은 겁니다.

"딸이 발달장애인 데다가 피의자 2명이 준 술을 마셨으니 아이가 기억이 없는 건데 계속 물어보면 아이도 한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보통 사람도 어려운 걸 아이가 하다가 지치니 아닌 걸 맞다고 하기도 하고 그러는 건데…."

"'언제 그랬어?'라고 물으면 '그때, 비 오는 날.' 그렇게만 표현을 해요, 몇 월 며칠이라는 거는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에요. 육하원칙이라는 걸 이해를 못 하는 아이한테 육하원칙을 끌어내려고 하는 진술 과정은 저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봤어요."


피해자의 계속된 연락 때문이 아닙니다

아직도 성폭력 피해자의 '저항' 정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법과정에서 다시 한 번 발달장애인 피해자들은 소외됩니다. 피해를 당한 후 가해자와 어떤 내용을 주고받았는지가 중요한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발달장애인들은 애초에 성폭력임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하더라도 의지할 곳이 없어 가해자와 계속 연락을 나누기도 합니다. '소외'에 더 익숙하고 건강한 사회적 관계를 맺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은 발달장애인들을 가해자들이 범행 대상으로 삼는 이유입니다. 피해 후에도 연락을 주고받은 정황이 자신보다 취약한 발달장애인들을 현혹해 피해자로 만든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가 학교에 안 가겠다는 거에요.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 같은 걸 당한 거지. 애를 봐줄 사람도 없고 그 사이에 가해자 무리하고 만나게 된 거지."

"아이가 2차 성징이 나타나니깐 너무 걱정되더라고요. 사랑이나 소속감을 느껴본 적이 거의 없으니깐 혹시 범죄의 표적이 되지는 않을까. 이 아이를 그런 데서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


당신들의 변명 때문입니다

이선경 변호사 : "모든 장애인이 장애 등록이 되어있는 게 아니고 발달장애인은 특히 외부에서 볼 때에는 티가 안 나는 경우도 많은데요. 그냥 형식적으로 등록 안 되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비장애인 보고 수사하고, 그런데 '진술 일관성 없다'면서 불기소하고 이런 식의 사례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 일이 없어 지려면 장애가 의심되면 수사를 중단하고 전문가 의뢰를 해서 장애 여부를 확인해보시라고 그렇게 요청을 하고 싶습니다."


"임신 6개월이 될 동안 스스로 뭔가 조치 취하려고 생각을 했을 텐데 이상하다고 느꼈죠. 그때까지만 해도 지적장애라는 단어를 제가 모르고 살았거든요. 제가 죄인 같죠."

그 가족들도 모두 발달장애인이면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장애 등록을 하기 어렵습니다. 때로는 발달장애를 숨기기 위해 가족들이 등록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무조건 장애인이 아니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야기를 하다 보면, 특수한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면 분명 비장애인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 때문에 이선경 발달장애인 성폭력 전문 변호사는 발달장애인 성폭력 피해를 해결하기 위한 수사라면 경찰과 검찰, 법원이 적극적으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고 관련된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가해자들도 마찬가집니다.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이들이 지닌 복지카드를 보고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보다 취약한 범행 대상을 물색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보고 '범죄를 저질러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그들의 '장애인 줄 몰랐다'는 말은 가중처벌을 피하기 위한 사악한 변명일 뿐입니다. 반복되는 발달장애인 성폭력은 나쁜 가해자보다 그 나쁜 가해자의 사악한 변명이 통하는 수사과정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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