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원령공주 숲’을 지키는 사람들

입력 2018.07.22 (07:06) 수정 2018.07.22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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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마구 베어내고 쇠를 녹여 총을 만드는 사람들. 속절없이 파괴되어 가는 숲. 인간의 무분별한 행동에 분노한 숲의 정령들과 신, 그리고 그들 편에선 숲의 공주.

1997년 개봉돼 많은 인기를 끌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원령공주' 이야기다.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의 행동이 얼마나 무분별한 것인지 보여주는 깊은 서사를 담고 있지만, 이 이야기가 근대 일본 어느 한 섬에서 이뤄졌던 어떤 이들의 치열한 싸움을 모티브로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숲을 지켜내기 위해 원령 공주가 됐던 사람들. 천 년 고목을 지켜낸 사람들을 만났다.

[연관기사] [글로벌 리포트] 1,000년 고목을 지키는 사람들

■ '원령 공주의 숲'...천 년된 삼나무를 만나다.

타박타박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딜수록 주변의 초록은 더욱 깊어간다. 바윗돌 하나에 깔린 이끼까지 온통 숲은 채도를 달리하는 녹음의 파노라마다.


산길을 오르며 내뱉는 호흡마저도 잎새 빛에 물들을까 싶을 정도로 숲은 참 깊게 숨을 쉬고 있었다.

일본 규슈 남단 가고시마에서 비행기로 30분 정도. 영화 '쥬라기 공원'의 무대 처럼 바다 위에 우뚝 솟은 섬 하나가 나타난다. 세계 자연 유산 야쿠시마(屋久島)다.


아침 5시. 숲을 얼마나 걸어 올랐을까. 나무줄기로 스며드는 햇살이 찬란하게 초록으로 산란하는 한 숲에 다다른다. '고케무스 숲' 일명 '원령 공주의 숲'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오가며 '원령 공주'의 모티브를 얻었다는 숲, 극상의 원시림, 그 속 곳곳에는 거대한 삼나무들이 자리 잡고 있다.

야쿠시마의 삼나무, 야쿠 스기라 불리는 고목들이다. 나무 둘레가 십수미터를 쉽게 넘기는 거목으로 나무 둥치 밑으로 생긴 터널(?)을 통해 사람이 지나갈 정도로 커다란 나무들이다.


천 년 고목이라는 이름이 붙은 나무들. 그중 가장 오래된 나무는 수령 4천 년을 훌쩍 넘긴 걸로 추정되고 있으니, 고구려, 백제, 신라의 왕들과 같은 시대를 살고, 고려, 조선의 흥망을 멀리서 지켜봤을 법 하다.

"야쿠시마는 화강암으로 이뤄진 곳으로 영양분이 정말 적습니다. 그런 곳에서 나무가 자라기 때문에 나이테가 아주 촘촘히 천천히 자랍니다. 나무에 유분도 많이 함유돼 있어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하마다/ 야쿠 스기 자연관 해설사)"

척박한 땅인 까닭에 천천히 자랄 수밖에 없었고 조직이 더 단단하고 촘촘해지면서 오랜 세월 살아남는 나무로 자라난다는 설명이다. 역경이 더 단단한 나무를 만들어낸 자연의 역설이기도 하다.

실제 자연관에서 만난 아이들은 나이테를 1,652까지 헤아렸다며 신나했다.

야쿠시마는 작은 섬이지만 높은 해발 고도의 산이 있는 까닭에 해안가는 아열대, 산 정상 부근은 아한대의 식생을 보이는, 현지인들의 설명에 의하면 오키나와에서 홋카이도까지 일본 열도의 숲을 한 섬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식생을 가졌다. 여기에 천 년 넘게 숲을 지키고 있는 '야쿠 스기'의 가치가 인정받으면서 세계 자연 유산에 선정될 수 있었다.

■ 인간에게 파헤쳐진 숲...쓰러진 나무들.


야쿠시마의 숲길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잘린 채 밑동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나무 둥치들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모두 과거 이 숲에서 이뤄진 벌채의 흔적들이다.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곳 야쿠시마의 삼나무를 잘라 진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야쿠시마에서의 벌채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 공습 등으로 파괴된 도시를 다시 재건할 건축 자재용 목재가 대량으로 필요해지자 야쿠시마의 질 좋은 삼나무들은 곧바로 표적이 됐다. 해안가를 제외한 섬 대부분이 국유림인 야쿠시마는 곧 국가 차원에서 추진된 정책 목표 아래 목재 생산 기지로 전락했다.


전체 섬의 80%에 이르는 숲이 벌채 대상이 되던 시절, 곳곳이 민둥산이 될 정도로 야쿠시마의 숲은 짧은 시간에 철저하게 파괴됐다.

그럼 지금 살아남은 나무들은 어떻게 톱질을 피해갈 수 있었을까? 나무를 잘라내기 전 벌채꾼들은 목재로서의 상품성을 확인하기 위해 지상에서부터 2~3m 위에 깊은 구멍을 뚫어 속이 꽉 차 있는지 확인한다. 이 검사 과정에서 속이 비어있거나 썩은 부분이 있는 나무들은 그대로 뒀는데, 그렇게 대상에서 제외된 삼나무만이 살아남았다 한다.

"곧고 훌륭한 나무는 전부 베어지고 못난이가 살아남아 숲을 지켜온 거죠" 라는 설명이 따라왔다.

험한 산등성이에 자리 잡고 있어, 접근이 힘들고 잘라내도 거대한 나무를 운반할 방법이 없는 개체들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 '원령 공주'의 모델이 된 사람들

벌채의 폐해는 섬 곳곳에서 나타났다. 산은 파헤쳐 져 적은 비에도 흘러내린 토사에 산사태가 일어났고, 또 그렇게 바다로 흘러든 흙은 일본 최고의 날치 어장이었던 주변의 바다를 망쳤다.

숲이 파괴되면서 섬 경관 자체가 변해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효도 씨와 나가이 씨는 야쿠시마 출신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도쿄에서 명문 와세다 대학을 다녔고,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고향 섬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파괴돼 가는 모습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이발 기계로 머리를 밀어버린 것 같았어요. 야쿠시마는 본토에 물자를 대기 위해 수탈당하는 일본 내의 식민지 같은 곳이었죠." 담담히 효도 씨가 당시 상황을 설명해나갔다.

그리고 1972년, 두 사람은 도쿄에서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야쿠시마로 다시 돌아와 '야쿠시마를 지키는 모임'을 결성해 숲 지키기 운동을 시작했다.

벌채로 생계를 이어가던 주민들이 대다수이던 시절, 왜 섬을 지켜야 하는지 사람들을 설득하고 정치인들과 언론을 찾아다니며 작은 섬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알렸다.

숲을 파괴하는 사람들에 맞서 싸우는 원령 공주의 모습은 이들의 전설 같은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작은 한 걸음에서 시작된 그 싸움,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과의 힘겨루기는 10년간 지속됐고 마침내 1982년 섬의 벌채가 완전히 중단됐다.

"사람과 자연 간의 다양한 공존 관계를 지키자는 것이, 저희 운동의 목적이었죠. 하지만 저희 운동이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벌채라는 마이너스가 계속되는 것을 멈춘 것뿐이죠. 그런 운동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자연에게는 실패죠." (나가이)

"천 년이라는 세월은 인간이 개입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에요. 우리는 그 시간을 후세대에 남겨줘야 하는 의무가 있죠. 이 숲이 가진 원형의 자원을 전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죠." (효도)

야쿠시마는 그렇게 벌채가 끝난 지 10여 년 만인 1993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됐다.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된 지역은 지형이 험해 벌채를 피해갔던 섬 전체의 20%에 한정됐다.


■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정신

당시 운동이 파괴를 멈추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이 정신을 어떻게 계승할까로 섬 주민들의 노력은 이어지고 있다.

'야쿠시마 미래회의'는 좋은 섬을 만들기 위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자치 운동 기구이다. 야쿠시마를 더 잘 알기 위해 학계와 지역 연구가들을 연계해 '야쿠시마 학회'를 조직하고, 섬의 특성을 살려 나무로 만든 버스 정류장을 기획한다든지, 혹은 섬의 전신주를 모두 없앨 방법을 찾는 등 곳곳에서 이뤄지는 작은 노력을 연계해내고 실현화할 방법을 찾아간다.

산림학교를 만들어 섬 어린이들에게 깊은 숲 이야기를 들려주고 숲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거나, 3천 년 된 삼나무에서 씨앗을 받아 직계 손을 키워내는 등 많은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


원령 공주의 숲을 걸으며 숲을 지키는 대지의 신과 정령들을 머릿속에 그려냈을 미야자키 하야오. 그리고 그 스토리를 현실에서 이뤄낸 사람들.

야쿠시마의 천 년 고목들은 앞으로 새로운 천 년을 또 살아가며 우리들의 모습을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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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원령공주 숲’을 지키는 사람들
    • 입력 2018-07-22 07:06:40
    • 수정2018-07-22 22:15:12
    특파원 리포트
나무를 마구 베어내고 쇠를 녹여 총을 만드는 사람들. 속절없이 파괴되어 가는 숲. 인간의 무분별한 행동에 분노한 숲의 정령들과 신, 그리고 그들 편에선 숲의 공주.

1997년 개봉돼 많은 인기를 끌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원령공주' 이야기다.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의 행동이 얼마나 무분별한 것인지 보여주는 깊은 서사를 담고 있지만, 이 이야기가 근대 일본 어느 한 섬에서 이뤄졌던 어떤 이들의 치열한 싸움을 모티브로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숲을 지켜내기 위해 원령 공주가 됐던 사람들. 천 년 고목을 지켜낸 사람들을 만났다.

[연관기사] [글로벌 리포트] 1,000년 고목을 지키는 사람들

■ '원령 공주의 숲'...천 년된 삼나무를 만나다.

타박타박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딜수록 주변의 초록은 더욱 깊어간다. 바윗돌 하나에 깔린 이끼까지 온통 숲은 채도를 달리하는 녹음의 파노라마다.


산길을 오르며 내뱉는 호흡마저도 잎새 빛에 물들을까 싶을 정도로 숲은 참 깊게 숨을 쉬고 있었다.

일본 규슈 남단 가고시마에서 비행기로 30분 정도. 영화 '쥬라기 공원'의 무대 처럼 바다 위에 우뚝 솟은 섬 하나가 나타난다. 세계 자연 유산 야쿠시마(屋久島)다.


아침 5시. 숲을 얼마나 걸어 올랐을까. 나무줄기로 스며드는 햇살이 찬란하게 초록으로 산란하는 한 숲에 다다른다. '고케무스 숲' 일명 '원령 공주의 숲'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오가며 '원령 공주'의 모티브를 얻었다는 숲, 극상의 원시림, 그 속 곳곳에는 거대한 삼나무들이 자리 잡고 있다.

야쿠시마의 삼나무, 야쿠 스기라 불리는 고목들이다. 나무 둘레가 십수미터를 쉽게 넘기는 거목으로 나무 둥치 밑으로 생긴 터널(?)을 통해 사람이 지나갈 정도로 커다란 나무들이다.


천 년 고목이라는 이름이 붙은 나무들. 그중 가장 오래된 나무는 수령 4천 년을 훌쩍 넘긴 걸로 추정되고 있으니, 고구려, 백제, 신라의 왕들과 같은 시대를 살고, 고려, 조선의 흥망을 멀리서 지켜봤을 법 하다.

"야쿠시마는 화강암으로 이뤄진 곳으로 영양분이 정말 적습니다. 그런 곳에서 나무가 자라기 때문에 나이테가 아주 촘촘히 천천히 자랍니다. 나무에 유분도 많이 함유돼 있어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하마다/ 야쿠 스기 자연관 해설사)"

척박한 땅인 까닭에 천천히 자랄 수밖에 없었고 조직이 더 단단하고 촘촘해지면서 오랜 세월 살아남는 나무로 자라난다는 설명이다. 역경이 더 단단한 나무를 만들어낸 자연의 역설이기도 하다.

실제 자연관에서 만난 아이들은 나이테를 1,652까지 헤아렸다며 신나했다.

야쿠시마는 작은 섬이지만 높은 해발 고도의 산이 있는 까닭에 해안가는 아열대, 산 정상 부근은 아한대의 식생을 보이는, 현지인들의 설명에 의하면 오키나와에서 홋카이도까지 일본 열도의 숲을 한 섬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식생을 가졌다. 여기에 천 년 넘게 숲을 지키고 있는 '야쿠 스기'의 가치가 인정받으면서 세계 자연 유산에 선정될 수 있었다.

■ 인간에게 파헤쳐진 숲...쓰러진 나무들.


야쿠시마의 숲길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잘린 채 밑동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나무 둥치들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모두 과거 이 숲에서 이뤄진 벌채의 흔적들이다.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곳 야쿠시마의 삼나무를 잘라 진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야쿠시마에서의 벌채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 공습 등으로 파괴된 도시를 다시 재건할 건축 자재용 목재가 대량으로 필요해지자 야쿠시마의 질 좋은 삼나무들은 곧바로 표적이 됐다. 해안가를 제외한 섬 대부분이 국유림인 야쿠시마는 곧 국가 차원에서 추진된 정책 목표 아래 목재 생산 기지로 전락했다.


전체 섬의 80%에 이르는 숲이 벌채 대상이 되던 시절, 곳곳이 민둥산이 될 정도로 야쿠시마의 숲은 짧은 시간에 철저하게 파괴됐다.

그럼 지금 살아남은 나무들은 어떻게 톱질을 피해갈 수 있었을까? 나무를 잘라내기 전 벌채꾼들은 목재로서의 상품성을 확인하기 위해 지상에서부터 2~3m 위에 깊은 구멍을 뚫어 속이 꽉 차 있는지 확인한다. 이 검사 과정에서 속이 비어있거나 썩은 부분이 있는 나무들은 그대로 뒀는데, 그렇게 대상에서 제외된 삼나무만이 살아남았다 한다.

"곧고 훌륭한 나무는 전부 베어지고 못난이가 살아남아 숲을 지켜온 거죠" 라는 설명이 따라왔다.

험한 산등성이에 자리 잡고 있어, 접근이 힘들고 잘라내도 거대한 나무를 운반할 방법이 없는 개체들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 '원령 공주'의 모델이 된 사람들

벌채의 폐해는 섬 곳곳에서 나타났다. 산은 파헤쳐 져 적은 비에도 흘러내린 토사에 산사태가 일어났고, 또 그렇게 바다로 흘러든 흙은 일본 최고의 날치 어장이었던 주변의 바다를 망쳤다.

숲이 파괴되면서 섬 경관 자체가 변해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효도 씨와 나가이 씨는 야쿠시마 출신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도쿄에서 명문 와세다 대학을 다녔고,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고향 섬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파괴돼 가는 모습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이발 기계로 머리를 밀어버린 것 같았어요. 야쿠시마는 본토에 물자를 대기 위해 수탈당하는 일본 내의 식민지 같은 곳이었죠." 담담히 효도 씨가 당시 상황을 설명해나갔다.

그리고 1972년, 두 사람은 도쿄에서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야쿠시마로 다시 돌아와 '야쿠시마를 지키는 모임'을 결성해 숲 지키기 운동을 시작했다.

벌채로 생계를 이어가던 주민들이 대다수이던 시절, 왜 섬을 지켜야 하는지 사람들을 설득하고 정치인들과 언론을 찾아다니며 작은 섬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알렸다.

숲을 파괴하는 사람들에 맞서 싸우는 원령 공주의 모습은 이들의 전설 같은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작은 한 걸음에서 시작된 그 싸움,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과의 힘겨루기는 10년간 지속됐고 마침내 1982년 섬의 벌채가 완전히 중단됐다.

"사람과 자연 간의 다양한 공존 관계를 지키자는 것이, 저희 운동의 목적이었죠. 하지만 저희 운동이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벌채라는 마이너스가 계속되는 것을 멈춘 것뿐이죠. 그런 운동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자연에게는 실패죠." (나가이)

"천 년이라는 세월은 인간이 개입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에요. 우리는 그 시간을 후세대에 남겨줘야 하는 의무가 있죠. 이 숲이 가진 원형의 자원을 전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죠." (효도)

야쿠시마는 그렇게 벌채가 끝난 지 10여 년 만인 1993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됐다.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된 지역은 지형이 험해 벌채를 피해갔던 섬 전체의 20%에 한정됐다.


■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정신

당시 운동이 파괴를 멈추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이 정신을 어떻게 계승할까로 섬 주민들의 노력은 이어지고 있다.

'야쿠시마 미래회의'는 좋은 섬을 만들기 위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자치 운동 기구이다. 야쿠시마를 더 잘 알기 위해 학계와 지역 연구가들을 연계해 '야쿠시마 학회'를 조직하고, 섬의 특성을 살려 나무로 만든 버스 정류장을 기획한다든지, 혹은 섬의 전신주를 모두 없앨 방법을 찾는 등 곳곳에서 이뤄지는 작은 노력을 연계해내고 실현화할 방법을 찾아간다.

산림학교를 만들어 섬 어린이들에게 깊은 숲 이야기를 들려주고 숲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거나, 3천 년 된 삼나무에서 씨앗을 받아 직계 손을 키워내는 등 많은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


원령 공주의 숲을 걸으며 숲을 지키는 대지의 신과 정령들을 머릿속에 그려냈을 미야자키 하야오. 그리고 그 스토리를 현실에서 이뤄낸 사람들.

야쿠시마의 천 년 고목들은 앞으로 새로운 천 년을 또 살아가며 우리들의 모습을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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