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이 무서워요”…데이트 폭력 방지법 발의 1년 ‘낮잠’

입력 2018.07.18 (21:15) 수정 2018.07.18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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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어제(17일)에 이어 오늘(18일)도 먼지 쌓인 민생 법안 속에 방치된 약자의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연인 간 사랑 싸움 정도로 치부되던 데이트 폭력이 감금에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며 최근 사회 문제가 됐는데요.

재범률이 높고, 피해자가 도움을 구할 절차도 미비하지만 통상적인 폭력 범죄로 분류돼 처벌 수위는 낮습니다.

데이트 폭력으로 인한 충격적인 사례들이 대중에 알려지며 공분을 자아냈고, 이런 분위기 속에 관련 법안도 여러 건 발의됐지만 지금껏 감감무소식입니다.

이슈가 터지면 무더기로 발의하고 이후에는 무관심한 행태, 우리 국회의 고질병입니다.

김빛이라, 최형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옷이 벗겨진 채로 끌려다니면서 협박당하고..."]

이별을 요구했단 이유로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여성,

지우고 싶을 순간을 세상에 공개한 건 다름 아닌 피해자였습니다.

[데이트폭력 피해여성/음성변조 : "연인 사이의 이런 다툼은 신고해봤자 벌금인데. 스스로 알려야겠다."]

목격자 신고로 당시 남자친구는 체포됐지만, 다른 남자 만나지 말라는 등의 협박 문자는 이어졌습니다.

악몽에 시달리다 넉달 째 지역을 옮겨가며 살고 있습니다.

[데이트폭력 피해여성/음성변조 : "출소하고 나왔을 때, 저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아이이기 때문에 가족들한테도 해를 끼칠까 두렵습니다."]

이런 '데이트폭력'은 통상적인 폭력 범죄로 분류됩니다.

특례법으로 엄격히 제제하는 '가정폭력'과 달리, 경찰이 가해자를 즉시 격리하거나 임의로 접근금지 조치를 할 수 없습니다.

[장관승/서울광진경찰서 화양지구대 경감 :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데, 생길 것 같은데 하면서도 사실상 법률이 미비 돼 있기 때문에 출동한 경찰이 어떤 조치를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재결합을 거부했다며 살해를 시도하고 심지어 때려 숨지게 해도, 초범이라는 이유로 집행유예 선고에 그쳤습니다.

이런 문제로 신고 즉시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강력히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발의됐지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을 찾아가 피해 여성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데이트폭력 피해여성/음성변조 : "아직 1년간 아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표창원/더불어민주당 의원/법안 대표 발의 : "발의만 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보니까, 이후에 심의·의결 과정이 아예 열리지 않는 안타까움에 봉착했죠."]

[신보라/자유한국당 의원/법안 대표 발의 : "공감대가 우리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많이 떨어지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차일피일 법안심사가 미뤄지는 것에 대해 저도 막중한 책임감을 많이 느끼고요."]

데이트폭력으로 목숨을 잃는 여성은 한 해 평균 46명.

연인 간의 사소한 다툼이 아니라고, 얼마나 더 크게 외쳐야 할까요.

["의원님들의 딸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어떻게 하셨을지 한 번 생각해봐 주세요."]

KBS 뉴스 김빛이라입니다.

[기자]

20대 국회에서 '데이트 폭력 방지 법안'이 처음 발의된 건 지난해 8월입니다.

20대 남성이 여자친구를 무차별 폭행한 것도 모자라 화물차를 몰고 돌진까지 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직후입니다.

사회적 관심 속에 비슷한 법안은 지난해 말까지 4건 더 발의됐습니다.

하지만 법안을 낼 때의 관심과 달리 이후 여성가족위원회에서는 단 한 차례도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올 상반기엔 무엇보다 '미투' 운동이 초미의 관심이었죠.

각 당은 미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관련 법안은 어느 정도나 발의됐을까요?

무려 47건, 쏟아졌다 해도 될 정도입니다.

잇따른 포항 지진 뒤엔 지진 관련 개정안을 역시 36건이나 내놓았습니다.

이 법안들, 어떻게 됐을까요?

발의 때는 반짝 관심을 받았지만, 본회의를 통과한 건 4건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법안들은 상임위에 28건, 소위엔 4건이 방치돼 있습니다.

국회의원의 일이 법을 만드는 것이니 발의 자체를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이슈가 될 때는 서로 나서다가 관심이 사그라들면 '나몰라라' 하는 게 관행처럼 굳어진 겁니다.

이면에는 법안 발의 건수를 중요 평가 기준으로 삼는 언론의 잣대도 있을 겁니다.

KBS 뉴스 최형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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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복이 무서워요”…데이트 폭력 방지법 발의 1년 ‘낮잠’
    • 입력 2018-07-18 21:19:03
    • 수정2018-07-18 22: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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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어제(17일)에 이어 오늘(18일)도 먼지 쌓인 민생 법안 속에 방치된 약자의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연인 간 사랑 싸움 정도로 치부되던 데이트 폭력이 감금에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며 최근 사회 문제가 됐는데요.

재범률이 높고, 피해자가 도움을 구할 절차도 미비하지만 통상적인 폭력 범죄로 분류돼 처벌 수위는 낮습니다.

데이트 폭력으로 인한 충격적인 사례들이 대중에 알려지며 공분을 자아냈고, 이런 분위기 속에 관련 법안도 여러 건 발의됐지만 지금껏 감감무소식입니다.

이슈가 터지면 무더기로 발의하고 이후에는 무관심한 행태, 우리 국회의 고질병입니다.

김빛이라, 최형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옷이 벗겨진 채로 끌려다니면서 협박당하고..."]

이별을 요구했단 이유로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여성,

지우고 싶을 순간을 세상에 공개한 건 다름 아닌 피해자였습니다.

[데이트폭력 피해여성/음성변조 : "연인 사이의 이런 다툼은 신고해봤자 벌금인데. 스스로 알려야겠다."]

목격자 신고로 당시 남자친구는 체포됐지만, 다른 남자 만나지 말라는 등의 협박 문자는 이어졌습니다.

악몽에 시달리다 넉달 째 지역을 옮겨가며 살고 있습니다.

[데이트폭력 피해여성/음성변조 : "출소하고 나왔을 때, 저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아이이기 때문에 가족들한테도 해를 끼칠까 두렵습니다."]

이런 '데이트폭력'은 통상적인 폭력 범죄로 분류됩니다.

특례법으로 엄격히 제제하는 '가정폭력'과 달리, 경찰이 가해자를 즉시 격리하거나 임의로 접근금지 조치를 할 수 없습니다.

[장관승/서울광진경찰서 화양지구대 경감 :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데, 생길 것 같은데 하면서도 사실상 법률이 미비 돼 있기 때문에 출동한 경찰이 어떤 조치를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재결합을 거부했다며 살해를 시도하고 심지어 때려 숨지게 해도, 초범이라는 이유로 집행유예 선고에 그쳤습니다.

이런 문제로 신고 즉시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강력히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발의됐지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을 찾아가 피해 여성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데이트폭력 피해여성/음성변조 : "아직 1년간 아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표창원/더불어민주당 의원/법안 대표 발의 : "발의만 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보니까, 이후에 심의·의결 과정이 아예 열리지 않는 안타까움에 봉착했죠."]

[신보라/자유한국당 의원/법안 대표 발의 : "공감대가 우리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많이 떨어지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차일피일 법안심사가 미뤄지는 것에 대해 저도 막중한 책임감을 많이 느끼고요."]

데이트폭력으로 목숨을 잃는 여성은 한 해 평균 46명.

연인 간의 사소한 다툼이 아니라고, 얼마나 더 크게 외쳐야 할까요.

["의원님들의 딸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어떻게 하셨을지 한 번 생각해봐 주세요."]

KBS 뉴스 김빛이라입니다.

[기자]

20대 국회에서 '데이트 폭력 방지 법안'이 처음 발의된 건 지난해 8월입니다.

20대 남성이 여자친구를 무차별 폭행한 것도 모자라 화물차를 몰고 돌진까지 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직후입니다.

사회적 관심 속에 비슷한 법안은 지난해 말까지 4건 더 발의됐습니다.

하지만 법안을 낼 때의 관심과 달리 이후 여성가족위원회에서는 단 한 차례도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올 상반기엔 무엇보다 '미투' 운동이 초미의 관심이었죠.

각 당은 미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관련 법안은 어느 정도나 발의됐을까요?

무려 47건, 쏟아졌다 해도 될 정도입니다.

잇따른 포항 지진 뒤엔 지진 관련 개정안을 역시 36건이나 내놓았습니다.

이 법안들, 어떻게 됐을까요?

발의 때는 반짝 관심을 받았지만, 본회의를 통과한 건 4건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법안들은 상임위에 28건, 소위엔 4건이 방치돼 있습니다.

국회의원의 일이 법을 만드는 것이니 발의 자체를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이슈가 될 때는 서로 나서다가 관심이 사그라들면 '나몰라라' 하는 게 관행처럼 굳어진 겁니다.

이면에는 법안 발의 건수를 중요 평가 기준으로 삼는 언론의 잣대도 있을 겁니다.

KBS 뉴스 최형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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